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이 자랑이라고···노소영 카드에 국민들 화났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02 14:06:21
  • 호수 1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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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전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노태우정권의 비자금 논란으로 번졌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조사해 과세해달라’고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수십년간 숨겨온 노씨 일가의 ‘안방 비자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노소영 전 나비 관장은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을 성장시켰고, 늘어난 자산의 상당 부분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300억원이 SK에 유입된 것으로 인정했다. 문제는 300억원의 출처와 성격이다. 

자기 돈도
아니면서···

노 전 관장 측은 항소심서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김옥숙 여사가 1998~1999년 사이 작성한 비자금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해당 메모에는 ‘선경(SK 전신) 300억원’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 전 관장 측은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전 선경 회장에게 비자금 300억원을 주고받은 것이라며, 지난 1991년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에 대한 사진 등도 제출했다.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의 ‘폭력적 불법 비자금’이 노 전 관장에 의해 소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계 인사는 “불법 비자금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조차 없이 자랑스럽게 노태우 비자금을 언급하는 노 전 관장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인식되기에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퇴임할 때도 ‘재산이 5억’이라며 ‘그 정도면 족하다’고 먼저 얘기했던 사람이다. 실제론 임기 동안 선경에게 불법 비자금을 거둬들이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으니 비판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도 같은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먼저 노태우정부 시절 경제수석 등을 지낸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지난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각선 “죽은 아버지 부관참시 꼴” 지적
국민들은 “그 아버지에 그 딸” 비웃음도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정혁진 변호사도 지난달 9일 방송된 <어벤저스 전략회의>서 김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했다. 노 전 관장 측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노 전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다고 보고, 최 회장이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즉각 반발했고, 최근 상고심 시작에 앞서 500여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다양한 쟁점 가운데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후광 등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오히려 손해가 됐다는 주장이다.

즉, SK가 국내 재계 2위까지 발돋움할 수 있던 배경에 노 전 관장 측의 큰 도움이 없어 재산분할 금액이 축소돼야 한다는 얘기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자금이 당시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 등에 쓰였다고 판단했으나,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반박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관장 측의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등으로 쓰여 SK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전면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 과정서 SK 측은 300억원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고, 퇴임 후 그에 상당하는 돈을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관장 측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은닉재산마저 들춰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성했다가 추징된 2628억원과 별도로 부인 김 여사가 관리해 온 드러나지 않은 돈이 있다는 ‘안방 비자금’ 의혹이다. 이혼소송서 제출한 904억원의 내역이 적힌 ‘김옥숙 메모’ 외에 노 전 대통령 일가서 또 다른 자금흐름이 포착된 것이다.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원장(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김 여사 명의로 출연금 147억원이 입금됐다. 김 여사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각각 현금 10억원, 2018년 예적금 12억원, 2020년 예적금 95억원, 2021년 예적금 20억원을 출연했다.

특히 아들 재헌씨가 원장으로 취임한 지난 2020년 출연금 규모(95억원)가 두드러진다. 재헌씨는 2019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부친을 대신해 사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병세로 재헌씨가 대외 활동에 나선 시점과 자금 출연 시점이 맞물린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지난 2012년 설립된 한중문화센터서 시작된 재단으로 동아시아국가 상호 간 전략문화 협력과 청년 교류를 주요 사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론 북방정책 평가사업 등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책 기념사업이 대부분인 사실상의 노씨 일가 재단에 불과하다.

또 다른 ‘안방 비자금’ 포착
김옥숙 여사 ‘돈세탁’ 의혹

법인결산 공시서 지난 2021년 기준 총 사업비용 3억5000만원 중 공익목적 사업비로 분류한 2억6000여만원의 쓰임새도 눈길을 끈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치적으로 평가받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과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지역 학생 장학금 등 ‘노태우 기념’ 용도로 쓰였다.

센터 자산도 대부분 김 여사의 출연금으로 이뤄졌다. 지난 2021년 기준 총 자산가액 153억원 가운데 그의 출연금(147억원)이 96%에 달한다. 재단이 지출하는 연간 사업비용은 김 여사 기부금의 이자 수준인 1~2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지난해 기준 연간 총사업비용은 1억9000만원이고 이 중 공익목적 사업은 5000여만원이다. 2022년도에는 총 2억4700만원 중의 사업수행 비용 중 공익목적은 1억3000만원이다. 사무실 주소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건물이다. 이 건물은 노 전 대통령 별세 이후 부인인 김 여사가 상속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가 5차례에 걸쳐 출연한 거액의 자금 출처를 두고 의혹이 나온다. 김 여사가 출처 불문의 거액과 노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조성한 비자금을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여사는 280여억원을 미납 중이던 2010년, 모교인 경북여고에 5000만원을 기부해 사회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김 여사가 만약 비자금으로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기부했다면 정당성과 절차 모두 문제될 여지가 있다. 특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인 노재헌 원장과 기부자인 김 여사의 관계에는 모자지간임에도 ‘해당없음’으로 기재됐다.

뻔뻔히 
꺼내다

이는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여사가 영부인이던 시절 청와대서 대기업 총수 부인이나 여성 기업인들과 수시로 면담하면서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은 전두환·노태우정부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1995년에도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비자금 진상조사위원장이었던 고 강창성 의원은 국회서 “김옥숙 여사 친·인척이 관리하는 것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데 이 문제까지 이번에 조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씨 일가는 46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서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3년 이를 완납했으며, 이 과정서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동생인 노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처가인 신동방 측과도 소송전을 벌였다.

법조계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2013년 추징금을 완납하는 과정서 돈이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장인이었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과 재산 환수 소송까지 벌였던 것을 되짚어보면 재단 출연금의 출처가 더 석연치 않다”며 “연간 사업비가 2억~3억원 수준인 재단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한 것 자체가 출처가 불명확한 자금을 편법 증여해 세탁하는 용도로 활용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해당없음’이라고 적시한 것을 두고도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남 노재헌에 흘러간 수백억원? 
정치권 “철저히 조사해 환수해야”

노씨 일가의 은닉재산 논란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국회서도 잇따른다. 국세청은 상속세 등을 부과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지난달 27일 기재위 전체회의서 노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는 내용의 탈세 제보서를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과정서 김 여사가 작성한 비자금 메모가 증거로 인용됐다는 점을 토대로 비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김 의원은 “김 여사의 메모에 기록된 904억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은 노 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은닉하다가 가족들에게 사전 증여했거나, 사망 후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이혼소송서 쟁점이 된 300억원은 그 일부로, 상속세 부과 제척 기간이 남아 있어 과세에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이혼소송서 드러난 300억원뿐 아니라 메모 속 기록된 채권, 금고 등에 숨겨둔 904억원의 은닉재산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서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김 여사가 만약 부정 축적한 ‘안방 비자금’을 숨겨왔다가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한 것이라면 과세 여부 문제를 넘어 법적 정당성과 안정성 측면서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을 포함해 ‘1조3803억원과 20억원을 노 전 관장에게 주라’고 판결한 것을 두고 법무법인 평안 이상원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노태우정권서 황태자로 불렸고 노태우 대통령 부인인 김 여사의 이종사촌 동생인 박철언 전 장관의 사위다. 

히든카드가
국회 이슈로 

박 전 장관은 노태우정권 당시 정무 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이상원 변호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변호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변호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노 전 관장이 불법 비자금임을 알면서도 당당히 300억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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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