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 이재명 사생결단 플랜 B

슬슬 몸 푸는 비명계 잠룡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순항하던 이재명호가 위기다. 지난 15일 위증교사 사건 1심서 무죄를 받았지만 공직선거법에 대한 여진이 남아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선두로 현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서로를 격려하며 다독였지만 어째서인지 허들만 늘어나는 현실이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서 1심대로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대선 과정서 보전받은 434억원도 토해내야 한다.

앞으로
뚜벅뚜벅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서 무죄, 유죄더라도 100만원 이하의 형을 예상했다. 이 대표가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한 답변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특히 어떠한 인물에 대해 ‘안다’와 ‘모른다’는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없어 애초에 기소돼선 안 됐을 사건이라며 무죄에 힘을 실었다.

예상을 깨고 법원이 징역형을 내리자 민주당에서는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됐다. 이날 굳은 얼굴로 법정을 나선 이 대표는 “오늘 이 장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라며 “현실 법정은 두 번 더 남았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사실 인정부터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를 앞세워 정권교체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민주당이 첫판부터 치명타를 입었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리더십에 금이 갈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선고 다음날인 지난 16일 민주당은 비상연석회의를 소집하고 “저들이 아무리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으려 해도 이 대표는 결코 죽지 않는다”며 오히려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 역시 서울 광화문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 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제3차 집회서 “이재명, 펄펄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며 건재함을 강조했다.

지도부는 리더십 교체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민주당 김윤덕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 대표 교체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싸우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의원으로부터 격려 전화가 오고 있으며 당이 더 잘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장외 집회에 속도를 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21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30일에는 전국적인 집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대동단결 민주당
흐르는 법원의 시간…조기 대선 승부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기본소득당 등 다른 야당과 달리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보다 ‘김건희 특검법 수용’에 중점을 뒀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탄핵이라는 직접적인 발언을 삼가며 단어 선택에 신중을 가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에 가까워지는 만큼 혹시 모를 역풍에 대비해 특검법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탄핵을 직접적으로 외치지 않았을 뿐, 이 대표 방탄을 위해 ‘탄핵 굴뚝’에 불을 때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의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민주당 주도로 개헌을 하든, 탄핵을 하든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려 조기 선거를 치르려는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할 일은 범죄 방탄, 아스팔트 정치를 중단하고 사법부 판단을 겸허히 기다리는 것”이라며 “그리고 그 판결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법 등에 따르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선고는 앞으로 6개월 안에 이뤄져야 한다. 이는 내년 5월 이전까지로, 대권주자를 노리는 이 대표에게 있어 길지 않은 시간이다.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의혹 등 추가 재판이 예정돼 대법원 판결까지 다소 시간이 지연될 수 있지만 2027년 대선까지 대법원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이 장외 투쟁을 통해 조기 대선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민주당을 탈당한 개혁신당 조응천 총괄특보단 역시 이 대표의 출구전략으로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제시했다.

조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당선무효로 피선거권 박탈로 확정이 될 것 같으니까 그전에 대선에 들어가는 트럼프식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지난 대국민 담화서 임기 단축 가능성을 닫아놨고 최근 들어서는 지지율이 회복세에 오른 만큼 이를 꺾기 위한 민주당의 공세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젖은 장작
연기만?

문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처럼 민심에 불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장외 집회가 열렸던 지난 2일과 9일 각각 30만명,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1만7000명, 1만5000명이 참가했다고 추산했다.

이 대표의 1심 선고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 16일 집회 역시 주최 측 추산으로는 30만여명이 모였지만 경찰은 2만5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봤다.

민주당과 혁신당을 비롯한 야당은 ‘분노한 시민’의 참여율이 저조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집회가 시민의 공감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해 단순히 당원 결집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혁신당 내부에서는 행진 시 정당 깃발을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당 역시 각 시도당위원회와 지역위원회에 집회서 깃발 사용과 파란 의상 착용을 자제해달라는 공지를 보냈다. 두 가지 대책 모두 정당 색을 배제하고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그래도 시민이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16년 탄핵 집회는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정당이 참여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며 “금투세 폐지 등 최근 민주당이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민단체 측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정당과 당원만으로는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언뜻 보면 (민주당과 혁신당은)한목소리 같지만 이 대표는 방탄을 위한 임기 단축을, 조국 대표는 복수를 위한 탄핵을 외친다”며 “같은 야당이어도 단합이 안 되다 보니 일반 시민도 ‘꼼수 집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집회 참여는 곧 방탄’이라는 선입견을 깨트려야 (일반 시민이)광장에 나오고 성난 파도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이 대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대표가 1심서 집행유예를 받은 만큼 앞으로의 발언과 행보에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당에 화력을 더해야 하지만 그럴수록 ‘방탄용’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최근에 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는 다시 한번 격돌했다. 지난 14일 발의된 해당 개정안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물밑서
조용히

박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현행법상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경쟁 후보의 공직 적격성에 대한 의혹 검증을 위해 확인하는 경우까지 낙선 목적 허위사실공표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날에는 민주당서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박탈 기준을 기존 벌금 100만원 이상서 1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개정안도 연달아 발의했다.


이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려서라도 이 대표를 구하겠다는 일종의 아부성 법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장동혁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 입장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면 최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반성적 고려에 의해 처벌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만 있어도 법원에서는 이를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떤 경우라도 이 대표를 위한 꼼수 입법”이라고 보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9일 이 대표가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혐의로 기소되면서 민주당의 부담이 가중됐다. 이 대표와 당시 경기도지사 비서실장 정씨, 전 경기도 공무원 배씨 등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공무와 무관하게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검찰은 이 대표가 개인 음식값과 세탁비 등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도 보고 있다. 사적으로 사용한 배임 금액이 1억653만원으로 추산된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이번 사건으로 이 대표가 기소되면서 재판은 5개로 늘어났다. 가장 먼저 1심 선고가 난 공직선거법 사건을 비롯해 위증교사 사건(지난 25일 무죄 선고),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등 재판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은 곧바로 논평을 내고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검찰이 이토록 집요하게 억지 기소를 남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며 “제1야당 대표이자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정치 지도자를 법정에 가두고 손발을 묶으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원팀, 재판 후에는?
3총·3김에 초일회까지 꿈틀

이어 “검찰은 ‘이 대표가 법인카드를 쓴 것도 아닌데 몰랐을 리 없다’는 억지 춘향식 논리를 뻔뻔하게 들이밀었다”며 “이미 경찰 수사에서 이 대표에게 혐의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부득부득 사건을 되살려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역시 “증거는 없지만 기소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체제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재판이 거듭될수록 당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남은 재판서 줄줄이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이재명 불가론’이 고개를 들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이끌어야 대권주자로 거듭나는 것이지, 당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해서는 민주당도 죽고 본인도 죽는다”는 게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야권 관계자의 평가다.

지도부는 ‘플랜 B’ ‘포스트 이재명’ 등에 대해 딱 잘라 말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과연 차기 당 대표는 누가 될 것인지 저마다 점지하고 나섰다. 친명(친 이재명)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한발 뒤로 물러설 것이란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난 총선서 ‘공천 학살’을 당했던 비명(비 이재명)계가 다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응천 총괄특보단은 “이 대표에 점 하나 찍은 사람이 (대안으로)올라가지 3김(김두관·김경수·김동연·김부겸 등)이나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권리당원의 반절 이상이 대선 이후에 들어온 강성 친명”이라며 “당원민주주의 한다면서 당헌·당규 같은 것을 다 바꿨다. 강성 당원들의 의지대로, 뜻대로 가게 만들어놨다”고 덧붙였다.

‘3총(이낙연·김부겸·정세균 전직 총리)·3김(김두관·김경수·김동연 등)’의 역할에도 눈길이 쏠린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번 달 초 독일서 회동을 했다. 원외 비명계 모임인 ‘초일회’는 다음달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초청해 특강을 주최하고 내년 1월에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의 만남을 예고하면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다만 비명계는 “나설 때가 아니다” “당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아끼고 있다.

어쩌면
열린 결말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의 법원 선고와 관련해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만큼 객관성을 잃은 채 남의 탓으로만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명계 세력이 다시 뭉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지난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으셨냐”면서도 “당장은 정치 공간이 좁아 쉽지 않겠지만 대안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답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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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