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코너 몰린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장롱 속 수상한 현금 뭉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4선 중진의 국회의원이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뇌물수수 혐의의 수렁에 빠졌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노 의원은 계속 결백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당의 ‘엄호사격’은 미미한 수준이다. 여차하면 ‘방탄 프레임’이 덧씌워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마저 읽힌다. 

“저를 버리지 말아 달라. 간절히 부탁드린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지난 1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3쪽짜리 편지를 동료 의원들에게 돌렸다. 다음날에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노 의원은 현재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돌아선 당심
찬밥 신세?

노 의원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에서 4선 중진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1957년8월3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공덕동에서 태어난 그는 고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이다. 노 전 부의장은 5선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 재선 마포구청장을 역임했다. 야권 인사 중에서는 드물게 출마한 선거에서 전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노 의원은 공덕초등학교와 대성중학교를 거쳐 대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국민의힘 이재오 상임고문이 노 의원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다. 당시 이 상임고문은 노동운동가 활동을 하는 동시에 대성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노 의원은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했다. 1985년에는 MBC로 이직해 2003년까지 몸담았다. 그는 MBC에서 보도국 기자로 시작해 사회부 차장까지 맡았다. 1990년 ‘혜영 용철 사건’을 보도해 영유아 보육법 제정에 일조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MBC 노동조합 위원장, 전국 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던 노 의원은 2004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제17대 총선에 출마했다. 지역구는 서울 마포구 갑이었다. 이곳은 부친인 노 전 부의장이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된 곳으로 10여년이 지난 뒤에 아들이 지역구를 넘겨받은 셈이다.

노 의원은 당시 크게 일었던 ‘탄핵 역풍’의 도움을 받아 초선에 성공했다. 득표율 44%를 기록하면서 39%를 얻은 한나라당 신영섭 후보를 제쳤다.

국회에 입성한 노 의원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게 2.7%p 차이로 낙선했다. 정권교체·서울 뉴타운 개발 등의 영향으로 한나라당 우세가 일찍이 예견된 선거였다.

노 의원은 2012년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17대 총선에서 만났던 신영섭 후보과의 리턴매치서 승리했다. 이후 노의원은 2014년까지 민주통합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노 의원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지역구 단수 공천을 받은 뒤 무난하게 과반을 차지했다. 공천 당시 당 지도부가 해당 지역구에 조응천 의원을 전략공천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결국 터줏대감인 노 의원이 공천됐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전략공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당초 출마를 준비하던 강 수석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의석 탈환에 차질을 빚었다.

민주 4선 중진 뇌물수수 의혹…진실은?
녹취록 이어 집서 수억원 돈다발 발견


노 의원은 비교적 무난하게 당내 중진 반열에 들어선 반면, 원내대표 도전에서는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노 의원은 3선 의원이던 2016·2018·2019년 총 세 번이나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했지만, 매번 낙선했다.

노 의원이 2020년 21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하면서 원내대표 4수 도전 여부가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노 의원은 함께 비문(비 문재인)계로 분류되던 정성호 의원이 출마하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대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출마했다. 당시 여론조사 2위를 기록하는 등 무난한 당선이 예견됐다. 실제 개표 결과, 총득표율 13.17%(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당선 약 8개월 만에 최고위원 자리에서 내려왔다. 민주당이 지난해 4·7 재보선서 참패하면서 당 지도부가 총사퇴했기 때문이다. 이후 친문(친 문재인)계 도종환 의원을 주축으로 임시 비대위가 구성되자, 노 의원은 “국민들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국민을 바보로 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하지만 노 의원의 비판은 기우로 끝났다. 도 의원과 임시 비대위의 활동 기간은 단 일주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도부 총사퇴 직후부터 일주일 뒤 윤호중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만 자리를 지켰다.

노 의원은 지난해 6월 제9대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당초 예정된 임기는 내년 6월까지였지만, 지난 9월 사의를 표했다. 노 의원이 지난달까지 물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뒤늦게 사의 표명 소식이 알려졌다.

야권 일각에서는 노 의원이 이재명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로 무언의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는 후일담이 나온다.

양측 간의 묘한 긴장감은 한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민주연구원은 지난 7월 ‘지방선거 평가보고서’에서 지방선거 패배의 주된 원인으로 이 대표의 인천 계양을 출마를 지목했다. 이 대표를 비호하던 강성 지지층은 당시 뜨거웠던 ‘수박 논란’으로 노 의원을 몰아붙였다.

‘수박’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사용하던 일종의 멸칭이다. 겉과 속의 색깔이 다른 수박의 특징에 빗대 이 대표를 비판하는 당내 인사를 ‘민주당인 척하는 보수인사’로 낙인찍는 용어다. 당시 노 의원은 수박 인사로 내몰린 데 이어 사퇴 요구에 휩싸였다.

아내 통해
수수 혐의

이후 양측은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 해촉 여부를 놓고도 이견을 보였다. 남 부원장은 10·29 참사 직후 SNS 실언 논란에 직면했다. 이에 노 의원은 당 지도부에 남 부원장 해촉 의사를 전했지만, 이를 당 지도부가 뭉갰다는 것이다. 남 부원장은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꼽힌다.

그러던 중 노 의원이 뇌물수수 의혹에 휩싸였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알선수재 의혹 불똥이 노 의원에게 번졌다. 당초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부총장이 사업가 박모씨에게 정치자금 3억여원, 인사청탁금 7억여원 등 총 10억원 남짓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었다.


이후 지난 8월 말 박씨의 녹취록이 추가 공개되면서 전 청와대 관계자와 야권 중진 정치인이 이 전 부총장에게 금품을 전달 받았다는 의혹이 함께 제기됐다. 검찰은 언급된 야권 중진 정치인으로 노 의원을 지목했다.

검찰에 따르면 노 의원은 박씨의 아내 조모 씨를 통해 5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는 ▲2020년 2월25일 박씨 아내 조모씨로부터 박씨 운영 발전소 납품 사업 관련 부탁을 받고 21대 국회의원 선거비용 명목으로 현금 2000만원 ▲같은 해 3월15일 조씨 통해 박씨가 추진하는 용인 물류단지 개발사업 실수요검증 절차 관련 청탁을 받고 1000만원이다.

이 외에도 ▲같은 해 7월2일 한국철도공사 보유 폐선부지를 빌려 태양광 전기를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 ▲같은 해 11월22일 지방국세청장의 보직인사에 관한 청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 ▲한국동서발전 임원 승진인사에 관한 청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 등이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노 의원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은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노 의원의 국회 사무실·자택·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노 의원의 자택 장롱에서 3억원 상당의 현금 뭉치를 발견했다. 노 의원은 이 돈이 2014년과 2017년 부의금, 2020년 1월 출판기념회 후원금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노 의원이 이자 수익을 볼 수 있는 은행 예금 대신 자택에서 거액을 보관해 온 점을 수상히 여기고, 돈의 출처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의 해명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현금 뭉치 일부가 띠지로 묶인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달 노 의원 자택에서 확보한 현금 뭉치 3억 원 중 일부가 2020년 하반기∼지난해 초 날짜가 찍힌 띠지로 묶인 사실을 파악했다.


수사팀은 띠지에 적힌 시기와 노 의원 주장에 따른 현금 확보 시점이 맞지 않는 점에 주목했다. 게다가 해당 현금은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하는 재산 내역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노 의원이 조씨를 만날 때 요구 사항 등을 메모한 의원 일정표, “노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조씨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미한
엄호사격

검찰은 지난 6일 노 의원을 불러 소환조사한 뒤 지난 1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에 명시된 혐의는 뇌물수수·알선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등이다.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서에 자택 압수수색 당시 발견한 3억원에 관한 혐의는 적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재차 부인했다. 이어 준비해온 사진을 가리키며 압수수색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앞서 밝힌 자금 출처 중)일부는 봉투조차도 뜯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십여개의 봉투에서 그 돈들을 일일이 꺼내봤다. 여기 당시 현장에 있던 축의금·조의금 봉투와 이를 꺼내서 돈뭉치로 만드는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다”면서 “압수수색 영장에도 없던, 목록에도 없던 걸 이렇게 불법으로 돈뭉치를 만들어서 저를 부패 정치인으로 낙인찍었다. 명백한 증거 조작이고, 증거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에 묻겠다”며 “왜 각각의 봉투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돈뭉치로 만들었는가. 증거로 인정되려면 현상 그대로 보전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이것이 윤석열·한동훈 검찰이 야당 정치인을 수사하는 방식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가 제출한 노 의원 체포동의안은 지난 15일 국회에 접수됐다. 현역 국회의원인 노 의원은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이 있다. 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려면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의장은 요구서를 받은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해야 한다. 국회는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본회의를 열어 체포동의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야 한다. 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수 참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노 의원은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대대적인 ‘엄호사격’에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검찰과 정부를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체포동의안 부결 당론은 채택하지 않았다.

국회로 넘어온 체포동의안
가부 상관없이 ‘가시밭길’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직후 “노 의원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안 수석대변인은 “노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며 “노 의원이 자신의 무고함을 밝힐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하는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영장 청구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에 반하는 과잉 청구로, 노 의원의 방어권과 의정활동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 의원은 그간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했고, 불구속 상태에서도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했다”며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사정이 없는데도 검찰은 피의사실 유포 등을 통해 노 의원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넣으려 한다”고 맹폭했다.

민주당은 지난 15일 의원총회를 열고 노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고 결과를 의원 자율 투표에 맡기기로 했다. 앞서 민주당은 노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탄압’으로 규정했지만,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기에는 부담을 느낀 것이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한 만큼 체포동의안 가부를 직접 결정할 수 있지만, 부결을 밀어붙일 경우 기존의 ‘방탄 정당’ 이미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노 의원이 의총에서 신상 발언을 요청해 검찰 수사의 편파성을 지적하며 공정하게 수사받을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며 “체포동의안에 대한 입장을 당론으로 정할지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대다수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해 검찰에 대항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도부는 자율 투표로 가더라도 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을 피하면서도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방안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지도부 안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아예 당론으로 박아둬야 한다는 강경론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향후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노 의원 건이 가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불안 요소라는 것이다.

여론이 
더 무섭다

노 의원 체포동의안은 당초 지난 16일 본회의 상정이 유력했다. 하지만 여야가 예산안 합의에 실패하면서 함께 미뤄졌다. 다만 체포동의안 가부 여부와 상관없이, 노 의원 앞에는 당분간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망이 점차 조여들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국민 절반 “폐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도착했다.

가부 여부를 두고 여러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상반기 국민 절반 이상이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론조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20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5월17~18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거 및 사회현안 38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0.1%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이 폐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더해 “중대범죄에 제한해서 불체포특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응답은 23.0%를 기록했다.

반면 ‘현행 유지’ 응답은 16.7%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계양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불체포특권 찬반 논쟁이 일었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국회 입성을 노린다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제21대 국회의 첫 체포동의안은 이 대표가 아닌 노 의원 몫이 됐다.

한편 이번 조사는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표본조사 완료 수는 1018명이며, 응답률은 3.3%다.

그 밖의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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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