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빼는’ 노소영 미술관 부실경영 해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30 09:54:53
  • 호수 1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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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혈세로 돌린 아트센터 나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때아닌 부실 경영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법원이 아트센터 나비에게 서린동 SK사옥 4층에서 퇴거하고,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면서다. 이후 아트센터 나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창립 이래 노소영 관장이 상근이사직을 맡으며 운영해 온 아트센터 나비는 최근 5년간 혈세로 운영되면서 실제 예술을 위한 전시 사업은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트센터 나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약 34억원, 연평균 7억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을 받아왔다. 아트센터 나비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고 있다. 미술관을 육성하고,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티다
나갔다

지난 15일 법원은 노소영 관장 측에게 ‘아트센터 나비’가 SK 본사 건물에서 퇴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해 온 미술관 인도 소송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며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민사법상으로는 SK 측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현재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예술의 감성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 이재은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낸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서 “피고(아트센터 나비)는 부동산을 인도(퇴거)하고 손해배상금 10억4560만281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부동산 인도가 완료될 때까지 매달 2400여만원의 관리유지비 등을 내야 한다고 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4층에 자리한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이다. 노 관장이 이끄는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 12월 이곳에 개관했다. SK서린빌딩은 SK그룹의 실질적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빌딩 임대차계약이 2019년 9월 종료됐고 리모델링 등을 한다며 지난해 4월,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을 상대로 사실상 공간을 비워달라는 부동산 인도 소송을 냈다. 당시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1심 결과(2022년 12월)가 나온 직후였다.

이에 나비 측은 “이혼소송 1심 판결이 나오자, SK 측이 돌연 소송을 제기했다”며 “이혼이라는 사적 감정으로 소를 제기한 것은 계약위반이자 회사 이익에 반하는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퇴거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결과가 나왔고, 2심 재판부는 SK이노베이션이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노 관장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노 관장 측은 “그 부분(이혼 판결)과 관련해서 저희는 원고 측이 그 취지를 검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지만, 소송은 계속됐고 법원은 “이 소송은 계약에 따른 해지 통보와 부동산 인도 청구이기 때문에, 이를 계약위반이나 배임으로 볼 증거가 없고, 이혼소송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특수성도 없다”며 퇴거 소송서 SK 측의 손을 들어줬다.

퇴거 통보 후 실체 들여다보니···
5년간 전시 일자 230일에 불과

이 변호사는 이를 지적하며 입장문에 “SK서린빌딩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 등이 소 취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혼소송과 관련해선 최 회장 측이 상고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재판은 결국 대법원서 최종 결론이 나게 됐다.

아트센터 나비의 서린사옥 4층 전시관 내 전시 일자는 약 230일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하루도 채 안 되는 꼴이다. 아무리 코로나19의 영향을 고려하더라도 실제 예술 진흥에 관심이 있었는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2020년에는 보조금을 7억8000만원 상당 수령하고, 15일간만 전시관을 열었다. 2022년에는 5억5000만원을 받았음에도 2주간만 전시를 진행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도 전시 일수는 53일에 불과했다.

정부보조금을 전액 전시에만 쓴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트센터 나비가 SK이노베이션과 소송서 ‘퇴거하면 운영이 어렵다’는 취지로 여러 번 말했듯이 전시가 미술관의 사업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전시 하루당 국가세금이 1500여만원이 소요된 셈이다.

전시 내용을 봐도 ‘2022년 나비 보드게임 데모데이’(8월31일), ‘나비 보드게임 플레이데이’(10월26일), 2023년 ‘창의적인 게임 창작을 위한 행위성과 유머 창작 커뮤니티’(10월7일) 등 목적을 뚜렷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시가 많았다.

거액의 정부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아트센터 나비의 누적적자는 48억원에 달한다. 2019년 200억원에 달했던 자산은 2023년 말 145억원으로 큰 폭으로 줄었다. 최근 미술관의 수익은 정부보조금 외에 거의 없다. 기부금을 모금하거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수익사업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관리비용은 한 해 십수억원이 발생해 적자 폭을 키웠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도 크게 줄지 않았다. 2022년에는 금융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익으로 약 8억원, 2023년에는 6억원을 손해봤다. 인력을 줄이거나 투자만 잘했어도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펑펑 쓴
보조금

국민 혈세 논란, 비서의 26억원 횡령 사건, 적자 심화에도 이사진은 수년째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다. 아트센터 나비 공익법인 결산보고에 따르면, 현재 나비의 이사는 총 6명이다. 이 중 노소영 관장을 비롯한 3명은 최소 5년 이상 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2021년 선임된 3명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외부 문제에도 이사진이 경영활동 및 감시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노 관장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비서 A씨는 노 관장을 사칭해 ‘상여금’ 5억원을 미술관 공금서 쉽게 이체받아 횡령한 바 있다. 상여금, 보수 등은 이사회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중요 의사결정인데, 이 같은 과정조차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노 관장은 “비서가 지난 5년간 개인계좌와 공금서 약 26억원을 빼돌렸다”고 나비에 근무하는 직원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당시 직원의 범행 방식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거액의 현금을 확인 없이 이체하며 수개월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비의 내부 시스템과 불성실 경영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심지어 ‘노 관장이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를 사유화했다’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노 관장을 사칭한 휴대폰 문자메시지만으로 미술관 재무담당자 B씨가 현금 5억원을 개인통장에 입금한 사실에 대해 업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A씨는 B씨에게 “관장님의 세컨드 폰이라며 번호를 입력해두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며칠 뒤 A씨는 B씨에게 해당 번호로 노 관장을 사칭해 “빈털터리가 돼서 소송자금이 부족하니 상여금으로 5억원을 송금하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B씨는 A씨가 관리하는 통장으로 요청액 전액을 송금했다.

계좌도
털렸다

의혹이 불거진 이유는 비상식적인 B씨의 행동에 있었다. 그는 “관장의 말투를 따라 해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공금 5억원을 개인계좌로 입금했다는 점은 ‘평소에도 유사한 지시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산다는 지적이다.

공익법인은 국가보조금, 기부금 등을 통해 운영되는 만큼 자금의 쓰임에 대해 직원의 ‘교통비’까지 공시자료에 기입할 정도로 꼼꼼하게 관리한다. 하물며 공금 5억원을 개인계좌로 입금하라는 ‘횡령’ 지시를 받았다면 거부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B씨는 7개월간 노 관장에게 사실을 확인하기보다는 상여금을 통해 발생하는 세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려는 정황을 보였다.

만약 B씨가 송금한 5억원이 노 관장의 개인계좌가 아니라 ‘차명계좌’로 들어갔다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B씨가 평소에도 노 관장의 지시에 따라 공금을 차명계좌를 입금해 비자금을 형성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무담당자 B씨가 A씨를 노소영 관장이라고 믿고 보너스 5억원을 일시 지급한 사실도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비서 A씨는 관계자를 속이기 위해 인건비인 ‘상여금’을 명목 삼아 B씨에게 5억원을 송금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B씨는 절차를 무시한 행동을 보였다. 공익법인은 공익법 제5조에 따라 상근임직원에게 승인된 보수만 지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업계획에 연간 인건비 지급 기준을 포함한다.

이 역시 법인세법에 따라 이사회 결의 등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B씨가 5억원을 ‘상여금’ 명목으로 지급한 5월은 통상 공익법인이 사업계획을 신고하는 1월과 시차가 크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의 ‘2022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16명의 직원에게 지출한 고정성 인건비는 7억7000만원 수준이었다. 이 중 상여금 5억원은 65%에 달했다. B씨의 행동에서 평소 아트센터 나비의 운영 실태가 보인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가 어떻게 거액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재무제표에 따르면, 이 미술관은 90억원에 가까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금 마련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년간 축적한 보조금, 기부금 등을 쓰지 않고 쌓아 놓은 탓이다.

연간 적자 23억···26억 빼돌린 비서
관리 부실 및 사유화 “감시 없었다”

다만, 공익법인의 존재 이유인 ‘공익목적사업’에 지출은 한 해 5억원 정도(예술 진흥, 교육 등)에 불과한데, 현금을 100억원 가까이 비축해둔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불과 몇 해 전에는 아트센터 나비가 보유한 현금만 2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부실 운영에 대한 정황이 돋보인다. 나비는 2022년 약 23억원, 지난해 약 17억원 등 최근 2년간 약 4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냈다. 한 해 소액의 목적 사업만 진행하는 이 미술관이 거액의 적자를 낸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투기성 투자’에 집착한 것 아니냐는 구설수가 나오기도 했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예술사업과 무관한 ‘투자’ 부분에서 발생한 막대한 부실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2022년 ‘금융상품 손실’과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환차손’으로 약 10억원 상당의 ‘사업비용’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굴리는 자금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아트센터 나비가 평가액 등락이 큰 고위험 투기상품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공시 내용상 미술관이 보유한 주식이 없고, 일반적인 현금성 자산 상품(예·적금, 채권)으로는 큰 폭의 손실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환 변동에 따른 손해도 수억원에 달해 금융당국의 시선을 피해 해외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A씨의 횡령사건에 대해 노소영 관장이 ‘피해자’라고 단순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아트센터 나비가 매년 5~10억원가량의 국민 세금을 받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재무제표상 아트센터 나비의 수익 95%가 ‘정부 보조금’이다. 2022년 총 수익이 5.8억원이었는데, 이 중 보조금이 5.5억원이었고, 기타 매출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정부 보조금 집행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어디에 지출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더 큰 문제다. 아트센터 나비는 정부 보조금을 ‘기타 인력비용’으로 약 3억원, ‘기타(잡비 성격)’로 8000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구체적인 항목 확인이 어려운 ‘운영 잡비’로 2021부터 22년까지 2년 동안 5.4억원을 지출했다. 직전 2년에는 2100만원 지출에 불과했던 항목이다. ‘꼬리’를 알 수 없는 비용이 25배나 증가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아트센터 나비가 ‘공익법인 사유화’라는 논란을 비켜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비서 A씨는 ‘관장’의 일정관리 등 보조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A씨가 노 관장의 인감도장과 신분증 등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인 노소영씨’의 개인 업무도 처리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래도
당당하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개인간 사기가 아닌 일부 공익법인의 관리 부실과 사유화라는 사회적 측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한 개인이 수십년간 외부의 감시와 견제 없이 공익법인을 장악했을 때 부작용을 파악해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아트센터 나비는 이번 횡령 금액을 회계에 반영해 결산보고, 감사보고서 등에 반영해야 한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에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분을 공개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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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