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용서받지 못할’ 12·12 쿠데타 철면피 후손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2.12 16:56:34
  • 호수 1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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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딸 노소영 봐라 다들 떵떵거리고 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발동한 비상계엄령 사태가 ‘서울의 밤’이라는 수식어로 빗대어졌다.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을 주제로 한 영화 제목인 <서울의 봄>을 인용한 것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배우 황정민의 대사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후손들과 함께 눈감기 직전까지 호사를 누리다 생을 마감했다.

‘12·12 사태’의 진압군으로 저항한 장태완 소장은 본인뿐 아닌 가족들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장 소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초를 비관하며 이듬해인 1980년 4월 별세했고, 1982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에 입학한 장 소장의 아들은 그해 실종돼 칠곡군 야산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권력의 
잔혹함

장 소장은 생전에 “12·12 군사반란을 막지 못한 국민의 죄인이자 가족 3대를 망친 가문의 죄인”이라고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싸우다 지난 2011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장 소장의 부인도 다음 해 자신의 아파트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12·12 당시 총격전으로 사망한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 증세가 심해지면서 결국 앞을 못 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백씨는 1990년 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했으나 이듬해 6월, 자신의 봉사단체 건물서 추락해 세상을 떠났다. 연고자가 없어 지난 2009년에서야 무연고자 묘역터에 유골이 뿌려졌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특전사의 대부격 인물이었던 정병주 소장은 반란 당일 총상을 입은 채 연행돼 강제 예편됐다. 이후 1988년 집을 나가 139일이 지난 1989년 3월 경기도 양주 송추유원지 부근 야산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광주 학살의 1차 책임은 계엄군이 아닌 최종 결정권자이자 명령권자인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있다. 계엄군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시민 학살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당시 지휘계통상 책임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겸직), 진종채 제2군사령관,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 그리고 예하 부대 지휘관들로 구성됐다. 지난 2018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미 국무부 비밀 전문에 따르면, 최종 진압 작전을 결심한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결정적으로 전두환은 1980년 9월 광주를 방문해 ‘지난번 광주의 시끄러운 일은 역사 흐름의 불가피한 진통이므로 (전남)도민들이 새역사 창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 나도 용기를 갖고 국민들께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5·18 사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밖에 1980년 9월17일, 전두환은 미국 언론인 로버트 노바크씨와의 인터뷰서 “만약 지난 5월에 발생한 광주의 폭동 사태가 또 다른 2개 도시로 확산됐다면, 북한의 지배자인 김일성은 10만의 병력을 침투시켰을 것”이라며 “사회적 불안 무질서 폭동 사태가 바로 그런 이유로 용납 안 되는 이유”라고 근거 없는 추측성 망언으로 큰 논란을 빚었다.

거꾸로 돌아간 민주주의···45년 전 재조명
전·노 합작 후 잘 먹고 잘 사는 후손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당시와 비슷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과 전두환 모두 ‘공포 정치’의 정당성과 원인을 종북 세력에 부여한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 유공자와 유족은 800여명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1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유족 85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국가가 430여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피해자가 연행 또는 구금되거나 수형 생활을 했을 경우 1일당 30만원을, 상해를 입었지만 장해가 남지 않았다면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상해를 입고 장해까지 남았을 경우 3000만원을 인정하고, 노동능력 상실률이 5% 증가할 때마다 1500만원이 추가된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1년 11월 유공자들과 유족이 ‘정식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제기했다. 5·18 보상법은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은 민주화운동 유공자나 유족은 정신적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정해놨지만, 2021년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수차례 소송이 제기됐다.

정부는 재판서 다른 사례에 비해 위자료가 지나치게 많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2심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정부가 재차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상고 이유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에 관한 사유’ 등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위자료 지급 기준과 구체적 액수는 1~2심의 판단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소송서 재판부에 따라 배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 본인은 물론 후손들은 피해자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남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음에도 대규모 사업을 펼치거나 언론을 통해 떳떳하다는 듯 인터뷰하기도 했다.

또 두 사람은 나란히 대통령을 이어가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특권을 누렸다. 이들은 각각 1997년, 1996년 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 추징금 약 2629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반성은 부족했다.

왜곡된
민주화

특별사면 이후 전두환은 지난 2003년 인터뷰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발언하는 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는 지난 2019년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씨는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라는 게 뭐예요. 국민들이 원치 않으면 (대통령을)바꿀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단임제를 시행하지 않았나. 이 때문에 지금 대통령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가 광주 시민의 애환을 일부 달래기도 했다. 전씨는 지난해 3월 광주를 방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씨는 “‘5·18은 폭동이었고, 우리 가족이 피해자’라고 교육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러다가 이 비극을 겪으신 분들의 진실된 이야기·증언을 듣고 깨달았다”며 “제 가족의 죄가 너무나 컸고, 가족들이 그 사실을 저에게 숨겼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사죄를 하고, 제대로 된 회개를 하고 싶다”고 사죄를 구했다.

그는 앞서 마약 복용 때문에 발언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는 질문엔 “이해한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마약을 하지 않은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을 말했고, 용기가 부족해 마약의 힘을 빌려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씨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자신의 마약 투약 혐의를 내사 중인 데 대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사죄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혜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귀국하자마자 광주에 가겠다는 자신의 계획이 경찰 조사로 무산될 가능성에 대해선 “정말 광주에 가고 싶지만 못하게 된다면 그것도 제 운명이기 때문에 따르겠다”고 언급했다.

전씨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의 집안에 대한 폭로성 주장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3월17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각종 마약을 언급하며 투약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군사정권이 
민주 투사?

전두환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는 1995년 경북고 동창회서 “(중국)문화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광주 사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망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김문수(대구 수성갑)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지원 유세 등을 통해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라고 발언한 바 있다.

노 관장은 제5공화국 집권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표한 ‘6·29 민주화선언’을 두고 부친의 결단과 시혜의 결과인 것처럼 표현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노 관장이 깜짝 유세에 나선 때가 하필 남동생 노재헌의 조세 회피 의혹이 제기된 시점이라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소송 중이다.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서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300억’이 SK의 종잣돈이 됐다고 주장해 판결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판결은 ‘12·12를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판결대로라면 사실상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노태우가 불법으로 취득한 돈을 상속·증여세 한 푼 없이 노 관장에게 46배 증식해 ‘비자금 대물림’한 셈이다.

추징금을 내느라 돈이 없다던 노태우 일가는 노재헌의 재단에 152억원을 기부하거나 210억원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탄로나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었다는 의혹도 받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두고 지난 10월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정치인의 불법 자금이 30년 후 1조원으로 불어났다고 해서 그 돈이 국가에 환수되지 않고 후손에 귀속되는 게 정의에 맞는가?”라며 “마치 이완용 후손 재산 환수 소송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무고한 희생으로 세운 ‘아버지의 민주화’
“성공한 쿠데타였나?” 6공 비자금 요구

노 관장은 현재 연간 임대료가 연 8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조성된 노태우 묘지는 1810㎡(약 550평)으로, 전직 대통령 5명의 묘역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피라미드 형태의 묘역을 조성하기 위해 수십억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쿠데타 전범의 왕릉을 지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편, 12·12 당시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 전 의원은 제5공화국 때부터 이어진 ‘미래한국재단’을 사유화하면서 수천억원의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지난 1981년 국무총리 소속 기관이던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정부 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지난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허화평 이사장을 연구소장에 임명하고, 93억원의 일해재단(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전두환의 호를 따서 만든 조직으로 현 세종연구소) 자금과 3억원의 정부 자금을 연구소에 지원했다. 허 전 의원은 지난 2005년 연구소를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개명하면서 사유화 의혹이 제기됐다.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호용 전 의원은 12·12 이후 하나회의 입김으로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됐다. 1984년 육군참모총장 시절, 경기도 양주의 30만㎡에 달하는 군사시설 보호구역 땅을 매입했다. 이후 땅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서 해제돼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고 알려진다. 

노태우정부서 정무 장관을 지낸 박철언은 과거 “부인 현경자씨가 660억원대 차명계좌를 소유하고 있다”며 개인비서에게 고발당하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1972년 검사로 임관 후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선거’로 유명한 5공화국 헌법의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김 여사 고모의 차남)으로 ‘6공 황태자’로 유명하다. 그러다 1993년 홍준표 당시 검사가 주도한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터지면서, 도박사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장관은 이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면서 정치권서 물러났다.

박 전 장관의 딸 박지영은 노 관장의 이혼소송 법률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의 아내다. 박지영은 노 관장이 1999년 설립한 사단법인 미래회의 현 대표다. 미래회가 사실상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노 관장의 사조직’이란 말이 도는 이유다. 박 대표는 노 관장과 미래회 초기부터 활동해 왔고, 지난해부터 노 관장에 이어 미래회를 이끌고 있다.

재단 사유화
수천억 은닉?

이 변호사는 SK 최 회장의 허위 사실을 퍼뜨린 댓글부대를 조직한 미래회 전 회장 김흥남을 변호하기도 했다. 노 관장과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김 회장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수년간 악의적 여론을 형성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를 확정받아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과 1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선고받았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4·3 사건, 폭동으로 간주한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정황이 나타난 문건서 ‘제주 4·3 사건’을 법적 근거도 없이 ‘폭동’이라고 명시해 제주 지역사회서 반발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국방위원회·하남시갑)에 따르면 12·3 계엄사령부의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 자료’에는 비상계엄 선포 사례로 ‘제주 폭동’과 ‘여수·순천 반란(여수·순천)’, ‘부산 소요 사태’, ‘10·26 사태(전국)’ 등을 들었다.

추 의원은 이 문건이 지난 11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서 작성돼 정부와 군이 계엄 선포를 사전에 모의한 정황이라고 폭로했다.

이 문건서 지칭한 제주폭동은 제주 4·3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제주에만 내려졌던 비상계엄은 제주 4·3 사건 당시인 1948년 발효된 국내 최초의 계엄뿐이기 때문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두환 신군부 시절 작성한 문건인가? 이 문서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부가 제주 4·3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를 얼마나 왜곡 편향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가족을 잃은 한 유족은 “계엄령을 죽음과 체념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생존 피해자와 유족들이 당시 상처가 떠올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4·3특별법에는 제주 4·3 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 문건의 예시인 1948년 제주 계엄령은 계엄령 자체의 불법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1948년 11월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제주에 내려진 비상 계엄령은 ‘계엄법 제정 전 이뤄진 계엄령’으로 불법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더불어 학계와 정치권서도 당시 계엄령이 불법이라는 연구와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사법기관 역시 계엄령에 의한 군사재판을 불법으로 보고 당시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또 2001년 대법원은 불법성 논란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불법성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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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이 출범했다. 개문발차 상태다. 수장 공백과 법령 미비, 수사 인프라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중수청의 경우 본청 사무실 공사 마무리까지 두 달여가 소요될 전망이다. 검사·수사관 대부분은 출근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담당했던 사건이 처리되는 데 수개월이 밀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7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 기능을 담당할 공소청 모두 수장과 인력, 하위 법령, 사무 공간 등 총체적 부실 상태로 개청했다. 채용이 확정된 이들은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완성도 안 됐다 중수청은 지난달 7일 김지용 후보자가 초대 청장으로 제청됐으나 여권 내 반발로 인해 추가 검증을 거치느라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중수청법상 중수청 간부급인 1∼5급 수사관은 청장의 추천을 거치게끔 돼있지만, 청장 없이 문을 여는 바람에 첫 인사부터 원칙이 깨졌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정원은 수사관 2567명과 일반직 307명 등 총 2874명인데, 1·2차 특례 임용에 지원한 이들이 총 1962명에 그쳤고 5급 이상은 정원 629명에 지원자 212명으로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청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전까지도 인사가 발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어느 지역의 중수청에 출근해야 할지 통보받지 못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였다. 중수청은 청사를 임대했으나 수사 인프라와 사무 공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본청과 서울청이 쓰게 될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빌딩은 2∼17층을 임대했으나 당장 사용할 준비가 된 것은 여섯층뿐이다. 수사기관의 필수 시설인 조사실과 피의자 신병을 확보할 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 당분간 타 기관의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서울 3곳, 나머지 5개 지역 1곳 등 총 8곳의 경찰서 유치장을 사용하기로 경찰청과 협의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도 6개 지방중수청 인근 교정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아 완성 전까진 경찰과 논의하며 사용하기로 했는데, 개청 직후에도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청의 청사와 시스템을 활용하고, 인력도 상당 부분 이어받아 중수청보다 준비가 순조로웠다. 지난달 22일에 직제안을 확정한 데 이어 29일에는 공소청 개청 날짜에 맞춰 검사 192명의 인사를 단행하는 등 진용을 갖추고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중이다. 다만 공소청 수장인 검찰총장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법무부 장관마저 공석이어서 후보자가 있는 중수청장보다도 임명에 먹구름이 꼈다. 중수청, 수사관 충원 부족한데 5급 이상 간부 1/3 수준 사무실 공사 마무리 최소 두달 “어디로 출근할지도 몰라” 우선 법무부는 공소청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23일 자로 이정현 신임 대검 차장검사를 임명해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공소청은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맞게 하위·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도 끝마치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에 맞게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하는 법령이 100여개에 달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최근 법무부령 24건을 공포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검찰청 관련 명칭들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오는 2일 개청에 맞춰 법령 개정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후속 법안 논의에서 일부 기관이 배제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중수·공소청·경찰 3개 기관의 사건 이첩 관련 규정을 담은 중수청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공소청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공소청 관계자는 나와 있느냐”고 묻자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결정권자 공백으로 기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중수청법에 따르면 중수청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중수청 수사와 겹치거나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관장의 결단이 필수적인데 직무대행 간 협의만으로는 이견을 좁혀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기관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합동수사기구도 문을 닫게 됐다. 서울서부지검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수사팀은 1년2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달 30일 활동을 중단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보이스피싱범죄합동수사부와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도 운영을 멈췄다. ‘검 목소리’ 완전 배제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중수청에서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으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아 합동수사기구가 하던 업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중수청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두세달 뒤에야 다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됐다. 구자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지난 7월 “한 번 더 살펴봐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경찰의 역량과 인력을 감안했을 때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강경파의 입김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라졌다. “공소청의 장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공소청법에 따라 공소청은 출범 시작부터 리더십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 출발하게 됐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는 형사소송법만 개정됐을 뿐 그에 따른 하위 법령과 규칙 등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공소청 직제안마저 출범 열흘 전 가까스로 완성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과 연동해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할 하위 법령은 137개에 달한다. 형법과 민사소송법은 물론 성폭력·스토킹 처벌법 등 개별 특별법과 법무부 소관 관계 법률만 61개에 달한다. ‘검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없어지는 탓에 50개의 대통령령을 정비해야 하고 검사의 수사권이 명시된 각종 수사준칙도 수정해야 한다. 검찰사건 사무규칙은 조문만 300개가 넘는다. 그만큼 법제처의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논란만 검사의 역할 역시 수사 담당과 기소 담당으로 이원화한 데 포함되지 않는 검사는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 수사 역량이 뛰어난 다수의 검사를 중수청으로 보내 국가 수사 역량을 보존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당초 정부안은 검찰청 검사가 중수청으로 이직할 경우 ‘수사사법관’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민주당이 이를 “이름만 중수청으로 바뀐 도로 검찰청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다. 두 기관 출범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김 후보자를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중수·공소청 출범 직전인 지난 1일에서야 옹호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해 “이런 사람을 ‘친윤(친 윤석열) 검사’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허위임을 알면서도 흠집을 내고 공격하기 위해 하는 억지 주장이라면 비판이 아닌 비방이고 국정 조언이 아닌 국정 방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강도 높게 공개 비판해 온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겨냥해 “김 후보자는 문재인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으로 발탁 승진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도 유튜브에서 “심지어는 김 후보자가 ‘친윤’ 검사, ‘친한(친 한동훈)’ 검사라고 일부가 지적한다”며 “여러 가지 추가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실제 그것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도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한 여권 일각의 비판을 이 대통령이 직접 반박한 것에 대해 “전혀 아닌 것을 계속하거나, 아니라고 설명했는데도 계속 프레이밍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옹호했다. 공소청 수장 임명 법무부 장관 있어야 추천 거쳐 가능 대통령령 포함 하위 법령 100여건 깡그리 수정 필요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친명(친 이재명)계 핵심인 김영진 행안위원장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서 “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좀 과하지 않나”라며 “행안위에 중수청장 후보자를 보내서 (인사청문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청이 개문발차하는 만큼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제출될 경우 수장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정감사 기간 중이라도 인사청문회를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김 후보자를 향한 자진 사퇴 압박이 이날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철학도 없고, 친 윤석열 검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당시 항명 사건에서도 동참했다”며 “여러 가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수사 지휘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새 체계가 현장에 뿌리내릴 때까지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김 대행은 “경찰 역량이 충분한지, 권한을 공정하고 절제하며 행사하는지 국민께서 엄중한 눈으로 지켜보신다”며 “관서·수사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경찰서장이 앞으로 중요 사건과 검사 요구 사건 등의 처리 현황을 매일 확인하고 시도청과 국가수사본부까지 교차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 권리 보호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사건 진행에 대한 통지를 내실화하는 등 수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비상 체제 돌입한 경찰 사건 조작과 은폐, 뇌물수수 등 중대 비위가 확인되면 엄정 수사하고, 비위 당사자에 대해서는 파면·해임과 같은 중징계를 원칙으로 삼는 등 내·외부 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 대행은 “‘사건 핑퐁’으로 피해자 권리 구제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우려하는 부실·불공정 수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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