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용서받지 못할’ 12·12 쿠데타 철면피 후손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2.12 16:56:34
  • 호수 1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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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딸 노소영 봐라 다들 떵떵거리고 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발동한 비상계엄령 사태가 ‘서울의 밤’이라는 수식어로 빗대어졌다.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을 주제로 한 영화 제목인 <서울의 봄>을 인용한 것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배우 황정민의 대사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후손들과 함께 눈감기 직전까지 호사를 누리다 생을 마감했다.

‘12·12 사태’의 진압군으로 저항한 장태완 소장은 본인뿐 아닌 가족들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장 소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초를 비관하며 이듬해인 1980년 4월 별세했고, 1982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에 입학한 장 소장의 아들은 그해 실종돼 칠곡군 야산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권력의 
잔혹함

장 소장은 생전에 “12·12 군사반란을 막지 못한 국민의 죄인이자 가족 3대를 망친 가문의 죄인”이라고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싸우다 지난 2011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장 소장의 부인도 다음 해 자신의 아파트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12·12 당시 총격전으로 사망한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 증세가 심해지면서 결국 앞을 못 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백씨는 1990년 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했으나 이듬해 6월, 자신의 봉사단체 건물서 추락해 세상을 떠났다. 연고자가 없어 지난 2009년에서야 무연고자 묘역터에 유골이 뿌려졌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특전사의 대부격 인물이었던 정병주 소장은 반란 당일 총상을 입은 채 연행돼 강제 예편됐다. 이후 1988년 집을 나가 139일이 지난 1989년 3월 경기도 양주 송추유원지 부근 야산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광주 학살의 1차 책임은 계엄군이 아닌 최종 결정권자이자 명령권자인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있다. 계엄군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시민 학살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당시 지휘계통상 책임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겸직), 진종채 제2군사령관,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 그리고 예하 부대 지휘관들로 구성됐다. 지난 2018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미 국무부 비밀 전문에 따르면, 최종 진압 작전을 결심한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결정적으로 전두환은 1980년 9월 광주를 방문해 ‘지난번 광주의 시끄러운 일은 역사 흐름의 불가피한 진통이므로 (전남)도민들이 새역사 창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 나도 용기를 갖고 국민들께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5·18 사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밖에 1980년 9월17일, 전두환은 미국 언론인 로버트 노바크씨와의 인터뷰서 “만약 지난 5월에 발생한 광주의 폭동 사태가 또 다른 2개 도시로 확산됐다면, 북한의 지배자인 김일성은 10만의 병력을 침투시켰을 것”이라며 “사회적 불안 무질서 폭동 사태가 바로 그런 이유로 용납 안 되는 이유”라고 근거 없는 추측성 망언으로 큰 논란을 빚었다.

거꾸로 돌아간 민주주의···45년 전 재조명
전·노 합작 후 잘 먹고 잘 사는 후손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당시와 비슷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과 전두환 모두 ‘공포 정치’의 정당성과 원인을 종북 세력에 부여한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 유공자와 유족은 800여명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1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유족 85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국가가 430여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피해자가 연행 또는 구금되거나 수형 생활을 했을 경우 1일당 30만원을, 상해를 입었지만 장해가 남지 않았다면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상해를 입고 장해까지 남았을 경우 3000만원을 인정하고, 노동능력 상실률이 5% 증가할 때마다 1500만원이 추가된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1년 11월 유공자들과 유족이 ‘정식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제기했다. 5·18 보상법은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은 민주화운동 유공자나 유족은 정신적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정해놨지만, 2021년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수차례 소송이 제기됐다.

정부는 재판서 다른 사례에 비해 위자료가 지나치게 많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2심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정부가 재차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상고 이유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에 관한 사유’ 등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위자료 지급 기준과 구체적 액수는 1~2심의 판단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소송서 재판부에 따라 배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 본인은 물론 후손들은 피해자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남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음에도 대규모 사업을 펼치거나 언론을 통해 떳떳하다는 듯 인터뷰하기도 했다.

또 두 사람은 나란히 대통령을 이어가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특권을 누렸다. 이들은 각각 1997년, 1996년 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 추징금 약 2629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반성은 부족했다.

왜곡된
민주화

특별사면 이후 전두환은 지난 2003년 인터뷰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발언하는 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는 지난 2019년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씨는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라는 게 뭐예요. 국민들이 원치 않으면 (대통령을)바꿀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단임제를 시행하지 않았나. 이 때문에 지금 대통령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가 광주 시민의 애환을 일부 달래기도 했다. 전씨는 지난해 3월 광주를 방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씨는 “‘5·18은 폭동이었고, 우리 가족이 피해자’라고 교육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러다가 이 비극을 겪으신 분들의 진실된 이야기·증언을 듣고 깨달았다”며 “제 가족의 죄가 너무나 컸고, 가족들이 그 사실을 저에게 숨겼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사죄를 하고, 제대로 된 회개를 하고 싶다”고 사죄를 구했다.

그는 앞서 마약 복용 때문에 발언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는 질문엔 “이해한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마약을 하지 않은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을 말했고, 용기가 부족해 마약의 힘을 빌려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씨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자신의 마약 투약 혐의를 내사 중인 데 대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사죄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혜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귀국하자마자 광주에 가겠다는 자신의 계획이 경찰 조사로 무산될 가능성에 대해선 “정말 광주에 가고 싶지만 못하게 된다면 그것도 제 운명이기 때문에 따르겠다”고 언급했다.

전씨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의 집안에 대한 폭로성 주장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3월17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각종 마약을 언급하며 투약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군사정권이 
민주 투사?

전두환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는 1995년 경북고 동창회서 “(중국)문화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광주 사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망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김문수(대구 수성갑)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지원 유세 등을 통해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라고 발언한 바 있다.

노 관장은 제5공화국 집권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표한 ‘6·29 민주화선언’을 두고 부친의 결단과 시혜의 결과인 것처럼 표현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노 관장이 깜짝 유세에 나선 때가 하필 남동생 노재헌의 조세 회피 의혹이 제기된 시점이라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소송 중이다.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서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300억’이 SK의 종잣돈이 됐다고 주장해 판결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판결은 ‘12·12를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판결대로라면 사실상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노태우가 불법으로 취득한 돈을 상속·증여세 한 푼 없이 노 관장에게 46배 증식해 ‘비자금 대물림’한 셈이다.

추징금을 내느라 돈이 없다던 노태우 일가는 노재헌의 재단에 152억원을 기부하거나 210억원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탄로나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었다는 의혹도 받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두고 지난 10월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정치인의 불법 자금이 30년 후 1조원으로 불어났다고 해서 그 돈이 국가에 환수되지 않고 후손에 귀속되는 게 정의에 맞는가?”라며 “마치 이완용 후손 재산 환수 소송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무고한 희생으로 세운 ‘아버지의 민주화’
“성공한 쿠데타였나?” 6공 비자금 요구

노 관장은 현재 연간 임대료가 연 8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조성된 노태우 묘지는 1810㎡(약 550평)으로, 전직 대통령 5명의 묘역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피라미드 형태의 묘역을 조성하기 위해 수십억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쿠데타 전범의 왕릉을 지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편, 12·12 당시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 전 의원은 제5공화국 때부터 이어진 ‘미래한국재단’을 사유화하면서 수천억원의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지난 1981년 국무총리 소속 기관이던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정부 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지난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허화평 이사장을 연구소장에 임명하고, 93억원의 일해재단(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전두환의 호를 따서 만든 조직으로 현 세종연구소) 자금과 3억원의 정부 자금을 연구소에 지원했다. 허 전 의원은 지난 2005년 연구소를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개명하면서 사유화 의혹이 제기됐다.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호용 전 의원은 12·12 이후 하나회의 입김으로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됐다. 1984년 육군참모총장 시절, 경기도 양주의 30만㎡에 달하는 군사시설 보호구역 땅을 매입했다. 이후 땅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서 해제돼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고 알려진다. 

노태우정부서 정무 장관을 지낸 박철언은 과거 “부인 현경자씨가 660억원대 차명계좌를 소유하고 있다”며 개인비서에게 고발당하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1972년 검사로 임관 후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선거’로 유명한 5공화국 헌법의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김 여사 고모의 차남)으로 ‘6공 황태자’로 유명하다. 그러다 1993년 홍준표 당시 검사가 주도한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터지면서, 도박사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장관은 이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면서 정치권서 물러났다.

박 전 장관의 딸 박지영은 노 관장의 이혼소송 법률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의 아내다. 박지영은 노 관장이 1999년 설립한 사단법인 미래회의 현 대표다. 미래회가 사실상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노 관장의 사조직’이란 말이 도는 이유다. 박 대표는 노 관장과 미래회 초기부터 활동해 왔고, 지난해부터 노 관장에 이어 미래회를 이끌고 있다.

재단 사유화
수천억 은닉?

이 변호사는 SK 최 회장의 허위 사실을 퍼뜨린 댓글부대를 조직한 미래회 전 회장 김흥남을 변호하기도 했다. 노 관장과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김 회장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수년간 악의적 여론을 형성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를 확정받아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과 1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선고받았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4·3 사건, 폭동으로 간주한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정황이 나타난 문건서 ‘제주 4·3 사건’을 법적 근거도 없이 ‘폭동’이라고 명시해 제주 지역사회서 반발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국방위원회·하남시갑)에 따르면 12·3 계엄사령부의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 자료’에는 비상계엄 선포 사례로 ‘제주 폭동’과 ‘여수·순천 반란(여수·순천)’, ‘부산 소요 사태’, ‘10·26 사태(전국)’ 등을 들었다.

추 의원은 이 문건이 지난 11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서 작성돼 정부와 군이 계엄 선포를 사전에 모의한 정황이라고 폭로했다.

이 문건서 지칭한 제주폭동은 제주 4·3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제주에만 내려졌던 비상계엄은 제주 4·3 사건 당시인 1948년 발효된 국내 최초의 계엄뿐이기 때문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두환 신군부 시절 작성한 문건인가? 이 문서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부가 제주 4·3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를 얼마나 왜곡 편향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가족을 잃은 한 유족은 “계엄령을 죽음과 체념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생존 피해자와 유족들이 당시 상처가 떠올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4·3특별법에는 제주 4·3 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 문건의 예시인 1948년 제주 계엄령은 계엄령 자체의 불법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1948년 11월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제주에 내려진 비상 계엄령은 ‘계엄법 제정 전 이뤄진 계엄령’으로 불법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더불어 학계와 정치권서도 당시 계엄령이 불법이라는 연구와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사법기관 역시 계엄령에 의한 군사재판을 불법으로 보고 당시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또 2001년 대법원은 불법성 논란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불법성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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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