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에’ 계엄이 삼킨 이슈들

2024년 빨아들인 6시간 블랙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무슨, 말도 안 돼’라며 괴담 취급을 받을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날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 같은 인식을 깨뜨렸다. 동시에 국민의 일상도 무너졌다. 그날의 나비효과가 만든 소용돌이에 모든 이슈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원래라면 묵은 해를 뒤로 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려는 분위기로 사회가 들썩여야 한다. 하지만 연말 풍경은 사라졌다. 송년회 등 연말 특수를 기대한 자영업자는 빗발치는 예약 취소 문의를 감당하고 있다. 8년 만에 다시 일어난 사건에 체감경기가 얼어붙었다.

사라진
연말 대목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2주다.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4일 국회의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면서 같은날 오전 4시27분 6시간 만에 최종 해제됐다. 4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6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지난 7일 1차 표결은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폐기됐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야당 192표 외에 국민의힘 이탈표 8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고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지난 14일 2차 표결은 가결됐다. 

국회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최우선에 두고 심리하고 있다. 청구인 국회와 피청구인 윤 대통령은 헌재서 단판 승부를 가려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이미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서류를 수취하는 문제로 1주일 가까이 진통을 겪었다. 

3명이 공석인 헌재 재판관 구성을 두고도 여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헌재는 6명의 재판관으로도 심리와 변론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 탄핵심판이 중대사인 만큼 ‘완전체’의 결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후에 생길 가능성이 있는 논란서도 그편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헌재법상 탄핵 심판 사건은 접수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인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내년 4월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전에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이 기각되면 윤 대통령은 바로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 인용되면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민생·경제 다 뒷전으로
4대 개혁은 좌초 직전

헌재서 어떤 결론을 내리든 한국 사회는 엄청난 후폭풍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이 기각돼도 6개월,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8개월가량 갈등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가 들어서 안정기에 접어드는 기간까지 합치면 국민은 1년여 동안 정쟁과 대립 구도를 지켜봐야 하는 셈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나비효과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모양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이슈가 비상계엄 사태에 쓸려가고 있다. 특히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한국만 옴짝달싹 못하는 중이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는 암울한 지적도 나온다. 

먼저 민생이 뒷전으로 밀렸다. 지난 12일 소상공인연합회가 실시한 ‘소상공인 경기전망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4%는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 3일부터 11일까지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연말 대목을 기다렸던 자영업자들이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연말 경기에 대한 전망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90.1%)이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서도 정부나 국회는 민생을 뒷순위에 두고 있다. 윤석열정부서 이미 외면받던 국민의 삶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완전히 쓸려나가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매주 진행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서 부정 응답의 1순위 이유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경제/민생/물가’였다.

체감경기가 이미 바닥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언제쯤
끝날까?

여야는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서 비쟁점 민생 법안 28건을 처리했다.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할 근거와 기준을 명시한 AI 기본법 제정안, 단통법 폐지안 등이 통과됐다.

하지만 여야 간 입장 차가 있는 쟁점 법안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곡법 개정안은 입법 발의와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고 주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도록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한 반도체특별법은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여야 간 협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은 과반 의석을 무기로 정부 부처 관계자에 대한 탄핵소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당 대표 사퇴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된 여당은 당내 정리조차 안 되고 있다.

정치권 자체가 헌재의 탄핵 인용 여부와 조기 대선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국민의 삶을 지탱할 지지대가 없는 상태다. 

외교 쪽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당장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라 외교 무대에 나설 수 없다. 미국, 일본 등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내달 출범할 트럼프 2기 정부와 접촉면을 넓혀야 할 시기에 비상계엄 사태가 불거지면서 타국에 밀리게 됐다. 

수장 없는
외교 폭망

여기에 미국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한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23일 <한국 정치 위기, 계엄령과 탄핵>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윤 대통령의 행보로 인해 국민의힘 정부가 주요 외교 정책 계획에 참여할 능력이 약화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와 탄핵 가능성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여러 외교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생긴다고 기술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북한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억지력을 강조하는 상대적으로 강경한 대북 정책 ▲세계 중추 국가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동맹·동반자관계망에 한국 통합 ▲중국 행위를 향한 공개적 비판 ▲일본과 관계 개선·한미일 관계 확대 등을 꼽았다. 

정책 이슈도 실종됐다. 의료·연금·노동·교육 등 이른바 윤정부의 4대 개혁은 좌초 위기에 몰렸다. 윤 대통령은 국회 탄핵안 가결 직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선거에 불리할까 봐 지난 정부들이 하지 못했던 4대 개혁을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해 왔다”고 언급할 만큼 4대 개혁에 공들였다. 

특히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진행한 의대 정원 증원은 의정 갈등만 야기한 채 표류 상태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서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로 정책이 ‘단발성’으로 끝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윤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정책 중 하나였지만 탄핵소추로 동력이 완전히 꺾였다는 분석이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문도 닫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노총이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서 다뤄졌던 ‘계속 고용’ 의제는 논의 재개 시점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계속 고용은 정년을 연장·폐지하거나 정년을 넘긴 노동자를 지속해서 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연내 로드맵 수립이 목표였다.

사상 최초 노벨문학상까지
국민이 갚아야 할 빚으로

‘노동시간 유연화’ ‘노동약자 보호’ 등의 정책도 올스톱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선거공약, 민생토론회 의제 등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던 정책이지만 탄핵 정국으로 여야 간 합의, 노동계 참여가 요원해짐에 따라 법안 제정 등은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중문화계 이슈도 관심서 멀어지는 모양새다. 올 한 해 한국 문학계의 최대 쾌거라고 할 수 있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탄핵 정국에 묻혔다. 지난 10월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한강 열풍’이 서점가를 강타했지만 비상계엄 선포-탄핵 표결이 이어지면서 잠잠해진 모습이다. 

다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와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오버랩된다는 말이 나왔다. 또 한강이 노벨문학상 시상식서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한 수상소감을 남기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한 작가는 “이런 시국이 아니었으면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4월부터 올 한 해를 달궜던 민희진-하이브 간의 갈등도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 소속 아이돌인 뉴진스 멤버 하니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정도로 ‘핫한 이슈’였다. 연예인을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던 차였다. 

‘음악산업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하이브 일부 임직원 사이서 공유되던 문서에 K-팝 팬덤과 연예기획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른바 ‘하이브 사태’는 모기업과 레이블 대표 간의 갈등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음반 밀어내기, 음원 사재기, 굿즈 갑질 등 각종 의혹도 터져 나왔다. K-팝 업계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암흑기
시작되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블랙홀’ 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 사건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재판 결과가 더해지고, 여기에 윤 대통령 등에 대한 내란죄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 사회 모든 이슈가 비상계엄의 소용돌이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경우의 수’에 빠진 상태다. 윤 대통령의 탄핵 인용과 기각, 이 대표의 유죄와 무죄, 내란죄 처벌과 무혐의 등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엄청난 후폭풍이 뒤따를 일이 산재해 있다. 결국 비상계엄의 여파는 국민의 어깨에 얹어지는 모양새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서 언급했듯 ‘5100만명의 국민이 갚아야 할 할부’로.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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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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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이 출범했다. 개문발차 상태다. 수장 공백과 법령 미비, 수사 인프라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중수청의 경우 본청 사무실 공사 마무리까지 두 달여가 소요될 전망이다. 검사·수사관 대부분은 출근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담당했던 사건이 처리되는 데 수개월이 밀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7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 기능을 담당할 공소청 모두 수장과 인력, 하위 법령, 사무 공간 등 총체적 부실 상태로 개청했다. 채용이 확정된 이들은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완성도 안 됐다 중수청은 지난달 7일 김지용 후보자가 초대 청장으로 제청됐으나 여권 내 반발로 인해 추가 검증을 거치느라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중수청법상 중수청 간부급인 1∼5급 수사관은 청장의 추천을 거치게끔 돼있지만, 청장 없이 문을 여는 바람에 첫 인사부터 원칙이 깨졌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정원은 수사관 2567명과 일반직 307명 등 총 2874명인데, 1·2차 특례 임용에 지원한 이들이 총 1962명에 그쳤고 5급 이상은 정원 629명에 지원자 212명으로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청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전까지도 인사가 발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어느 지역의 중수청에 출근해야 할지 통보받지 못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였다. 중수청은 청사를 임대했으나 수사 인프라와 사무 공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본청과 서울청이 쓰게 될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빌딩은 2∼17층을 임대했으나 당장 사용할 준비가 된 것은 여섯층뿐이다. 수사기관의 필수 시설인 조사실과 피의자 신병을 확보할 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 당분간 타 기관의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서울 3곳, 나머지 5개 지역 1곳 등 총 8곳의 경찰서 유치장을 사용하기로 경찰청과 협의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도 6개 지방중수청 인근 교정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아 완성 전까진 경찰과 논의하며 사용하기로 했는데, 개청 직후에도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청의 청사와 시스템을 활용하고, 인력도 상당 부분 이어받아 중수청보다 준비가 순조로웠다. 지난달 22일에 직제안을 확정한 데 이어 29일에는 공소청 개청 날짜에 맞춰 검사 192명의 인사를 단행하는 등 진용을 갖추고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중이다. 다만 공소청 수장인 검찰총장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법무부 장관마저 공석이어서 후보자가 있는 중수청장보다도 임명에 먹구름이 꼈다. 중수청, 수사관 충원 부족한데 5급 이상 간부 1/3 수준 사무실 공사 마무리 최소 두달 “어디로 출근할지도 몰라” 우선 법무부는 공소청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23일 자로 이정현 신임 대검 차장검사를 임명해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공소청은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맞게 하위·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도 끝마치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에 맞게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하는 법령이 100여개에 달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최근 법무부령 24건을 공포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검찰청 관련 명칭들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오는 2일 개청에 맞춰 법령 개정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후속 법안 논의에서 일부 기관이 배제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중수·공소청·경찰 3개 기관의 사건 이첩 관련 규정을 담은 중수청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공소청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공소청 관계자는 나와 있느냐”고 묻자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결정권자 공백으로 기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중수청법에 따르면 중수청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중수청 수사와 겹치거나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관장의 결단이 필수적인데 직무대행 간 협의만으로는 이견을 좁혀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기관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합동수사기구도 문을 닫게 됐다. 서울서부지검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수사팀은 1년2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달 30일 활동을 중단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보이스피싱범죄합동수사부와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도 운영을 멈췄다. ‘검 목소리’ 완전 배제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중수청에서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으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아 합동수사기구가 하던 업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중수청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두세달 뒤에야 다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됐다. 구자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지난 7월 “한 번 더 살펴봐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경찰의 역량과 인력을 감안했을 때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강경파의 입김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라졌다. “공소청의 장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공소청법에 따라 공소청은 출범 시작부터 리더십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 출발하게 됐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는 형사소송법만 개정됐을 뿐 그에 따른 하위 법령과 규칙 등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공소청 직제안마저 출범 열흘 전 가까스로 완성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과 연동해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할 하위 법령은 137개에 달한다. 형법과 민사소송법은 물론 성폭력·스토킹 처벌법 등 개별 특별법과 법무부 소관 관계 법률만 61개에 달한다. ‘검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없어지는 탓에 50개의 대통령령을 정비해야 하고 검사의 수사권이 명시된 각종 수사준칙도 수정해야 한다. 검찰사건 사무규칙은 조문만 300개가 넘는다. 그만큼 법제처의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논란만 검사의 역할 역시 수사 담당과 기소 담당으로 이원화한 데 포함되지 않는 검사는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 수사 역량이 뛰어난 다수의 검사를 중수청으로 보내 국가 수사 역량을 보존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당초 정부안은 검찰청 검사가 중수청으로 이직할 경우 ‘수사사법관’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민주당이 이를 “이름만 중수청으로 바뀐 도로 검찰청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다. 두 기관 출범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김 후보자를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중수·공소청 출범 직전인 지난 1일에서야 옹호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해 “이런 사람을 ‘친윤(친 윤석열) 검사’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허위임을 알면서도 흠집을 내고 공격하기 위해 하는 억지 주장이라면 비판이 아닌 비방이고 국정 조언이 아닌 국정 방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강도 높게 공개 비판해 온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겨냥해 “김 후보자는 문재인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으로 발탁 승진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도 유튜브에서 “심지어는 김 후보자가 ‘친윤’ 검사, ‘친한(친 한동훈)’ 검사라고 일부가 지적한다”며 “여러 가지 추가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실제 그것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도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한 여권 일각의 비판을 이 대통령이 직접 반박한 것에 대해 “전혀 아닌 것을 계속하거나, 아니라고 설명했는데도 계속 프레이밍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옹호했다. 공소청 수장 임명 법무부 장관 있어야 추천 거쳐 가능 대통령령 포함 하위 법령 100여건 깡그리 수정 필요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친명(친 이재명)계 핵심인 김영진 행안위원장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서 “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좀 과하지 않나”라며 “행안위에 중수청장 후보자를 보내서 (인사청문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청이 개문발차하는 만큼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제출될 경우 수장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정감사 기간 중이라도 인사청문회를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김 후보자를 향한 자진 사퇴 압박이 이날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철학도 없고, 친 윤석열 검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당시 항명 사건에서도 동참했다”며 “여러 가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수사 지휘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새 체계가 현장에 뿌리내릴 때까지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김 대행은 “경찰 역량이 충분한지, 권한을 공정하고 절제하며 행사하는지 국민께서 엄중한 눈으로 지켜보신다”며 “관서·수사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경찰서장이 앞으로 중요 사건과 검사 요구 사건 등의 처리 현황을 매일 확인하고 시도청과 국가수사본부까지 교차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 권리 보호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사건 진행에 대한 통지를 내실화하는 등 수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비상 체제 돌입한 경찰 사건 조작과 은폐, 뇌물수수 등 중대 비위가 확인되면 엄정 수사하고, 비위 당사자에 대해서는 파면·해임과 같은 중징계를 원칙으로 삼는 등 내·외부 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 대행은 “‘사건 핑퐁’으로 피해자 권리 구제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우려하는 부실·불공정 수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