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환수 ‘독립몰수제’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8.21 09:02:54
  • 호수 1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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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눈 멀어···제 발등 찍은 노소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실체 규명에 관한 목소리가 국회·학계·정부에서 커지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 회장 간의 이혼소송에서 ‘신군부의 자금이 SK그룹의 밑바탕이 됐다’고 인정되면서다.

노태우 비자금은 지난해 노소영 관장이 재산 분할 소송에서 904억원의 비자금 흔적이 담긴 ‘김옥숙 메모’를 증거로 제시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 관장 측은 “부친의 300억원이 SK에 흘러가 그것이 SK를 키웠다”고 주장하며 그 300억원의 가치가 현재 기준 1조3808억원에 이른다는 항소심 재판부 판결을 이끌었다.

법안 발의
급물살

이혼소송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1조원 재산 분할 판결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를 위한 ‘독립몰수제’ 도입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학회는 내란 등 국가 폭력 범죄로 대물림된 불법 자금을 취한 범죄자를 사망 등 이유로 기소하지 못해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이르면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갑)은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 폭력범죄로 인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최근 박 의원은 ‘범죄수익은닉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내란과 같은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당사자 사망, 공소시효 만료 등에도 범죄수익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범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발제자로 나선 박재평 교수(충남대 로스쿨)는 “공권력의 조직적 개입 등으로 실체가 드러나기 어려운 국가범죄처럼 기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 역시 몰수나 추징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실질적인 몰수 요건이 충족됐더라도 유죄 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면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 국제형사과 전성환 검사는 토론 세션에서 “범죄수익의 해외 유출이 많은데 확정 판결까지 기다리면 실효적으로 환수가 어렵다”고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법무부도 올해 업무보고에 독립몰수제를 반영해 적극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범죄 저지른 자와 상속인 추징
여권발 법안 정기국회서 논의 본격화

전 검사는 “독립몰수제는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태국·페루 등 국가가 보편적으로 도입한 필수 제도”라며 “국가 폭력범죄뿐만 아니라 마약, 금융 사기 등 민생 침해 범죄로까지 독립몰수제 도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몰수제 도입 논의는 4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사회적 분노에서 촉발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주도한 신군부는 1979년 12·12 쿠데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거쳐 정권을 차지한 후 10년 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1조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

두 대통령은 ‘정치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인들로부터 막대한 불법 정치자금을 챙겼고 전두환은 2205억원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867억원을 미납했다.

정부는 올해 초 ‘전두환 자택’ 소유권 이전 소송에서 당사자 사망을 이유로 패소하는 등 추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추징금 2628억원을 완납한 것으로 알려진 노태우 비자금은 지난해 딸 노 관장의 재산 분할 소송에서 불거졌다.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강성필 부대변인은 “노태우 비자금을 재산 분할 근거로 삼아 노소영에게 1.3조원을 주는 것은 국가가 불법 비자금을 제도권으로 인정해준 것”이라며 “재산 분할이 아닌 국고로 환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은돈
승계 의혹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도 김옥숙 여사가 210억원의 차명 보험금을 납부하거나, 아들 노재헌이 운영하는 재단에 147억원을 기부하는 등 다수의 비자금 운영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시민단체 등의 고발도 이어져 검찰이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독립몰수제가 도입되면 수사기관의 신군부 비자금 환수 움직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박준태 의원(국민의힘)과 장경태 의원(민주당)은 비자금 환수 관련 법리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법안을 발의해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박성훈·송석준 의원(국힘), 김영환·김승원 의원(민주당) 등 노태우 비자금 관련 질의가 쏟아졌다.

지난 국감에서 김옥숙의 차명 보험 210억원을 최초로 폭로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간담회 축사를 통해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며 “부정한 자산을 환수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며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라고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비자금 환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도 축사에서 “노태우 일가의 900억원대 추가 비자금 정황이 드러났지만 추징금 완납을 이유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지적한 뒤 관련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를 주최한 박균택 의원은 “12·3 불법 비상계엄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 부정 축재 재산을 끝까지 환수해야 한다”며 “관련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해외는 당연
우리만 이제

독립몰수제 법안 추진은 이재명정부에서도 적극적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광주 5·18 기념식에서 “국가 폭력 또는 군사 쿠데타 시도는 철저하게 처벌하고 소멸 시효를 없애서 상속자들에게도 민사상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독립몰수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인사청문회 당시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박 의원의 질의에 “양형체계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사망이나 피의자 특정 불가 등으로 범죄수익이 일실되지 않도록 (독립몰수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자금 환수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역사적 과제다. 강성필 부대변인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의 취지에 찬성하는 비율은 85%에 달하며, 이 가운데 소급 적용을 통해 원금과 수익까지 모두 적극 환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허연식 5·18기념재단 위원은 “과거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유의미한 제보들이 있었지만 입법적 한계로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다”면서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지금이라도 실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국회의 실질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진우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은 “몰수한 금액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더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5공화국뿐 아니라 6공화국, 노태우정권에서 진행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의 규모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의견이다.

사망·은닉으로 못 찾는 현행법
‘끝까지 받아내는’ 법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독립몰수제가 단순히 재산만 몰수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게 아닌 실제 비자금이 어떻게 조성됐고, 나눠졌고 어떻게 쓰여졌는지, 또 어떻게 은닉됐는지까지 철저한 조사가 동시에 같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독립몰수제는 신군부의 비자금 환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닌 해킹, 보이스피싱, 대규모 금융 사기 등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는 많은 민생 침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이기도 하다.

전성환 법무부 국제형사과 검사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는 많은 민생 침해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범죄자들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하거나 이들이 해외에 체류하는 등 소재 불명이라는 이유로 기소 중지가 되어 사건이 중단되거나 수사 또는 재판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존재한다”며 “이 경우 범죄수익이나 피해자들의 피해금이 발견되더라도 법원의 몰수 증인 판결을 받을 수가 없어서 국가가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어렵고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은 더욱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부분의 범죄수익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 같은 해외 유출 범죄수익을 실효적으로 환수하기 위해서는 범죄인에 대한 국내 확정 판결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독립몰수제도를 통해 신속히 법원의 몰수 판결문을 받아 대상국에 공조 요청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2025년 1월 업무계획에 독립몰수제 도입 추진을 포함시켰다. 독립몰수제 도입은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자 법무부 장관의 주요 추진 사항 중 하나로, 이에 법무부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
공약으로

독립몰수제도는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도입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선진 제도라기보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가 유지하고 있는 보편 필수적인 제도다. 국회와 정부, 학계 등이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에 적극 공감함에 따라 관련 법안이 연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생들도 아는 노태우 비자금

지난 6월 경기대학교의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초청 행사가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노 관장은 지난 6월16일 오후 경기대 예술대학을 찾을 예정이었으나 그가 예정 시간 직전에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노 관장의 건강상 이유였지만, 대학 캠퍼스에 대자보가 붙고 반대 시위가 예정돼 있는 등 학생들의 반발이 잦아들지 않은 게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노소영 관장님의 경기대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적힌 플래카드가 교내에 걸리자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다.

학생들은 “노소영은 독재자 노태우의 딸로, 이혼소송 과정에서조차 ‘선경 300억’이라는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제출해 비자금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이 비자금은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은닉재산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며 “그런 인물이 학문과 진실의 공간인 대학에 발을 들이려는 것도 모자라, 이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경기대 재학생 일동’이라는 허위 명의까지 동원되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내에 걸린 ‘노소영 초청 규탄’ 대자보엔 “계엄의 악몽” “군사독재의 수혜자이자, 불법 비자금 은닉 의혹의 중심” 등 비판 글이 적혔다.

노 관장 방문 예정일 당일엔 학생들의 시위도 계획됐다.

결국 노 관장의 경기대 방문은 취소됐지만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파괴한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불법 비자금을 감춰두고 대를 이어 부를 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대학가로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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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