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누워서 침 뱉은 주진우 의원

‘주객전도’ 탈탈 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난데없이 불똥을 맞았다.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24일, 청문회장의 이목은 예기치 않게 주 의원에게 집중됐다. 주 의원이 병역 문제로 여당의 공격을 받으며 청문회의 초점이 옮겨간 것이다.

문제는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측이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재명 대통령 모두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집어 도덕성과 책임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소년공 시절 프레스 사고로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고, 김 후보자는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수감 경력으로 병역 의무에서 제외됐다.

김 때리다
역풍 맞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윤석열은 부동시, 어떤 분은 급성간염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며 맞대응했다. 누군가를 특정해 지목하지 않았지만,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발언 직후 직접 반박에 나섰다.

주 의원은 “박선원 의원이 말한 급성간염은 내 이야기”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간염을 앓아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타인의 질병을 언급했다. 어떻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얘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박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그는 급성간염은 일반적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병역판정 기준상 면제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청문회가 끝난 후 급성간염 병역 면제 가능 여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다. 그러자 관심은 청문회의 주인공이었던 김 후보자에서 주 의원의 방향으로 옮겨갔다. 언론과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주 의원의 병역 처분 경위를 둘러싼 사실관계가 집중 조명되기 시작했다.

주 의원은 1994년 10월 첫 징병 신체검사에서 3급 판정을 받아 현역 입영 대상이었지만, 병역 처분 변경원을 제출해 1995년 3월 재검사를 받았고, 간염을 사유로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면제 사유는 ‘급성간염’으로 기재돼있다.

당시 시행되던 병역 신체검사 기준에 따르면, 급성간염은 일시적 질병으로 간주돼 7급 재검 판정 대상이며, 일정 기간 치료 후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검사를 거쳐 현역 판정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5급 전시근로역은 일반적으로 만성질환이나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12개월 이상 간기능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계속됐거나 조직검사를 통해 만성간염으로 확진된 경우 등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 의원이 받은 병역 처분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의학계 관계자들도 “급성간염으로 5급 면제 판정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일시적인 간 수치 이상이나 단기 질환의 경우 대부분 재검을 통해 재판정을 받는 절차를 따른다”고 전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지난 24일 자신의 SNS에 “징병 신체검사에서 급성간염으로는 5급을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간염 보균자가 워낙 많아 간염만으로 군 면제를 받는 건 매우 어렵다”는 글을 올렸고, 해당 글은 2000여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각종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졌다.

병역 처분으로 치열한 진실공방
‘급성간염’으로 면제? 도마 위


민주당 강득구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청문회가 끝난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 의원의 병역면제와 관련된 흥분된 발언은 사실상 자백”이라며 “본인의 병역면제가 떳떳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전날 청문회에서 주 의원의 반응이 그랬다”고 지적하며 날을 세웠다.

강 의원은 주 의원이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공개한 병역 자료를 인용하며, “주 의원은 첫 신체검사에서 면제 대상이 아니었지만, 병역 처분 변경원을 제출해 간염을 사유로 5급 판정을 받았다”고 짚었다.

이어 “그렇다면 주 의원은 급성간염인가? 만성간염인가? 급성간염으로 5급 판정을 받는 건 제도상 불가능하다”며 “급성간염이라면 병역 비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 전문가에 따르면 급성간염은 염증이 6개월 이내에 소멸되는 질환으로, 군 면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1995년 병역신체검사 규정에도 급성간염은 재검(7급) 대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면제는 치료 후 재검을 통해 현역 복무가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라는 것이다.

또 만성간염이라고 하더라도 면제받기 위해서는 12개월 이상 간 기능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야 하거나, 조직검사를 통해 만성간염 확진을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조건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주 의원의 평소 행적과 발언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만약 주 의원이 말한 대로 고등학교 때부터 간염을 앓아왔고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면, 음주는 절대적으로 금해야 한다. 그러나 주 의원이 술을 즐긴다는 얘기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성간염 환자가 음주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반한다. 만성간염이라면서 술을 즐긴다면 사람입니까? 외계인입니까?”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병역 문제는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그는 “주 의원은 징병 신체검사 기록과 현재 치료받고 있는 의무기록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며 “대를 이어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온 주 의원은 이제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총리 청문회
주인공으로

박 의원은 지난 25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급성간염은 한두 달 치료하고 나면 재검을 받고 군에 입대해야 하는 질환”이라며 “주 의원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해당 이슈가 입길에 오르내렸다. 청문회 직후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주 의원의 신체검사 경위에 대해 각종 분석과 추정이 쏟아지고 있다.

병무청 규정상 간염은 단기 치료로 호전이 가능한 질환이며, 병역 처분 변경 신청 후 5개월 사이에 3급에서 5급으로 변화된 점을 의심하는 의견도 많다. 특히, 주 의원이 받은 5급 처분이 단기간 내 만성질환으로 악화된 것이 맞는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의학적 기록이 있는지 등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주 의원은 앞서 군 관련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주 의원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된 특검법을 반대하며 나선 국회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도중, 고인의 죽음을 군 장비 파손에 빗대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었다.

해당 발언은 순직 군인을 기계나 사물처럼 다룬다는 인식을 준다는 이유로, 야당과 유가족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주 의원은 지난해 7월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관련 무제한 토론 당시 “만약 이게 사망 사고가 아니라, 예를 들어 군 장비를 실수로 파손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며 “조사관들이 일주일 만에 8명에게 군 설비 파손 책임을 묻고 집을 압류하고 소송을 진행한다고 하면, 해당 군인들이 그 결과에 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던 바 있다.

이어 “물론 이번 일은 사망사건이다. 하지만 사망사건이든 파손 사건이든, 조사 절차의 형평성과 기준은 동일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면제 불가능”

주 의원의 발언은 곧바로 역풍을 불러왔다. 특히, 사건의 경중이 전혀 다른 군 장비 손괴와 병사의 사망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했다는 점에서, 발언의 본의와 무관하게 “사람을 장비 취급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당시 민주당 최민석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면 젊은 해병의 순직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느냐”며 “국민의힘의 인면수심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인면수심 정권의 민낯”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같은 당 강유정 전 의원도 자신의 SNS에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고, 손괴가 아니라 사망”이라며 “장비는 새로 사면 되지만, 아들은 어디서 되찾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검사 출신 주진우 의원은 자기 논리를 세운다고 사람을 장비와 같은 선상에 두는 사람”이라며 “자기가 얼마나 비윤리적인지도 모른다”고 맹폭했다.

조국혁신당 강미정 대변인도 “채 상병 어머니가 책임자 처벌을 요청하며 밝힌 심정을 생각하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망언”이라며 “공감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개혁신당도 논평을 통해 “어떻게 하면 스무 살 청년의 목숨이 20년 된 낡은 기계 부품처럼 보이느냐”며 “주 의원이 반사회적이고 반인격적인 발언으로 채 상병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본회의장 내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일부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그래도 되느냐” “사람과 장비를 어떻게 비교하느냐”고 고함을 쳤다.

연단에 올라 발언을 마친 주 의원은 항의를 받은 뒤 “제 발언이 논리적이지 않다면 고함이 아니라 반박 논리로 대응하라”며 맞섰고, “지금 이 내용은 생중계되고 있으며 국민이 보고 계신다.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날 주 의원은 군 계급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병, 이병, 상병, 병장”이라고 손가락으로 세며 말해 병 계급의 순서마저 모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군대 내 병 계급은 ‘이병, 일병, 상병, 병장’ 순이지만, 주 의원은 이를 “일(1)병, 이(2)병” 순으로 이해하고 말한 것이다.

주 의원이 군 계급 상식이 없는 게 아니냐며 논란이 더욱 가중됐다.

이후, 민주당은 주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 관계자는 “이번 발언은 실언의 수준을 넘어서 사람의 생명을 물건 취급한 것”이라며 “공직자의 품위 유지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주 의원은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기물 파손 시 행정조사가 남용되어 병사들에게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되며, 사망 사고는 보다 중대하므로 더욱더 철저히 조사해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엄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제 발언을 ‘순직 해병의 죽음을 장비 파손에 빗댔다’고 왜곡한 민주당의 인권 의식이 오히려 문제”라며 “발언의 본질이 정치적으로 오도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주 의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상에서는 “사망과 손괴를 예시로 연결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료 중
“술 좋아한다고 소문 자자”

주 의원은 본인과 가족 재산 문제로 민주당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부동산 40억원, 예금·증권 31억원 등 총 70억원 상당의 재산을 신고했다. 특히 2005년생인 아들의 예금이 7억8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국회의원 아빠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 살겠느냐”며, 동갑내기 김 후보자 아들의 예금 200만원과 비교해 비판했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도 “고작 20세인 아들이 무슨 수로 억대 예금을 저축했느냐”고 공세를 펼쳤고, 사인 간 채무 역시 도마에 올랐다. 주 의원은 본인 명의 1억원, 배우자 명의 1억8000만원의 채무가 있었고, 이에 대해 박 의원은 “현금성 자산이 많음에도 채무를 유지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며 위장 채무 가능성을 제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주 의원은 “아들 예금은 조부로부터 받은 증여로, 증여세를 모두 완납했다”며 “변호사 수익, 양가 상속 등으로 형성한 재산이며, 납부한 세금만 33억2000만원에 이른다”고 해명했다. 이어 박선원·강득구·한준호 의원을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으며, 자신을 향한 의혹 제기는 “조직적 인사 검증 방해”라고 반박했다.

주 의원은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197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에서 중·고교를 다니고, 서울대 법대 공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사 임관 이후 대구지검,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대검찰청 등을 거쳤고, 2017년에는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부장검사로 재직하며 문재인정부 당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를 두 차례 압수 수색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좌천성 인사로 검찰을 떠났다.

검사직을 내려놓은 주 의원은 변호사 개업 이후 윤석열 대선캠프에 합류해 법률 자문을 맡았고, 윤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실 초대 법률비서관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사검증팀장을 지냈다. 윤 전 대통령과는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함께 하며 인연을 맺었고,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사단’으로 불렸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강세 지역인 해운대갑에 단수 공천돼 당선됐다.

재산 문제
논란 확산

이날 청문회가 열린 목적은 김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 역량 검증이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민석 청문회가 아니라 주진우 청문회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청문회 과정에서 주 의원이 자신과 관련된 발언에 직접 반응하고 타 의원들이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청문회장에서 제기된 사안이 사생활 영역과 병역 문제로 번지면서, 청문회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 목소리도 나왔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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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장동혁 갈지자 행보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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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미국 정계가 이재명 대통령을 압박하는 흐름을 타 강경 보수 노선과 장외 집회로 기세를 올리려고 한다. 하지만 8개월여를 앞둔 지방선거에 정치 생명이 달린 정치인의 현실을 고려해 “극우 방식으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빙글빙글 도는 장 대표의 ‘용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훈훈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앞세워 “왜 미국에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는 등 젤렌스키 대통령을 강하게 질타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호평에서 비판으로 일각에선 “이 대통령도 이런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왓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 대해서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는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전 “한국의 새 정부가 교회를 잔인하게 급습하고, 우리 군사기지까지 들어갔다”며 “한국에서 숙청·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양에 가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만나시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를 칠 수 있게 해달라”는 등 저자세로 나가면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노벨평화상 수상 욕심을 자극했다. 국내에선 평소 강경한 정치 성향을 유지하는 이 대통령의 ‘저자세’를 유연함으로 해석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호평은 금세 비판으로 바뀌었다. 당시 체결됐던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은 ▲상호 관세율 15%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85조원) 등이었다. 문제는 3500억달러가 우리나라 총 외환 보유고의 84%에 달하는 액수란 것이다. 아울러 두 대통령의 공동합의문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에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 대한 15% 관세율을 명시하자”고 요구했고, 미국은 우리에게 “3500억달러의 구체적 조달 시기·방식·사용처를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각)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3500억달러 투자를 이행하지 않으면, 상호 관세율 25%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은 “한국의 직접 투자 비중을 최대한 높이고 투자 대상은 미국이 주도해 선정하며, 투자액 회수 후 미국이 이익 중 90%를 가져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은 지난 4일(현지시각) 조지아주 소재 현대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노동자 317명을 단속했다. 이들이 단기 상용 비자(B-1)로 미국에 입국해 근무하다가 불법체류자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에 입국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면담했고, 미국 영주권자 1명을 제외한 316명은 지난 12일 귀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훈훈하게 진행한 후 ‘한국 새 정부가 교회를 잔인하게 급습하고, 미군 기지에 들어간’ 데에 대한 보복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기만책 섞인 양동 작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재명 압박하자 강경론 선회 미 극우 논객도 한국서 극우 부추겨 미국 정부의 한국인 노동자 추방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보수 성향 친위 집단 MAGA 진영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의 극우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그 공장이 조지아주 주민을 고용하지 않아서 ICE에 신고했다”며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도 저임금 불법체류자를 다수 고용하는 것은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 우선 정책 연구소 미국 안보센터 부의장은 지난 7월21일, 한국 국회의원 13명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공정하거나 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으면, 한국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이츠 부의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서실장·사무총장을 지낸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가 진행돼 내가 큰 피해를 봤다”는 취지의 부정선거론을 주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플라이츠 부의장은 지난 1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대통령 권력을 약화하려는 극좌 급진주의자들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고, 두 사람의 보수 철학은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강경 보수 진영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는 지난 8일 ‘대통령·부산시 교육감 선거서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손 목사와 손잡고 함께 시위를 주도한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지난 13일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로부터 채널 수익 창출 중단 통지를 받았다. 수익 창출이 중단된 이유는 “민감한 콘텐츠 관련 정책을 위반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분한 전씨는 “언론 탄압이자 보수 우파 죽이기”라며 “구글코리아 내 좌파 직원이 판단한 거냐”고 비판했다. 아울러 지난달 26일 당선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 표심에 지지를 호소해 당선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선 이후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국민의힘 4선 김도읍 의원을 다시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했다. 트럼프의 양동 작전 김 의장은 평소 중도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고, 장 대표는 김 의장을 삼고초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군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소리 낼 때, 전씨는 당 밖 의병으로서 그 소리를 증폭하고 적을 막는 역할을 했다”며 “당 밖 의병이 전씨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1등 공신임을 자처하던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크게 반발했다. 전씨는 지난달 30일 “제가 장 대표에게 영향력이 있어 힘이 세다고 보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벌써 제게 인사·공천 청탁을 한다”며 “저는 장 대표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역할은 안 한다”고 말하는 등 장 대표에게 견제구를 던졌다.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도 지난 1일 “많은 사람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도읍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영남 지방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4개 자유 우파 정당에 양보하면 된다”며 “이에 응하지 않아서 4개 정당이 영남 전 지역에 후보를 내면 국민의힘은 이길 수 없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장 대표는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밝혔던 “더 강하게, 더 넓게 500만 당원과 함께 싸울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같은 날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국회 본관 앞에 모여 ‘야당 말살 정치 탄압 특검 수사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지도부가 가장 강력한 방식의 투쟁을 하기로 했고, 장외투쟁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장외투쟁 명분은 ▲검찰청 폐지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반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 수사 기간 연장 반대 ▲내란 특검의 국민의힘 의원 압수수색 규탄 등이었다. 장 대표는 지난 8일엔 대통령실에서 이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악수도 사람과 하는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등 보수 야당과의 대화를 차단했다. 당시 장 대표는 단군 신화를 인용해 “정 대표와 악수하려고 당 대표가 되자마자 마늘·쑥을 먹기 시작했다”며 “미처 100일이 안 됐는데도 이렇게 악수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등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영수회담은 비교적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장 대표도 자신의 의견을 이 대통령에게 모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수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장 대표는 다시 장외투쟁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분은 손 목사 구속이었다. 지난 14일 부산을 방문한 장 대표는 첫 일정으로 세계로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장 대표는 이날 “손 목사 구속은 모든 종교인에 대한 탄압”이라며 “2025년 대한민국에서 종교 탄압을 막는 게 제 소명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돌고 돌아 장외투쟁 이어 지난 17일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장외투쟁을 언급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이 장기집권을 위해 차근차근 야당을 말살하고 있다”며 “지금은 그냥 야당인 게 죄인 시대”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과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징역형이 구형된 것 ▲정부·민주당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 ▲민주당의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등을 장외투쟁 근거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의 장외 집회는 지난 21일 동대구역 인근에서 진행됐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 중도 공략 필요성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과 장 대표의 현 상황으로부터 비롯된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파면·구속을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7%를 기록하는 등 강경 보수 성향 지지층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불과 8개월여를 앞두고 있다. 이기기 위해선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를 공략해야 한다. 장 대표는 지방선거로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데, 참패 시엔 대표직을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극우 정당이 각국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고,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MAGA 진영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21세 청년 타일러 로빈슨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극우 논객 찰리 커크 ‘터닝 포인트 USA’ 대표와 모린 배넌 ‘스티브 배넌 워룸’ 대표는 한국 극우를 부추기는 미국 정계 논객들이다. 이들은 지난 5일 한국을 방문해 ‘빌드업 코리아 2025’에 참석했다. 커크 대표는 “최근 한국 정치는 혼란스러웠다. 특검의 교회 압수수색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은 미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독립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산주의자들이 정치 검사를 앞세워 우파를 탄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한국 정부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북한의 공산주의에 맞서는 여러분의 싸움이 곧 우리의 싸움이고, 필요하다면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모린 대표도 “한국은 공산주의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관성은 오직 한동훈 축출 돌연 “극우론 안 돼” 유턴 손 목사는 커크 대표·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일부 개신교 교단과 MAGA 진영이 김민아 대표가 이끄는 빌드업 코리아와 연결돼있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빌드업 코리아의 모태는 커크 대표가 이끄는 터닝 포인트 USA로 전해졌다. 극우 성향 교단과 미국 극우는 강경한 반공 성향을 매개로 연결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교단의 세가 강했던 지역은 평안도였다. 이들은 북한 정부 수립과 6·25 전쟁 이후 모두 월남했고, 강경한 반공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도 소련과의 냉전을 계기로 매카시즘 광풍이 크게 일어나 복음주의 교단을 중심으로 한 반공 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도 복음주의 교단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국민의힘 지지 기반과도 연결되는 미국 정치의 흐름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정치 방향은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에 대한 강경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패널 인증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몫인 각종 방송 출연분 중 80% 이상을 친한계가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친한계엔 방송 출연을 위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가는 원외 인사들이 많다. 장 대표의 방침에 대해선 “친한계의 숨통을 끊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대해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5일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이후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근거 있는 확신을 한다고 했다”며 “그 확신의 근거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란 특검의 참고인 소환을 2회 거부했고, 내란 특검은 서울중앙지법에 한 전 대표에 대한 공판 전 증인신문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한 전 대표 증인신문은 오는 23일 진행될 예정이다. 한 전 대표는 연이은 당내 선거 패배와 안 좋게 결별한 장 대표의 당선으로 위기에 몰려 자신의 정치적 상징인 ‘비상계엄 반대’조차 자신 있게 내세우기 어려운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권성동 의원은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16일 구속됐다. 나경원 의원 등 지난 2019년 4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연루된 국민의힘 의원들은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안팎으로 이어지는 내우외환에 일각에선 장 대표가 다시 강경 보수를 대상으로 한 장외집회에 전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지난 16일 공개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돌연 “우리가 설득하는 방식이 극우와 같다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며 “국민께서 공감하지 않는 방식으론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지층의 확고한 신뢰 없이 성급하게 중도층 마음을 얻겠다고 나아가면 실패할 거라고 본다”는 의견도 남겼다. 내친 김에… 용꿈의 조건 같은 인터뷰에서도 빙글빙글 돌고 있단 느낌을 줄 소지가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용꿈을 꾼다’고 보는 해석도 나온다. 용꿈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명확히 밝혀 대중의 지지를 얻은 다음 노려볼 수 있다. 장 대표는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다. 굳건한 의견 없이 빙글빙글 돌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 장 대표의 빙글빙글 회전 정치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