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숨은 킹메이커’ 신계륜 살벌한 경고

“안전한 길로만 가면 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인으로 겪을 수 있는 흥망성쇠를 다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했고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도 갔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장면마다 지근거리에 자리했다. 지난해 복권돼 8년 만에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신계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탄핵 정국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내릴 판결에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이 달려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하면서 탄핵 심판 사건에 또 하나의 변수를 던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변수가 많아 전문가들 사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굴곡 많은
정치 인생

정치권은 변수가 등장할 때마다 출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탄핵 인용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러면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신중론을 고수하면서도 장외로 나서는 의원들을 말리진 않고 있다. 그 사이 국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탄핵 정국서 나타난 일련의 정치적 흐름을 읽지 못하면 본선서 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탄핵 반대 세력이 거대해진 점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탄핵 찬성, 반대 집회에 모두 참석해 봤다는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된 신 전 의원은 그해 5월 ‘서울의봄’ 당시 학생들을 이끌고 계엄령 철폐 시위에 나서는 등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다. 1991년 신민주연합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던 그는 14대, 16~17대, 19대 총선서 당선돼 4선을 지냈다.

신 전 의원의 정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15대 대선에 나섰을 때는 청년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후보 비서실장으로 역할을 했다. 민주당서 나온 3명의 대통령 가운데 2명의 당선에 기여한 것이다. 동시에 17대 국회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2017년 입법 로비 사건으로 정치 활동이 중단됐다.

그로부터 8년 후 신 전 의원은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동안 2008년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 대패 이후 설립한 사단법인 신정치문화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물밑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몰두했던 그였다. 신정치문화원의 핵심사업인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도 꾸준히 진행 중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신정치문화원 사무실서 신 전 의원을 만났다. 사무실에는 그의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물건이 많이 있었다.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 행사를 하면서 맞춘 조끼가 벽 한쪽에 진열돼있었고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에는 2007년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기념하면서 제작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신정치문화원 이사장으로
8년 만에 정치적 메시지

신 전 의원은 “당시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측에서 (시계를)스무 개 제작해 갔는데 북한서 청와대를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 그래서 고스란히 다시 들고 왔다. 이후에 기념으로 받은 것을 걸어뒀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신 전 의원의 정치 인생과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망가진 남북 관계에 안타까움을 표했고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또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헌재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선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조용히 응원하면서도 현재 당내 상황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동시에 탄핵 정국을 통해 싹트기 시작한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해 “내가 틀렸다”면서 흥미로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못 내는 소리를 정치 원로인 내가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창당 선언”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민주당을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를 막지 못한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을 이번 비상계엄 선포로 터트렸다. 민주당의 탄핵, 입법 폭주에 왜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느냐는 분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런 생각을 담화, 편지, 헌재 변론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했다. 내가 놀란 대목은 윤 대통령의 말에 상당수 사람이 공감을 표했고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물론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사람이 있었지만, 표면화되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이른바 극우 보수 성향을 띤 국민이 전체의 20%는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이 장기적으로 봤을 땐 우리나라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분화를 통해 정치 다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과거 민주화가 간절했던 시기에는 ‘민주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사이에 두고 정권 연장과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충돌했다.

일단 이겨야 다음 행보를 모색할 수 있기에 정당은 ‘승리’에 사활을 걸었다. 빼앗으려는 쪽과 지키는 쪽의 대결은 ‘결집’을 불렀다. 보수진영은 ‘3당 합당’을 감행하면서까지 정권 유지에 매달렸고 진보진영은 그 벽을 부수기 위해 몇 번이고 두드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정치 상황은 양당제로 나아갔다.

민주화의 주역
1991년 정계로

신 전 의원은 탄핵 정국이 만들어낸 현 상황이 다당제로 가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소위 합리적 보수 성향의 분들은 국민의힘에 남고 극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창당의 깃발을 꽂으면 된다. 현 상황서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대표가 함께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정치 세력화하기 시작한 극우 보수층 가운데서도 20~30대 남성의 마음을 잡지 못한 부분에 대해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데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전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은 20~30대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해 공허하고 구호적인 얘기만 던졌다. 이들은 민주화가 간절한 시대에 살지 않는다. 이미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상태서 ‘나한테 중요한 게 뭔지’를 따지는 세대다. 그들의 손에 민주당이 정말 필요한 걸 쥐어주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전 의원은 민주당이 이런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이 모이는 걸 보고 민주당서 ‘일시적인 현상’ ‘순간적인 반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잘못됐지만 거기까지 몰아붙인 민주당도 잘못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윤 대통령을 구속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과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꽤 들었다”며 “(민주당이)비상계엄 사태에 너무 놀라 허둥지둥하면서 조급하게 군 부분이 드러났다고 본다. 헌법에 따라, 법에 따라 절차대로 탄핵하고 수사하면 되는데 ‘사형시켜야 한다’는 등 과한 표현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든 부분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 대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구속 취소 청구 인용으로 변수가 생겼다”면서도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 배경(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은 인정될 것 같지 않아 결국 탄핵안은 인용될 것으로 본다”고 조기 대선 가능성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대통령 경선 현장서 이 대표가 연설하는 걸 처음 봤는데 감탄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에 맞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버니 샌더스가 떠오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연설은)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직접적이었다. 손에 딱딱 쥐어주는 듯한 연설이었다”며 “연설 이후 이 대표에게 ‘잘 들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고맙습니다, 선배님’이라고 답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신 전 의원은 이 대표를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부정적 인식이 많은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이 대표는 지지하지 않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정부의 집중 표적이 된 점도 원인 중 하나겠지만 이 대표가 자초한 부분도 절반은 차지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능력 좋은데
인성은 결격

신 전 의원이 특히 지적한 부분은 ‘인성’이었다. 능력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성 부분에서 결격 사유가 많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특히 측근에 대한 언행이 아쉽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는 “대북 송금 사건을 보자.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사건으로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돼있는데, 이 대표는 이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부분은 법정서 다툰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그들의 상관으로서 ‘내 책임’이라는 발언이 있어야 했다. 이 대표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등 주변 인물이 연루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죄송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신 전 의원은 “판단이 빠른 건 좋지만 상황에 따라 말이 자주 바뀌는 부분은 좋지 않다. 특히 불체포특권과 관련해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더니 본인이 연루되자 말이 없어졌다. 이 외에도 이 대표의 말 바꾸기 사례가 참 많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신 전 의원은 이 대표가 좀 더 내려놔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당헌·당규대로 당원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하면 이 대표 85%, 나머지 후보 15%의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신 전 의원은 ‘일극 체제’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인 현재 민주당 상황서도 이 대표가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원 사이서 85%를 득표한다는 것은 사실상 추대나 다름없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본선이다. 수많은 선거를 겪어본 입장서 안전한 길만 찾는 후보는 낙선한다. 국민이 모를 것 같아도 다 알아본다. 어떤 후보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지 전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당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고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진행할 때는 협상단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약체로 꼽히던 후보다. 여론조사로는 이회창 후보는 물론, 정몽준 후보에게도 지는 걸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탄핵 반대 집회 인원에 놀라
여당은 분립, 야당은 위험천만

이어 “하지만 단일화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은 내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다. 협상에 쟁점이 생겨도 ‘내가 다 양보하겠다’고 나섰다. 곁에서 지켜본 노무현의 리더십은 ‘내던지는 것’이었다.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나. 그 ‘내려놓음’이 상대 후보를 이겨내는 힘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많은 선거를 치러본 신 전 의원은 후보는 가장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누가 봐도 이기는 상황서도 질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힘이 1명의 후보로 단일화를 이뤄내면 대선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내에 다음 대선서 ‘여당’이 되리라는 생각이 팽배한 지금 가장 ‘위험천만’한 때라고 분석했다.

신 전 의원은 “민주당원의 추대만으로는 이 대표의 인성이 야기한 위태로움을 극복할 수 없다. 특히 이런 단기간의 비상시국에는 양보와 희생 없이는 비토 세력을 설득하기 어렵다. 나는 이 대표에 앞서 민주당과 평생을 함께한 정치인이다. 이번에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이 주장하는 방식은 ‘오픈프라이머리’, 즉 완전국민경선제다.

그는 “국민의힘 지지자를 거르고 나머지 국민을 대상으로 경선을 치르는 방식을 채택하길 바란다. 무수한 선거를 치러본 입장서 역선택 방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식을 통해 선출된 민주당 후보와 다른 야당 후보가 또 한 번 경선을 치러 최종 후보를 결정하면 더 좋다. 이 대표가 최종 후보로 결정된다면 사법 리스크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은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윈-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헌‧당규가 문제가 된다면 비상시국임을 감안해 이 대표가 조치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이 대표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대표에게 열혈 지지자가 아닌 국민의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라고, 나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국민에게 모든 걸 맡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 전 의원은 당내 소위 말하는 ‘비명(비 이재명)계’ 정치인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만 기댄 채 제대로 된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뭔가를 하고 싶으면 나서서 ‘깃발’을 들어야 한다. 깃발도 들지 못한 채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노처럼
던져라

신 전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좋은 상황을 생각하고 선거를 치르는 후보는 바보다.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선거 철칙이다. 과거 이회창 후보는 5년 내내 여론조사에서 1위였다. 그런데 본선에서는 졌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 내게 불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 거기서 오는 감동이 국민의 선택을 좌우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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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