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이재명 안갯속 앞날

총선 끝나면 더 졸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의 결과는 당 수뇌부의 정치생명과 맞물려 있다. 이기면 자리를 보전하고 지면 내려와야 한다. 이는 그간의 선거서 공식처럼 적용된 정치판의 법칙이다. 4·10 총선은 거대 양당의 당 대표가 유독 주목받은 선거다. 특히 사법 리스크를 안고 선거를 치른 야당 대표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이 이기면 한쪽은 필연적으로 진다. 국회의원 선거는 300석의 자리를 두고 각 정당의 후보들이 경쟁하는 정치 이벤트다. 지역구서 254명, 비례대표로 46명을 뽑는다. 사전투표 이틀, 본투표 하루 등 사흘 동안의 투표로 당락이 결정되고 정당의 운명이 갈린다. 

한쪽은
죽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과 개혁신당, 조국혁신당 등 제3지대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공천 파동으로 인한 정치권의 이합집산 결과다. 이 과정서 눈길을 끄는 지점은 거대 양당의 당 대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 패배 후 3개월 만인 2022년 6월1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민주당은 상임고문이었던 이 대표를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전략공천했다.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공석이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던 이 대표가 ‘방탄’을 목적으로 선거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당선됐다. 이 대표는 4‧10 총선서도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후보로 나섰다. 국민의힘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이 대표의 맞상대로 공천하면서 인천 계양을은 관심 지역구로 떠올랐다. 

한 비대위원장은 윤석열정부서 법무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됐다가 국민의힘 당 대표로 직행했다. 국민의힘이 친윤(친 윤석열)‧반윤(반 윤석열) 논란으로 어수선하던 때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정치 경험이 없던 한 비대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험지나 비례대표 출마가 예상됐지만 선거에 나가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한 비대위원장의 등장으로 선거 구도가 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로 재편됐다. 일반적으로 총선은 시기상 대통령의 임기 중간 무렵에 열리는 만큼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여겨진다. 선거 구도가 야당 대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많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 4‧10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보다 한 비대위원장이 더욱 부각됐다. 각 당 대표에 대한 주목도가 과거에 비해 더 높다는 뜻이다. 

선거 기간 3일 재판 출석해
무단 불출석 강제구인 언급

그러다 보니 총선 이후 두 당 대표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사법 리스크를 겪고 있는 이 대표의 상황이 선거 후 정국 개편과 맞물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줄줄이 밀려 있는 재판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이 대표는 선거 기간 도중에도 재판에 참석해야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심리로 열린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배임·뇌물 등 혐의 재판에 출석했다. 그는 “국가의 운명이 달린 선거에 제1야당의 대표로서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3일인데 그중 3일을 법정에 출석하게 됐다”며 “이 중요한 순간에 제1야당 대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저의 심정을 우리 당원 여러분과 지지자, 국민 여러분께서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선거 전날인 9일에도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이 대표의 재판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바 있다. 이 대표가 현재 연루돼있는 재판은 총 3건이다. 서울중앙지법서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등 성남시장 재임 시절 배임 ▲20대 대선 당시 허위사실 공표(공직선거법 위반) ▲검사 사칭 관련 위증교사 재판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중 20대 대선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은 총선 전 1심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선고 시기가 늦어졌고, 위증교사 사건도 올 초 이 대표가 피습당하면서 재판이 늦어졌다.

결국 이 대표는 총선 기간 중에도 재판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겨도
암울해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법원에 출석하며 “정말 귀한 13일의 선거 기간이지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해 출정했다”면서 “이것 자체가 검찰 독재국가의 정치 검찰이 노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재판부가 강제구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 대표를 압박하자 재판에 참석하면서도 볼멘소리를 낸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2일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총선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이 대표는 백현동 개발사업을 두고 “국토교통부가 협박해 백현동 개발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받아 2022년 9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을 모른다”고 말한 것도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심리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 열린 재판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법원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불출석했다. (불출석이)지속된다면 피고인의 출석을 강제하기 위한 여러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선거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단순히 이재명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선거 때까지(재판에 나올 수 없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재판장은 이 대표가 불출석할 경우 강제소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구인장 발부 방침을 밝힌 것이다. 구인장은 법원이 심문을 목적으로 피고인 또는 증인을 강제소환하기 위해 발부하는 영장을 뜻한다. 

이 대표가 재판 일정으로 총선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이후 상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총선 이후에 더 두드러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 이후 정계 개편이 이뤄지는 과정서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의 거취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재판 3건
발목 잡아

특히 위증교사 사건이 변수다. 검찰은 2019년 2월 이 대표가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넘겨진 재판 1심서 김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김병량 전 (성남)시장이 KBS 피디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김 시장과 KBS 사이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자는 협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을 위증이라고 보고 있다.

이 대표가 김씨에게 이 같은 위증을 교사했다는 것이다. 

검사 사칭 사건은 2002년 이 대표가 분당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기 KBS 최모 피디와 함께 검사를 사칭하며 당시 김병량 전 성남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답변을 받아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대표는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기소돼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이 대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계가 있다. 이 대표는 2018년 5월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서 “피디가 검사를 사칭했고 옆에서 인터뷰 중이어서 도와주다 누명을 썼다”고 발언해 다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서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이 대표는 기사회생했고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증교사 사건이 터지면서 이 대표는 또다시 벼랑으로 몰리게 됐다. 이 대표가 연루돼있는 대장동 사건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달리 위증교사 사건은 수사 기록이 적어 올 하반기에 1심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황은 이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서 위증교사에 대한 판단이 한 차례 나온 것이 결정적이다.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
아내 김혜경 사건도 8월

당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소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 물적 자료에 비춰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혐의는 상당 부분 인정된다고 봤지만 해당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없앨 가능성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위증교사 사건의 1심 결과가 가져올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재판거래 의혹이 같이 수면 위로 올랐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 당시 대법관이었던 권순일 전 대법관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여러 차례 만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50억 클럽’ 멤버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 관련 재판이 오는 8월경 선고가 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씨는 2021년 8월 대선 후보 경선 과정서 민주당 인사에게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수원지법 형사13부는 지난 1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향후 재판 일정을 모두 정했다.

증인신문 및 서증조사 기일 등을 모두 미리 지정한 재판부는 “오는 8월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이 대표가 당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인 2021년 8월2일 서울의 한 음식점서 민주당 의원의 아내 등 3명과 자신의 운전기사·변호사 등에게 10만4000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해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당시 자신의 수행비서인 배모 경기도 사무관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배씨가 김씨의 지시로 결제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김씨 측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기소며 배씨가 결제한지 몰랐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선거마다
족쇄 될 듯

민주당 경선 과정서 대장동 사건이 제기되면서 시작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가는 길목마다 족쇄가 되는 모양새다. 모든 당이 총선 승리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지만 이 대표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이번 총선서 이겨도 져도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대표의 ‘사면초가’ 상태는 언제쯤 끝날까?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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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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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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