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코너 몰린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장롱 속 수상한 현금 뭉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4선 중진의 국회의원이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뇌물수수 혐의의 수렁에 빠졌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노 의원은 계속 결백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당의 ‘엄호사격’은 미미한 수준이다. 여차하면 ‘방탄 프레임’이 덧씌워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마저 읽힌다. 

“저를 버리지 말아 달라. 간절히 부탁드린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지난 1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3쪽짜리 편지를 동료 의원들에게 돌렸다. 다음날에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노 의원은 현재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돌아선 당심
찬밥 신세?

노 의원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에서 4선 중진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1957년8월3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공덕동에서 태어난 그는 고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이다. 노 전 부의장은 5선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 재선 마포구청장을 역임했다. 야권 인사 중에서는 드물게 출마한 선거에서 전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노 의원은 공덕초등학교와 대성중학교를 거쳐 대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국민의힘 이재오 상임고문이 노 의원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다. 당시 이 상임고문은 노동운동가 활동을 하는 동시에 대성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노 의원은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했다. 1985년에는 MBC로 이직해 2003년까지 몸담았다. 그는 MBC에서 보도국 기자로 시작해 사회부 차장까지 맡았다. 1990년 ‘혜영 용철 사건’을 보도해 영유아 보육법 제정에 일조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MBC 노동조합 위원장, 전국 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던 노 의원은 2004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제17대 총선에 출마했다. 지역구는 서울 마포구 갑이었다. 이곳은 부친인 노 전 부의장이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된 곳으로 10여년이 지난 뒤에 아들이 지역구를 넘겨받은 셈이다.

노 의원은 당시 크게 일었던 ‘탄핵 역풍’의 도움을 받아 초선에 성공했다. 득표율 44%를 기록하면서 39%를 얻은 한나라당 신영섭 후보를 제쳤다.

국회에 입성한 노 의원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게 2.7%p 차이로 낙선했다. 정권교체·서울 뉴타운 개발 등의 영향으로 한나라당 우세가 일찍이 예견된 선거였다.

노 의원은 2012년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17대 총선에서 만났던 신영섭 후보과의 리턴매치서 승리했다. 이후 노의원은 2014년까지 민주통합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노 의원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지역구 단수 공천을 받은 뒤 무난하게 과반을 차지했다. 공천 당시 당 지도부가 해당 지역구에 조응천 의원을 전략공천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결국 터줏대감인 노 의원이 공천됐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전략공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당초 출마를 준비하던 강 수석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의석 탈환에 차질을 빚었다.

민주 4선 중진 뇌물수수 의혹…진실은?
녹취록 이어 집서 수억원 돈다발 발견


노 의원은 비교적 무난하게 당내 중진 반열에 들어선 반면, 원내대표 도전에서는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노 의원은 3선 의원이던 2016·2018·2019년 총 세 번이나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했지만, 매번 낙선했다.

노 의원이 2020년 21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하면서 원내대표 4수 도전 여부가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노 의원은 함께 비문(비 문재인)계로 분류되던 정성호 의원이 출마하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대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출마했다. 당시 여론조사 2위를 기록하는 등 무난한 당선이 예견됐다. 실제 개표 결과, 총득표율 13.17%(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당선 약 8개월 만에 최고위원 자리에서 내려왔다. 민주당이 지난해 4·7 재보선서 참패하면서 당 지도부가 총사퇴했기 때문이다. 이후 친문(친 문재인)계 도종환 의원을 주축으로 임시 비대위가 구성되자, 노 의원은 “국민들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국민을 바보로 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하지만 노 의원의 비판은 기우로 끝났다. 도 의원과 임시 비대위의 활동 기간은 단 일주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도부 총사퇴 직후부터 일주일 뒤 윤호중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만 자리를 지켰다.

노 의원은 지난해 6월 제9대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당초 예정된 임기는 내년 6월까지였지만, 지난 9월 사의를 표했다. 노 의원이 지난달까지 물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뒤늦게 사의 표명 소식이 알려졌다.

야권 일각에서는 노 의원이 이재명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로 무언의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는 후일담이 나온다.

양측 간의 묘한 긴장감은 한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민주연구원은 지난 7월 ‘지방선거 평가보고서’에서 지방선거 패배의 주된 원인으로 이 대표의 인천 계양을 출마를 지목했다. 이 대표를 비호하던 강성 지지층은 당시 뜨거웠던 ‘수박 논란’으로 노 의원을 몰아붙였다.

‘수박’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사용하던 일종의 멸칭이다. 겉과 속의 색깔이 다른 수박의 특징에 빗대 이 대표를 비판하는 당내 인사를 ‘민주당인 척하는 보수인사’로 낙인찍는 용어다. 당시 노 의원은 수박 인사로 내몰린 데 이어 사퇴 요구에 휩싸였다.

아내 통해
수수 혐의

이후 양측은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 해촉 여부를 놓고도 이견을 보였다. 남 부원장은 10·29 참사 직후 SNS 실언 논란에 직면했다. 이에 노 의원은 당 지도부에 남 부원장 해촉 의사를 전했지만, 이를 당 지도부가 뭉갰다는 것이다. 남 부원장은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꼽힌다.

그러던 중 노 의원이 뇌물수수 의혹에 휩싸였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알선수재 의혹 불똥이 노 의원에게 번졌다. 당초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부총장이 사업가 박모씨에게 정치자금 3억여원, 인사청탁금 7억여원 등 총 10억원 남짓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었다.


이후 지난 8월 말 박씨의 녹취록이 추가 공개되면서 전 청와대 관계자와 야권 중진 정치인이 이 전 부총장에게 금품을 전달 받았다는 의혹이 함께 제기됐다. 검찰은 언급된 야권 중진 정치인으로 노 의원을 지목했다.

검찰에 따르면 노 의원은 박씨의 아내 조모 씨를 통해 5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는 ▲2020년 2월25일 박씨 아내 조모씨로부터 박씨 운영 발전소 납품 사업 관련 부탁을 받고 21대 국회의원 선거비용 명목으로 현금 2000만원 ▲같은 해 3월15일 조씨 통해 박씨가 추진하는 용인 물류단지 개발사업 실수요검증 절차 관련 청탁을 받고 1000만원이다.

이 외에도 ▲같은 해 7월2일 한국철도공사 보유 폐선부지를 빌려 태양광 전기를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 ▲같은 해 11월22일 지방국세청장의 보직인사에 관한 청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 ▲한국동서발전 임원 승진인사에 관한 청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 등이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노 의원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은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노 의원의 국회 사무실·자택·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노 의원의 자택 장롱에서 3억원 상당의 현금 뭉치를 발견했다. 노 의원은 이 돈이 2014년과 2017년 부의금, 2020년 1월 출판기념회 후원금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노 의원이 이자 수익을 볼 수 있는 은행 예금 대신 자택에서 거액을 보관해 온 점을 수상히 여기고, 돈의 출처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의 해명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현금 뭉치 일부가 띠지로 묶인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달 노 의원 자택에서 확보한 현금 뭉치 3억 원 중 일부가 2020년 하반기∼지난해 초 날짜가 찍힌 띠지로 묶인 사실을 파악했다.


수사팀은 띠지에 적힌 시기와 노 의원 주장에 따른 현금 확보 시점이 맞지 않는 점에 주목했다. 게다가 해당 현금은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하는 재산 내역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노 의원이 조씨를 만날 때 요구 사항 등을 메모한 의원 일정표, “노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조씨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미한
엄호사격

검찰은 지난 6일 노 의원을 불러 소환조사한 뒤 지난 1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에 명시된 혐의는 뇌물수수·알선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등이다.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서에 자택 압수수색 당시 발견한 3억원에 관한 혐의는 적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재차 부인했다. 이어 준비해온 사진을 가리키며 압수수색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앞서 밝힌 자금 출처 중)일부는 봉투조차도 뜯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십여개의 봉투에서 그 돈들을 일일이 꺼내봤다. 여기 당시 현장에 있던 축의금·조의금 봉투와 이를 꺼내서 돈뭉치로 만드는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다”면서 “압수수색 영장에도 없던, 목록에도 없던 걸 이렇게 불법으로 돈뭉치를 만들어서 저를 부패 정치인으로 낙인찍었다. 명백한 증거 조작이고, 증거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에 묻겠다”며 “왜 각각의 봉투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돈뭉치로 만들었는가. 증거로 인정되려면 현상 그대로 보전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이것이 윤석열·한동훈 검찰이 야당 정치인을 수사하는 방식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가 제출한 노 의원 체포동의안은 지난 15일 국회에 접수됐다. 현역 국회의원인 노 의원은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이 있다. 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려면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의장은 요구서를 받은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해야 한다. 국회는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본회의를 열어 체포동의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야 한다. 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수 참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노 의원은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대대적인 ‘엄호사격’에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검찰과 정부를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체포동의안 부결 당론은 채택하지 않았다.

국회로 넘어온 체포동의안
가부 상관없이 ‘가시밭길’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직후 “노 의원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안 수석대변인은 “노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며 “노 의원이 자신의 무고함을 밝힐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하는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영장 청구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에 반하는 과잉 청구로, 노 의원의 방어권과 의정활동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 의원은 그간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했고, 불구속 상태에서도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했다”며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사정이 없는데도 검찰은 피의사실 유포 등을 통해 노 의원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넣으려 한다”고 맹폭했다.

민주당은 지난 15일 의원총회를 열고 노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고 결과를 의원 자율 투표에 맡기기로 했다. 앞서 민주당은 노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탄압’으로 규정했지만,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기에는 부담을 느낀 것이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한 만큼 체포동의안 가부를 직접 결정할 수 있지만, 부결을 밀어붙일 경우 기존의 ‘방탄 정당’ 이미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노 의원이 의총에서 신상 발언을 요청해 검찰 수사의 편파성을 지적하며 공정하게 수사받을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며 “체포동의안에 대한 입장을 당론으로 정할지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대다수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해 검찰에 대항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도부는 자율 투표로 가더라도 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을 피하면서도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방안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지도부 안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아예 당론으로 박아둬야 한다는 강경론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향후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노 의원 건이 가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불안 요소라는 것이다.

여론이 
더 무섭다

노 의원 체포동의안은 당초 지난 16일 본회의 상정이 유력했다. 하지만 여야가 예산안 합의에 실패하면서 함께 미뤄졌다. 다만 체포동의안 가부 여부와 상관없이, 노 의원 앞에는 당분간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망이 점차 조여들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국민 절반 “폐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도착했다.

가부 여부를 두고 여러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상반기 국민 절반 이상이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론조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20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5월17~18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거 및 사회현안 38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0.1%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이 폐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더해 “중대범죄에 제한해서 불체포특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응답은 23.0%를 기록했다.

반면 ‘현행 유지’ 응답은 16.7%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계양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불체포특권 찬반 논쟁이 일었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국회 입성을 노린다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제21대 국회의 첫 체포동의안은 이 대표가 아닌 노 의원 몫이 됐다.

한편 이번 조사는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표본조사 완료 수는 1018명이며, 응답률은 3.3%다.

그 밖의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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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