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끝나지 않은 탄핵 시나리오

그런다고 얼마나 더 버틸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탄핵 열차가 멈춰 섰다. 시동이 걸릴 듯 말 듯 미적대던 열차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동력 삼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열차를 레일 위에 올린 것은 야권이지만 운전대를 잡은 여당이 브레이크를 잡았다. 탄핵 열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재가동이냐, 전복이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부터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진 7일까지 정치권을 비롯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다. 야권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공개하면서 ‘윤석열 퇴진’을 외쳤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탄핵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고 이탈표 단속에 나섰다. 국민은 서울 여의도, 광화문 등지서 열린 탄핵 찬반 집회에 참석했다. 

숨가쁜 4일
쪼개진 국민

여야는 표결 전까지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야권은 ‘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 탄핵안’을 같이 표결하겠다고 선언했고 국민의힘은 김 여사 특검법에만 표를 던지고 탄핵안 표결 때는 퇴장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그 결과 김 여사 특검법은 부결, 탄핵안은 정족수인 200석을 채우지 못해 표결이 무산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본회의서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결과,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됐다. 2표차로 김 여사 특검법은 최종 폐기됐다.

이후 이어진 대통령 탄핵안 표결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체로 퇴장했다. 안철수 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김예지·김상욱 의원 등이 본회의장으로 돌아와 표를 던졌지만 정족수를 채우진 못했다.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다. 범야권 찬성 표를 192명으로 계산했을 때 국민의힘 의원 8명의 이탈표가 필요했다.  


표면상으론 윤 대통령 부부가 ‘한숨 돌린’ 모양새다. 하지만 여론의 파도는 훨씬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서 보여준 모습이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여사 특검법 표결 후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이 생중계에 고스란히 잡히면서 ‘방탄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모든 일은 지난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에서 시작됐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재현된 비상계엄 상황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화들짝 놀랐다. 계엄군과 국회의원, 시민 등의 대치로 국회 앞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후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나오자 혼란은 더욱 극심해졌다. 

3일 오후 10시25분 비상계엄 선포 이후 4일 오전 4시27분 해제되기까지 6시간 동안 국회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3일 오후 11시께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재적 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최소 150명 이상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집결해야 했다.

여당, 표결 전 퇴장
직무 정지는 면했다

그사이 계엄군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보좌진 등과 대치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됐다. 우 의장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을 진행할 당시 모인 국회의원은 190명이었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의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2시간30여분 만이다.

계엄 선포 해제 발표는 3시간 뒤인 오전 4시27분께 나왔다. 윤 대통령은 생중계 담화를 통해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그러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말했다. 6시간 만의 상황 종료였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계엄군이 국회의원을 체포하거나 시민과 충돌해 사상자가 나오는 등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79년 이후 처음 선포된 비상계엄이 한국 사회에 안긴 충격은 엄청났다. 여론이 들끓었고 특히 정치권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 시계 제로(0) 상황이 됐다.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야권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6당은 4일 오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탄핵안 발의에는 야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헌법이 요구하는 그 어떠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원천 무효인 비상계엄을 발령했다”고 탄핵 사유를 들었다. 

국민의힘은 표결 직전까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종일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였지만 내부 상황이 요동쳤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사실상 탄핵 찬성의 뜻을 밝힌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몇몇 의원이 당론과 상관없이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혼란이 더해졌다. 

7일 국회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탄핵안 표결 결과에 따라 윤 대통령은 물론 여야의 운명이 갈릴 판국이었다. 윤 대통령과 윤석열정부, 여당과 야당 그리고 당 대표까지 정치적 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라 표결에 쏠린 관심이 컸다. 특히 칼자루를 쥔 국민의힘의 행보에 전 국민의 이목이 몰렸다.

여기에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국민 앞에 선 게 변수로 떠올랐다.

45년 만에
6시간 종료

윤 대통령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면서도 “그 과정서 국민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며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다. 

2분 남짓한 짧은 담화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나온 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였다. 일각에서는 탄핵 부결을 위한 ‘쇼’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고 국민의힘 표 단속을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후 대통령실에서는 이날 담화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안 폐기로 정치권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민의힘은 표결 무산의 책임을 모조리 뒤집어 쓸 상황에 처했다. 지난 4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에 친한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이들 가운데 절반만 찬성에 표를 던졌으면 윤 대통령의 탄핵안은 가결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탄핵안 표결은 정치적 판단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야 간 상황이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표결에 작용했다는 것이다.

야권은 상대적으로 탄핵 표결 여파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다. 탄핵안이 가결됐다면 윤 대통령의 직무가 바로 정지되는 상황이었고 부결이어도 책임 소재는 국민의힘으로 향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탄핵안 발의가 민주당의 ‘꽃놀이패’라는 말이 계속 나온 이유다. 여기에 민주당은 표결 전부터 탄핵안이 부결되면 재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부결된 안건은 회기 중에 다시 제출할 수 없는 만큼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되는 오는 10일 이후 임시국회를 소집해 탄핵안을 다시 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서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국가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탄핵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고립된 여
힘 받는 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가결은 시간 문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여론이 심상치 않기 때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 여사 논란과 고 채 상병 사건 등에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실제 국민 사이에서도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상황을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완전히 뒤집혔다. 20~40대 청년층은 생전 처음 겪는 일에 충격을 토로했고 1980년대 비상계엄을 겪은 50대 이상 장년·노년층은 40여년 만에 다시 일어난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탄핵을 통해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4일 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서 반대는 24%에 그쳤다. 


만 18~29세는 86.8%, 40대는 85.3%가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50대 76.4%, 30대 72.3%, 60대 62.1%, 70세 이상 56.8%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서 찬성 비율이 79.3%로 가장 높았고 서울은 68.9%로 나타났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서도 탄핵 찬성이 66.2%로 과반을 넘어섰다. 

탄핵안이 표결까지 가지도 못하고 무산되면서 안 그래도 불붙은 대통령 퇴진 여론에 기름이 더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넘겼어도 여전히 가시밭길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결국 소나기를 피했을 뿐 ‘식물 대통령’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는 여전히 야6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야권의 192표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지난 5일 민주당이 발의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서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돼 직무가 정지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발의·명태균 첩첩산중
국민 신뢰 완전히 잃어

민주당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 감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이유로 최 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또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과정서 이 지검장과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2부장 등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탄핵 사유를 들었다.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명태균 사건도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미래한국연구소의 불법 여론조사 의혹 등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민주당서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일부 여당 인사가 언급되고 있다.

명씨는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김 전 의원을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로 추천하는 과정서 김 전 의원 회계책임자였던 강혜경씨를 통해 8070만원을 받고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 고령군수와 대구시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사람들에게 유력 정치인 등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공천 추천과 관련해 2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일각에서는 명씨가 현재 받는 혐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나온다. 명씨가 과시한 정치적 영향력이 윤 대통령 부부라는 ‘뒷배’로부터 나온 게 확인되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명씨를 둘러싼 의혹을 파헤칠수록 검찰 수사가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 여사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윤 대통령은 그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이용해 김 여사에게 쏟아지는 공세를 막아왔다.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있다”며 몸을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해제-탄핵안 발의-표결 무산 등의 과정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어 김 여사에 대한 공세를 더는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본인도 내란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검·경은 수사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여론이 더 악화되면 국민의힘서도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잃어버린 권위와 신뢰다. 탄핵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10% 후반을 오락가락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2명도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지율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전직하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표결 직전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성난 민심
극복 불가

대외적으로도 윤 대통령은 한국의 ‘리스크’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오판’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비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세계 곳곳서 전쟁이 계속되는 등 급변하는 국제 상황서 윤 대통령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의 탄핵 실패가 윤 대통령의 성공일 수 없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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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