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인사에 달린 이재명 운명

판사 덕분에 기사회생…이번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야당 대표가 연루된 재판을 맡고 있던 판사가 사표를 던졌다. 재판 일정이 흐트러지면서 정국도 요동쳤다. 특히 4월 총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서 판사가 법원을 떠나자 그 배경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일요시사>가 법관 인사 시즌과 맞물린 정치권의 사법 리스크를 분석했다.

지난해 9월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이른바 ‘김명수 코트’서 불거진 재판 지연 문제는 법원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더딘 재판 진행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법원 의지
먹힐까?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을 통해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서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 확충과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대표 사법개혁’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지난 15일 취임과 동시에 재판 지연 해결을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천 처장은 취임식서 “당면한 사법 과제는 재판 지연의 해소”라며 “신속·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사법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천 처장은 그 방안으로 법관 인사를 언급했다. 그는 “한 법원에서는 가급적 한 재판부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인사 및 사무분담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며 “고등법원 중심으로 기수 제한 등 다수 지방법원 법관의 진입장벽을 없애는 한편 불필요한 전보 등 인사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천 처장은 대법원은 재판장 2년, 배석 판사 1년으로 교체 주기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예규 개정을 통해 각각 3년과 2년으로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재판 지연 해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무 분담이 자주 바뀌면서 심리 주체와 판결 주체가 분리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재판 지연 등의 부작용이 나오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실제 재판 도중 재판부가 바뀌면 새로운 재판부가 사건 내용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법관 인사 전후로 재판 적체가 심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행정처는 인사 주기를 늘려 이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해결 의지
잦은 이동, 재판 지연 원인으로

‘조희대 코트’의 첫 시험대는 법관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음 달 2일에 있을 정기 법관 인사가 조희대 코트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6일 단행된 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판사 등 고위 법관급 인사에 이어 전국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정기인사가 진행되면서 본격적인 인사 시즌에 접어들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법관 인사가 가져올 후폭풍이다. 4·10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서 법관 인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을 비롯한 각종 사건은 이 대표의 가장 무거운 꼬리표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미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법관 인사에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심리 중이던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1심 선고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 방송사 인터뷰와 국정감사 등에서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1심 판결은 총선과 맞물려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태였다. 판결에 따라 정치권에 미칠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강 판사가 다음 달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제출하면서 총선 전 1심 선고는 물 건너 간 상태다. 

강 판사의 사의 표명은 정치적 논란으로 번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 판사의 행보를 두고 “이재명 방탄의 1등 공신”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선거법 사건은 6개월 이내에 끝내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강 판사는)이 대표 재판을 16개월 동안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강 판사는 이례적으로 공개 해명을 내놨다. 강 판사는 지난 19일 재판 시작에 앞서 “법관이 세상을 향한 마이크를 잡아서는 안 되지만 제 사직 문제가 언론에 보도돼 설명을 해야겠다”고 말을 꺼냈다. 

인사 전
줄사표

그는 “저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경제범죄 사건을 전담하는데 증인이 30명 안팎인 경제 사건이 8건 이상 계속 진행 중”이라면서 “사건 배당이 중지되지 않은 상황서 불구속 사건인 이 대표 사건을 매주 진행할 여력이 없었고, 물리적으로 총선 전 판결은 선고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총선 전 1심 선고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남은 증인이 16명에 달하는 데다가 검찰 구형과 판결문 작성 등이 남아 있고 (제가)사직하지 않았더라도 법관 정기인사에 따라 재판장 및 배석판사가 재판부를 옮길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열린 공판을 주1회 재판으로 진행했다면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났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이 공직선거법 위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관 인사와 맞물리면 공직선거법 재판 사례처럼 재판부 교체로 사건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사법 리스크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것이고 법원 입장서도 재판 지연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포함해 총 3개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사건 재판을 지난 22일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선거방송서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대표가 자신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김모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달라’고 수차례 연락해 위증을 부탁했다며 위증교사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1심 선고
언제 나나

여기에 이 대표와 민주당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뇌물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서 진행 중이다. 이 대표 측은 해당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위증교사 사건은 사실관계와 적용 법리가 간단해 심리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또 지난해 9월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당시 법원이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재판 모두 법관 인사로 인해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나오면서 진행 일정이 늘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는 한 법원서 2년간 근무한 판사도 대상인데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의 주심 판사가 이름을 올린 상태다. 

주심 판사는 재판서 사건 심리나 판결문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주심 판사가 교체되면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은 이미 공전을 거듭하면서 당초 계획과 달리 상당히 늘어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9월에는 이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재판이 3주간 연기되기도 했다.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이 연루된 ‘대장동 본류’ 사건 재판도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크다. 재판장을 포함해 주심 판사 모두 정기인사 대상이다. 이 대표가 직접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1심 선고에만 4년이 걸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 농단 사건처럼 초장기 재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장동 재판 재판부 교체 가능성
흉기 피습 사건으로 더 늦어지나

이 대표의 상황도 재판 지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부산서 흉기 피습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퇴원했다.

이 대표 측은 흉기 피습 사건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출석이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이 대표 일정에 맞춰 재판을 진행하면 끝이 없다”며 “피고인이 없어도 증인신문을 할 수 있는 규정을 활용해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칙적으로 형사재판에는 피고인이 참석해야 한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에 출석했다가 재판부 허가를 얻어 일찍 퇴정했다. 오전에는 자리를 지키다가 오후 재판에 퇴정을 요청한 것. 재판부가 이 대표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퇴정을 허가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출석해 진행하는 게 원칙”이라며 “피고인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어 의견을 제시할 순 없지만 향후에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말을 믿고 퇴정을 허가하는 것”이라며 “(앞으로)출석은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고 이 대표에 당부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존재감을 키우는 모양새다. 당 안팎에서는 사법 리스크, 재판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비명계 의원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갈등이 심화되면 당이 완전히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흉기 피습 사건의 전원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으로 의료계가 반발하고 부정적 여론이 번지는 등 타격이 상당한 상태다.

4월 총선
영향 가나

이 대표는 2020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 위기에 빠졌다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으로 기사회생한 바 있다.

당시 판결로 권순일 전 대법관과 김만배씨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국회의 체포동의안 통과로 나락에 떨어졌던 때에도 유창훈 판사의 기각으로 부활했다. 이번 법관 인사가 이 대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3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