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는 꼰대 시대? 중징계 먹은 이준석 후폭풍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이 과거 꼰대 당으로 불리던 시절이 그리운 모양새다. 선거에서 이긴 당답지 않게 주도권 싸움에만 몰두한다. 대표를 몰아낸 꼰대들이 세력 싸움에서 우위를 가지기 편해졌지만 여론은 다소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국민의힘이 폭삭 망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의혹은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 측에서 제기했다. 가세연은 이 대표가 성 상납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김철근 정무실장을 통해 7억원의 투자 각서를 써줬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이 폭로 제보자를 만나 성 상납이 없었다는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는 것. 이 같은 가세연 폭로에 대해 이 대표와 김 실장은 줄곧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당원권 정지
초유의 사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4월21일 이 대표를 성 상납이 아닌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된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 대상에 올렸다. 지난달 22일에는 김 실장의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해 징계 절차도 개시했다. 

이 대표에 대해선 한 차례 논의가 연기됐다. 즉시 당내에서는 이 대표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은 이 대표를 향해 사퇴하라고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이 대표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이 다가왔다.


저녁 7시경 윤리위를 개최하고, 김 실장과 이 대표가 차례로 출석했다. 이날 이 대표는 윤리위가 개최된 이후 2시간이 지나 나타났다. 윤리위 회부 후 석 달 만의 소명 기회 자리였다. 소명에 앞서 이 대표는 심경을 밝히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몇 차례나 말이 끊기며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고, 목소리도 떨렸다. 

3시간가량 윤리위 소명을 마치고 나타난 이 대표는 “충분히 소명했다”며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후 윤리위는 늦은 새벽까지 징계 여부를 논하기 위해 마라톤 회의에 돌입했다.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징계 결과가 나온 시점은 새벽 3시경이었으며 이 대표에게는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윤리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의 4단계가 있다. 이 중 두 번째 수위인 당원권 정지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이 대표가 윤리 부칙 4조1항에 따라 당원으로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윤리위가 ▲사실 확인서의 가치 ▲이 대표 사건 및 당 전체에 미칠 영향 ▲사실 확인서와 약속 증서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작성된 점 등을 인정한 셈이다. 

이 대표는 윤리위가 내린 징계로 사실상 직무 수행이 어려워졌다. 대표직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초 윤리위 징계서 경고만 받아도 이 대표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당원권 정지로 의결되면서 정치생명마저도 위태로워졌다. 사실상 당 대표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이다.

버티고 식물 대표라도? 
세 잡아도 청년층 반감

윤리위의 중징계 결정이 나오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대선과 지선 승리로 이끈 당 대표를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징계한 건 부당하고 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 역시 징계에 불복하는 입장과 함께 이의 제기를 시사했다. 가처분 혹은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당 대표를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항전을 선언한 셈이다.

그전까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국민의힘 내홍은 한층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김순래 최고위원이 당원권 정지를 받고 다시 복귀한 사례를 볼 때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고, 6개월 후 대표직에 복귀해 잔여 임기를 수행할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향한 당내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았다. 그도 윤핵관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핵관 세력과 이 대표는 대선 전부터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싸움을 벌여왔다. 당시 주도권을 잡았던 인물은 이 대표 쪽이다.

한발 물러나 있던 윤핵관 세력은 이 대표를 내쫓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이 대표는 대표직을 수행해오면서 당내 적이 많았다. 이 대표 편을 들어주던 당내 인사들도 많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를 하던 인물도 딱히 없었다.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경우 대표 권한대행은 권 원내대표가 맡게 된다. 권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 동안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가능성도 있다. 

연말까지 권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를 유지한 뒤, 내년 상반기 이후 새 대표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를 여는 방식도 고려된다. 이 대표의 중징계로 당장은 권 원내대표를 비롯한 장제원·안철수 의원이 주도권을 일시적으로 잡을 수도 있다.

끝까지
버틸까

정가에선 벌써 차기 당 대표로 안 의원, 사무총장은 장 의원이 맡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 여러 계파들이 생기면서 선거에서 승리한 당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 안 의원, 권 원내대표 등 차기 당권주자들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겉으론 모두 친윤(친 윤석열)을 표방하지만 뒤에서는 윤핵관, 비윤핵관 사이의 물밑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대표는 총선 공천권을 갖는 만큼 그 권한이 막강하다.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조기 전당대회에 대해 선을 그은 이유도 조기 전당대회 시 당 대표 출마가 어렵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윤핵관이면서 차기 당 대표로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다만 윤핵관 세력이 당장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윤핵관 중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 의원을 향한 여론이 싸늘한 편인데 윤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몰아내려는 세력 중 하나로 지목돼서다. 윤핵관이 이 대표의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분위기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적 결과에 따른 당 및 본인들에게 닥칠 역풍을 우려해서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 징계 결정으로 국민의힘에 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여러 시나리오들이 회자된다. 대선 기간 국민의힘의 강력했던 무기 중 하나는 꼰대 정당의 탈피였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젊은 나이에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변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기대감을 줬으나 이제 그 기대감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의 징계로 국민의힘이 과거와 같은 꼰대 정당으로 회귀한다면 정당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극심한 내홍을 겪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을 역전당했고, 정당 지지율마저 최근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지방선거 직후 50%에 육박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졌다.

시동 거는 
윤핵관 세력

국민의힘은 이 대표 체제하에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동안 꼰대 정당의 당원 수는 80만명까지 폭증했다. 꼰대 이미지였던 국민의힘을 젊고 신선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년층에선 이 대표의 징계에 대해 토사구팽(토끼가 죽으면 사냥하던 개를 삶아 먹음)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부동층이 많은 청년층 특성상 국민의힘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대표 외에 국민의힘 내에서 청년층을 포섭할 인물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청년층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알고 있다. 대선 때도 청년층의 니즈를 파악해 유튜브와 쇼츠로 신선함을 불어넣었던 바 있다.

지방선거 때는 최초로 PPAT(공직 후보자 기초자격평가)를 도입해 이목을 끌면서 자체적인 검증 단계를 거쳤다. 결과는 압도적 승리라는 결과로 돌아왔는데 민주당 심판은 청년층 대부분이 동의한 사안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보수정당이 포기했던 호남 지역도 달려가는 등 공을 들였다. 이 같은 노력은 호남 일부 지역에서 청년층 지지 30%라는 성적표를 받아냈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쉬지 않고 즉시 ‘혁신호’를 띄웠다.

혁신위원회를 띄워 꼰대 정당 이미지의 탈피 및 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자 곧바로 당내 여러 곳에서 공격이 시작됐다. 이 대표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원 가입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청년층이 자신의 독자적인 세를 다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까지 악영향?
국민의힘 붕괴 신호탄?

만일 이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청년 당원들의 반발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 ‘선배’들은 이 대표가 불편하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의 혁신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대표가 이대로 쫓겨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대선서 윤 대통령은 간신히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민심도 흉흉한 편이다.

그의 지지층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안을 찾던 이들과 청년층 일부가 보수 유권자와 합쳐져 만들어졌다. 문정부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줬다.

앞서 정가에선 일찌감치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손절했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오히려 역풍은 윤 대통령을 향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윤 대통령은 연일 청년층의 반감을 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일 인사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불거졌기 때문이다. 우호적이던 당 대표 대변인마저 우려를 표했다. 지지율 역시 긍정적인 여론보다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는 데드크로스를 맞이했다. 

이대로라면 2년 뒤 총선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당장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보다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정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물만난
친윤계

이번 윤리위 중징계 의결을 두고 당 대표실 관계자는 “이 대표가 물러난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결론도 안 날 싸움을 이어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여권이 어려운 상황인데 징계로 내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과거 2015년에도 보수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붕괴된 바 있다”고 꼬집었다. 장 소장은 “국민의힘의 지지층이 분열될 것”이라고도 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준석 또 다른 뇌관 박근혜 시계 진실공방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성 접대 공방 의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 논란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창조경제 1호 벤처로 불린 아이카이스트 간부였던 A씨는 지난 6일 JTBC 취재진을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이 적힌 남녀 시계 세트를 공개했다. 

A씨는 “박근혜 이름이 적힌 시계 세트는 2013년 8월경 김성진 대표가 받아서 선물로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에게 성 상납을 한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인 김 대표는 옥중에서 “2013년 이 대표에게 성 상납을 하고 보답으로 시계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시계를 받은 날은 2013년 8월15일이라고도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말이 서서히 안 맞기 시작한다”며 “8월15일 독립유공자들에게 배부한 시계를 제가 같은 날 김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은 시점 자체가 틀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해당 시계가 성 접대 의혹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로 보고 시계를 확보해 조사 예정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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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