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대통령 이재명 60년 인생사

안동 산골 소년공 대한민국 지도자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제21대 대통령선거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실시된 조기 선거였으며, 정치권 전반에 걸친 격변 속에서 치러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상대로 본선에 나섰고, 그 결과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964년 12월22일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서 태어났다. 5남2녀 중 다섯째로, 이 대통령의 유년기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시작됐다. 출생신고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아 음력 기준으로 나이를 따지게 됐으며,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생일을 무속인을 통해 정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가족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수입이 너무 적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찢어지게
어려웠다

이 대통령의 가족은 1976년,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한다. 당시 이주한 지역은 공장과 달동네가 공존하던 성남 상대원동이었고, 9명의 대가족은 반지하 단칸방에 거주했다.

이사 직후 어머니는 시장 공중화장실 관리인으로 일했으며, 이 대통령과 여동생은 대변 20원, 소변 10원을 받는 화장실 요금을 걷는 일을 도왔다. 아버지는 청소 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동시에, 주변에서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기도 했다. 이런 생활환경 속에서 이 대통령은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13세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성남 일대의 여러 공장서 일하며 ‘소년공’으로 불리는 시기를 보냈다. 체인 수공업 공장, 고무공장, 냉장고 부품 조립 공장, 시계공장 등을 전전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은 기본이었고, 철야 작업이나 주야 맞교대 근무도 잦았다.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유해 화학물질 냄새가 가득한 공간서 환기 없이 일했고, 제대로 된 보호장비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10대 초반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가혹한 노동이었다.

이 대통령은 큰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는데, 이는 대양실업이라는 야구 글러브 공장서 발생했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이 끼어 심각한 상해를 입었고, 이 사고로 평생 팔이 굽는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이후 병역 판정서 지체 장애 6급으로 면제받았다. 또, 시계공장서 사용된 접착제 등 독성 화학물질의 영향으로 인해 후각 기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공장서 퇴근한 뒤 독서실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했다. 책상에 압정을 뿌려 졸음을 참았는데, 몸에 압정이 박힌 채 잠든 날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1년3개월 만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그의 나이 16세 무렵이었다.

당시 검정고시 합격률은 낮았고, 특히 고교 검정고시를 단기간에 통과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검정고시 합격 이후 그는 곧바로 대학 입시 준비에 들어갔다. 입시 준비 과정서도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다. 과외는커녕 참고서조차 마음대로 사지 못해, 도서관과 중고 책방을 전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하게 된다.

등록금은 물론 매월 20만원의 생활비까지 지급받는 조건이었다. 당시 중앙대학교 법대는 높은 입시 경쟁률을 자랑했고, 장학 선발 기준도 매우 엄격했다.

중앙대학교는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입학한 ‘정규 교육기관’이었다. 검정고시로 학력을 취득한 이 대통령은 교복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로망이 커서, 실제로 대학 입학식에 중·고등학교 교복을 빌려 입고 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학 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극심한 가난 흙수저 출신
주경야독 끝 사법시험 통과

당시 이 대통령이 입학한 1982년은 대한민국 사회가 군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시기였다.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고, 사회는 억압과 저항으로 뜨거웠다. 전두환정권 집권 초기로, 대학가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활동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 그는 중앙대학교 도서관서 우연히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록 영상과 책자를 접하게 된다. 당시까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광주 사건을 ‘폭동’으로 인식하고 있던 그는, 실제 내용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았고,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훗날 밝혔다.

이후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삶의 가치관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준 사건으로 언급했고, 광주를 ‘사회적 어머니’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사법시험 합격을 목표로 정진했다. 정규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서 대학에 입학한 만큼 기초 법학 이론에 대한 학습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학과 반복 학습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

수업이 끝난 뒤 도서관서 법전을 정독하며 정리한 필기 노트를 수차례 복습했고, 기출문제와 판례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이 과정서 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기본 개념을 별도로 익혀야 했다.

법대 재학 중에도 경제적 여건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일부 기간 동안 과외, 논술 지도 등으로 생활비를 보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학금으로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충당할 수 있었고, 월세와 식비를 해결하기 위해 가급적 학교 시설을 활용하며 지냈다.

이 대통령은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재학 중 시험에 도전했고, 학부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어 1988년 제18기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입소 당시에도 그는 학부 시절처럼 조용하고 성실한 수강생으로 알려졌으며, 노동법이나 사회복지 관련 과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사법연수원 과정서 이 대통령은 고 노무현 당시 변호사가 진행한 강연을 들은 경험이 있다. 이 강연은 훗날 이 대통령이 노동·사회적 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중 하나로 언급된다. 특히 인권 변호사로서의 진로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3세부터
생업 전선

이 대통령은 대학 시절 학력, 재정 등 여러 제약을 극복하며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1988년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한 뒤 판사나 검사직이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대다수의 연수원 수료생이 안정적인 법조 직군에 지원하던 분위기 속에서, 이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굳혔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노동자, 서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변론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인권 중심의 법률 지원에 주력했다. 1990년대 당시 수도권 외곽 지역이던 성남은 개발 압력과 토지 보상 문제로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분당 백궁·정자지구의 용도 변경 비리 의혹이나 성남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 등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해당 사건들은 개발 이익을 둘러싼 특혜와 비리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핵심이었으며, 이 대통령은 관련 주민들과 함께 행정감시 및 법률 대응을 주도했다.

특히 분당 파크뷰 사건은 그가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본격적인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분양 과정서의 특혜, 가격 조작, 공무원 연루 의혹 등이 불거지며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 대통령은 해당 의혹을 지역 언론과 시의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 활동은 당시 성남지역서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이 대통령을 ‘행동하는 변호사’로 인식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그는 지역의료 공백 문제 해결에도 힘을 쏟았다. 2003~2004년 무렵, 성남서 운영되던 종합병원들이 연이어 폐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지역 주민의 진료 접근권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러자 그는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제안하고 추진했다. 주민 서명을 주도하며 총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시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했지만,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의 반대로 조례는 부결됐다.

이 대통령은 동료들과 시의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항의 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다. 수배 기간 동안 성남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 은신하며 숙식을 해결했다고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 일을 계기로 정치에 나서게 됐다.


그는 이후 공개 연설서 “2004년 3월28일, 성남주민교회 지하서 눈물로 결심했다”며 “시립병원의 꿈을 정치로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은 정당 정치를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고, 같은 해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첫 출마 이후 지역 사회 내에서 그의 활동은 더 활발해졌고, 시민단체 및 자발적 지지자 모임을 중심으로 조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본격적
존재감

결국, 2010년 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로 다시 성남시장에 출마해 당선되며 민선 5기 시장에 취임하게 된다. 이로써 그는 변호사 시절부터 이어온 공공성·복지 중심의 정책 기조를 행정 영역서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커리어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2010년 7월 성남시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취임 초기 성남시는 극심한 재정난에 직면해 있었다. 전임 시장 시절의 무리한 개발과 방만한 예산 집행으로 인해 시의 채무는 7300억원에 달했다.

당시 공무원 월급조차 지급이 어렵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으며, 시 재정은 파산 직전이라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이른바 ‘모라토리엄(지급 유예) 선언’을 통해 부채 구조 조정에 나섰다. 공무원 해외 연수와 관행적 예산 낭비 항목을 전면 삭감하고, 고위 공무원 인사 기준을 대폭 손질했다. 이 대통령은 직접 차량을 운전하고 비서진 없이 이동하며 시장의 권위적 이미지도 벗기 시작했다.

시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며 ‘24시간 트위터 시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복지 행정서도 선도적인 정책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상교복’과 ‘청년배당’이었다. 그는 성남시에 거주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교복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일정 연령의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도입했다.

이 같은 정책은 이후 경기도지사와 대선후보 시절까지 이어지는 ‘보편적 복지’ 철학의 기초가 됐다.

성남서의 성공적인 행정으로 인해 이 대통령에게 더 넓은 정치의 길이 열렸다. 2014년 지방선거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이후 2016년 촛불 정국을 전후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강한 어조로 탄핵을 요구하며, SNS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빠르게 높였다.

이 대통령의 직설적이고 명확한 화법은 지지층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문재인·안희정 후보와 함께 주요 주자로 부상했으나, 경선서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약 21.2%의 지지를 얻었다. 경선 과정서 이슈 제기, 특히 기본소득과 지방분권 등은 이후 정치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만나 인권 변호사 길로
성남시장으로 정치 인생 시작

대선 경선 이후 이 대통령은 다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전국 최대 광역단체의 수장이 된다. 경기도지사로서 그는 행정의 디지털화, 데이터 기반 정책 결정, 사회복지 확대 등에서 성과를 냈다.

대표 정책으로는 ▲경기도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청년기본소득 ▲배달특급 등이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신속한 대응으로 높은 행정 평가를 받았다. 전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 결정은 전국적 논의로 확산되며 그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한번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시절, 이 대통령은 안 좋은 일들에 자주 휘말리게 됐다. 여러 차례의 사생활 논란과 형사 고발이 이어졌으며,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은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21년 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고, 이듬해 2022년 3월 치러진 대선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정치 전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어 8월에는 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표 시절 그는 야당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며, 윤석열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에 집중했다.

또 당내 개혁을 강조하며 공천 시스템 개선, 당헌·당규 개정 등의 작업을 추진했다.

2023년부터는 이른바 ‘검찰 수사 정국’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총 5차례 이상 검찰에 출석했다. 그러나 국회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기소 후에도 그는 대표직을 유지하며 당내 결속을 이끌었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며 조기 대선 정국이 열렸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10일 공식 선언을 통해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직이 공석이 됐기 때문에 정해진 조기 선거 일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의 당내 경선서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상대로 89.77%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후보로 선출됐다. 경선 과정서의 당내 이견은 크지 않았고, 계엄령 사태 이후 당내 결속은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공고히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다시 대선에 출마했고, 제21대 대통령선거서 49.42%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크고 작은
논란·의혹

이번 대선은 2022년 제20대 대선서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던 이 대통령이 세 번째 도전 만에 거둔 승리였다. 동시에 탄핵과 계엄이라는 초유의 정치 상황 이후 선출된 첫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속 치러진 이번 대선서 이 대통령의 당선으로 3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당선 직후 이 대통령은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를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의 조속한 회복과 경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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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