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칼 빼든 공수처 노림수

궁지 몰린 쥐가 고양이 물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한 수사로 과욕을 부리다 조직 존폐 위기에 빠졌다. 조직이 생겨난 후 전혀 성과를 올리지 못한 공수처는 자신을 무시하는 검찰에 정면 승부를 걸었다. IDS홀딩스 사건, 이정섭 처가 사건, 고발 사주 사건 등 전·현직 검사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 수사력을 모은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이후 정치적 후폭풍을 맞고 있다. 공수처는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전·현직 검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공수처가 공소시효도 얼마 남지 않은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궁서설묘
정면승부

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수처를 사이에 둔 힘겨루기를 하면서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을 불법 체포하고, 국회서 위증했다는 혐의 등으로 오동운 공수처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17일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민주당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불법 수사행위 진상조사를 위한 특검법(공수처 특검법)’ 협조를 촉구했다.

이날 윤 의원은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의 ‘영장 쇼핑’ ‘수사기록 누락’ 의혹 등을 거론한 뒤 “기존의 감독 및 감시체계만으로는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독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해 공수처의 불법 행위 및 정치적 의도를 철저히 규명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 이후 공수처를 향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을 수사했던 기관이고, 검찰은 윤 대통령을 석방한 기관인 만큼 여야가 두 기관을 두고 대립적 프레임으로 가고 있다”면서 “사법기관과 준사법기관들을 필요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공격했다가 방어했다가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정치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 공수처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5개의 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을 향해 “(윤 대통령의)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손쉽게 투항해 내란 수괴를 풀어주고 내란 공범임을 자백했다”며 심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조직 존폐를 두고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고 있는 공수처가 심 총장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성과를 인정받으면 반전을 노릴 수 있단 시각이 잇따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와 검찰이 대립하면서 민주당이 공수처에 검찰을 상대로 한 무기를 쥐여준 만큼, 그 무기를 포기할 리 없을 것”이라며 “공수처가 정상적인 기관이었다면 공소장 자체를 각하해야 되는데, 공소장을 각하하지 않고 무기로 쓸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윤 구속 취소 후 벼랑 끝에
전·현직 검사 관련 수사 박차

오동운 공수처장도 해당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지난 19일 오 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심 총장 고발건에 대한 물음에 “아직 배당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수사팀서 계획을 짜고 있겠지만 그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까진 말해주기 어렵다”며 “신속히 처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공수처는 심 총장에 대한 수사 외에도 현직 검사 및 검사 출신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차정현)는 지난 10일, 김영일 서울고검 검사에 대한 고발 사건과 관련해 첫 조사를 시작했다.

앞서 김 검사는 ‘1조원대 폰지사기’ 업체인 IDS홀딩스의 김성훈 전 대표가 구속 중에도 범죄수익을 은닉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이유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당초 지난 2021년 6월에 검찰로 접수된 고발 건은 기본적인 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고발건에서 공수처는 김 검사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가 김 전 대표 등을 검사실로 부른 시기, 과거 열린민주당 김진애 전 의원실서 확보한 출정 기록 등 문건, 김 전 대표 등의 판결문 등을 토대로 김 검사의 혐의점을 살피는 셈이다.

지난 10일, 금융사기없는세상·해피런사기탈북민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금융피해자연대(KIKO공동대책위원회·MBI피해자연합·KOK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밸류인베스트코리아피해자연합·IDS홀딩스 피해자연합)는 지난 2017년부터 김 전 대표 등을 수차례 자신의 검사실로 불러 사적인 전화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등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김 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김 검사는 지난 3일 고검 검사로 발령 전까지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직을 맡았다.

김 전 대표는 약 1만2000명으로부터 1조원대의 사기를 친 범죄사실로 구속 기소돼 징역 15년의 형이 확정된 후에도 외부의 공범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감옥에 있는 재소자들과 공모해 여러번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IDS홀딩스
정조준 이유

금융피해자연대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2017년 2~12월, 1심서 대법원 재판까지 구속된 상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기까지 총 56억원을 은닉했고, 200억원은 은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 과정서 은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였던 김 검사가 추가 범죄가 발생하도록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피해자연대의 주장이다.

김 검사는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대표, 이모(사기 전과범·브로커)씨, 한모씨로부터 범죄수사정보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검사실서 외부 인사를 만나게 하고 외부와 통화를 하게 하는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심을 받는다.

금융피해자연대에 따르면 검사실로 소환된 횟수는 이씨는 2016년에 94회, 2017년 47회, 2018년 23회이고, 김 전 대표는 2017년 47회, 2018년 23회, 한씨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 3일까지 50회다. 금융피해자연대는 김 전 대표 등이 공모해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변호사 2명을 지난해 5월17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김 검사는 현 정부서도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장(2022년 7월~2023년 9월)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 수사를 수원지검 2차장 대행 신분으로 지휘한 때의 일이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 2023년 6월 검찰서 “이 대표도 대북 송금 사실을 알았다”는 검찰 진술을 했다가, 2023년 말부터 줄곧 ‘검찰 술자리 회유 의혹’을 제기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이 청사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이때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종용했다는 게 골자다.

야권은 김 검사의 IDS홀딩스 이력 등을 근거로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다.

문제는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오는 6월까지라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직권남용은 7년, 직무유기는 5년의 공소시효를 가지고 있다. 공수처는 김 검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의 사건 처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 수사4부는 지난 10일 검찰로부터 제보자인 처남댁 강미정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를 확보하고 강씨를 지난 21일 불러 조사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지난 6일 이 검사를 주민등록법·청탁금지법·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공수처로 이첩했다.

고발 사주
재수사도


검찰은 사건 제보자에게 수사자료를 사진 촬영해 외부로 유출하게 한 전직 검사 박모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기소하면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부분은 공소시효 만료 두 달을 남기고 공수처로 이첩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18일 정례 브리핑서 “검찰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건 처리를 위한 시간으로 볼 때 촉박한 건 사실”이라며 “검찰 단계서 기존에 수사한 자료들도 넘어온 게 있고 참고해서 처분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검사가 받은 공무상 비밀누설혐의의 공소시효가 3월29일로 만료된다”며 “그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검찰이 공소시효 가까운 시점에 사건을 이첩한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법에 따라 검찰서 혐의를 발견하자마자 공수처에 이첩을 했다면 사건 처리에 더 수월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혐의를 발견하고도 기소할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이첩했다. 남은 시간으로는 공수처가 할 수 있는 것은 검찰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만 파악한 후 기소를 위해 다시 검찰에 보내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사실 검찰이 수사 개시할 수 있는 혐의보다 많은 것을 수사한 후 ‘우리 수사 내용대로 기소하라’라는 무언의 압박과 다르지 않다”며 “공수처의 수사를 항상 의심하던 검찰이 이제는 산하 조직서 수사 내용을 확인하듯 공수처를 이용하는 것에 공수처 내부에서는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공수처 검사 출신 법조인도 “바로 공수처에 검사 범죄 혐의 사건을 보내서 수사하라는 것이 공수처법의 취지지만, 공수처가 검찰과 대립각을 세울 만한 힘이 없다 보니, 검사의 범죄 혐의도 검찰이 계속 쥐고 기소할 정도가 돼야 이첩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남은 공소시효 수사력 집중
부실 수사 불명예 털어낼까

공수처는 윤 대통령 구속 취소 이전에 유일한 성과로 꼽히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서도 재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는 지난 14일, 고발 사주 사건 제보자 조성은씨가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국민의힘 김웅 전 의원, 전직 대검찰청 간부 8명 등을 직권남용, 위증, 증거인멸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고발 사주 사건은 2020년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장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과 부산고검 차장검사였던 한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김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공수처는 손 검사장이 김 전 의원에게 문제의 고발장을 텔레그램을 통해 직접 전달했다고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손 검사장은 1심서 징역 1년이 선고됐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대검 수정관실서 문제의 고발장을 작성했다고 판단했으며 손 검사가 김 후보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무엇보다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 실행에 관한 암묵적인 의사의 결합 및 공모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통하던 대검 수정관실 소속 검사에게 총선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판결문이 가리키는 ‘진범’은 따로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손준성이 이 사건 메시지를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로 전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손준성이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지시에 의해 또는 스스로 수사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를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손준성도)수정관실서 윤석열의 처, 장모 관련 형사사건 정보 및 판결문 등을 검색하고 사건 경과를 정리하며, 의혹 제기에 장모의 입장서 대응하는 문건을 작성했다고 시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며 당시 손 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의 관계에 주목했다.

공수처는 당초 손 검사장만 불구속 기소하고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 등 다른 피의자들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지만 법원서 손 검사장의 상급자(윤 대통령 등)가 고발 사주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새로이 고발장을 접수하고 재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궁지에 몰린 공수처가 전·현직 검사에 대한 수사를 통해 살아날 구멍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가 생겨난 후부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공소시효도 얼마 남지 않은 사건 처리로 급부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적 외풍
마지막 기회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 능력에는 계속 의문점이 있었다”며 “오랜 기간 수사를 해도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발등에 불똥 떨어진 지금 갑자기 수사력이 올라오길 기대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 공수처 출신 변호사도 “공수처는 항상 인력 문제를 갖고 있다”며 “게다가 시간이 부족한 지금, 해당 사건들에 아무리 수사력을 집중해도 미흡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검찰이 어물쩍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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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