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본 ‘윤석열 석방’ 조건과 특혜

“대놓고 풀어줬다…다른 사람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사표를 내던졌던 인물이 있다. 바로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다. 그는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계엄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류 전 감찰관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현재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수차례 의문을 던졌다.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외의 예외를 적용해서 풀어줬다. 이해가 안 간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언성을 높이며 한 말이다. 그는 심우정 검찰총장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을 풀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즉시항고 포기’ 사태를 제외한다고 해도 계엄에 연루된 인물들의 행보를 보면 검찰과 윤 대통령 측이 ‘운명 공동체’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게 류 전 감찰관의 주장이다.

공동체처럼
움직인다

윤 대통령은 현재 구속 취소가 인용돼 서울구치소서 한남동 관저로 돌아갔다. 검찰은 ‘즉시항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나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윤 대통령을 풀어줬다.

류 전 감찰관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검찰의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 화가 날 정도로 어이가 없다. 검찰 내부에도 무슨 생각으로 즉시항고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후배들이 상당하다. 심 총장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즉시항고를 포기해도 절차적 문제가 남아 논란이 됐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즉시항고를 포기했을 때의 실익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검찰이 정치적 논란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류 전 감찰관은 윤 대통령과 인연이 없다. 법무부와 검찰서 근무한 기간 27년 6개월 내내 윤 대통령과 같은 검찰청서 근무하지도 않았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내던질 수 있었던 건 윤 대통령과의 인연이 없었기 때문일까?

류 전 감찰관은 “대통령이 윤석열이 아니었어도 과감하게 사직했을 것이다. 법률적으로 하자 투성이다. 계엄 선포 요건과 절차적 정의도 갖추지 않은 상태이기에 불법 계엄이었다. 또 경고성 계엄 또는 2시간짜리라면서 다친 시민이 없었으니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미친 소리”라고 직격했다.

이어 “그 정신 나간 결정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입은 사회·경제적 손실은 누가 감당하나. 온전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집이라도 팔아서 그 손실을 메운다고 해도 용서하는 국민들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게 반대했더니 좌파가 됐다. 난 좌우가 아니고 그냥 낭만파”라고 강조했다.

류 전 감찰관은 “법은 가장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지금 윤 대통령은 직접 헌재에 나가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잡범을 뛰어넘는 영리하고 악랄한 ‘법꾸라지’”라고 지적했다.

“심우정 총장 무슨 생각인지”
“김주현·박성재도 수사해야”

그는 “심 총장도 그러면 안 된다. 즉시항고 위헌 사례를 언급했었는데 어느 피고인에 대한 사례인지 아느냐.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이었다. 윤 대통령이 ‘평범’한 사람인가? 국사범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자를 두고 무슨 인권을 논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류 전 감찰관은 “윤 대통령은 헌재에 출석해서 의견을 개진했기에 불법 구속으로 인해서 본인이 충분히 방어하거나 헌재서 변론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서 구속된 이후에 일체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며 “공수처 기록이 헌법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게 없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헌법재판관 분들의 심증을 형성하는 데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이라는 건 단순하게 헌법 위반 사실이 있느냐를 떠나서 이 사람에게 공직 수행에 적합한 자질이 있는지, 앞으로 공직 수행을 맡겨도 되겠는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것”이라며 “이런 때 헌법 수호의 결단을 보여주지 않으면 언제 보여줄 수 있는 것인지 싶다. 징계 처분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징계했는데 이 사람이 계속 공직을 수행케 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며 “그렇기에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저는 당연히 인용될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어떤 쪽이든 간에 8대 0으로 결론을 내려주실 필요가 있고 오히려 6대 2, 5대 3 이런 식으로 결론 난다면 헌법재판관 개인에 대한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법조 전체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악랄한
법꾸라지

윤 대통령의 석방 이후 타격을 입은 건 검찰뿐만이 아니다. 공수처도 수사권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문에는 이례적으로 공수처의 수사권 문제가 언급됐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검찰이 구속기간을 넘겨 기소했다고 주장했는데, 담당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논란이 있다고 밝히면서 유·무죄가 아닌 공소 기각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검·경, 공수처는 비상계엄 이후 총 20명을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사건은 각종 논란으로 대법원서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함부로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류 전 감찰관은 “공수처가 사건 이첩 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수사가 3주간 지연됐었다. 체포영장 청구 과정서도 수일이 소요됐다. 수사 적기를 놓친 것이고 여러번 실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며 “고질적인 인력난이 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부족한 수사 경험으로 인한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수사 초기부터 검찰과 협력이 잘 이뤄졌다면 즉시항고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또 “공수처 수사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즉시항고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기대한다고 했지만, 관련된 정확한 규정이 없어 법원서 종국적인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고 아쉬워했다.

또 “기존의 관행과 검찰의 시스템을 보면, 구속기간은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계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구속기간 만기 부전지’를 붙이고 전산 시스템에 입력해 계산한다. 그런데 이번 법원의 결정은 이런 관행과 법률 규정에 따른 계산을 벗어난 것인 만큼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누구나 아는
벗어난 계산

그는 “구속기간은 신분을 떠나 만약 도과했다면 어떤 경우에도 석방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구속 취소 사안의 경우엔 풀어준 뒤, 직권으로 다른 범죄에 대한 영장을 발부해 재구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2월부터 경찰과 군검찰과 협력하는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을 꾸렸다. 공조본은 비상계엄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보다 많은 인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검찰 특수본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수사 대상인 인물들이 유독 검찰에만 협조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실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계엄 관련자들은 검찰에 자진 출석하거나 증거 물품을 제출하는 등 공조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계엄 수사 핵심 물증으로 꼽히는 비화폰 불출대장이 그렇다. 김성훈 대통령실 경호처 차장이 검찰에 제출한 비화폰 불출대장에는 윤 대통령 부부와 김 전 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통화 기록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김 차장은 검찰에 김 전 장관이 예비용으로 받아가 건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비화폰 불출대장과 통화 기록 일부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1월24일 검찰이 경호처에 ‘수사 협조 의뢰 요청(자료 제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자 건네받은 것이다. 비화폰 불출대장은 ▲비화폰 번호 ▲사용자 ▲지급 일자 ▲회수 일자 ▲현재 보관 장소 등이 적혀있는 내부 보안 자료다.

공수처 수사권 보완 필요…검, 권력 단절 시급
“탄핵 인용 법률적 문제없어…3월 안에 끝내야”


경호처는 형사소송법 제110조, 제111조를 근거로 공조본의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았다. 군사상·직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인 만큼 책임자 승낙 없이는 압수하거나 수색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경호처는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참여한 인원을 파악하기 위한 경찰의 협조를 거부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 초기부터 경찰의 수사 의지가 상당히 강했고 검찰이 수사 주도권을 뺏겨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류 전 감찰관은 “물밑 협조까진 아니더라도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민정수석,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 그래서 김 전 장관이나 계엄 피의자들이 믿을 만한 검찰을 택하지 않았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박 장관이나 김 수석,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봐라.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도 박 장관과 이 전 장관에 대해 수사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에 있다. 어차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게 되는데 봐줄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한 거 아닌가. 수사 의지가 아니라 애초 ‘선배 대우’를 하려는 분위긴데 이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당장 특검을 해야 한다. 내란 사태의 경우, 과거 12·12 사태를 보면 15년이 지나서 검찰이 수사한 바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도
선배 대우

류 전 감찰관은 현재의 검찰이 윤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조직으로 비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편향적인 ‘정치 검찰’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개혁을 논의하기에 앞서 정치권이나 실세들과의 단절이 필요하다. 인적이든 물적이든 가리지 말고 청산하고 갈아엎어야 한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수사권 조정과 수사·기소권 분리 등을 통해 검찰을 아무리 개혁한다고 해도 또 과거로 회귀한다. 검증된 방법을 통한 개혁이 필요한데 검찰의 통제 수단으로 탄생한 공수처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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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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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