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이재명 진짜 속내

믿거나 말거나 미련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불체포특권’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특권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본인이 이를 알뜰살뜰 사용하면서다. 그러던 이 대표가 돌연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 속내를 두고 정치인들이 각자 점치기에 나서면서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모양새다.

불체포특권이란 현행법상 현직 의원이 현행범이 아닐 때,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권리다. 회기 전 체포·구금된 경우 국회의 요구로 석방될 수 있다. 다만 정기회나 임시회 등이 진행되지 않을 때는 국회 동의 절차 없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될 수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만큼 이 대표의 발언은 여러 갈래로 해석됐다. 과거 이 대표를 둘러싼 불체포특권 발언과 사법 리스크가 얽히고설키며 각종 구설에 올랐던 탓이다.

그래도…
갑자기 왜?

이전부터 이 대표는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폐지를 주장해왔다. 지난해 5월 6·1 지방선거 충북 지원 유세서도 그는 불체포특권 제한에 적극 동의했던 바 있다. 이 대표는 청렴한 정치인에게는 불체포특권 따윈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3·9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가 펴낸 공약집 역시 ‘성범죄와 같은 중대범죄의 경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추진’이란 문구가 정치개혁 항목에 기재돼있다. 청렴한 정치인을 강조하던 이 대표는 지난 1월10일, 28일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성남FC 후원금과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으면서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가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기업들로부터 억대의 후원금을 받아 인허가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을 골자로 한다.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비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사업 최종 결재권자이자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가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뺐다고 봤다. 이로써 약 1830억원의 확정이익만 배당받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는 약 4000억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해석했다.

검찰은 이 대표를 동시다발로 정조준하며 압박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3부(강백신 부장검사)는 지난 2월16일, 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그는 긴급 최고위원회의서 “오늘은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이 검찰권 사유화를 선포한 날이자, 사사로운 정적 제거 욕망에 법치주의가 무너져내린 날”이라고 격분했다. 표결을 앞두고는 “법치의 탈을 쓴 정권의 퇴행에 의원 여러분께서 엄중한 경고를 보내달라”며 사실상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장했다.

‘턱걸이 부결’에 쪼개진 당심
끝까지 ‘더불어’ 갈 수 있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늘 강조하던 바가 아니냐’며 맞불을 놨다. 과거 본인 입으로 끈질기게 강조해오던 ‘불체포특권 폐지’가 막상 자신을 찔러대니 억울하냐는 입장이다.


당시 대장동 게이트 등이 잇달아 보도되면서 이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다. 민주당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국민에게는 특혜처럼 보일지 몰라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서 구속 상태로 재판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해 12월28일에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노 의원은 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공무원의 인허가 및 인사 알선, 각종 사업 도움, 선거비용 등의 명목으로 총 5회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 방탄을 위한 예행 연습이라고 지적했다.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터지면서 윤관석·이성만 의원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윤 의원은 2021년 4월 당시 민주당 송영길 대표 후보의 경선캠프 관계자들에게 현금 6000만원을 받아 300만원씩 든 돈봉투를 의원들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 의원은 2021년 3월 경선캠프 관계자에게 100만원, 경선캠프 관계자들에게 1000만원을 제공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같은 해 4월 윤 의원에게 돈봉투로 3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검찰이 두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지난 12일,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서 줄줄이 부결되자 정치권에서는 방탄 논란이 또 다시 제기됐다.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사법 사냥’으로 규정했다. 자신은 모든 소환 요구에 응했고, 도주나 증거인멸이 우려가 없으므로 구속 사유 역시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엎어라
뒤집어라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불체포특권 뒤에 숨지 말고 이 대표 본인이 냈던 공약을 지키라는 압박이다. 정진석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죄가 있으면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선창한 사람이 이재명 아니었느냐”고 꼬집었다.

여야가 입씨름을 주고받는 사이 지난 2월27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다.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이었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해온 이 대표의 예상을 비껴간 모습이다. 결국 그는 ‘방패가 뚫리고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진단서를 받아들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당내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힘을 모으겠다”면서도 “윤석열정권이 정적 제거, 야당탄압, 전 정권 지우기에 들이는 에너지를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도 좀 더 써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현 정권에 대한 날을 감추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를 뒤로한 채 이 대표가 돌연 불체포권리 포기를 재차 선언하면서 국회 안팎은 다시 술렁였다. 정가에선 저마다 빠르게 해석을 내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 대표가 자신의 국면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이 대표는 새 혁신위원장으로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를 내정했는데 혁신위원 중 일부가 친명(친 이재명)계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게 무슨 혁신이냐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로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면서 비명(비 이재명)계의 반발을 사전 억제하겠다는 의지”라고 반발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이탈표가 30표가량 나오면서 발생한 ‘찜찜한 부결’ 역시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사전에 불체포특권이라는 카드를 던짐으로써 흔들리는 민주당 내의 리더십을 다지고, 갈등의 불씨를 진화한 셈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이 대표의 이번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결국 ‘명분 쌓기’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이 대표가 ‘나는 포기했는데 동료 의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쌓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승부수
실효성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깨트릴 승산을 내다봤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법정 진술이 수시로 바뀐다는 보도를 인용하며 ‘엉터리 증거로 구속’이라고 비판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미뤄봤을 때 이 대표가 자신의 무죄 입증에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예상된다. 사건을 입증할 증거가 없을 경우, 법원 역시 영장을 인용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국회를 흔든 이 대표 본인은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노웅래(민주당), 윤관석·이성만(무소속)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두고 김 대표는 “지나간 버스를 세우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만시지탄’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돈봉투 의혹 체포동의안 표결 이전에 이 선언이 나왔더라면, 진즉 대선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정미 대표의 발언을 예의주시하며 말을 얹었다. 불체포특권은 단순히 개인의 포기만으로 표결 절차를 생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책임지겠냐는 의문만 남았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위해 당내 구성원을 설득할 수는 있겠만, 헌법과 국회법 등에 조항이 명시돼있는 만큼 개인 의사만으로는 투표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2012년1월 국회 입법조사처서 발간한 이슈와 논점에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에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특권이자 국회 특권이므로 의원 개인이 이를 포기할 수 없다.

특권 내려놓겠다는 국민의힘
민주당 기다리겠다 선전포고

이후 국민의힘은 보란 듯이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식’을 진행했다. 지난 20일 김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3대 정치쇄신 공동 서약’을 발표한 지 하루,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지 이틀 만이다.

김 대표는 “국회가 드디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을 때가 왔다”며 “야당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선전포고에 나섰다. 이날 서약에는 김 대표를 비롯한 윤재옥 원내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 의원 67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본인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서약합니다”라고 적힌 서약서에 서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또 다른 의견이 있는 의원들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입장이 다른 분들을 무리하게 동참시킬 생각은 없다”며 민주당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은 민주당이 띄웠으나 행동에선 국민의힘이 빨랐다. 이후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실효성을 막론하고 국민의힘이 한발 앞서 행동에 나섰지만, 막상 민주당 일각에선 선부터 긋는 분위기다. 당 내에서도 반응이 엇갈리는 탓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송영길 전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해 ‘절대 반대’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집했다. 불체포특권이 없으면 입법부가 어떻게 검찰 독재정권과 싸울 수가 있겠냐는 설명이다. 송 전 대표는 CBS 라디오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자는 사람은 투항주의자로, 입법부의 견제 역할을 포기하자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재명 망신주기용 소환’ 이야기까지 수면으로 떠올랐다.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검찰서 이 대표의 소환 시점을 계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단단히 못 박은 만큼 이번에는 역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정 의원은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검찰이 정기국회까지 끌다가 추석 때나, 국정감사 때 국면 전환을 위해 ‘망신주기용’으로라도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4선 중진 우원식 의원과 같은 당 송갑석 최고위원도 각각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 발언에 선을 그었다.

모두 동의?
당 분위기는?

우 의원은 당 의원들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검찰이 부당한 권력 행사로 인해 의원 모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데엔 동의하기 어렵다는 셈이다. 송 의원 역시 “(불체포특권 포기는)이 대표 외의 다른 의원들의 경우엔 사안마다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거리를 뒀다.

단 한 명의 정치인이 내뱉은 발언을 두고 양 정당은 물론 같은 당 내서도 여러 갈래로 해석이 나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불체포특권이 이날을 기점으로 또 다시 국회서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체포특권 포기 권성동, 그때 왜?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 과거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화두에 올랐다.

권 의원은 지난 2월16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둘러싼 관심이 최고점을 찍을 당시 논평을 통해 일침을 가했다.

권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단 한 줌의 자존심이 남아 있다면, 불체포특권부터 포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18년 권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 혐의로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를 두고 ‘방탄 국회’ 논란이 이어지자 그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고 임시국회 소집 시기를 조정했다.

이 대표 역시 실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7~8월에 임시국회를 개최하지 않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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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