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끝까지 갈’ 국회의 반격

계엄군 앞에 여야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는 155분 만에 끝났지만 여진은 이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서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들이닥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던 탓일까? 국회는 기어코 방아쇠를 당긴 윤 대통령을 향해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약 44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한달음에 국회로 달려간 여야 국회의원 190명은 속전속결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긴박했던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자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섣불렀던
자책골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가결 직후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이번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실질적 요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불법이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는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기습으로 선포한 만큼 절차적으로 명백한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즉시 하야하라”고 소리를 높이며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을 경우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탄핵, 하야 등 직접적인 단어와 거리를 두던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밝힌 셈이다.

민주당보다 앞서 윤석열정부 퇴진을 외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윤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주장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은)군사 반란에 준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며 “국회서 탄핵돼야 할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개혁신당은 “탄핵이 아니라 더 강력한 처벌을 해도 모자란 미치광이 짓을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지금 벌이고 있다. 미치광이를 몰아내는 데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으며 진보당과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도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조차 계엄 선포 직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야6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라는 점을 입 모아 강조했다.

헌법 제77조 1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엄령 떨어지자 앞다퉈 여의도로 집결
“국회를 적으로 돌린 대통령” 뒷감당은?

윤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민주당의 입법·예산안 독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등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는데 해당 이유가 전시·사변에 맞먹을 만큼 비상사태인지 강한 의문이 남는다는 설명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절차적 문제도 논란이다. 계엄법 제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는 시행 일시와 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해야 한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시점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마친 약 1시간 후인 지난 3일 오후 11시 반 경으로 대부분의 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국회에 통보도 없이 담화 형식으로 (계엄을)선포한 게 제정신인가”라며 이 역시 위헌 소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에는 “위헌 여부를 따져봐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내란이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라며 “내란죄에 가까운 행위다. 모든 죄를 따져 국민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야6당은 이런 요소가 담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탄핵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 셈이다.

국민의힘엔 비상이 걸렸다. 국민의힘 지도부조차 예견하지 못한 탓이었는지 계엄 선포 당일 밤에도 연일 오락가락했으며 더 나아가 분열되는 모습까지 보였다.

“국회 차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겠다”며 국회로 향하던 한 대표는 “당사에 머물러야 한다”는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결국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투표에는 국민의힘 의원 18명(곽규택·김상욱·김성원·김용태·김재섭·김형동·박수민·박정하·박정훈·서범수·신성범·우재준·장동혁·정성국·정연욱·조경태·주진우·한지아)만 참여했다.

여당도
커버 불가?

이들은 대부분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된 인사다.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여야 간의 극한 대립 가운데 국민을 볼모로 삼은 비상식적 국회 운영으로 파탄에 이르렀다”면서도 “그 어떤 이유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명분 없는 정치적 자살 행위에는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 대통령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제 국민께 나와 소상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12월3일 윤 대통령의 불법적 계엄 선포는 실패했다. 헌정 유린이자 대한민국 정치사의 치욕”이라며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질서 있게 물러나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후폭풍이 몰아치자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한 대표, 추 원내대표, 그리고 국민의힘 중진인 주호영·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과 함께 대책 회의를 가졌다.

문제는 대책을 내놓겠다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또다시 야당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이 남발하는 탄핵 폭거를 막는 게 뭐가 잘못이냐”며 경고의 의미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게 화근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한 대표의 아리송한 행보가 시작됐는 평이 나온다. 한 대표는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계엄이 경고성일 수 없다. 계엄을 그렇게 쓸 수 있겠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사태는 저와 국민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고 공감하기 어려웠다”며 “당 대표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 대한 사과와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 두 가지만 언급한 것과 비교했을 때 사뭇 다른 태도라는 해석이다.

분명히
한배인데…

한 대표가 총대를 메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는 풀이가 나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대표의 행보에 탄력을 받아 친한계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의원은 지난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을 향해 ‘진실된 사과’와 ‘책임자의 조사 및 처벌’을 촉구하며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임기 단축은 탄핵으로 인한 국정 마비와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던 때 개혁신당이 임기 단축 카드를 제시한 적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서 이토록 날 선 목소리가 여과 없이 흘러나온 건 처음이다.


야당의 탄핵 시도를 막기에도 벅찬 상황서 친한계의 독자적인 행보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당의 화합을 강조한 건 원내가 아닌 원외 인사라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두 번 다시 박근혜처럼 헌정이 중단되는 탄핵 사태가 재발돼선 안 된다”며 “국민의힘은 당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일치단결해 탄핵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친윤(친 윤석열)계로 꼽히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금 정부와 여당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앞에 닥친 혼란을 해소해 국민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이라며 “분열은 무책임일 뿐이다. 각자의 이견은 접어두고 오직 민생과 국가 안위에 전념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 단축 주장한 국힘 ‘소장파’
앞으로 첩첩산중…어두운 윤 앞날

야6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보고하던 날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갈등이 다소 봉합되는 듯했다. 추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은 또 한 번의 역사적 비극을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108명 의원의 총의를 모아 반드시 부결시키겠다”고 단결을 강조했다.

추 원내대표는 탄핵안 부결 당론에 사실상 한 대표도 동의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당시 국민의힘 소장파가 “탄핵 표결 관련해 정해진 바 없다” “(임기 단축 개헌에)공감하는 당내 의원이 있다”고 주장했던 만큼 추가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당이 주춤하는 사이 민주당은 추가적인 맹공을 퍼부었다. 지난 5일 각종 상임위서 ‘비상계엄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열고 군 관계자들을 향해 날을 세운 것이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국방위 현안 질의서 그날 밤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향해 “난 총장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앞으로 ‘당신’이라고 호칭하겠다”며 “대한민국 조국과 국민에 총칼을 겨눴다.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하고 단두대서 처단돼야 할 인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국민의힘이 “내란죄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집단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자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국민의힘 성일종 국방위원장은 현안 질의서 “선진 대한민국서 계엄 선포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안타깝다”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과정서 위법은 없었는지 등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국방위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과 한기호 의원은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난감하고 국민께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여의도 뒤편에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그 어렵다는 여야 통합을 해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아직 두 진영 사이에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하지만 탄핵과 하야, 무엇이 됐든 윤 대통령에게 치명적이긴 매한가지다.

계엄령이 휩쓸고 간 국회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44년 만에 다시 마주한 계엄 사태에 국민도 여의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 진영이 크게 흔들릴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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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