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실패한 영웅’ 장태완

재조명되는 장군의 외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놈들 거기 그대로 있거라. 내가 전차를 몰고 가서 싹 깔아 죽일 테니!” 이 대사는 영화 <서울의 봄> 명대사로 장태완 장군이 실제로 12‧12 사태 당시 신군부에 실제로 한 말이다. <일요시사>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노력한 장 장군의 행보를 재조명했다.

12‧12 사태가 발발한 지 44년이 지나 영화 <서울의 봄>으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전두광(실제 인물 전두환) 패거리와 이를 막고자 한 이태신 장군(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단 9시간의 대립으로 구성돼있다.  

누리꾼들은 쿠데타에 끝까지 맞선 이태신 장군을 응원했다. 이태신 장군의 실제 인물은 장태완 소장이다. 장 장군은 1931년생으로 경상북도 칠곡군서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해 11기로 임관했다.

전두환 견제
극적인 9시간 

소위 총알받이였던 육군종합학교 소위 가운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장교였다. 이후 제5군단 참모장, 1973년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으로 발탁된 데 이어 12‧12 사태 3주 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장 장군이 임명될 당시 국가는 10‧26 사태가 발생한 후 일부 계엄 체제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지면 총 책임은 대통령이 맡게 되지만 일부에 한해 계엄령이 내려지면 국방부 장관이 총책임을 맡게 된다.


최규하가 제주도를 제외하고 계엄을 선포하면서 계엄령 이후 ‘계엄사령부’가 유일한 권력의 중심이 됐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수사 총책을 맡은 전두환은 더더욱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됐다.

계엄사령관을 맡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79년 11월 장 장군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수도경비사령관은 서울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며 헌병, 특공, 방공 병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주 만에 12‧12 사태가 발생했다. 12‧12 사태가 성공한 뒤 신군부에 대항했던 장 장군은 신군부에 체포돼 서빙고서 45일간 조사를 받았다. 장 장군은 1980년 2월 초에 수사관으로부터 예편서를 쓰라는 요구를 받았고 그는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군 생활을 마치게 됐다. 

1979년 12월12일 저녁 전두환이 움직였다. 신군부 소속 지휘관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 후 경복궁 옆 구 일본 육군 헌병 주둔지에 위치한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집결했다. 합동수사본부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허삼수 육군 보병 대령은 합수부 수사관들 및 수경사 33헌병대와 함께 정 총장의 관저를 찾아가서 김재규에 동조했다는 혐의에 대한 진술조사를 해야겠다는 명목으로 정 총장의 신병을 확보했다.

당시 장 장군은 전두환의 간계에 의해 동료 장군 한 명과 연희동에 있는 요정(고급 술집)으로 초대받아 가볍게 술 몇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 총장이 불법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수도경비사령부로 즉시 돌아갔다.

그가 부대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사전에 치밀하게 작당한 대로 움직인 신군부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등 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장 장군은 불리한 상황에도 정 총장의 신병을 풀어달라고 신군부 측에 전화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를 회유하려는 신군부 측에 “너네한테 선전포고다 인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라며 일갈하고 전화를 끊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장 장군은 신군부 반란군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정 총장 관저에 즉각 경비 병력을 보내 구출을 시도하며 33경비단의 전차중대를 보내 반란군 일당을 제거하려고도 했다. 또 대한민국 육군본부서 피난 온 육군 수뇌부와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작전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 신군부에 넘어가지 않은 9공수에 보안사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천만이 본 <서울의 봄> 이태신 실제 인물
“싹 깔아 죽인다” 하나회와 끝까지 대립

이 소식을 들은 신군부는 매우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공수의 병력이 경인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이내로 서울에 진입할 수 있는 반면, 신군부 세력의 1, 3공수의 병력의 교통요건이 더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9공수의 병력이 본거지에 들이닥치면 신군부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란군 측은 9공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육군본부 측에 전화를 걸어 “서울 한복판서 아군인 국군끼리 전쟁을 벌이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며 “우리도 더 이상의 무력 동원은 안 할 것을 약속할 테니 진압군 측에서도 9공수를 원대 복귀시켜라”는 내용의 상호 신사협정을 제안했다.

육군본부 수뇌부들은 남침의 절호의 기회를 맞은 김일성을 눈앞에 두고 같은 국군 병력들끼리 그것도 서울 도심지서 대규모 유혈 사태를 벌이는 위험천만한 참극만은 피하자는 이유로 신사협정을 받아들인다. 

반란군 진압의 실질적인 최고지휘관이었던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은 9공수여단장에게 부대로 복귀할 것을 지시했고 9공수여단은 이 명령에 따라 병력을 부천IC 부근서 회군시킨다.

자신들을 칠 수 있던 유일한 군부대였던 9공수가 본대로 되돌아가자 하나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신군부는 협정을 지키지 않고 바로 1공수를 대한민국 국방부와 육군본부로 보내고 3공수가 특전사령부를 공격하도록 했다.

육군본부와 국방부는 1공수에 점령당했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3공수에 의해 체포됐다.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려다 반란군 총격에 숨을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그나마 남은 우군이었던 육본과 국방부도 점령당하고 특전사령부까지 반란군 손아귀에 떨어지면서 진압군 거점은 수도경비사령부만 남게 된다. 장 장군은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병, 취사병, 자기 휘하에 있는 극소수 전투병 등을 합한 100여명과 남은 전차 중대 4대를 소집하고 보안사를 직접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차부대마저 배신하면 병사들이 다 죽는다는 장교들의 설득과 반란군의 도청, 반란군에게 항복한 노재현 국방 장관의 사실상 백기투항하라는 지시를 들은 장 장군은 허탈해하며 병력들을 해산시켰다. 

“난 죽기로 
결심한 놈”


이후 반란군이자 헌병단 부단장인 신윤희 중령에게 체포돼 서빙고서 45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장 장군은 해가 바뀐 1980년 2월 초에 수사관으로부터 예편서를 쓰라는 요구를 받았고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군생활을 마쳤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장 장군은 예편서를 쓰기 직전 전두환을 직접 만났다. 장 장군은 “전두환이 12‧12 사태 관련 경위를 묻자 자기들은 책임이 없고 장 선배가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2‧12 사태가 성공하자 전두환보다 윗기수인 육사 5기(정승화 총장)~8기와 종합행정학교 출신들이 대대적으로 전역하게 됐으며 기수와 상관없이 전두환 측에 비우호적인 세력들도 좌천되거나 군문을 떠났다.

이로서 전두환과 하나회 일원들은 군부 요직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실권자가 됐고, 이후 이들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와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5‧17 내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등의 피를 뿌리면서 결국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장 장군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들의 체포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다 과음으로 별세했다. 

장 장군은 이에 대해 “완고한 선비 기질이었던 제 아버님께서는 12‧12 사태 소식을 접하신 후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드러누우셨다”며 “예로부터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 집안은 모반자 밑에서 살아갈 수 없는 일이라시며 식음을 단절하시다 내가 석방되고 난 뒤인 80년 4월18일 73세로 별세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장군은 더 큰 슬픔을 겪었다. 장 장군의 아들이 실종됐다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장 장군 아들은 대학 입시 준비를 하던 6개월 간 보안대원 2명이 방을 차지하는 소란 속에서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에 진학했다. 1982년에는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평소와 같이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실종됐다가 칠곡군 낙동강변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들의 실종 
시체로 발견

장 장군은 회고록에 “만 한 달 동안 엄동설한의 강추위 속에서 낙동강의 매서운 강바람을 쐰 탓인지 전신은 돌덩이처럼 꽁꽁 얼어있었다. 나는 얼어있는 아들의 얼굴에다 내 얼굴을 비벼대면서 흐르는 눈물로 씻겨주며 입으로는 아들의 눈부터 빨아 녹였다”고 적었다.

이어 “얼마 동안 빨다 보니 아들의 눈 안에서 사탕만한 모난 얼음 조각들이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이 아들놈이 마지막 흘린 눈물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삼켜버렸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장 장군은 “우리 내외의 인생은 사랑하는 성호(아들)가 이 세상을 떠났던 1982년 1월9일로 끝난 것”이라며 “이제 남은 인생은 더부살이로서 우리 일가 3대를 망친 12·12 사태를 저주하면서 불쌍한 외동딸 현리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는 전두환정부 시절 공기업인 한국증권전산(현 코스콤) 사장에 임명됐다. 한국증권전산은 증권거래소 자회사로 각 증권회사의 전산 업무를 공동 처리하는 회사다.

같이 반란군에 저항한 김진기 헌병감이나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신군부 정부에 여러 보직을 제안받고도 야인으로 지냈지만 장 장군은 공기업 사장직을 수용하자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장 장군도 신군부를 용서하진 않았다. 장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이한동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이 연락해 아들의 사망 이후 집안에만 있으면 더 속이 상한다며 직장서 근무를 통해 슬픔을 잊고 집안도 수습하라고 조언을 했고, 장태완도 거부감이 심했지만 가족 회의 끝에 남은 딸이라도 살려야겠다고 생각해 수락한 것이다.

장 장군은 이후에도 12‧12 사태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1993년에는 여러 장성과 함께 전두환 등을 반란, 내란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반란세력 대적한 참군인들 재평가
12·12 사태 이후 가족들 비극까지

1996년 12‧12 사태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전격 구속된 노태우·전두환 재판서 증인으로 참석해 “한때는 함께 국방에 열심을 다하던 입장이었는데 어쩌다 그리 됐는지 모르겠소”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장 장군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에 따라 비례대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때 장태완은 국회서 386세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만나 “12·12 쿠데타를 내가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러분이 그간 고생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활동 당시엔 장성 경력을 내세워 국방 분야서 주로 일했는데, 성향은 민주당 내에선 안보 보수파로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서도 현실 여건상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편이었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의 선제 작전으로 북한 해군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북한 측 경비정을 격침시켰어야 한다”며 “어망 때문에 초계함 접근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평상시에 기동 훈련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곤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훈특보를 맡았다가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해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주장했다. 이후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결정되자 승복했고 2002년 12월17일 노무현 후보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사태가 일어나자 새천년민주당의 당론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동참했으나 정작 표결은 미국 방문으로 불참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불출마,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0년 7월26일 향년 78세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두환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과 2205억원의 추징금을, 노태우에 대해서는 징역 17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죄목은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초병 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이었다.

하나회 최후
전원 유죄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서 “우리나라의 헌법 질서 아래서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의 정권 장악에도 불구하고 결코 새로운 법질서의 수립이라는 이유나 국민의 합의를 내세워 형사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12‧12 사태 반란군에 참여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유죄를 확정지었다. 

이어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양쪽의 상고를 전부 기각해 황영시, 허화평에게 징역 8년, 정호용, 이희성, 주영복에게 7년, 허삼수 6년, 최세창 5년, 차규헌, 신윤희, 박종규에게 3년6개월을 각각 확정지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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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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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