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끝까지 갈’ 국회의 반격

계엄군 앞에 여야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는 155분 만에 끝났지만 여진은 이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서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들이닥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던 탓일까? 국회는 기어코 방아쇠를 당긴 윤 대통령을 향해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약 44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한달음에 국회로 달려간 여야 국회의원 190명은 속전속결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긴박했던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자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섣불렀던
자책골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가결 직후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이번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실질적 요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불법이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는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기습으로 선포한 만큼 절차적으로 명백한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즉시 하야하라”고 소리를 높이며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을 경우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탄핵, 하야 등 직접적인 단어와 거리를 두던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밝힌 셈이다.

민주당보다 앞서 윤석열정부 퇴진을 외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윤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주장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은)군사 반란에 준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며 “국회서 탄핵돼야 할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개혁신당은 “탄핵이 아니라 더 강력한 처벌을 해도 모자란 미치광이 짓을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지금 벌이고 있다. 미치광이를 몰아내는 데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으며 진보당과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도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조차 계엄 선포 직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야6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라는 점을 입 모아 강조했다.

헌법 제77조 1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엄령 떨어지자 앞다퉈 여의도로 집결
“국회를 적으로 돌린 대통령” 뒷감당은?

윤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민주당의 입법·예산안 독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등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는데 해당 이유가 전시·사변에 맞먹을 만큼 비상사태인지 강한 의문이 남는다는 설명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절차적 문제도 논란이다. 계엄법 제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는 시행 일시와 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해야 한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시점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마친 약 1시간 후인 지난 3일 오후 11시 반 경으로 대부분의 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국회에 통보도 없이 담화 형식으로 (계엄을)선포한 게 제정신인가”라며 이 역시 위헌 소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에는 “위헌 여부를 따져봐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내란이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라며 “내란죄에 가까운 행위다. 모든 죄를 따져 국민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야6당은 이런 요소가 담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탄핵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 셈이다.

국민의힘엔 비상이 걸렸다. 국민의힘 지도부조차 예견하지 못한 탓이었는지 계엄 선포 당일 밤에도 연일 오락가락했으며 더 나아가 분열되는 모습까지 보였다.

“국회 차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겠다”며 국회로 향하던 한 대표는 “당사에 머물러야 한다”는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결국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투표에는 국민의힘 의원 18명(곽규택·김상욱·김성원·김용태·김재섭·김형동·박수민·박정하·박정훈·서범수·신성범·우재준·장동혁·정성국·정연욱·조경태·주진우·한지아)만 참여했다.

여당도
커버 불가?

이들은 대부분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된 인사다.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여야 간의 극한 대립 가운데 국민을 볼모로 삼은 비상식적 국회 운영으로 파탄에 이르렀다”면서도 “그 어떤 이유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명분 없는 정치적 자살 행위에는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 대통령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제 국민께 나와 소상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12월3일 윤 대통령의 불법적 계엄 선포는 실패했다. 헌정 유린이자 대한민국 정치사의 치욕”이라며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질서 있게 물러나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후폭풍이 몰아치자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한 대표, 추 원내대표, 그리고 국민의힘 중진인 주호영·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과 함께 대책 회의를 가졌다.

문제는 대책을 내놓겠다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또다시 야당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이 남발하는 탄핵 폭거를 막는 게 뭐가 잘못이냐”며 경고의 의미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게 화근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한 대표의 아리송한 행보가 시작됐는 평이 나온다. 한 대표는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계엄이 경고성일 수 없다. 계엄을 그렇게 쓸 수 있겠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사태는 저와 국민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고 공감하기 어려웠다”며 “당 대표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 대한 사과와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 두 가지만 언급한 것과 비교했을 때 사뭇 다른 태도라는 해석이다.

분명히
한배인데…

한 대표가 총대를 메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는 풀이가 나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대표의 행보에 탄력을 받아 친한계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의원은 지난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을 향해 ‘진실된 사과’와 ‘책임자의 조사 및 처벌’을 촉구하며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임기 단축은 탄핵으로 인한 국정 마비와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던 때 개혁신당이 임기 단축 카드를 제시한 적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서 이토록 날 선 목소리가 여과 없이 흘러나온 건 처음이다.


야당의 탄핵 시도를 막기에도 벅찬 상황서 친한계의 독자적인 행보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당의 화합을 강조한 건 원내가 아닌 원외 인사라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두 번 다시 박근혜처럼 헌정이 중단되는 탄핵 사태가 재발돼선 안 된다”며 “국민의힘은 당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일치단결해 탄핵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친윤(친 윤석열)계로 꼽히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금 정부와 여당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앞에 닥친 혼란을 해소해 국민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이라며 “분열은 무책임일 뿐이다. 각자의 이견은 접어두고 오직 민생과 국가 안위에 전념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 단축 주장한 국힘 ‘소장파’
앞으로 첩첩산중…어두운 윤 앞날

야6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보고하던 날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갈등이 다소 봉합되는 듯했다. 추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은 또 한 번의 역사적 비극을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108명 의원의 총의를 모아 반드시 부결시키겠다”고 단결을 강조했다.

추 원내대표는 탄핵안 부결 당론에 사실상 한 대표도 동의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당시 국민의힘 소장파가 “탄핵 표결 관련해 정해진 바 없다” “(임기 단축 개헌에)공감하는 당내 의원이 있다”고 주장했던 만큼 추가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당이 주춤하는 사이 민주당은 추가적인 맹공을 퍼부었다. 지난 5일 각종 상임위서 ‘비상계엄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열고 군 관계자들을 향해 날을 세운 것이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국방위 현안 질의서 그날 밤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향해 “난 총장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앞으로 ‘당신’이라고 호칭하겠다”며 “대한민국 조국과 국민에 총칼을 겨눴다.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하고 단두대서 처단돼야 할 인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국민의힘이 “내란죄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집단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자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국민의힘 성일종 국방위원장은 현안 질의서 “선진 대한민국서 계엄 선포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안타깝다”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과정서 위법은 없었는지 등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국방위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과 한기호 의원은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난감하고 국민께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여의도 뒤편에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그 어렵다는 여야 통합을 해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아직 두 진영 사이에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하지만 탄핵과 하야, 무엇이 됐든 윤 대통령에게 치명적이긴 매한가지다.

계엄령이 휩쓸고 간 국회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44년 만에 다시 마주한 계엄 사태에 국민도 여의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 진영이 크게 흔들릴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4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