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VS 이준석 전면전 관전 포인트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1.25 11:10:01
  • 호수 1507호
  • 댓글 1개

받은 폭탄 그대로 용산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해 자신에게 공세가 집중되자 윤석열 대통령을 정면으로 조준한 폭로를 시작했다. 이는 공격을 받으면 적의 중심을 급습하는 이 의원의 전형적인 전술이다. 이 의원이 즐겨 비유하는 <삼국지>로 빗대어보면, 이 의원에게는 조조와 강유·제갈각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명태균 게이트’ 핵심 인물 명태균씨는 지난 5일 법무법인 황앤씨 김소연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김 변호사는 명씨의 요구로 지난 19일 사임할 때까지 2주 동안 명씨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강혜경씨는 노영희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노 변호사는 강씨의 지난 10월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 출석에도 동행해 진술을 조언했다.

조조? 강유?

두 변호인의 등장 이후 명씨와 강씨의 주장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에게 집중되는 듯한 흐름으로 진행됐다.

노 변호사는 지난 10월28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 시절 명씨에게 약 7~8회에 걸쳐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대금을 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명씨와 강씨의 지난 2022년 3월23일 통화 녹음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명씨는 “이준석이가 RDD(무작위 전화 걸기)로 경기도지사 여론조사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조사는 실제로 진행됐고, 이 의원은 돈을 안 줬다”며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수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명씨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2주 동안 공세의 초점을 대부분 이 의원에게 맞췄다. 지난 11일 유튜브 채널 ‘이봉규TV’에 출연한 김 변호사는 “이 의원이 명씨와 성 상납 의혹을 의논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게재한 주장에 따르면, 큰 파문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과 명씨의 지난 2022년 5월9일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전화 통화는 이 의원 때문에 진행된 것이었다. 이 의원은 그날 새벽 명씨에게 “대통령이 ‘김영선 전 의원은 경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명씨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윤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이를 놓고, 김 변호사는 “이 의원이 윤 대통령의 공천 관련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명씨를 이용했다”며 “이 의원이 악의 축”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8일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 의원이 사심을 가득 채워 공천했다”며 “친분 있는 사람을 공천하기 위해 전략공천 여론조사 명분까지 만들어 진행하는데, 윤 대통령이 ‘경선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니까 이 의원이 명씨에게 일러바쳤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김 전 의원을 경남 창원의창에 공천하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이 의원이 있다”며 “윤 대통령은 해당 지역구를 경선에 붙이려고 했지만, 이 의원이 김 전 의원에게 공천을 주려는 마음을 먹고, 명씨를 이용해 윤 대통령과 통화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의원은 명씨를 스토킹 통로로 활용해 윤 대통령 부부를 감시했다”며 “이 의원과 명씨는 매일 메신저로 대화하고, 새벽에도 질의응답을 했다”고 강조했다.

서로가 서로 향해 협공 
만인에 대한 만인 투쟁

이 흐름은 윤 대통령 부부로 거론되는 ‘게이트의 몸통’ 의심을 이 의원에게 집중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강성 친윤(친 윤석열) 성향 김 변호사와 강성 야권 성향의 노 변호사가 ‘이준석 공격’이라는 명제 앞에선 연합을 형성한 것과 같은 흐름이 이어졌던 2주였다.


노 변호사는 윤 대통령 부부·이 의원·명씨 모두를 타격하려고 노력했다.

창원지검 전담수사팀의 수사에서도 이 의원은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의 지난 10월31일 고발 대상에는 이 의원도 포함됐다. 검찰은 지난 14일 진행된 명씨의 구속영장실질심사서 “명씨는 이 의원 등과 차명 전화로 통화했다”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 의원에게 김 전 의원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선택은 정면승부였다. 초점이 자신에게 쏠리는 상황이 이어지자 다시 윤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폭로전에 나선 것이다. 김 변호사와 노 변호사가 이 의원을 협공했다면, 이 의원과 노 변호사는 윤 대통령을 협공하고 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구도로 확대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남미순방에 동행했다가 지난 14일 귀국한 이 의원은 공항서 기자들을 만나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지방선거서 특정 시장과 서울 구청장 공천을 언급했다”고 주장했고, 다음날 “포항시장과 서울 강서구청장 공천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안철수 의원에게 분당갑 재보궐선거 단수공천을 줘야 한다’고 말했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김은혜 의원을 추천했다”고 주장했다.

이틀 사이에 공천 4개를 거론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 의원의 국민의힘 대표 재임 당시 불거졌다가 무혐의로 마무리된 성 상납 의혹을 제기한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변호인이었다. 의혹은 이 의원과 사이가 좋지 않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확산됐고, 김 변호사는 해당 채널에 오랫동안 출연했다.

공격 받으면 적 중심 급습
강대강 극한 대치…결말은?

옛 악연이 다시 정립될 수도 있는 시점서 공세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공격을 받으면 적의 중심을 급습하는 이 의원의 전형적인 전술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연일 명씨의 통화 녹음을 공개하는 상황서, 민주당에 쏠릴 수 있는 시선도 자신에게 집중시킬 수 있는 선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의원은 당시 당 대표라는 내부자였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의석 3개를 보유한 초미니 정당의 의원이고, 명씨 관련 공세도 홀로 대응하고 있다. 이 의원이 즐겨 비유하는 중국의 <삼국지>를 이 의원에게 적용하면, 약소 세력이 거대 세력과 맞선 조조·원소의 관도대전과 강유·제갈각의 위나라 정벌 시도에 비유할 수 있다.

관도대전 당시 조조는 원소의 선봉장을 2명이나 제거하고도 원소의 거대한 물량 공세를 간신히 막는 처지에 몰렸다. 그러다가 원소 진영 내부 갈등 여파로 원소군의 군량고 위치라는 특급 정보를 얻었고, 정예병력을 엄선해 군량고를 직접 급습했다.

조조는 치열한 전투 끝에 간신히 승리해 원소군의 군량을 모두 태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촉한의 강유와 오나라의 제갈각은 각각 부족한 정치력과 오만한 성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강유는 국내 사정을 전혀 살피지 않고 북벌에 지나치게 집착했다가 나라 안에 반대파가 가득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었다. 제갈각은 위나라와의 첫 전투서 이긴 후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무모하게 곧바로 두 번째 전투를 이어가다가 패배했다. 제갈각은 부하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가 살해당했다. 

역사엔 상대가 몰락하는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어렵게 이긴 선례들이 있다. 오스만 제국이 상대했던 동로마 제국은 찬란했던 2200여년 역사를 뒤로하고, 국토도 발칸 반도로 줄었다. 오스만 제국은 정예부대 예니체리를 모두 투입하고, 동로마 제국 수도 방어를 주도하던 용병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으로 전열서 이탈한 후 성의 비밀 쪽문이 열린 틈을 타서 어렵게 승리했다.

최강의 군대를 거느렸던 몽골 제국도 45년 동안 3회에 걸친 침공 끝에 무너져가던 남송을 어렵게 멸망시켰다. 

이이제이

국민의힘은 많은 실책을 저지르면서 108석의 소수 여당으로 전락했다. 국민의힘의 108석은 관점에 따라 ‘108석밖에’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관점에선 ‘108석이나’일 수도 있다. “오스만 제국, 몽골 제국도 각각 동로마 제국과 남송과의 전쟁서 처절한 사투를 치렀다”는 사실을 어떻게 통찰하느냐에 따라 조조의 길과 강유, 제갈각의 길이 교차할 수도 있다. <삼국지> 마니아 이 의원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ctzxp@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4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