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키우는 헌법재판소 늑장 내막

뻔히 보이는 장고 끝 악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전 국민이 묻고 있지만 답을 듣지 못한 채 한 달이 흘렀다. 이미 예측은 무의미한 수준에 이르렀다. 일정도, 결과도 모두 안갯속이다. 초반 기세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에 이제는 음모론까지 퍼질 기세다. 엉켜버린 타임라인에 사건을 뒤흔든 ‘트리거’가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탄핵 심판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반면 세 번째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은 최종변론 이후 한 달 넘게 공전 중이다.

최장 심리
어디서 삐끗?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헌재의 시간’이 시작됐다. 24일 기준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이 100일째에 접어들었다. 역대 최장 심리 기간이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4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탄핵 심판 절차가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이 예상 외로 장기화하자 정치권은 물론 국민도 답답함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마지막 변론이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3월 초중순 선고를 점치는 의견이 많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례, 헌재가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언급한 점 등이 이 같은 의견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최종변론 이후 96일(20일 기준)이 지나도록 헌재는 침묵하고 있다. 판결 방향은커녕 선고기일조차 나오지 않았다. 수시로 평의를 진행한다는 말만 나올 뿐이다. 정치권 등은 통상 선고 2~3일 전에 기일을 공지한다는 선례에 비춰 일정을 예측하는 상황이다. 유력한 날짜로 점쳐졌던 지난 14일은 이미 넘겼고 21일도 지났다.


법조계에서는 4월 선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다음 달 18일을 마지노선으로 두고 그사이에 선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에 탄핵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은 6월경에 치러진다. 애초 예상됐던 5월에서 한 달가량 늦어지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헌재의 타임라인이 꼬인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서 변수가 하나둘 튀어나오면서 예상 일정이 흐트러졌다는 설명이다. 국민 여론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있다. 탄핵 심판 선고일에 최악의 경우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변론 끝났는데 선고 무소식
노 64일, 박 91일 이미 넘겨

전문가들은 모든 국민을 이해시킬 수는 없어도 헌재가 내놓은 판결에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헌재는 탄핵 심판 심리 과정서 나온 변수를 가능한 한 정리하고 쟁점별로 윤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탄핵 정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부터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 남발, 국가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계엄군이 투입됐고 포고령이 나왔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로 상황은 6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후폭풍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야권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는 두 번의 표결 끝에 가결됐다. 헌재는 탄핵소추 의결서 접수 이후 사건번호 ‘2024헌나8’를 부여했다. 이후 사흘 뒤인 12월16일 첫 재판관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정형식 재판관이 주심으로 지명됐다. 주심재판관은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헌재 재판관은 6명이었다. 국회 지명 몫의 조한창·정계선·마은혁 후보자가 임명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탄핵소추됐다. 뒤이어 ‘권한대행의 대행’으로 나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지금의 진용을 갖추게 됐다.


1월14일 탄핵 심판 1차 변론이 시작됐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체포됐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 사건과 수사기관의 내란죄 수사가 본격적으로 맞물리기 시작한 시점이다.

수사·재판
얽히고설켜

이후 16일 탄핵 심판 2차 변론이 열렸다. 윤 대통령은 1~2차 변론에는 불참했다. 사흘 뒤인 19일 서울서부지법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데 이어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면서 초유의 법원 공격 사태도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 변론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3차 변론 때부터 최종 변론일까지 모습을 보였다. 국회의 탄핵소추 배경인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11차까지 이어진 변론은 쟁점에 대한 윤 대통령 측과 국회 측의 공방으로 채워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쟁점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포고령 1호의 위헌성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선거관리위원회 군대 투입 ▲정치인·법조인 체포조 운용 지시 등 총 5가지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했다.

윤 대통령은 최종 변론기일에 67분간 비상계엄 선포 배경과 직무 복귀 시 정국 구상에 대해 밝혔다. 지난 1월13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42일 동안 총 11차례 변론을 끝으로 헌재는 평의에 들어갔다. 55일간 17차례 변론을 진행한 박 전 대통령 때보다 기간과 횟수가 짧았다.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실제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상당한 속도를 냈다. 당시 헌재에 계류된 탄핵 심판 사건은 윤 대통령 사건을 비롯해 총 9건이었다. 헌재는 다른 사건보다 윤 대통령 사건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재판장에 시계를 가져다 놓고 증인 1명당 90분으로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등 일각에서는 ‘무리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판을 서둘렀다.

하지만 최종변론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지난 14일 선고가 무산된 이후 20~21일 선고가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헌재는 지난 20일 “이번주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공지는 없다”고 밝혔다.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사건을 오는 24일 오전 10시에 선고한다고 발표했다. 한 총리 탄핵 심판의 변론은 지난달 19일에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선고기일이 늘어지는 상황을 두고 각종 추측이 분분한 상황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가 오는 26일로 잡혀 있는 상황이라 정치적인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헌재가 이 대표의 항소심 결과를 보고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잡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판결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향후 10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이 대표의 발목이 묶이는 셈이다.


법원 구속 취소 이후 신중론?
각종 추측·음모론 난무하는데…

일각에서는 헌재의 기류 변화의 원인으로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들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가 법원서 인용되면서 빠르게 진행되던 재판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했다. 검찰이 즉시항고 등의 방식으로 법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석방됐다. 구속 41일 만이다.

법원이 구속 취소의 사유로 언급한 것은 구속 기간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여부다. 서울중앙지법은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통상 구속 기간을 날로 계산해 왔는데 이를 현행법에 명시된 대로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고 공수처서 검찰로 사건을 넘기면서 신병 인치를 거치지 않았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언급하며 “이와 관련해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기 때문에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므로 구속 취소 결정을 하는 게 상당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피의자)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사법 절차의 대원칙을 인용했다.


재판부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배경으로 내란죄 수사권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찰, 검찰, 공수처는 경쟁적으로 내란죄 수사에 뛰어들었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권은 경찰에게만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내란죄는 검찰의 수사 개시 대상서 제외됐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진행하면서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실제 법원서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서 “이런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법원 제동
어떤 영향?

사실 현행법상으로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헌재의 선고는 180일 이내 이뤄지면 된다. 윤 대통령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6월11일 전에만 선고하면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의무 조항이 아니라 훈시 규정인 만큼 시한을 넘긴다고 해도 제재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 검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등은 각각 252일, 272일 만에 ‘기각’으로 결과가 나왔다.

이 대표의 항소심 선고 날짜가 잡혔고 한 총리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도 정해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한 변수가 하나씩 해소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기일은 헌재 앞에 놓인 마지막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의 장고 끝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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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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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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