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본 ‘윤석열 석방’ 조건과 특혜

“대놓고 풀어줬다…다른 사람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사표를 내던졌던 인물이 있다. 바로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다. 그는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계엄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류 전 감찰관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현재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수차례 의문을 던졌다.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외의 예외를 적용해서 풀어줬다. 이해가 안 간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언성을 높이며 한 말이다. 그는 심우정 검찰총장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을 풀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즉시항고 포기’ 사태를 제외한다고 해도 계엄에 연루된 인물들의 행보를 보면 검찰과 윤 대통령 측이 ‘운명 공동체’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게 류 전 감찰관의 주장이다.

공동체처럼
움직인다

윤 대통령은 현재 구속 취소가 인용돼 서울구치소서 한남동 관저로 돌아갔다. 검찰은 ‘즉시항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나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윤 대통령을 풀어줬다.

류 전 감찰관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검찰의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 화가 날 정도로 어이가 없다. 검찰 내부에도 무슨 생각으로 즉시항고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후배들이 상당하다. 심 총장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즉시항고를 포기해도 절차적 문제가 남아 논란이 됐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즉시항고를 포기했을 때의 실익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검찰이 정치적 논란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류 전 감찰관은 윤 대통령과 인연이 없다. 법무부와 검찰서 근무한 기간 27년 6개월 내내 윤 대통령과 같은 검찰청서 근무하지도 않았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내던질 수 있었던 건 윤 대통령과의 인연이 없었기 때문일까?

류 전 감찰관은 “대통령이 윤석열이 아니었어도 과감하게 사직했을 것이다. 법률적으로 하자 투성이다. 계엄 선포 요건과 절차적 정의도 갖추지 않은 상태이기에 불법 계엄이었다. 또 경고성 계엄 또는 2시간짜리라면서 다친 시민이 없었으니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미친 소리”라고 직격했다.

이어 “그 정신 나간 결정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입은 사회·경제적 손실은 누가 감당하나. 온전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집이라도 팔아서 그 손실을 메운다고 해도 용서하는 국민들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게 반대했더니 좌파가 됐다. 난 좌우가 아니고 그냥 낭만파”라고 강조했다.

류 전 감찰관은 “법은 가장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지금 윤 대통령은 직접 헌재에 나가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잡범을 뛰어넘는 영리하고 악랄한 ‘법꾸라지’”라고 지적했다.

“심우정 총장 무슨 생각인지”
“김주현·박성재도 수사해야”

그는 “심 총장도 그러면 안 된다. 즉시항고 위헌 사례를 언급했었는데 어느 피고인에 대한 사례인지 아느냐.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이었다. 윤 대통령이 ‘평범’한 사람인가? 국사범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자를 두고 무슨 인권을 논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류 전 감찰관은 “윤 대통령은 헌재에 출석해서 의견을 개진했기에 불법 구속으로 인해서 본인이 충분히 방어하거나 헌재서 변론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서 구속된 이후에 일체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며 “공수처 기록이 헌법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게 없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헌법재판관 분들의 심증을 형성하는 데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이라는 건 단순하게 헌법 위반 사실이 있느냐를 떠나서 이 사람에게 공직 수행에 적합한 자질이 있는지, 앞으로 공직 수행을 맡겨도 되겠는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것”이라며 “이런 때 헌법 수호의 결단을 보여주지 않으면 언제 보여줄 수 있는 것인지 싶다. 징계 처분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징계했는데 이 사람이 계속 공직을 수행케 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며 “그렇기에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저는 당연히 인용될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어떤 쪽이든 간에 8대 0으로 결론을 내려주실 필요가 있고 오히려 6대 2, 5대 3 이런 식으로 결론 난다면 헌법재판관 개인에 대한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법조 전체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악랄한
법꾸라지

윤 대통령의 석방 이후 타격을 입은 건 검찰뿐만이 아니다. 공수처도 수사권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문에는 이례적으로 공수처의 수사권 문제가 언급됐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검찰이 구속기간을 넘겨 기소했다고 주장했는데, 담당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논란이 있다고 밝히면서 유·무죄가 아닌 공소 기각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검·경, 공수처는 비상계엄 이후 총 20명을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사건은 각종 논란으로 대법원서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함부로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류 전 감찰관은 “공수처가 사건 이첩 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수사가 3주간 지연됐었다. 체포영장 청구 과정서도 수일이 소요됐다. 수사 적기를 놓친 것이고 여러번 실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며 “고질적인 인력난이 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부족한 수사 경험으로 인한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수사 초기부터 검찰과 협력이 잘 이뤄졌다면 즉시항고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또 “공수처 수사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즉시항고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기대한다고 했지만, 관련된 정확한 규정이 없어 법원서 종국적인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고 아쉬워했다.

또 “기존의 관행과 검찰의 시스템을 보면, 구속기간은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계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구속기간 만기 부전지’를 붙이고 전산 시스템에 입력해 계산한다. 그런데 이번 법원의 결정은 이런 관행과 법률 규정에 따른 계산을 벗어난 것인 만큼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누구나 아는
벗어난 계산

그는 “구속기간은 신분을 떠나 만약 도과했다면 어떤 경우에도 석방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구속 취소 사안의 경우엔 풀어준 뒤, 직권으로 다른 범죄에 대한 영장을 발부해 재구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2월부터 경찰과 군검찰과 협력하는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을 꾸렸다. 공조본은 비상계엄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보다 많은 인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검찰 특수본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수사 대상인 인물들이 유독 검찰에만 협조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실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계엄 관련자들은 검찰에 자진 출석하거나 증거 물품을 제출하는 등 공조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계엄 수사 핵심 물증으로 꼽히는 비화폰 불출대장이 그렇다. 김성훈 대통령실 경호처 차장이 검찰에 제출한 비화폰 불출대장에는 윤 대통령 부부와 김 전 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통화 기록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김 차장은 검찰에 김 전 장관이 예비용으로 받아가 건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비화폰 불출대장과 통화 기록 일부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1월24일 검찰이 경호처에 ‘수사 협조 의뢰 요청(자료 제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자 건네받은 것이다. 비화폰 불출대장은 ▲비화폰 번호 ▲사용자 ▲지급 일자 ▲회수 일자 ▲현재 보관 장소 등이 적혀있는 내부 보안 자료다.

공수처 수사권 보완 필요…검, 권력 단절 시급
“탄핵 인용 법률적 문제없어…3월 안에 끝내야”


경호처는 형사소송법 제110조, 제111조를 근거로 공조본의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았다. 군사상·직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인 만큼 책임자 승낙 없이는 압수하거나 수색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경호처는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참여한 인원을 파악하기 위한 경찰의 협조를 거부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 초기부터 경찰의 수사 의지가 상당히 강했고 검찰이 수사 주도권을 뺏겨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류 전 감찰관은 “물밑 협조까진 아니더라도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민정수석,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 그래서 김 전 장관이나 계엄 피의자들이 믿을 만한 검찰을 택하지 않았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박 장관이나 김 수석,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봐라.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도 박 장관과 이 전 장관에 대해 수사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에 있다. 어차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게 되는데 봐줄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한 거 아닌가. 수사 의지가 아니라 애초 ‘선배 대우’를 하려는 분위긴데 이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당장 특검을 해야 한다. 내란 사태의 경우, 과거 12·12 사태를 보면 15년이 지나서 검찰이 수사한 바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도
선배 대우

류 전 감찰관은 현재의 검찰이 윤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조직으로 비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편향적인 ‘정치 검찰’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개혁을 논의하기에 앞서 정치권이나 실세들과의 단절이 필요하다. 인적이든 물적이든 가리지 말고 청산하고 갈아엎어야 한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수사권 조정과 수사·기소권 분리 등을 통해 검찰을 아무리 개혁한다고 해도 또 과거로 회귀한다. 검증된 방법을 통한 개혁이 필요한데 검찰의 통제 수단으로 탄생한 공수처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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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 수장’ 정청래 100일 성적표

‘거여 수장’ 정청래 100일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9일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짧은 시간 안에 민주당의 숙원이었던 3대 개혁을 전광석화처럼 처리하는 등 이룬 성과만큼 뒷말도 많았다. 정치권에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며 예견된 결과라고 입 모아 말한다. 풀액셀을 밟으며 달려온 지난 100일, 정 대표가 걸으며 남긴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서 정청래 후보와 박찬대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정 후보가 승기를 거머쥐었다. 최종 득표율은 61.74%, 양 후보간의 득표차는 32.96%p로 당심이 의심을 넘어서는 기록을 보였다. 온건파와 강경파의 프레임 전쟁에서 당원들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엇박자 통제 불능? 지난 9일 100일을 맞은 정청래 대표는 개혁 완수를 목표로 쉼 없이 달려왔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통과시켜 검찰청을 해체한 민주당은 사법개혁 동력을 얻기 위해 대법원을 정조준했다. 언론개혁 역시 12월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 대표는 전당대회 선거운동 기간 내내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라며 선명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당원 역시 개혁을 빠르게 끝낼 정 대표를 택했고 “정치 효능감을 느낀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그런 정 대표를 따라다닌 꼬리표는 ‘자기 정치’다. 특유의 화법과 강하게 밀어붙이는 불도저 스타일로 대통령보다 여당 대표가 더 눈에 띈다는 지적이다. 통상 여당 대표는 정부를 뒷받침하는 ‘그림자’처럼 움직여왔다. 정 대표는 이 같은 관례를 엎고 정치 1선에 나서 내란 세력 척결과 개혁 완수를 외쳤다. 정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 나흘 만에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위를 가동하고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며 추석 전 검찰개혁을 마치겠다고 자신했다. 대통령실은 “민감한 쟁점의 공론화 과정 필요하다”며 사실상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정 대표가 대통령실을 누르고 투사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대통령실은 “당정 갈등은 없다”며 연일 진화에 나섰다. 다음으로 이루어진 사법개혁 역시 잡음이 일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 수석은 KBS라디오에서 “당 입장과 운영 방향에 대해 취지는 전부 동의하지만, 가끔 속도나 온도의 차이가 날 때가 있지 않느냐”며 “(당에) 대통령의 생각을 잘 전달했을 때 당이 곤혹스러워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생각이 달랐다는 점을 에둘러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 내내 이어질 ‘자기 정치’ 프레임 “모든 건 당원의 뜻” 벌써부터 공천 잡음 대통령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발표하는 각종 민생 정책보다 정 대표의 강경 발언이 더욱 눈에 띄었다는 점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경주 APEC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며 정부의 외교 성과가 두드러지나 싶더니 민주당이 ‘재판중지법’을 띄우면서 시선을 빼앗자 또다시 엇박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대통령 재판중지법인 이른바 ‘국정안정법’을 띄웠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재판에서 핵심 관계자들이 유죄를 받자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재점화했고, 비슷한 시기에 민주당이 사전 차단에 나서면서 ‘이재명 지키기’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권력의 범죄를 덮기 위한 맞춤형 입법을 즉시 중단하라”며 이 대통령을 정치판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정 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 추진에 대해 추진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관세 협상과 APEC 정상회담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 등 당이 집중해야 할 사안이 많으므로 시선을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아울러 박 대변인은 “(입법을) 미루는 게 아니라, 아예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본회의 부의 상태로만 유지하고 더는 논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PEC 성과 발표 이후에도 국정안정법 추진 계획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은 계속해서 “정 대표는 자기 정치할 시간도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치고 나가려는 당 대표와 이를 제지하려는 대통령실의 모습이 반복되면서 뒷말이 나온다. 이 같은 배경에는 강경파인 정 대표의 성향과 그를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를 지지하던 이들은 빠르고 강하게 치고 나가는 정 대표의 스타일을 선호한다. ‘조용한 개혁’으로는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란 불안감이 있어 잡음이 일더라도 개혁은 완수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 대표는 자신을 대표로 만들어준 지지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당원을 위한 당원에 의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은 누구를 선출하든 위에서 한 명을 골라 뽑는 게 아니고 밑에서 받쳐 올리는 구조”라며 “당원의 힘은 계속해서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 대표가 당선 후 당권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여야 할 것 없이 앞으로 정치는 더욱 당원 중심 위주로 갈 것”이라고 봤다. 당선 직후 정 대표는 당원권 강화를 위해 당원주권정당 특별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 특위는 ‘대의원 1인 1표제’ 등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당시 정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 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정 대표와 당원의 권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대표는 “이번 선거는 권리당원 참여가 100%로 전면 확대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지도부에서 옛날 방식으로 (후보를) 내리꽂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민주당은 당의 방향성과 이에 따르는 부수적 결과를 전적으로 당원에게 맡기겠단 뜻으로 해석된다.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 공천 티켓 또한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도, 청심(정청래 대표의 의중)도 아닌 당심에 달려 있으므로 “당심을 거스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가능해진다. 결국 ‘친명(친 이재명) 컷오프’ 논란이 불거지면서 취임 100일을 코앞에 두고 정 대표가 처음으로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이 앞다퉈 자신을 친명으로 소개했지만 정 대표가 사실상 공천권을 쥐면서 계파 파동이 생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27일 부산 시당위원장에서 컷오프된 유동철 부산 수영구 지역위원장이 정 대표를 공개적으로 질타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유 위원장은 지난 총선 때 이 대표가 영입한 인사로 친명계 조직 ‘더민주혁신회의’의 공동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정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는) 당원이 진정 당의 주인인 것을 증명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유 위원장은 “이유도 명분도 없는 컷오프는 독재다. 정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결자해지하라”며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싸우다 끝났다 유 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후보 면접’이라는 절차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돼 부당한 컷오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진행된 면접에서 자질이나 정책은 검증하지 않고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가지고 인신공격성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면접을 주도한 문정복 조직사무부총장(조강특위 부위원장)은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처럼 몰아붙이며 ‘(제가)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말로 불이익을 예고했다”며 “그 소문이라는 것은 특정 인물이 제 당선을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그 소문을 부산시민 모두가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당하기에 그지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이야기였다.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답했다”며 “이튿날인 27일 당으로부터 컷오프됐다는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지인들로부터 컷오프 소식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친명계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엔 “지금 주위에 친명계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저는 그런 추측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만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원칙과 규정에 따라 엄밀하게 심사했다는 입장이다. 박 수석대변인은 “당내에 친명, 비명(비 이재명), 반명(반 이재명) 등으로 언급되는 별도의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당은 당원 주권 시대를 맞이해 모든 권한을 당원들에게 돌려드리고 있고 부산시당위원장 선출 역시 그런 기조에서 치러졌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에게서 안정적인 여당 대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지난 100일 동안 투사의 면모는 아낌없이 보여줬지만 여당 대표로서 안정감 있게 당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이 대통령이 여당 내부 사정까지 일일이 제어해야겠느냐”며 “알아서 센스 있게 정 대표가 민주당을 돌봐야하는데 자꾸 잡음이 새어 나오고 야당과의 관계도 계속 틀어지고 그러다 보니 불안하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전쟁을 선포하게 된 배경에도 정 대표가 있다. 안정감 있는 여 대표 기대했지만… “강성 팬덤과 국민 여론 같지 않아” 정 대표는 지난 8월 당선 직후 정견 발표에서 국민의힘 해산을 공식적으로 말했을 정도로 이를 꾸준히 언급해 왔는데,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 내란에 직접 가담한 국민의힘은 10번이고 100번이고 정당 해산감”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추경호 의원은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집결 장소를 번복해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통합진보당은 내란음모죄만으로도 헌법재판소에서 해산된 만큼 추 의원이 계엄 해제를 방해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이를 정당해산의 정당성으로 삼을 것이란 설명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제 전쟁”이라고 선전포고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우리가 나서서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모든 힘을 모을 때”라며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재개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정당해산 역시 ‘명청 갈등’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한 자기 정치일 뿐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정 대표의 지난 100일간의 리더십은 엉망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제일 섭섭한 건 대통령실”이라며 “이렇게 취임 초기에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아닌 비서실장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당 대표에게 ‘제발 대통령을 정쟁에 그만 끌어들여라’라고 얘기를 하는 건 처음 봤다. 대놓고 경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에 의해 민주당이 추진하던 재판중지법에 제동이 걸린 일을 비판한 것이다. 당정 엇박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 대표가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는 ‘정청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권력이 정점을 찍은 다음 8월 임기를 마치면서 곧바로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이재명의 시간’인 만큼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발판이 사라지게 된다. 묘연한 다음 스텝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대표가 이재명의 시간을 뺏으면서까지 자기 정치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이라며 “자신에 열광하는 팬덤의 화력을 이어가기 위해 당 대표 임기 동안 한번씩 강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팬덤의 목소리가 모든 여론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정 대표뿐만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정 대표가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대통령실에서도 더 세게 브레이크를 거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김 운명 공동체? 걷어내지 못한 김어준 그림자 민주당이 정청래 대표 체제로 출발하면서 친여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민주당은 선을 그었지만 이번 전당대회서 김어준씨의 영향력이 크게 개입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사실상 당이 정청래-김어준 투톱 체제로 운영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이 되던 날 “용산 대통령 이재명,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 ‘삼통 분립’의 시간”이라며 “보이는 한 명의 대통령과 보이지 않는 두 명의 대통령, 세 명의 대통령에 의해 권력이 나눠졌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을 이끄는 동안에는 여당 최대 스피커인 김어준씨와 접촉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실은 “김어준이 용산을 휘두른다”는 평가가 부담스러운 만큼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