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인사에 달린 이재명 운명

판사 덕분에 기사회생…이번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야당 대표가 연루된 재판을 맡고 있던 판사가 사표를 던졌다. 재판 일정이 흐트러지면서 정국도 요동쳤다. 특히 4월 총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서 판사가 법원을 떠나자 그 배경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일요시사>가 법관 인사 시즌과 맞물린 정치권의 사법 리스크를 분석했다.

지난해 9월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이른바 ‘김명수 코트’서 불거진 재판 지연 문제는 법원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더딘 재판 진행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법원 의지
먹힐까?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을 통해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서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 확충과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대표 사법개혁’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지난 15일 취임과 동시에 재판 지연 해결을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천 처장은 취임식서 “당면한 사법 과제는 재판 지연의 해소”라며 “신속·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사법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천 처장은 그 방안으로 법관 인사를 언급했다. 그는 “한 법원에서는 가급적 한 재판부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인사 및 사무분담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며 “고등법원 중심으로 기수 제한 등 다수 지방법원 법관의 진입장벽을 없애는 한편 불필요한 전보 등 인사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천 처장은 대법원은 재판장 2년, 배석 판사 1년으로 교체 주기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예규 개정을 통해 각각 3년과 2년으로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재판 지연 해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무 분담이 자주 바뀌면서 심리 주체와 판결 주체가 분리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재판 지연 등의 부작용이 나오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실제 재판 도중 재판부가 바뀌면 새로운 재판부가 사건 내용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법관 인사 전후로 재판 적체가 심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행정처는 인사 주기를 늘려 이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해결 의지
잦은 이동, 재판 지연 원인으로

‘조희대 코트’의 첫 시험대는 법관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음 달 2일에 있을 정기 법관 인사가 조희대 코트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6일 단행된 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판사 등 고위 법관급 인사에 이어 전국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정기인사가 진행되면서 본격적인 인사 시즌에 접어들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법관 인사가 가져올 후폭풍이다. 4·10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서 법관 인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을 비롯한 각종 사건은 이 대표의 가장 무거운 꼬리표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미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법관 인사에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심리 중이던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1심 선고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 방송사 인터뷰와 국정감사 등에서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1심 판결은 총선과 맞물려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태였다. 판결에 따라 정치권에 미칠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강 판사가 다음 달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제출하면서 총선 전 1심 선고는 물 건너 간 상태다. 

강 판사의 사의 표명은 정치적 논란으로 번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 판사의 행보를 두고 “이재명 방탄의 1등 공신”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선거법 사건은 6개월 이내에 끝내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강 판사는)이 대표 재판을 16개월 동안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강 판사는 이례적으로 공개 해명을 내놨다. 강 판사는 지난 19일 재판 시작에 앞서 “법관이 세상을 향한 마이크를 잡아서는 안 되지만 제 사직 문제가 언론에 보도돼 설명을 해야겠다”고 말을 꺼냈다. 

인사 전
줄사표

그는 “저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경제범죄 사건을 전담하는데 증인이 30명 안팎인 경제 사건이 8건 이상 계속 진행 중”이라면서 “사건 배당이 중지되지 않은 상황서 불구속 사건인 이 대표 사건을 매주 진행할 여력이 없었고, 물리적으로 총선 전 판결은 선고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총선 전 1심 선고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남은 증인이 16명에 달하는 데다가 검찰 구형과 판결문 작성 등이 남아 있고 (제가)사직하지 않았더라도 법관 정기인사에 따라 재판장 및 배석판사가 재판부를 옮길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열린 공판을 주1회 재판으로 진행했다면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났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이 공직선거법 위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관 인사와 맞물리면 공직선거법 재판 사례처럼 재판부 교체로 사건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사법 리스크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것이고 법원 입장서도 재판 지연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포함해 총 3개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사건 재판을 지난 22일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선거방송서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대표가 자신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김모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달라’고 수차례 연락해 위증을 부탁했다며 위증교사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1심 선고
언제 나나

여기에 이 대표와 민주당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뇌물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서 진행 중이다. 이 대표 측은 해당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위증교사 사건은 사실관계와 적용 법리가 간단해 심리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또 지난해 9월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당시 법원이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재판 모두 법관 인사로 인해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나오면서 진행 일정이 늘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는 한 법원서 2년간 근무한 판사도 대상인데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의 주심 판사가 이름을 올린 상태다. 

주심 판사는 재판서 사건 심리나 판결문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주심 판사가 교체되면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은 이미 공전을 거듭하면서 당초 계획과 달리 상당히 늘어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9월에는 이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재판이 3주간 연기되기도 했다.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이 연루된 ‘대장동 본류’ 사건 재판도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크다. 재판장을 포함해 주심 판사 모두 정기인사 대상이다. 이 대표가 직접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1심 선고에만 4년이 걸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 농단 사건처럼 초장기 재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장동 재판 재판부 교체 가능성
흉기 피습 사건으로 더 늦어지나

이 대표의 상황도 재판 지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부산서 흉기 피습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퇴원했다.

이 대표 측은 흉기 피습 사건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출석이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이 대표 일정에 맞춰 재판을 진행하면 끝이 없다”며 “피고인이 없어도 증인신문을 할 수 있는 규정을 활용해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칙적으로 형사재판에는 피고인이 참석해야 한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에 출석했다가 재판부 허가를 얻어 일찍 퇴정했다. 오전에는 자리를 지키다가 오후 재판에 퇴정을 요청한 것. 재판부가 이 대표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퇴정을 허가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출석해 진행하는 게 원칙”이라며 “피고인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어 의견을 제시할 순 없지만 향후에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말을 믿고 퇴정을 허가하는 것”이라며 “(앞으로)출석은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고 이 대표에 당부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존재감을 키우는 모양새다. 당 안팎에서는 사법 리스크, 재판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비명계 의원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갈등이 심화되면 당이 완전히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흉기 피습 사건의 전원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으로 의료계가 반발하고 부정적 여론이 번지는 등 타격이 상당한 상태다.

4월 총선
영향 가나

이 대표는 2020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 위기에 빠졌다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으로 기사회생한 바 있다.

당시 판결로 권순일 전 대법관과 김만배씨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국회의 체포동의안 통과로 나락에 떨어졌던 때에도 유창훈 판사의 기각으로 부활했다. 이번 법관 인사가 이 대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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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