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푸는 민주당 조기 대선 로드맵

시동 거는 대선 열차…승객은 1명?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변론기일이 종료됐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 승부수로 개헌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성도, 뉘우침도 없는 최후 변론이 오히려 탄핵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이 종결됐다. 이날 윤 대통령은 최후진술을 통해 “이번 비상 계엄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용”이라고 주장하며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마지막까지 거짓말과 궤변”이라며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제 발에
넘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서 열린 11차 변론서 최후진술을 통해 탄핵 기각을 전제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며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 가치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책임총리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해 대통령은 대외 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라며 “글로벌 중추 외교 기조로 역대 가장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하고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냈던 경험으로 대외 관계서 국익을 지키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데 마지막 40분을 할애했다. 이 과정서 ‘간첩’이라는 단어는 25번이나 등장했다.

그는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들과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 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이들은 가짜 뉴스, 여론조작, 선전·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당장 2023년 적발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만 봐도 반국가 세력의 실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거대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고 야당 대표의 범죄를 심판할 판사들까지 압박하기 위한 ‘방탄 탄핵’을 일삼아 국정이 마비됐다”며 비상계엄의 화살을 민주당으로 돌렸다.

윤 대통령의 최후진술을 놓고 반응은 엇갈렸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실현돼 우리 정치가 과거의 질곡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역시 “대통령이 개헌 문제와 임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본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성을 갖고 이야기했다”며 개헌에 초점을 맞췄다.

탄핵 인용 시 60일 내 대선 가능성
‘이재명 올인’ 한 우물에 일사불란

야당은 오히려 윤 대통령이 탄핵 불씨를 지폈다고 봤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앞세워 정권교체 여론전에 나섰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개헌, 선거제 운운하며 복귀 구상을 밝힌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군·경을 동원해 헌정을 파괴하려 한 내란범이 다시 권력을 쥐고 헌정을 주무르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빠른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 역시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대교를 폭파한 후 국민에게 ‘이상 없다’고 방송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재 판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전제가 없는 상태서 이런 이야기(대통령 임기단축 개헌)부터 하다니 기본이 안 된 것”이라며 “최근 보수 언론이 임기 단축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기대할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탄핵 기각을 전제로 하는 윤 대통령과 달리 야당은 탄핵 인용을 확신하고 있다. 각종 간담회를 통해 정치 반경을 넓히고 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탄핵은 반드시 된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반드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지금부터 (윤 대통령)탄핵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을 치르고 그 이후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준비를 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당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론을 오는 11일 전후로 예상한다. 윤 대통령의 파면과 5월 조기 대선을 확실시하는 상황서 60일이란 시간은 짧기만 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미 조기 대선은 시작됐다. 모든 시선이 이 대표의 입에 쏠려 있을 뿐, 여기저기서 대권 행보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며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대선 출마 선언이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0일 열린 국회 교섭단체 연설서 이 대표는 ‘국민’을 46번 언급했다. 산업, 성장, 노동 또한 20회 이상이었다. 거대 야당을 겨냥한 국민의힘의 연설과 달리 이 대표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고 싶다”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등 차기 집권당의 면모를 부각했다는 설명이다.

진해지는
밑그림

이날 이 대표는 “새롭고 공정한 성장동력을 통해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해야 함께 잘사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성장해야 나눌 수 있다. 국민의 기본적 삶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나라, 두툼한 사회 안전망이 지켜주는 나라여야 혁신의 용기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력을 총동원해서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겠다”며 “기본 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후 민주당은 각종 위원회와 포럼을 발족하며 당 정열에 나섰다. 우선 민주당은 지난달 6일 잠시 멈춰있던 집권플랜본부를 재가동하면서 대선 열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들은 ‘성장은 민주당 대한민국 성장 전략’을 주제로 신년 세미나를 개최하고 ‘선 선장 후 복지’의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이후 민주당은 12·3 내란 사태 당시 청년이 광장에 나선 점을 강조하며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와 전국대학생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아울러 이 대표의 먹사니즘을 지역의 특성에 맞춘 ‘먹사니즘 전국네트워크’, 유보 통합 대안을 논의하는 ‘보육특별위원회’, 직능단체별 정책개발과 입법 과제 해결 등을 골자로 한 ‘전국직능대표자회의’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최근에는 ‘내란 종식과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人(인)포럼’ 출범을 예고하며 호남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친명(친 이재명)계가 주축인 ‘더민주혁신회’도 인천, 전남, 전북 등지서 기지개를 켰다. 민주당은 헌재의 결정이 아직 나오기 전인 만큼 공식적으로는 조기 대선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차기 집권 여당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로 풀이했다.

한때 여의도를 뜨겁게 달군 이 대표의 ‘중도 보수’ 발언과 ‘경제 우클릭’ 역시 조기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지난 1월 출범한 민주당 경제안보특별위원회 주요 기업 책임자를 비롯한 경제 단체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같은 날 민주연구원은 바이오 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빅테크와 성장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고 친기업 행보에 속도를 냈다.

앞서 막고
뒤서 밀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광폭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고 사실상 이슈 주도권을 빼앗겼다. 최근 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띄우자 국민의힘은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위험천만한 법안”이라며 “민주당은 눈앞의 권력에 눈이 멀어 경제 위기는 외면한 채 경제의 정치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친기업 정책에 대해서는 ‘이재명식 양두구육(양 머리를 놓고서 개고기를 파는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경제 우클릭을 연타하는 동시에 집토끼를 단속하기 위한 이 대표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대표는 지난 한 달간 비명(비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를 만나 통합 메시지를 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 이 대표는 비명계 인사를 선대위에 합류시켜 정치 공간을 넓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표는 지난달 13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21일 박용진 전 의원, 24일에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만나 오찬 회동을 했다. 이후 같은 달 27일에는 임종석 전 청와대실장을, 하루 뒤인 28일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만남을 가졌다.

압축적인 통합 행보에 나섰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아 보인다. 지난 총선서 공천을 놓고 벌어진 갈등의 골이 큰 만큼 당의 통합 과정 또한 장기전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적으로 지난 27일 회동서 임 전 실장은 “앞으로도 저는 좋은 소리보다 쓴소리를 많이 하고 싶고 가까이서 못 하는 소리, 여의도서 잘 안 들리는 소리를 가감 없이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의 구조서 이 대표와 경쟁해보려고 용기를 내고 이재명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성원하고 지지할 생각”이라며 “통합과 연대도 더 담대하고 절실하게, 누구도 예상 못하는 범위로 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정당에 다양성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해야 할 얘기도 해야 한다”며 “그걸 제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박 전 의원 역시 “이 대표와의 악연을 털었다”면서도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을 주장하는 이낙연 전 총리와의 통합을 요구했다.

여당에 짙게 깔린 명 그림자
‘시장님 정조준’ 특검법 압박

임기 단축을 골자로 한 개헌도 숙제 중 하나다. 비명계는 앞다퉈 개헌 논의를 띄웠지만 이 대표는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대표가 유력 대선주자가 되자 개헌을 외면했다는 비판과 개헌을 요구한 인사를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고 비난하는 움직임이 양쪽서 일면서 또다시 갈등이 터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지난 대선서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뼈아픈 경험을 한 민주당은 통합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좁힐 듯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선 국면이 열리면, 지난 패배를 교훈 삼아 대동단결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외연 확장에 나선 민주당은 국민의힘 기선 제압 방식으로 특검법을 택했다. 특히 국민의힘 인사가 깊게 얽혀있는 ‘명태균 특검법’은 여권 대선 잠룡을 압박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앞서 지난달 11일 야6당은 명태균 특검법을 공동 발의했다. 지난달 27일 본희의 상정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재석 의원 274인 중 182인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민주당은 특검 수사 대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을 겨냥했다.

이에 반발한 오 시장은 “민주당이 요즘 명태균에게 의존한다”며 “민주당의 아버지가 이재명인 줄 알았더니 명태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꼬았다. 홍 시장도 “명태균 특검이든 중앙지검 검찰조사든,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니들(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며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기소된 사람이 뻔뻔하게 대선 나오겠다고 설치면서 ‘김대업 병풍 공작’을 하는데 국민이 또 속겠느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명태균 특검법=민주당 조기 대선 전략’으로 규정한 모양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한낱 선거 브로커가 쏟아낸 허황된 말을 신의 말씀처럼 떠받들면서 특검으로 여당과 보수진영을 무차별적 초토화하려는 것”이라며 “명태균은 자신이 살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정치적 판단을 내린, 민주당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착착 스텝을 밟아가는 민주당의 조기 대선 계획에 유일한 변수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시계와 이 대표의 법원 시계가 동시에 달리는 만큼 먼저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 패배다.

만에 하나
뒤집히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기일은 오는 26일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의 선고 기일보다 윤 대통령의 탄핵 결과가 먼저 나올 가능성에 힘을 실었지만, 만에 하나 헌재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조기 대선 판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릴 경우, 이 대표의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소추할 수 없다’는 헌법 제84조를 언급하며 “법의 취지는 국가원수이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직무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에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걸 전제로 한다. 당연히 재판이 중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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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