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이재명 진짜 속내

믿거나 말거나 미련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불체포특권’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특권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본인이 이를 알뜰살뜰 사용하면서다. 그러던 이 대표가 돌연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 속내를 두고 정치인들이 각자 점치기에 나서면서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모양새다.

불체포특권이란 현행법상 현직 의원이 현행범이 아닐 때,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권리다. 회기 전 체포·구금된 경우 국회의 요구로 석방될 수 있다. 다만 정기회나 임시회 등이 진행되지 않을 때는 국회 동의 절차 없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될 수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만큼 이 대표의 발언은 여러 갈래로 해석됐다. 과거 이 대표를 둘러싼 불체포특권 발언과 사법 리스크가 얽히고설키며 각종 구설에 올랐던 탓이다.

그래도…
갑자기 왜?

이전부터 이 대표는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폐지를 주장해왔다. 지난해 5월 6·1 지방선거 충북 지원 유세서도 그는 불체포특권 제한에 적극 동의했던 바 있다. 이 대표는 청렴한 정치인에게는 불체포특권 따윈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3·9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가 펴낸 공약집 역시 ‘성범죄와 같은 중대범죄의 경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추진’이란 문구가 정치개혁 항목에 기재돼있다. 청렴한 정치인을 강조하던 이 대표는 지난 1월10일, 28일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성남FC 후원금과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으면서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가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기업들로부터 억대의 후원금을 받아 인허가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을 골자로 한다.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비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사업 최종 결재권자이자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가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뺐다고 봤다. 이로써 약 1830억원의 확정이익만 배당받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는 약 4000억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해석했다.

검찰은 이 대표를 동시다발로 정조준하며 압박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3부(강백신 부장검사)는 지난 2월16일, 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그는 긴급 최고위원회의서 “오늘은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이 검찰권 사유화를 선포한 날이자, 사사로운 정적 제거 욕망에 법치주의가 무너져내린 날”이라고 격분했다. 표결을 앞두고는 “법치의 탈을 쓴 정권의 퇴행에 의원 여러분께서 엄중한 경고를 보내달라”며 사실상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장했다.

‘턱걸이 부결’에 쪼개진 당심
끝까지 ‘더불어’ 갈 수 있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늘 강조하던 바가 아니냐’며 맞불을 놨다. 과거 본인 입으로 끈질기게 강조해오던 ‘불체포특권 폐지’가 막상 자신을 찔러대니 억울하냐는 입장이다.


당시 대장동 게이트 등이 잇달아 보도되면서 이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다. 민주당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국민에게는 특혜처럼 보일지 몰라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서 구속 상태로 재판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해 12월28일에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노 의원은 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공무원의 인허가 및 인사 알선, 각종 사업 도움, 선거비용 등의 명목으로 총 5회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 방탄을 위한 예행 연습이라고 지적했다.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터지면서 윤관석·이성만 의원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윤 의원은 2021년 4월 당시 민주당 송영길 대표 후보의 경선캠프 관계자들에게 현금 6000만원을 받아 300만원씩 든 돈봉투를 의원들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 의원은 2021년 3월 경선캠프 관계자에게 100만원, 경선캠프 관계자들에게 1000만원을 제공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같은 해 4월 윤 의원에게 돈봉투로 3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검찰이 두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지난 12일,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서 줄줄이 부결되자 정치권에서는 방탄 논란이 또 다시 제기됐다.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사법 사냥’으로 규정했다. 자신은 모든 소환 요구에 응했고, 도주나 증거인멸이 우려가 없으므로 구속 사유 역시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엎어라
뒤집어라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불체포특권 뒤에 숨지 말고 이 대표 본인이 냈던 공약을 지키라는 압박이다. 정진석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죄가 있으면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선창한 사람이 이재명 아니었느냐”고 꼬집었다.

여야가 입씨름을 주고받는 사이 지난 2월27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다.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이었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해온 이 대표의 예상을 비껴간 모습이다. 결국 그는 ‘방패가 뚫리고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진단서를 받아들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당내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힘을 모으겠다”면서도 “윤석열정권이 정적 제거, 야당탄압, 전 정권 지우기에 들이는 에너지를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도 좀 더 써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현 정권에 대한 날을 감추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를 뒤로한 채 이 대표가 돌연 불체포권리 포기를 재차 선언하면서 국회 안팎은 다시 술렁였다. 정가에선 저마다 빠르게 해석을 내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 대표가 자신의 국면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이 대표는 새 혁신위원장으로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를 내정했는데 혁신위원 중 일부가 친명(친 이재명)계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게 무슨 혁신이냐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로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면서 비명(비 이재명)계의 반발을 사전 억제하겠다는 의지”라고 반발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이탈표가 30표가량 나오면서 발생한 ‘찜찜한 부결’ 역시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사전에 불체포특권이라는 카드를 던짐으로써 흔들리는 민주당 내의 리더십을 다지고, 갈등의 불씨를 진화한 셈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이 대표의 이번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결국 ‘명분 쌓기’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이 대표가 ‘나는 포기했는데 동료 의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쌓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승부수
실효성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깨트릴 승산을 내다봤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법정 진술이 수시로 바뀐다는 보도를 인용하며 ‘엉터리 증거로 구속’이라고 비판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미뤄봤을 때 이 대표가 자신의 무죄 입증에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예상된다. 사건을 입증할 증거가 없을 경우, 법원 역시 영장을 인용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국회를 흔든 이 대표 본인은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노웅래(민주당), 윤관석·이성만(무소속)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두고 김 대표는 “지나간 버스를 세우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만시지탄’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돈봉투 의혹 체포동의안 표결 이전에 이 선언이 나왔더라면, 진즉 대선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정미 대표의 발언을 예의주시하며 말을 얹었다. 불체포특권은 단순히 개인의 포기만으로 표결 절차를 생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책임지겠냐는 의문만 남았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위해 당내 구성원을 설득할 수는 있겠만, 헌법과 국회법 등에 조항이 명시돼있는 만큼 개인 의사만으로는 투표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2012년1월 국회 입법조사처서 발간한 이슈와 논점에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에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특권이자 국회 특권이므로 의원 개인이 이를 포기할 수 없다.

특권 내려놓겠다는 국민의힘
민주당 기다리겠다 선전포고

이후 국민의힘은 보란 듯이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식’을 진행했다. 지난 20일 김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3대 정치쇄신 공동 서약’을 발표한 지 하루,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지 이틀 만이다.

김 대표는 “국회가 드디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을 때가 왔다”며 “야당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선전포고에 나섰다. 이날 서약에는 김 대표를 비롯한 윤재옥 원내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 의원 67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본인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서약합니다”라고 적힌 서약서에 서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또 다른 의견이 있는 의원들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입장이 다른 분들을 무리하게 동참시킬 생각은 없다”며 민주당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은 민주당이 띄웠으나 행동에선 국민의힘이 빨랐다. 이후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실효성을 막론하고 국민의힘이 한발 앞서 행동에 나섰지만, 막상 민주당 일각에선 선부터 긋는 분위기다. 당 내에서도 반응이 엇갈리는 탓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송영길 전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해 ‘절대 반대’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집했다. 불체포특권이 없으면 입법부가 어떻게 검찰 독재정권과 싸울 수가 있겠냐는 설명이다. 송 전 대표는 CBS 라디오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자는 사람은 투항주의자로, 입법부의 견제 역할을 포기하자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재명 망신주기용 소환’ 이야기까지 수면으로 떠올랐다.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검찰서 이 대표의 소환 시점을 계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단단히 못 박은 만큼 이번에는 역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정 의원은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검찰이 정기국회까지 끌다가 추석 때나, 국정감사 때 국면 전환을 위해 ‘망신주기용’으로라도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4선 중진 우원식 의원과 같은 당 송갑석 최고위원도 각각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 발언에 선을 그었다.

모두 동의?
당 분위기는?

우 의원은 당 의원들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검찰이 부당한 권력 행사로 인해 의원 모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데엔 동의하기 어렵다는 셈이다. 송 의원 역시 “(불체포특권 포기는)이 대표 외의 다른 의원들의 경우엔 사안마다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거리를 뒀다.

단 한 명의 정치인이 내뱉은 발언을 두고 양 정당은 물론 같은 당 내서도 여러 갈래로 해석이 나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불체포특권이 이날을 기점으로 또 다시 국회서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체포특권 포기 권성동, 그때 왜?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 과거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화두에 올랐다.

권 의원은 지난 2월16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둘러싼 관심이 최고점을 찍을 당시 논평을 통해 일침을 가했다.

권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단 한 줌의 자존심이 남아 있다면, 불체포특권부터 포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18년 권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 혐의로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를 두고 ‘방탄 국회’ 논란이 이어지자 그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고 임시국회 소집 시기를 조정했다.

이 대표 역시 실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7~8월에 임시국회를 개최하지 않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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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