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환수 ‘독립몰수제’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8.21 09:02:54
  • 호수 1545호
  • 댓글 0개

돈에 눈 멀어···제 발등 찍은 노소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실체 규명에 관한 목소리가 국회·학계·정부에서 커지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 회장 간의 이혼소송에서 ‘신군부의 자금이 SK그룹의 밑바탕이 됐다’고 인정되면서다.

노태우 비자금은 지난해 노소영 관장이 재산 분할 소송에서 904억원의 비자금 흔적이 담긴 ‘김옥숙 메모’를 증거로 제시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 관장 측은 “부친의 300억원이 SK에 흘러가 그것이 SK를 키웠다”고 주장하며 그 300억원의 가치가 현재 기준 1조3808억원에 이른다는 항소심 재판부 판결을 이끌었다.

법안 발의
급물살

이혼소송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1조원 재산 분할 판결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를 위한 ‘독립몰수제’ 도입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학회는 내란 등 국가 폭력 범죄로 대물림된 불법 자금을 취한 범죄자를 사망 등 이유로 기소하지 못해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이르면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갑)은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 폭력범죄로 인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최근 박 의원은 ‘범죄수익은닉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내란과 같은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당사자 사망, 공소시효 만료 등에도 범죄수익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범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발제자로 나선 박재평 교수(충남대 로스쿨)는 “공권력의 조직적 개입 등으로 실체가 드러나기 어려운 국가범죄처럼 기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 역시 몰수나 추징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실질적인 몰수 요건이 충족됐더라도 유죄 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면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 국제형사과 전성환 검사는 토론 세션에서 “범죄수익의 해외 유출이 많은데 확정 판결까지 기다리면 실효적으로 환수가 어렵다”고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법무부도 올해 업무보고에 독립몰수제를 반영해 적극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범죄 저지른 자와 상속인 추징
여권발 법안 정기국회서 논의 본격화

전 검사는 “독립몰수제는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태국·페루 등 국가가 보편적으로 도입한 필수 제도”라며 “국가 폭력범죄뿐만 아니라 마약, 금융 사기 등 민생 침해 범죄로까지 독립몰수제 도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몰수제 도입 논의는 4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사회적 분노에서 촉발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주도한 신군부는 1979년 12·12 쿠데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거쳐 정권을 차지한 후 10년 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1조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

두 대통령은 ‘정치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인들로부터 막대한 불법 정치자금을 챙겼고 전두환은 2205억원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867억원을 미납했다.

정부는 올해 초 ‘전두환 자택’ 소유권 이전 소송에서 당사자 사망을 이유로 패소하는 등 추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추징금 2628억원을 완납한 것으로 알려진 노태우 비자금은 지난해 딸 노 관장의 재산 분할 소송에서 불거졌다.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강성필 부대변인은 “노태우 비자금을 재산 분할 근거로 삼아 노소영에게 1.3조원을 주는 것은 국가가 불법 비자금을 제도권으로 인정해준 것”이라며 “재산 분할이 아닌 국고로 환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은돈
승계 의혹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도 김옥숙 여사가 210억원의 차명 보험금을 납부하거나, 아들 노재헌이 운영하는 재단에 147억원을 기부하는 등 다수의 비자금 운영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시민단체 등의 고발도 이어져 검찰이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독립몰수제가 도입되면 수사기관의 신군부 비자금 환수 움직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박준태 의원(국민의힘)과 장경태 의원(민주당)은 비자금 환수 관련 법리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법안을 발의해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박성훈·송석준 의원(국힘), 김영환·김승원 의원(민주당) 등 노태우 비자금 관련 질의가 쏟아졌다.

지난 국감에서 김옥숙의 차명 보험 210억원을 최초로 폭로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간담회 축사를 통해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며 “부정한 자산을 환수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며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라고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비자금 환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도 축사에서 “노태우 일가의 900억원대 추가 비자금 정황이 드러났지만 추징금 완납을 이유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지적한 뒤 관련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를 주최한 박균택 의원은 “12·3 불법 비상계엄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 부정 축재 재산을 끝까지 환수해야 한다”며 “관련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해외는 당연
우리만 이제

독립몰수제 법안 추진은 이재명정부에서도 적극적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광주 5·18 기념식에서 “국가 폭력 또는 군사 쿠데타 시도는 철저하게 처벌하고 소멸 시효를 없애서 상속자들에게도 민사상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독립몰수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인사청문회 당시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박 의원의 질의에 “양형체계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사망이나 피의자 특정 불가 등으로 범죄수익이 일실되지 않도록 (독립몰수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자금 환수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역사적 과제다. 강성필 부대변인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의 취지에 찬성하는 비율은 85%에 달하며, 이 가운데 소급 적용을 통해 원금과 수익까지 모두 적극 환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허연식 5·18기념재단 위원은 “과거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유의미한 제보들이 있었지만 입법적 한계로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다”면서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지금이라도 실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국회의 실질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진우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은 “몰수한 금액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더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5공화국뿐 아니라 6공화국, 노태우정권에서 진행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의 규모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의견이다.

사망·은닉으로 못 찾는 현행법
‘끝까지 받아내는’ 법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독립몰수제가 단순히 재산만 몰수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게 아닌 실제 비자금이 어떻게 조성됐고, 나눠졌고 어떻게 쓰여졌는지, 또 어떻게 은닉됐는지까지 철저한 조사가 동시에 같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독립몰수제는 신군부의 비자금 환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닌 해킹, 보이스피싱, 대규모 금융 사기 등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는 많은 민생 침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이기도 하다.

전성환 법무부 국제형사과 검사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는 많은 민생 침해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범죄자들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하거나 이들이 해외에 체류하는 등 소재 불명이라는 이유로 기소 중지가 되어 사건이 중단되거나 수사 또는 재판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존재한다”며 “이 경우 범죄수익이나 피해자들의 피해금이 발견되더라도 법원의 몰수 증인 판결을 받을 수가 없어서 국가가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어렵고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은 더욱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부분의 범죄수익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 같은 해외 유출 범죄수익을 실효적으로 환수하기 위해서는 범죄인에 대한 국내 확정 판결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독립몰수제도를 통해 신속히 법원의 몰수 판결문을 받아 대상국에 공조 요청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2025년 1월 업무계획에 독립몰수제 도입 추진을 포함시켰다. 독립몰수제 도입은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자 법무부 장관의 주요 추진 사항 중 하나로, 이에 법무부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
공약으로

독립몰수제도는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도입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선진 제도라기보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가 유지하고 있는 보편 필수적인 제도다. 국회와 정부, 학계 등이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에 적극 공감함에 따라 관련 법안이 연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생들도 아는 노태우 비자금

지난 6월 경기대학교의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초청 행사가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노 관장은 지난 6월16일 오후 경기대 예술대학을 찾을 예정이었으나 그가 예정 시간 직전에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노 관장의 건강상 이유였지만, 대학 캠퍼스에 대자보가 붙고 반대 시위가 예정돼 있는 등 학생들의 반발이 잦아들지 않은 게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노소영 관장님의 경기대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적힌 플래카드가 교내에 걸리자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다.

학생들은 “노소영은 독재자 노태우의 딸로, 이혼소송 과정에서조차 ‘선경 300억’이라는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제출해 비자금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이 비자금은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은닉재산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며 “그런 인물이 학문과 진실의 공간인 대학에 발을 들이려는 것도 모자라, 이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경기대 재학생 일동’이라는 허위 명의까지 동원되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내에 걸린 ‘노소영 초청 규탄’ 대자보엔 “계엄의 악몽” “군사독재의 수혜자이자, 불법 비자금 은닉 의혹의 중심” 등 비판 글이 적혔다.

노 관장 방문 예정일 당일엔 학생들의 시위도 계획됐다.

결국 노 관장의 경기대 방문은 취소됐지만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파괴한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불법 비자금을 감춰두고 대를 이어 부를 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대학가로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민>

 



배너

관련기사

3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