‘적폐 청산’ 문재인-이재명 평행이론

시즌1은 실패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적폐 청산’이 진보 정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대통령 탄핵 후 정권이 바뀌는 일이 두 번 일어나면서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정부의 임기 초반 흐름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전 정부의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현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

배경은 달랐지만 과정과 결과는 같았다. 문재인정부는 ‘비선 실세’ 논란에서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탄생했다. 이재명정부는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태어났다. 보수 진영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파면되고 그 결과 진보 정권이 들어서는 일이 8년 새 두 번 반복된 것이다.

흔적 지우기

그동안 정권교체 이후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이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정권 10년 주기설이 유효할 때는 정책의 연속성이 묻어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보 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의 보수 정부 9년이 그 예다. 하지만 최근 정권교체 주기가 5년, 3년 등으로 줄어들며 10년 주기설이 깨졌다.

특히 비선 실세, 비상계엄 등으로 인한 대통령 파면으로 국민의 선택이 한쪽으로 크게 쏠리자 새 정부는 이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했다. 문정부가 들고나온 ‘적폐 청산’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청와대에 ‘무혈입성’했다. 취임과 동시에 사회에 쌓여있는 폐단을 쓸어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문정부는 출범 한 달 만인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적폐 청산을 제1의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문정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른바 ‘촛불민심’이 권력의 사유화와 부정부패, 민주주의 파괴와 사회·경제적 적폐로 얼룩진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면서 “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국정 농단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확고하게 물어 훼손된 공적 가치와 공공성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적 반부패 총괄 기구를 설치해 반부패 개혁을 확고히 추진해 국가 차원의 부패 방지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이 선봉에 섰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특검에서 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다. 파격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의 ‘깜짝’ 인사였다. 검찰을 적폐 청산의 ‘칼’로 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사회 전 분야에 사정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일종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사법부 턱밑까지 검찰의 칼끝이 들이 밀어졌다. 이른바 ‘사법 농단’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장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도 모자라 구속되는 등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이 시기 법원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탄핵 이후 진보 정권 출범
대대적인 사정 정국 예고

문화계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박근혜정부 때 진보 성향의 예술인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배경이 됐다. 실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 명단이 공개되기도 했다. 문화체육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사정기관의 레이더에 걸렸고 일부는 재판에 넘겨졌다.

적폐청산의 범위는 전전 정부로까지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검찰은 수사 끝에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다스를 고리로 발생한 금품 거래와 경영 비리 등의 책임을 이 전 대통령에게 물었다.

수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로 박근혜정부, 이명박정부 시절 진행된 정책, 정부 기관의 행보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 출범 이후 1년은 말 그대로 사정 정국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사건이 알려졌다. 국민은 불과 1년새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수감돼 재판에 넘겨지는 상황을 봐야 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문정부의 국정 방향이 지나치게 적폐 청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민생은 뒷전이 됐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일반인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줬다는 사실에 분노한 민심은 문정부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

눈여겨볼 대목은 적폐 청산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국가 차원에서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폐단을 건드렸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사회 분열을 초래했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와 기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재판에서는 무죄로 결론 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요란한 시작에 비해 끝은 초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혹시 이번엔 다를까
3대 특검 결과 주목

문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적폐 청산을 꼽는 목소리도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퇴임 직전까지도 40%를 오르내렸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4~5년 차에 레임덕에 시달리며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인기였다.

하지만 대선 결과는 진보 진영의 패배였다.

무엇보다 상대가 문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 전 대통령이었다는 점, 그가 단 한 번도 선거에 나선 적이 없는 완벽한 정치 초보였다는 점 등에서 문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 인사 문제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적폐 청산이 불러온 사회 양극화가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후 3년이 흘렀다. 진보 진영은 윤정부의 실패로 3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문정부 때보다 의회 권력도 더 견고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으로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으로 따지면 개헌선(200석)에 육박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 지형이 기울어진 상황이라 말 그대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다.

민주당은 이 여대야소 배경으로 이재명정부 출범과 동시에 ‘3대 특검법’을 통과시켰고 이재명 대통령은 공포했다.

지난 10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내란 특검법(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김건희와 명태균·건진법사 관련 국정농단 및 불법 선거 개입 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등이 의결됐다.

채상병 특검법은 최장 140일,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최장 170일 동안 수사할 수 있다. 특검 추천과 임명,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하면 빨라도 다음 달 초에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내내 특검 정국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법적으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수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는 만큼 문정부 때처럼 대대적인 사정 정국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이정부가 ‘적폐 청산 시즌2’를 열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시즌2는?

야권에서는 이정부가 ‘정치 보복’의 시동을 걸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내란 종식’을 민생 회복과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3대 특검법 공포는 그런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막은 올랐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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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