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부터…’ 국민의힘 잠룡들 구애 작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17 11:25:37
  • 호수 1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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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차는 달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겉으론 윤 대통령 석방을 환영했지만, 핵무장론까지 언급하는 등 대권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조기 대선 진행 시 까다로운 복어가 된 윤 대통령의 마음을 얻어 본선에 나갈 주자는 누구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제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가 지난 7일 윤 대통령 구속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 구속을 취소하는 이유로 ▲구속기간 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유무 여부를 들었다.

겉으론
환영하는…

재판부는 윤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계산하면서 그동안의 관례를 뒤집고 시간 단위 계산법을 적용했다. 재판부의 시간 계산에 따르면, 윤 대통령 체포 이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과 검찰을 왕래하는 시간까지 구속기간을 계산한 후 “예정된 구속기간 만료 시기까지 약 9시간7분이 지난 후 기소됐다”고 판단했다.

이 계산법의 적용 근거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형사소송법 제201조의2였다. 이어 공수처와 검찰이 임의로 구속기간을 협의해 나눠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면서 구속 취소 이유로 제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공수처가 내란 수사를 할 수 있느냐”는 논점에 대해서도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다”며 “이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을 진행하면, 상급심의 파기나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탄핵 찬성 여론에선 “검찰에 즉시항고를 제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즉시항고가 제기되면, 구속 취소 결정의 효력이 일시정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체포 후 52일 만에 석방돼 관저로 돌아갔다.

윤 대통령이 석방되자,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은 곧바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 석방을 계기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탄핵 심판 변론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변론 재개를 요구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판결 선고 일정에 맞추느라 탄핵 심판 일정을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국민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변론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의 적법한 판단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오동운 공수처장·심우정 검찰총장·박세현 서울고검장을 향해 “후안무치한 짓 그만하고 내려오라”면서도 법원에 대해선 “격하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그간 많은 논란을 일으키면서 국론 분열을 초래한 공수처는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그동안 심신이 많이 지치셨을 것 같다”며 “건강을 잘 챙기시면서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하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태균에게 포위된 대선주자들
석방에도 계속되는 대권 행보

같은 당 유승민 전 의원은 석방 당일엔 “법원이 법에 따라 판결한 것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공수처가 무리하게 수사했고 직권남용으로 입건 후 내란죄로 기소했고, 검찰은 구속기간을 지키지 않는 등 그 절차상 흠결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유 전 의원은 다른 주자들과는 달리 윤 대통령에 대한 지적을 이어나갔다. 지난 11일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윤 대통령이 석방 당시 주먹을 불끈 쥔 것에 대해 “혹시 어퍼컷을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며 “자중하고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관저서 김치찌개 드시고, 강아지들과 반갑게 인사했다”며 “자기 명령 때문에 군인과 경찰 10명이 구속 기소돼있는데, 혼자 나오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을 제외한 다른 주자들은 겉으로는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가진 영향력과 강성 보수층의 시선을 의식한 대응일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공식적으론 탄핵 기각·각하 결정을 요구하면서 윤 대통령 석방 환영 메시지를 발표한 것과 달리, 이들은 각자의 대권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오 시장이다. 오 시장은 지난 11일 국회서 진행된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한 한미 안보협력 전략’ 토론회에 참석해 핵무장을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국도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무장을 주장한 근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파행이었다. 외교 사안과 핵무장 여부 결정은 서울시장이 아닌 대통령의 권한 내에 있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토론회 종료 후 오 시장은 기자들로부터 “윤 대통령이 석방된 후 탄핵을 찬성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입지가 줄어든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혹시라도 있을 탄핵 인용 결정에 대비해, 공당이라면 필요한 준비 정도는 하는 게 자연스럽고 상식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손 놓고 있다가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오면 민주당 이 대표의 당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 방문 계획을 묻자 “현재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SBS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인간적인 괴로움은 있다”면서도 “저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니,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민주당 이 대표가 지난 5일 국민의힘에 AI 등 미래산업 현안에 대한 공개 토론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 당의 AI 특위 위원장 자격으로 관련 스타트업을 방문해 현장간담회를 진행했다.

‘나부터’
동상이몽

홍 시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홈페이지서 “언론 인터뷰 시 ‘조기 대선을 바란 적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내가 하는 일은 대구시정 외에 늘 차기 대선 준비인데, 그걸 두고 탓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 시장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인 조기 대선 준비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대한 영향력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오후,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만났다.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이튿날 기자들에게 “권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을 찾아뵙고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며 “윤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당을 잘 운영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국민의힘이 정치적 영향력의 근원일 수밖에 없다. 탄핵이 인용되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힘 차기 대선주자 선정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설령 형사재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면·복권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힘은 국정 운영의 동력이자 원천을 얻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 탄핵 심판서 파면된 이후 정치 행보를 멈췄지만, 윤 대통령은 다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강성 보수층을 상대로 박 전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다시 구속되지 않는 한, 설령 파면되더라도 양손에 국민의힘과 강성 보수층이란 떡을 쥔 채로 상왕 정치를 할 수 있단 기대를 품을 수 있다.

또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에겐 ‘윤심’ 외에 ‘명심’이란 숙제도 있다. 구속 상태에 있는 명태균씨는 변호인들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언론에 전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구속 취소로 석방되자, 명씨 측은 지난 13일 창원지법에 “황금폰을 검찰에 제출했고, 내용 대부분은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돼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취지로 구속 취소를 청구했다.

명씨까지 구속 취소로 석방된다면, 국민의힘에 불리한 요소가 하나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명씨는 오 시장과 홍 시장에게 공격을 집중시키고 있다. 검찰의 명씨 관련 조사도 두 사람에게 집중돼있다. 명씨는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창원지검에 소환돼 “오 시장이 지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서울로 빨리 올라 오라고 채근하는 전화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도 검찰 조사서 “명씨와 함께 오 시장을 여러 번 만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도 지난 13일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명씨 측 여태형 변호사는 지난 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명씨가 오 시장을 만난 후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을 설득해 오 시장과 단일화가 이뤄진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측과의 경선 여론조사 문항 관련 협상에 대해서도 명씨가 오 시장 측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에게 계속 명령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잡아야
이긴다

명씨와 틀어진 강혜경씨도 “오 시장의 후원자로 알려진 김한정씨가 명씨에게 송금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홍 시장과 관련해선 홍 시장의 아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팀은 명씨의 휴대전화서 홍 시장의 아들 홍모씨와 명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보했다. 홍씨는 지난 2023년 8월30일 명씨에게 “가르침 주신 대로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로부터 3개월 전, 홍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 발톱을 세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놓고, 명씨는 자신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씨의 메시지에 대해선 홍씨가 조언을 한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홈페이지서 “아들에게 물어보니, 명씨 밑에서 일하던 아들의 고교 동창 최모씨가 ‘명씨가 네 아버지 욕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 사기꾼 명씨를 달래려고 한 말이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게 무슨 죄가 되냐, 나올 것이 없으니 인사치레로 한 말을 가지고 좌파들이 난리치고 있다. 해볼 테면 해보라”고 주장했다.

명씨 측은 한 전 대표에 대한 공격 가능성도 암시했다.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시사인>과의 인터뷰서 “김건희가 구속되면, 한 전 대표는 무사할 것 같느냐”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에 대해 국민의힘 대표 재임 당시 윤 대통령 부부·명씨와의 인연은 물론, 국민의힘 대표 경선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 전 대표도 이 의원과 비슷한 맥락서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현재 서울중앙지검과 창원지검이 진행하는 명씨 관련 수사는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의 여러 대선주자 중 수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주자는 사실상 2명이기 때문에 검찰이 경선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만약 2명 중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나온다면, 본선 공정성 시비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명씨는 변호인들을 앞세운 여론전을 더욱 치열하게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민주당이 이어받으면, 승패를 떠나 피곤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경선 이어 본선까지…
보수 운명 좌우할 4명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선 3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실상 보수의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윤 대통령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탄핵이 인용돼 파면되더라도 강성 보수층으로부터 더 격렬한 옹호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윤 대통령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장 큰 차이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이후 검찰 수사를 받다가 구속돼 조기 대선에 개입하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서 형사재판을 받게 될 예정이고, 정국에 대한 영향력을 스스로 놓을 가능성도 적다. 자기 뜻을 따르면서, 형사재판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사면·복권을 해줄 수 있는 후계자를 선택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측면에선 한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은 처음부터 불리했다.

윤 대통령이 오 시장과 홍 시장의 최근 태도를 눈여겨보고 있을 수도 있다.

‘윤심’ 다음에 얻어야 할 것은 ‘전심’과 ‘손심’이다. 부정선거론 등 강성 보수 성향 개신교 집회를 주도하는 축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다. 전 목사와 손 목사는 원래 돈독한 사이였지만, 대규모 집회 주도권을 놓고 지난해 10월 이후 갈등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전 목사는 광화문서 윤 대통령 두둔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고, 손 목사는 여의도서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두 목사 모두 특유의 대중 동원 능력으로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도층이 이탈하면서 강성 보수층 의존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선 두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을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세 사람의 마음을 두루 얻은 후엔 ‘명심’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명씨와의 싸움은 지루한 여론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당선까지 질기게 버티는 싸움이 될 것이다. 다만 명씨와의 싸움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최소한 임기 중엔 명씨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을 일은 없다. 하지만 낙선하면, 검찰 수사부터 각오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패자이기 때문에 수사도 배려 없이 혹독하게 진행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에 대비해 이 대표의 낙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대표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항소심 선고는 오는 26일 진행된다. 검찰은 제1심과 똑같이 징역 4년형을 구형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집행유예 판결을 유지한다면, 비명(비 이재명)계 대선주자들의 거센 도전과 함께 이 대표의 낙마 가능성이 커진다.

확률 낮은
별의 순간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이 대표의 항소심 선고기일 이후로 늦추려고 노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대표는 지난 12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또 신청했다. 재판부가 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재판 절차는 헌재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

윤심·전심·손심을 얻고 명심을 경계하면서 이 대표가 낙마하는 상황까지 이어진다면, 국민의힘 대선주자도 별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 다만 실전서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물릴 확률이 낮을 뿐이다. 국민의힘은 그 낮은 확률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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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