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9월 국회 관전 포인트

다시 가동되는 시한폭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00일간의 정기국회 대장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21대 국회서 발의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 만큼 국회는 초읽기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장 청구를 시작으로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이 뇌관으로 떠올랐다. 여야의 셈법이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가는 이유다.

이번 정기국회는 다음 달 1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정치, 외교·통일·안보, 경제, 교육·사회·문화 등 나흘 동안 대정부 질문을 진행한다. 안건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같은 달 21일과 25일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여러 민감한 사안이 쟁점으로 자리 잡은 만큼 21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순항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헛바퀴

여야는 8월 임시국회 종료 일자를 두고 가닥조차 잡지 못했다. 당초 양측은 이달 24일 본회의를 개최하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사이 비회기 기간을 가질지를 두고는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가 가까워지면서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사이에 비회기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만큼 이달 중 체포동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음 달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대북송금 의혹을 병합해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전제로 계산에 들어간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당내 분열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했다. 국회 회기 중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하는 만큼 가부에 상관없이 계파싸움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 같은 주장을 ‘꼼수’로 규정하면서 8월 중 회기를 비울 수 없다고 맞섰다. 비회기 기간 없이 오는 31일까지 국회 문을 열어둠으로써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겠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내분을 조장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방탄’, 가결되면 ‘민주당 분열’이라는 해석의 여지가 남게 된다. 검찰과 정부여당의 ‘꽃놀이패’를 만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내년까지 끌고 갈 경우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유리한 만큼 ‘역방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회기는 예정됐던 31일서 25일로 단축됐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일단락되더라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8월 임시회서 해결하지 못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공이 정기국회로 넘어오면서다.

방탄복 벗겠다는 민주당
입혀주겠다는 국민의힘

앞서 민주당은 의석수로 밀어붙여서라도 강행하겠다는 반면, 국민의힘은 이 두 법안을 올린다면 본회의 개최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두 법안 모두 여야 합의 가능성이 낮은 사안인 만큼 장시간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변경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다. 공영방송별로 이사를 현행 9명 또는 11명서 21명으로 늘리고 국회, 학회, 시청자위원회 등의 추천을 받도록 개정할 방침이다.


이는 현행 방송법으로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법 개정은 물론, 방통위의 불법·탈법·무법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특히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에 힘을 실을 것으로 내다봤다. ‘방송장악’ 비판을 받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이하 방통위) 후보의 임명 강행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기 때문이다. 최근 KBS, EBS, 방송문회진흥회(이하 방문진) 내에서 야당이 추천한 전·현직 이사가 잇달아 해임된 것 역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쟁점 중 하나인 노란봉투법 역시 장기간 국회를 표류하는 법안 중 하나다. 해당 법안은 노조 파업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5월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서 해당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반대토론을 한 뒤 본회의장서 퇴장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채 정기국회로 넘어온 만큼 장시간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은 “사측의 손해배상으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이 제한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란봉투법 처리를 주장했다. 반면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기업의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노란봉투법에 방송법까지
예견된 100일간의 진흙탕

현재 민주당은 두 법안 중 한 가지라도 강행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윤석열정부 흔들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4월과 5월 민주당이 통과시킨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의 시행을 막기 위해 연달아 거부권을 던졌다. 집권 1년 만에 2건의 거부권을 행사한 셈이다. 총선을 앞둔 현 시점서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국정운영에 부담은 물론 ‘독재정치’ 프레임이 씌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를 막기 위해 국민의힘도 수를 두는 모양이다. 민주당의 법안 강행 의사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불사하겠다며 강대강 맞불을 놨다.

필리버스터는 “회기가 끝나면 토론을 종결한 것으로 간주하고 해당 안건을 다음 회기 때 지체 없이 표결한다”는 국회법 조항을 이용한 일종의 법안 통과 전술이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원내 행정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원내알림문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문자를 통해 “본회의에 법안 상정 시, 우리 당은 국민께 법의 부당성을 알리고 입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원내 알림문을 받은 이후 정확한 지침이나 방안에 대해 아직 정해진 사안은 없다”면서도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해 4월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당시 필리버스터로 대응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하루짜리 임시국회를 2~3번으로 나누는 이른바 ‘회기 쪼개기’를 통해 이를 무력화했던 만큼 이번 정기국회서도 같은 시나리오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기능 상실

정기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서 여야의 엉뚱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민생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았다는 국민의 따끔한 질책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반적으로 국회의 기능이 축소됐다는 의견과 함께 국회가 본래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총선을 앞둔 여야가 각자에게 유리한 정치적 프레임만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국회를 둘러싼 파열음이 예상된다. 민생법안은 고사하고 100일이라는 기간이 탈 없이 넘어갈지조차 미지수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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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