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이슈&인물’ 윤석열 부추긴 김용현 전 국방 장관

총대 메고 나가면 끝?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6시간 만에 해제됐다. 대통령경호처장 자리에 있을 때부터 막강한 권력을 가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야당의 말에 콧방귀를 뀌던 김 전 장관이 탄핵과 특검으로 점철된 국회를 무산시키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6시간 만에 해제한 가운데,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령을 직접 건의한 주체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장관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4일 “김 전 장관이 계엄령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 맞다”고 밝혔다.

부인하다 
건의 인정

김 전 장관은 1959년 경남 마산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 38기로 임관한 예비역 중장이다. 현역 시절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을 거쳤으며, 군 내부 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 등도 역임했다. 한때 군 내 서열 1위인 합참의장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진급에 실패하면서 2017년 중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학창 시절 학도호국단장으로 유명했다. 학도호국단은 1975년 정부가 ‘학원의 총력안보체제를 구축한다’며 학생회 대신 만든 조직으로 호국단장은 현재 학생회장과 유사하다.

김 전 장관은 “학교서 공부도 잘하고 의리가 있는 후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윤 대통령을) 먼저 만나자고 했다”며 “우리는 처음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장관과 윤 대통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나중에 동문회를 통해 서로의 연락처를 다시 알게 된 두 사람은 전화로 근황을 주고받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 2020년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직무 정지로 야인 생활을 하던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술 한잔하자며 부르고 막역한 사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돈독히 한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사회 각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을 소개해줬다. 윤 대통령은 해당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 입문을 결심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부팀장도 맡았다. 당시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실무 작업을 맡았다.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이후 취임 첫날 김 전 장관은 대통령경호처장으로 임명됐다.

경호처장 때부터 막강한 권력
인사청문회서도 나온 계엄설

윤 대통령의 신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경호처장이 대통령 경호에 필요한 구역서 군·경찰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대통령경호처는 지난 2022년 11월9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 구역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경호구역서 경호활동을 수행’이라는 제한을 두지만 경호처가 군·경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문민정부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개정안대로라면 경호처장은 경호처 요원 700여명과 1300명의 경찰, 1000명의 군병력 등 모두 3000여명을 자신의 지휘권 아래 거느리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이 경호처 권한 강화를 추진했던 명분은 사방이 트여있는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의 지리적 특성상 경호 인력·장비의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당 측은 이를 비상령 선포 시 시민의 반발을 제압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받아들였다.

해당 시행령 개정안은 논란 끝에 보류됐다가 지난해 5월 ‘지휘·감독’ 대신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한다’는 문구를 넣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경호처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 장관은 윤석열정부의 세 번째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야권은 계엄령 준비 의혹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이 충암고 4년 후배인 이상민을 행안부 장관에 앉힌 데 이어 국방부 장관 자리에까지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을 앉히려는 것은 “탄핵 및 계엄 대비용 인사”라는 주장이었다.

계엄법상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건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다.

어떻게 
움직였나

야권은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으로 옮겨 가면 일명 ‘충암파’라 불리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들이 군정·군령권은 물론, 실병력의 동원과 통제에 필수적인 정보 계통의 요직을 장악하게 된다고도 지적했다.

실제 대북 특수정보 수집의 핵심 기관인 777사령부 수장 박종선 사령관은 물론, 방첩사령부의 여인형 사령관(중장)까지 모두 충암파다. 특히 박근혜정부 시절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후신인 방첩사는 계엄 선포 시 주요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정보·수사기관을 조정·통제할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는 조직이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거듭된 ‘반국가 세력’ 언급 역시 계엄 선포를 위한 밑 작업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지난 9월7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총 8번에 걸쳐 ‘반국가 세력’을 언급했다. 이는 계엄 시 문재인과 이재명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척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도 여소야대 정국이었는데, 해당 문건에는 ‘국회의원들이 계엄을 해제할 경우,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짚었다.

이 같은 야권의 계엄령 준비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권은 “괴담 선동”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김 전 장관도 인사청문회서 계엄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국방부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었던 지난 9월2일, 그는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준비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부승찬 의원 등의 질의에 “국민들과 군은 계엄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장관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서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을 하겠나? 군이 과연 따르겠는가? 저라도 안 따를 것 같다”며 “계엄 문제는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대통령실도 계엄령 준비 의혹에 대해 단호히 일축했다. 정혜전 대변인은 지난 9월2일 브리핑을 통해 “나치 스탈린 전체주의의 선동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계엄론으로 국정을 마비시키려는 야당의 계엄 농단, 국정 농단”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해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면 당 대표직을 걸라”고 경고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취임 이후인 지난 10월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계엄령 발령을 위한)요건이 정해져 있고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발령되고 나면 국회서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있다. 이런 것들이 다 돼있는데도 불구하고 (야권서)계엄, 계엄하시는 것에 대해서 저도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는 자기가 한 말을 잊은 듯이 2~3개월 만에 윤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4일 “김 전 장관이 계엄령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입법 독재’와 ‘국정 마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신이냐
간신이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심화 담화를 마치자 김 장관은 전군 지휘관 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김 전 장관이 지명한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약 1시간 뒤 계엄사 포고령 1호를 발표했고 특전사 대원들로 구성된 계엄군은 헬기를 타고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계엄군 투입까지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셈이다. 

이날 국회에는 경내에 두 차례에 걸쳐 계엄군 약 280여명이 진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방부는 지난 3일 밤 11시48분부터 4일 오전 1시18분까지 24차례 헬기를 동원해 무장한 계엄군 230여명을 국회 경내에 진입시켰고, 이와 별도로 계엄군 50여명이 추가로 국회 담장을 넘어 경내에 들어왔다.

무장 계엄군은 국회의사당 정현관과 후면 안내실을 통해 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다가 불발되자 망치와 소총 등으로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안으로 난입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과 박 계엄사령관의 지휘는 특전사와 수방사를 제외한 나머지 일선 부대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사령관에 합참의장 대신, 계엄 관련 부서도 없는 육군의 수장을 앉히는 바람에 일선 부대에는 계엄 관련 지시가 제대로 내려가지 못했다. 또 수도권을 책임지는 육군지상작전사령부, 그리고 예하의 수도군단의 장교 등 간부들은 계엄 선포에 맞춰 부대로 들어갔지만 별다른 임무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계엄군은 여의도 국회뿐 아니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까지 점령을 시도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30분쯤 소총을 비롯한 무장을 갖춘 군인 110여명이 과천 선관위 청사로 집결했다. 이들은 버스 형태 차량을 타고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가신 충암파 실세
그날 밤 작전 완전히 실패

군인들이 청사 진입을 시도하면서 어떤 내용을 고지했는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앙선관위 청사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각 수원시에 위치한 선관위 연수원 등지에도 계엄군이 전방위 배치됐으며, 지방 선관위에는 200여명의 군인들이 집결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2시간30여분 후인 지난 4일, 국회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고 4시경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선언하자 계엄군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계엄령이 해제된 직후 김 전 장관은 국방부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현 시간부로 비상소집을 해제한다”며 “중과부적이었다. 수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과부적은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대적하지 못한다’는 사자성어다.

김 전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이날 오전 5시45분께 국회 의안과에 김 전 장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대통령은 이 참담한 상황에 대해 직접 소상히 설명하고 김 전 장관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계엄령 선포 사태에 대해 김 전 장관이 “국민들께 혼란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국방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오후 6시13분께 출입기자단의 휴대전화 문자로 보낸 ‘비상계엄 관련 국방부 장관 입장’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본인은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 사무와 관련해 임무를 수행한 전 장병들은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계엄은 해제됐고 국민들은 일상을 회복하고 있으나, 국내 정치 상황과 안보 상황은 녹록지 않다”며 “국방부는 이런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당면한 현안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국방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군은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해 국가방위와 국민 안전을 뒷받침할 것이며, 군에 부여된 본연의 임무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탄핵소추안은 자동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김 전 장관은 내란죄에 대한 수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안보 상황

국회 국방위원회는 지난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에 대해 긴급 현안 질의를 진행했다. 김 전 장관과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소속 부대서 계엄군 병력을 동원한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이 출석했다.

야당은 특히 박 총장에게 정치활동 금지, 언론 통제 등을 명시한 계엄포고령 작성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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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여야 6당이 참여한 개헌 시도는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입법적 전격전을 선호하는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청야전술은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지난 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후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처리를 중단했다. 정족수 미달 투표 불성립 현행 헌법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를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 유권자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지난 7~8일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라서 개헌안 가결에는 19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106명이다. 여야 6당 의원 전원이 개헌안 투표에 참여해 찬성한다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11명 이상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 개헌안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명시 ▲계엄 선포 시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도록 변경 ▲국회가 계엄 해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연임 불가 선언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며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헌법 전문에 담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헌법 전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게 아니라, 통합적 역사 인식 아래 균형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다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개헌은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만 집중해서, 국회에 예산·입법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기형적 구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권력남용을 이유로 언제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탄핵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주하는 국회도 해산의 심판대에 설 수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성된다”며 “의회해산권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에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마다 의회해산권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헌안 속 숨겨진 덫을 잘 파악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헌은 통치 구조 개헌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적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삽입된 조항이다. 대통령이 해당 조항의 효력을 무시하면서 임기 연장·중임 변경을 추진하려면 하야한 후 재선을 노려야 한다. 건국·새마을운동·의회 해산 쏟아내…과연?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구조상 불가능한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송 원내대표가 헌법 전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실제로 시도할 경우, 엄청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전문은 실제 헌법재판에서 보충적 규범으로 활용되는 등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취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평가가 끝난 불가역적 가치를 담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 이념 등이 담겨있다. 여야 6당이 전문 추가를 시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재평가를 주도했던 정권은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였다. 송 원내대표가 주장한 건국 이념 반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곧바로 충돌한다. 임시정부 법통 논란은 해방 직후에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논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던 진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이었다. 제헌의회도 임시정부 시절 임시의정원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방향으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후 역사적 상식으로 굳어졌다가 뉴라이트 진영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면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으로까지 흘러간 것이다. 건국 이념 반영은 임시정부 법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이 주장한 의회해산권에 대해서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의회해산권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가 보유하는 권한이다. 의회가 갖는 내각불신임권과 함께 상호 견제를 위한 짝패를 이룬다. 국무총리가 있고, 현역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우리 통치 체제는 일정 부분 의원내각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권을 가질 뿐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졌던 것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던 프랑스 드골 헌법을 참고했다. 역사적 평가 불가역 가치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6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헌안의 주요 내용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은 모두 전신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을 포함한 국민의힘의 약점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4·19 혁명에 이어 역사적 약점이 헌법 전문에 추가되는 굴욕을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부마 민주항쟁의 무대 부산·마산은 오랫동안 국민의힘을 탄탄하게 받쳐주던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부산·경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경합 지역이 됐다. 국민의힘은 개헌 투표에 불참하면서 부산·마산의 위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걷어차는 외통수에 갇혔다. 비상계엄 관련 개헌안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개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일단락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업보가 헌법에 명백하게 못 박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는 암시가 새 개헌안에 담기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 6당 중 민주당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구조적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기습적인 총력전을 시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은 이미 6·3 지방선거라는 총력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선 “개헌 시도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력전 속 총력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개헌 시도와 6·3 지방선거를 묶는 연환계를 구사하면서 전쟁을 양면 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세가 줄어들어 물량 동원에 한계를 보이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심리적·물리적 과부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장 대표의 지도력 논란까지 파고들어 결정적 지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명분까지 꺾으려 했던 난도 높은 승부수였다. 개헌안 표결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의 궁색한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에 “졌지만 지지 않은 승부”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그 궁색한 현실 때문에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고전적인 청야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총력 공격 총력 방어 이는 명장들이나 강대국이 자주 구사하던 전법이었던 사실을 전쟁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제1차 고당(고구려-당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략을 바꿔 수시로 소규모 부대로 고구려를 침공해 변방을 교란하는 등 소모전을 병행했다. 태종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2회에 걸쳐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제2차 고당 전쟁 당시 사수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지만, 방어선이 한반도 내부로 점점 밀리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제3차 고당 전쟁에서는 내부 배반까지 겹쳐 고구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도 독일군이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기습을 당해 방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는 총력전을 진행해 동부전선 내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민주당이 노린 전세는 이 같은 구도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재임할 당시부터 윤석열정부를 상대로 30건이 넘는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법안 물량 공세를 펼치는 등 총력전 양상의 입법전을 주도했다. 17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 민주당은 압도적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에 대한 일부 유권자의 반감을 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층이 결집하는 등 선거 구도가 백중세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고, 개헌까지 시도했다. 지방선거 종료 이후엔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선거가 없는 만큼, 오는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실제 정치학·정책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존 W. 킹던 미국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정책의 창’ 이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준비된 해결책이 있으며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 등 3박자가 맞물리면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선거 종료 이후 유권자로부터 직접 심판받지 않는 그 10개월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헌 및 이 대통령 공소 취소 등 물량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업보·약점 헌법 전문 실리면 위헌 정당? 투표 불참·필리버스터…청야전술 한계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의힘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청야전술격 수동적 방어밖에 없다. 법안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게 된다. 그럴수록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중도층의 의심을 받게 된다. 진영이 확고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중도층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방법이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거듭 사용하면서 식상해져 그만큼 비장함의 강도도 낮아졌다. 민주당의 입법적 전격전과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는 일종의 경로가 됐다. 양당 모두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송 원내대표와 나 의원을 통해 ▲건국 담론 ▲새마을운동 ▲근대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 반격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담론이기 때문에 기존 경로를 고칠 만큼 파급력이 강한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 아울러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거 기간이 아닌 10개월 동안에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층의 설득을 얻을 영구적 선거운동을 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해선 중도층의 의견이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민주당으로서도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헌안의 경우는 다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요건 변화 등은 국민 대다수가 이미 평가를 마친 사안이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중도층·보수층의 비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영구적 선거운동을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까지 대비하는 입법적 공세를 치르려고 한다. 청야전술은 자신의 경제 기반을 모두 허물면서 진행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국민의힘이 투표와 토론을 포기하거나 체력을 소비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할수록 대중·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어 지지 기반인 부산·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헌법 전문에 담는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2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이 몰락을 이기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운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은 오스만 술탄국이 준비한 대형 ‘우르반 대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 예니체리 등 최정예 병력을 앞세운 오스만 술탄국의 물량 공세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에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용병 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궁색한 현실 자충수 되나 물론 청야전술에도 한계는 있다. 국민의힘에는 연개소문이나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조차도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는 정책의 창이 열릴 것이다. 지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제 청야전술을 넘어선 새 전술을 고안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연 정책의 창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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