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가는 이재명 갈림길

수술이냐 봉합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의 내홍이 당분간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통합에 시동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다. ‘비명계 공천 학살’ 가능성이 이전보다 줄어들면서 당내 분위기가 전환될 것이란 관측이 제시됐다. 동시에 공천 공식이 복잡하게 꼬이면서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 2기가 위태롭게 출범한 사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한발 물러선 채 상대 진영의 갈등을 주연으로 만들겠다는 셈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검찰 출석 때만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안을까
내칠까

23일 여의도로 돌아온 이 대표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앞서 민주당 측은 이 대표의 복귀가 지연되는 것에 관해 “건강상태를 봐서 무리가 없다 싶으면 언제라도 당무에 복귀하겠다는 게 대표의 의지인데, 그만큼 건강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날짜를 정확하게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일부러 복귀 시기를 늦췄다고 내다봤다. 지난 10일 시작한 국정감사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김 대표 체제에 쏠린 관심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다.


현재진행형인 사법 리스크 노출을 최소화하겠다는 풀이도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함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부패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출석했다.

과거 이 대표는 검찰 출석 시 자신의 SNS 등을 통해 날짜와 시간을 알려 강성 지지자 결집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재판에는 이 같은 과정이 생략된 만큼 이 대표가 조용히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다만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당 대표 자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정치권은 이 대표의 당무 복귀 시점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대표의 첫 과제는 ‘가결파’ 징계에 관한 논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당원들은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가결파로 분류되는 민주당 설훈·이상민·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에 관한 징계 청원 글을 작성했다. 해당 청원이 답변 요건인 5만명을 넘긴 만큼 이 대표의 답변이 앞으로 당의 분위기를 판가름하게 된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가 이들을 내치지 않고 포용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에 참석해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거대한 장벽을 넘어야 한다”며 당내 통합을 강조한 바 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역시 최근 비명(비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만나 “당 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도부의 통합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의원들 사이의 앙금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상황이다. 친명(친 이재명)계 내에선 여전히 가결파 징계 요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결파 징계 청원 5만명 달성
화합 메시지에도 숨 가쁜 싸움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오전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해당 행위에 대한 조치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지도부는 ‘가결파를 구별할 수 없고, 구별한들 이분들에게 어떤 조치와 처분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해당 행위에 대해서는 아직 보류 상태”라고 설명했다.

해당 행위를 벌하는 것은 일상적인 당무인 만큼 징계를 요구하는 청원에 응답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외 친명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이하 더민주)는 비명계를 겨냥한 물갈이 공천을 언급했다. 더민주가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대의원제 축소를 골자로 한 ‘김은경 혁신위원회’ 혁신안 수용을 요구하면서다. 이전부터 비명계 측에서는 대의원제를 축소하게 된다면 일반 권리당원, 즉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뜻하는 ‘개딸(개혁의 딸들)’의 입김이 세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해왔다.

여기에 거액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이 한마디 얹으면서 갈등은 커질 전망이다.

김 의원은 지난 18일, 자신의 SNS에 비명계의 책임론을 언급하며 “이들은 그저 민주당원들에게 요구하고, 안 들어주면 싸우고, 보수 언론에 편승해서 당원들을 악마화하는 것에 앞장서고, 그러면서 황당하게도 그것이 애당심이라고 말한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심지어 자신들의 수고에 감사하라고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예상되는 비명계 의원들이 “민주당의 방탄 프레임을 깨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의견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진심으로 너무 감사해서 집으로 돌려 보내드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너무 고생하셔서 집에서 푹 쉬시라”고 비꼬았다.

폭격의 대상이 된 비명계 역시 징계의 부당성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가결, 부결이 당론으로 결정되지 않았던 만큼 의원들의 소신을 징계하는 건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지도부 구성 역시 뇌관 중 하나다.

꽝 없는
뽑기판?

지난 17일, 민주당은 원내대표 정무특보에 이병훈 의원을, 원내부대표에 이동주 의원을 추가로 선임했다. 앞서 홍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원내정책수석부대표에 유동수 의원을,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 박주민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원내대변인으로는 윤영덕·임오경·최혜영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새로 짜여진 원내대표단 구성을 두고 비명계로 꼽히는 의원은 친낙(친 이낙연)계 이병훈 의원 1명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명계를 향한 압박은 여전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절대 좁혀질 것 같지 않은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비명계를 ‘표면적으로’ 품고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에 반하는 이들을 끝까지 안고 가는 자세를 취하는 이른바 ‘포용의 정치’를 과시하면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벗어날 탈출구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공천 시스템을 비틀어서 당원의 투표 행사력을 확대하는 시나리오를 예로 들었다. 이 관계자는 “개딸이 수두룩하게 몰려올 텐데 비명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당을 이끌어갈 방법을 찾은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략 공천에 관해서는 “국정감사 이후 인재 영입으로 데려온 인물에게 쥐여주면 그만”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는 비명계 컷오프를 하면서도 명분을 챙길 방법이라는 해석이다. ‘공천 학살’이라는 반발이 생기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위한 당의 선택”이라는 말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주당 내 영입될 인사들이 어느 지역으로 출마할지 당 안팎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만일 비명계가 당에 남아 있을 경우 이 대표는 민주당의 숙원이었던 ‘방탄’ 부담감을 지울 수 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시 당내서 30표에 달하는 가결표가 나오면서 방탄 정당이라는 프레임을 벗은 것과 궤를 같이한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만일 이 대표가 비명계와 함께한다면 방탄을 벗어던지고 ‘민심’ ‘화합’ 등의 프레임을 당에 덧씌우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윤영찬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민주당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방탄 정당’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는 것”이라며 “이 대표에게 앞으로도 재판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 당에 민주주의가 확장되고,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돼 큰 정당으로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합의 길로 접어든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건 이 대표의 해소되지 않은 사법 리스크다. 잦은 재판 출석으로 인한 리더십 타격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 등 11개 검찰청을 상대로 진행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과 검찰은 이 대표의 수사를 두고 거친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이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을 두고 “빈털터리 수사”라고 비판하자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백현동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대북송금 사건 한 건 한 건 모두 중대 사안이고 구속 사안”이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앞뒤로
조여온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은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을 재정합의를 거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에 배당했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재직 중이자 ‘검사 사칭’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이 진행되던 2018년 12월 전 성남시장 수행비서였던 김모씨에게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증언해달라”고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추가 기소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 대표 관련 재판은 대장동 개발 관련 건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등 총 2건이다. 여기에 백현동 개발비리 의혹과 위증교사 혐의가 추가 기소하면서 이 대표가 짊어질 리스크가 불어난 것이다.

이 대표가 없는 국회에서는 그의 아내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해당 의혹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김씨가 비서 배모씨를 시켜 경기도 법인카드로 초밥, 샌드위치 등 사적 물품을 구매하고 관사나 자택으로 오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배씨는 김씨가 당 관련 인사들과 한 오찬 비용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한 혐의 등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 1심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김씨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이를 두고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0일, 해당 의혹을 권익위에 공익 신고한 조명현씨를 권익위 국감의 참고인으로 부르기로 의결했다. 조씨는 이 대표가 법인카드 사용 등 부패 행위와 관련해 권익위에 공익 신고를 하고 구조금을 신청했지만, 권익위의 미흡한 처리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조씨의 소환은 지난 18일 민주당 측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해당 사건이 정치적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조씨는 같은 날 국회 소통관서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무엇이 두려워 국감 참고인으로 나가는 것을 기필코 뒤엎어 무산시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법인카드 의혹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입을 열면서 쉽게 진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7일, 김 지사는 국회 행정안전위(이하 행안위)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취임 이후 법인카드 사용에 대해 자체감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감사를 하고 수사 의뢰했다”고 답했다.

한숨 돌리나 했더니…
법카에 위증교사까지

정치권에서는 정 의원이 김씨를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김 지사가 김씨의 사건으로 가정해 대답했다고 풀이했다.

이어 김 지사는 “감사 결과 최소 61건서 최대 100건까지 사적 사용이 의심된다”며 “업무상 횡령·배임으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공식 감사가 이뤄졌던 만큼 경기도지사가 직접 나서서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 대표와의 경쟁 관계나 정략적 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는 풀이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의 리스크를 확대시켜야 하는 만큼 해당 의혹을 장기간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구속영장 기각과 보궐선거 승리의 약효가 벌써 떨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비명 성향 권리당원들이 이 대표의 직무를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차례 이 대표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을 냈다가 법원서 기각된 지 4개월 만이다.

유튜브 채널 ‘백브리핑’ 진행자인 백광현씨는 지난 1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 권리당원 2023명을 소송인으로 하는 ‘당 대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이 대표가 잦은 재판으로 정상적인 당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당헌 80조에 따르면 부정부패와 관련된 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는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80조 3항을 통해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당무위 의결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백씨는 “야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 나오지 않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데 권리당원으로서 가만히 있으면 그건 제가 아는 민주당 당원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지도부는 일부 사이비 신도처럼 보이는,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 극성 개딸의 목소리에 휘둘릴 것이 아니다”라고 이 대표의 ‘팬덤 정치’를 꼬집고 나섰다.

거대 표를 몰고 다니는 개딸이 아닌 다른 당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충고도 전했다.

도돌이표
집안싸움

여의도로 돌아온 이 대표가 내홍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당내 혼란이 밖으로 표출된다면 균열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이 대표 체제로 치를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또다시 터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치 흐름이 상식의 선을 벗어나는 지금으로는 당의 흐름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당의 실제 상황과 밖에서 바라보는 현상이 다르게 비춰질 때도 있다”며 여의도로 돌아온 이 대표의 첫 번째 메시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비명계 저격 자객 공천?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 출신 인사들이 대거 총선 의지를 밝히면서 새로운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제시된다.

지난 18일 민주당 이해식 의원 등 친명계 의원들은 수도권, 충청, 영호남지역 42명의 전직 기초단체장과 함께 정치연대 출범식을 가졌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풀뿌리 정치연대 혁신과 도전’ 창립을 선언하면서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단체장 출신 인사가 총선에 뛰어드는 것은 이례적이지 않지만 지도부에 친명계가 다수 포진된 만큼 의도적으로 비명계를 눌렀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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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