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국세청 조사 플랜···끝까지 판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7.31 14:36:59
  • 호수 1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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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일가 향하는 재계 저승사자

[일요시사 취재2팀] 김성민 기자 =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장으로 취임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문제가 재조명됐다. 앞서 임 청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문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하기 위해 모친 김옥숙 여사가 가지고 있던 ‘선경 300억’ 메모를 증거로 제출했다. 비자금 존재를 스스로 알리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선경 300억’
메모 의혹

최근 진행된 인사청문회를 통해 연일 ‘노태우 비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자산이 증여·대여·상속의 형태로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끝까지 추적해 조세 정의를 살려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도 조세 정의 실현에 공감을 표했다. 서울청장과 국세청 차장 등을 지낸 임 청장은 지난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혐의가 나왔는데,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강력한 조사를 주문한 바 있다.

노태우 비자금 논란이 재차 불거진 것은 9개월여 만이다. 지난해 5월 말 노 관장이 이혼소송에서 ‘선경 300억’ 메모를 제시하며 ‘이 돈이 기업 성장의 종잣돈이 됐기 때문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지급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돈이 비자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탄핵 국면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여론의 관심권에서 벗어났다. 그간 시민단체는 노 관장의 불법 비자금 은닉 의혹 관련 고발을 이어나가는 등 실체 규명 목소리를 키웠다.

노태우 비자금 논란이 재조명되면서 노 관장 등 노씨 일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임 청장의 발언을 고려했을 때 당국의 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 일가와 관련해 접수된 고발 건은 7건 이상이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소환 조사 없이 자금 흐름만 파악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 청장은 지난해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드러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상속세 세무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임 청장은 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인 지난해 7월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세청 업무보고에서 “빨리 조사해서 이것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효한 채권인지 차명 재산인지, 증여인지 밝혀야 한다”며 “법원 재판 기록에서 탈루 혐의가 나왔기 때문에 세무조사 착수 근거가 된다”고 강민수 전 국세청장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진땀 빼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소송서 무리수 둔 부친의 검은돈

노 관장 이혼소송 항소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1991년 고 최종현 SK 회장에게 300억원가량의 금전적 지원을 한 다음 증빙으로 약속어음 네 장을 받았다고 봤다. 또 항소심 법원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고 김석원 쌍용 회장에게 200억원을 맡기고 받은 돈이 차용증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이 최 회장에게 공짜로 준 돈(증여)이라면, 돈을 준 시점이 1991년이기에 세무조사를 할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국세청이 ‘인지한 날로부터 1년’간 과세가 가능하다고 법규가 규정하고 있지만, 이렇게 제도를 정비한 시점이 1991년이기에 ‘인지한 날로부터 1년’ 요건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최 회장에게 빌려준 돈(채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채권·채무는 소멸하기 전까지 계속 살아있고, 채권자가 죽어도 자녀가 채권 상속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녀에게로 채권이 승계된다.

노 전 대통령이 2021년 사망한 후 그 금전적 권리는 노 관장 측으로 넘어가게 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국세청은 그 채권이 상속 재산인지 세무조사로 확인해야 한다.

지난해 임 청장은 “증여라면 최종현 회장이 그 당시 30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대해 증여세를 탈루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명망 있는 기업가가 탈세자라는 것에 대해서 그 후손과 회사가 인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전제를 달았다.

이어 “재판 기록에서 보듯이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당시 선경(SK의 옛 이름)에 300억원을 주고 받은 증빙들인 약속어음 네 장과 ‘선경 300억원’이라고 쓴 메모를 이렇게 오랜 시간 왜 보관했겠나. 이것은 우리 재산이다. 나중에 딴소리할 수 있으니 증거로 가지고 있자. 그런 의도로 보는 게 타당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또 “빨리 세무조사 착수해서 계좌 추적하고, 자료 제출 요구하고, 당시 관계자들에게 문답서를 받아야 한다. 혐의가 나왔는데도 방치했다가 조세채권을 일실하게 되면 책임 문제가 있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사를 촉구했다.

임 청장은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낸 고위 공무원 출신 정치인으로 국세청 재직 당시 세무조사 관련 최고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신임 청장
강력 의지

업무보고에서 강 전 청장은 “차용증 내지 약속어음에 대해선 저희가 재판을 보도된 내용만 봤기 때문에 그 부분이 명확히만 된다면 세무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다만, 특정 건에 대해서 하겠다 (단정적으로) 말씀 못 드리고, 아시다시피 국세청에서 과세해야 할 내용이라면 당연히 과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이에 임 청장은 국세청에서 법원에 최태원-노소영 재판 기록이나 제출된 증거 등 자료 협조를 요청했는지 물었다. 상당한 수준의 탈루 혐의가 포착된 경우 국세청은 각 기관에 과세 명목으로 자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거꾸로 탈루 혐의가 포착됐음에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으면 책임·업무 방기에 해당한다.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에서 말이 나온 만큼 국세청이 간과하는 건 매우 어렵겠으나, 임 청장은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법원 재판 과정에서 인정된 사실만으로는 과세하기 어렵고, 과세를 완성하려면 세무조사를 통해 추가 증빙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옛날 일인 만큼 재판 자료를 빨리 확보해 관련자가 누군지, 어떤 계좌로 돈이 들어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가 신임 국세청장으로 복귀한 만큼 ‘노태우 비자금’ 조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강 전 청장은 “말씀하신 대로 법령 검토, 시효 검토 등 여러 부분을 저희가 해보고 과세해야 할 건이면 당연히 (세무조사)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임 청장은 “저는 전직 대통령의 정직하지 못한 자금, 국가에 추징됐어야 할 자금, 그러나 추징되지 못한 자금, 이 자금에 대해서 국세청에서 조세 정의 차원에서 국민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차원에서 세금으로라도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실력 발휘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당시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국세청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참 중요한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은 굉장히 걱정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어깃장을 놨다. 송 기재위원장은 국민의힘 의원이자, 기획재정부 2차관의 예산관료 출신이다.

“국고 환수
반드시 필요”

임 청장 외에도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비자금 환수 필요성이 지속해서 강조됐다.

정 후보자는 비자금 환수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노태우 비자금’을 끝까지 처벌하고 국고로 환수하는 것이 5·18 정신”이라며 “비자금이 회수될 수 있도록 법무 행정에 신경 써달라”고 요청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 등 ‘오월단체’도 지지부진했던 세무 당국의 조사 및 환수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단체들은 지난 16일 ‘정성호·임광현 후보자 발언 환영 입장문’을 내고 “이혼소송에서 확인된 비자금, 김 여사의 대규모 보험료 납부·기부 활동 등 새로운 단서가 나오고 있다.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며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 국가 권력을 불법적으로 찬탈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거액의 부정 축재 재산을 형성했다. 이들 재산은 국민의 고통과 희생 위에 쌓인 불의의 산물이다. 은닉 및 세대 승계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법무부와 국세청의 신군부 세력 및 일가의 재산 흐름 전면 재조사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국세청의 은닉 재산 증여·상속·대여 여부 확인과 추적 ▲독립 몰수제 등 국회의 신속한 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불법 비자금 관련 조사와 환수 등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유력하게 점쳐지는 이유는 해당 내용이 이재명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이기도 해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후보 시절 5·18 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가 폭력, 군사 쿠데타 시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처벌하고, 소멸시효를 없애 상속자들에게도 민사상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정부 사활 건 모양새
여야 막론 조사 찬성 분위기

앞서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추진환수위원회(환수위)는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 노씨 일가 수사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환수위는 “국민이 선택한 이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 은닉 비자금 등 군사정권 과거사를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국민의 염원인 군사정권 과거사 청산을 최우선으로 해결해 달라”며 “지금, 과거 청산은커녕 청산돼야 할 과거는 더욱 비대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사자들의 호의호식은 더 화려해지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이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 사건이 바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다. 국민은 이제야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고 밝혔다.

환수위는 노 관장뿐만 아니라 동생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도 비자금 불법 은닉의 주동자로 보고 있다. 지난 15일 “노 이사장이 운영 중인 동아시아문화센터가 ‘노태우 비자금’ 핵심 기지”라며 센터를 국세청에 고발했다.

환수위는 “노 전 대통령 추모를 명분으로 설립한 공익 재단을 비자금 세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평생 직업이 없었던 김 여사의 돈이 노 이사장의 센터로 들어갔다. 이 돈이 노태우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정부가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움직임을 구체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별세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를 위해선 입법은 물론 수사가 필요하다.

비자금 일부가 실제 SK그룹에 유입됐는지 확인해야 하는 데다 현행법상 범죄자가 사망하는 등의 이유로 공소 제기가 불가능한 경우는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노씨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이다.

문제는
공소시효

한편,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지난해 9월 헌정 질서 파괴 범죄자의 범죄 수익에 한해 공소 제기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도 몰수 및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도 비슷한 시기 형사 공소 제기 없이도 범죄수익임이 입증된 자산을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가 포함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독립몰수제는 올 1월 발표된 법무부 업무 추진 계획에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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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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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2월 시작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경제는 물론 외교까지 흔들고 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초조함이 우리나라에 불똥으로 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 되는 ‘실용 외교’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낮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공습의 여파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폭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응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의 20~30%가 오가는 물류 허브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응수했다. 끝날 듯 안 끝나는 원유 이동이 제한되면서 유가가 폭등했다. 주가가 출렁였고 물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란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하는 등 협박에 가까운 말로 압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주변국에도 폭탄을 투하하는 등 확전 태세를 보였다. 지난 2월28일 이후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강 대 강 대치는 지난달 초 미국과 이란이 임시 휴전에 합의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서로의 요구사항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이라 휴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길 원했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만큼 계속 주도권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반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 자유 항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힘겨루기 양상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통행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선박을 멈춰 세운 이란에 반발해 군사작전을 기획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의 탈출을 돕는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이다. 프로젝트 프리덤 착수 첫날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무력을 행사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불똥은 우리나라 선박에도 튀었다. 지난 4일 오후 8시40분경 호르무즈 해협의 아랍에미리트 움알쿠와인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옛 현대상선) 소속 선박 나무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호르무즈 해협서 선박 사고 “이란 공격” VS “관련 없다” 폭발과 화재 당시 우리나라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한 24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HMM에 따르면 나무호는 예인선을 통해 두바이항으로 옮겨졌다. 두바이 현지의 한국선급 지부 인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권, 소방청 감식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조사 결과 5월4일 미상의 비행체가 HMN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CTV 영상에 해당 비행체가 포착됐으나 발사 주체, 정확한 기종 및 물리적 크기 등을 확인하기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을 추가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나무호 폭발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동맹의 전쟁 참여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며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호 폭발과 관련해 사고 원인이 정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반면 이란 측은 나무호 사건에 선을 그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피해 사건에 이란군이 연루됐다는 모든 의혹을 강력히 거부하며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언급했다. 이란대사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발령된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지정된 항로를 따르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관계 당국과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격이냐 결함이냐 또 “군사 및 안보적 긴장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선포된 요구사항과 작전상의 실태를 무시할 경우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며 “이 같은 고려 사항을 무시한 채 해당 구역에서 통행이나 활동을 진행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선박 측으로 책임을 돌리는 듯한 뉘앙스다. 정부는 지난 6일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이 종료됐기 때문에 (참여) 검토는 꼭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그동안 ‘해양 자유 구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고 프로젝트 프리덤에 대해서도 검토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무호 사건은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요구가 또다시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글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은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직접 호위 작전에 나서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은 군함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도 못 돼 또 한 번의 ‘트럼프발 호르무즈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신중한 정부 넘겨 왔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말이 지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동맹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 각국에 관세 폭탄을 던질 때부터 시작된 균열이 아직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혈맹’이라고 불리던 한미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거친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관세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놓고 화두로 올렸다. 관세를 부과하고 분담금을 더 내라는 식으로 여러 차례 압박했다.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 돈으로 보상하라고 밀어붙였다. 최근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말을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정 장관이 지난 3월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구성을 언급했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식 확인한 영변과 강선 외의 장소다. 국민의힘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은 4월 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일부 제한했다. 정 장관은 구성이 과거 미국 싱크탱크나 국내 언론 보도 등으로 이미 언급됐던 장소라며 정보 유출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정 장관의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두둔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정쟁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은 정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하고 국가 안보의 금도를 넘어섰다”며 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안보 사안에 대해 숭미주의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맞섰다.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트럼프 노골적 참전 요구 청구서 받아든 이 선택은? 미국 측에서 우리나라 사법 체계를 흔드는 듯한 행보도 잇따라 나왔다. 김범석 쿠팡 의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관련 논란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3300만건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조사를, 방 의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미국 정계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쿠팡 ‘감싸기’를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게 골자다. 수사 대상에 오른 김 의장의 안전을 보장해야 안보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중단하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한미 간에 감정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지금까지 쿠팡의 동일인은 법인이었는데 김 의장(개인)으로 바뀌면서 법적 책임이 대폭 늘었다. 실제 쿠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시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이중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또 김 의장이 미국 국적자인데 그를 한국법상 총수로 지정한 것은 한미FTA를 위반한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방 의장을 비롯한 하이브 관계자 3명의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는 요청이 경찰청에 오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하이브 상장 과정에서 방 의장이 20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보완 수사를 이유로 반려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이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어떤 이유로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받는 인물에 대해 특정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택 기로 앞으로는?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방향은 ‘국익’ ‘실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 등 안보 독립을 외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는 오랜 시간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결국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합류일까, 관망일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