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대노할’ 서울 재개발 비리 복마전

대통령 안 부럽다 “조합장이 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서울의 한 재개발조합장이 억대의 뒷돈을 챙긴 정황이 발견됐다. 이 사실을 알려온 것은 뇌물을 건넸다는 당사자다. 그는 10여년간 조합장의 옆을 지켰지만 몇 달 사이에 토사구팽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폭로에 대해 조합장은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조합장의 리베이트 및 재개발조합의 비리는 수십년간 계속돼왔다. 일각에선 이제는 수박 겉핥기식 규제가 아닌 확실한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서울시의 한 재개발구역 조합장과 관련한 제보가 들어왔다. 10년 가까이 조합장을 모셨지만 결국 버려졌다는 내용이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제보자 A씨. A씨에 따르면 그는 2011년 지인을 통해서 조합장과의 인연을 맺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기 전 준비위원회 때부터 조합장을 서포트했다. 

수억 받고
극구 부인?

조합 설립까지의 과정에도 A씨의 역할이 컸다. 75%의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아냈고, 사업대행자 방식의 사업 진행을 구상하기도 했다. 

조합장은 오랫동안 자신을 도와준 A씨에게 철거와 지장물, 정비기반공사를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되고 재개발사업에 속도가 붙자 조합장은 A씨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A씨가 일신상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3개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조합장은 A씨에게 약속했던 사업을 다른 회사에 맡기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A씨가 따져 묻자 조합장은 “시공사에서 지시한 사항”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A씨는 시공사에 해당 부분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고 시공사 측으로부터 “조합장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며 “사업체를 추천받은 일조차 없다”고 전해왔다.

이후 조합장은 A씨와의 연락을 끊었다. A씨는 조합장의 괘씸한 행태에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A씨에 따르면 그가 2011년부터 조합장에게 건넨 금액이 억원대가 넘었다.

그는 2015년 사무실에서 현금 3000만원, 7월 현금 5000만원, 2016년 8월 식당에서 현금 1000만원, 2017년 6월 현금 1000만원 등 비교적 자세하게 돈을 건넨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A씨는 조합장이 다른 사업체에서 받은 5000만원의 금액도 추가로 밝혔다. 이 금액은 A씨가 조합장에게 건넨 현금들과는 다르게 “업체서 돈을 받았다”는 증빙자료를 요청했다. 이때 곤란해하던 조합장을 대신해 지인의 회사에서 영수증 처리를 해줬던 것도 A씨였다고 한다. 

조합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증거를 먼저 제시하라”면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업체에게 5000만원을 받았고 A씨가 영수증을 대신 발급해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합장은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된다는 말에 동의를 표하기도 했다. 

‘억대 뒷돈’ 받고 나몰라 조합장 폭로
수족처럼 부려먹고 성공하니 토사구팽

A씨는 “모든 증빙자료를 동원해 사실을 밝혀낼 것”이라면서 “10여년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지만 토사구팽 당한 것에 대한 큰 분노를 느낀다”고 성토했다.

위 사건뿐만 아니라 재개발조합장과 관련한 리베이트 의혹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돼왔다. 서울시의 다른 재개발구역에서는 재개발사업 업체 선정권을 두고 억대의 금품에 해외 원정 성접대까지 받은 재개발조합장이 중형을 받기도 했다. 

당시 B씨는 정비사업조합 추진위원장을 거쳐 조합장이 됐다. B씨는 철거업체 대표에게 “재개발 철거용역 공사를 수주하도록 편의를 줄 테니 활동경비를 지원해 달라”며 주차장과 철거업체 사무실 인근에서 3차례에 걸쳐 총 8000만원을 받았다.

B씨는 철거업체의 경비로 태국과 몽골로 원정 성매매 여행까지 다녀왔다. B씨는 4박5일 일정으로 태국 푸껫 성매매 여행에 나서 성접대를 받았고, 몽골 울란바토르로 3박4일간 또 다시 성매매 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B씨는 업체에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면 업체를 바꿨다. 리베이트를 받아내지 못하면 떡값을 뜯어내기도 했다. 불법으로 재개발추진위 경비 등을 대주던 설계업체가 “더는 뇌물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하자 B씨는 그간 받은 경비를 4000만원으로 정산해 주고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당시 재판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합원을 위해 공정하고 청렴하게 사무를 처리해야 할 추진위원장, 조합장으로서 장기간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고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아 중형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현금 뇌물에
원정 성매매도

조합운영비 수천만원을 횡령하고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받은 조합장이 실형을 판결받기도 했다. 당시 법원은 뇌물수수 및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한 재개발 조합장 C씨에 대해 징역 1년에 벌금 4000만원, 추징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C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업체 관계자에게는 벌금 700만원을 판결했다.

C씨는 재개발 조합 사무실에서 조합 이사회의 결의 없이 업무상 보관 중이던 2200만원을 임의로 사용하는 등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C씨는 형사사건의 변호사에 대한 보수로 횡령한 금액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C씨는 2017년 10월 정비업체 관계자에게 2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C씨는 업체 관계자에게 용역대금 2억1000만원의 지급을 요구받자 업체 관계자에게 “용역대금을 바로 지급해 주겠으니 그 대가로 2000만원을 달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C씨는 용역대금을 지급한 다음, 직접 만나 현금 2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재판부는 “횡령한 액수가 적지 않고 피해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C씨가 조합장의 직무와 관련해 2000만원의 뇌물을 받아 조합장에게 요구되는 직무집행의 공정성과 청렴성을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하지만 C씨는 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이에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므로 실형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조합장의 비리를 포함한 재개발사업의 각종 불법행위는 사업 투명성 담보가 이뤄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사업 추진 과정 전반이 행정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행정당국이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인·허가를 내주지만 추진은 전적으로 민간에서 하다 보니 조합과 시공사, 관리업체의 전횡이 있더라도 이를 적기에 적발할 수 없다는 것이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조합 안팎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때문에 정비구역 지정고시→추진위원회 승인→조합승인→시행인가→관리처분 순서의 사업 추진과정에서 제한적인 공공감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부터 행정당국이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

선정 과정서
시공사 의존

2017년 국토교통부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시행하고 있는 공공관리자제도(재개발사업의 계획수립 단계부터 사업완료 시까지 사업 진행을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공관리자가 지원하는 제도)를 법령으로 직접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재개발·재건축사업조합의 예산·회계처리, 공동시행자 선정, 조합임원 선거 등에 직접 개입할 수 있어 기대를 모았다.

조합 집행부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체와 시공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립 단계에서 조합장 선출 조건을 강화하고, 감사와 이사 등 집행부도 관련 분야에 종사했거나 관련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 구성해나갈 수 있도록 감시할 수 있어야 시공사·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체에 끌려가지 않고 유착을 근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을 수사하는 경찰의 노력도 필요하다. 재개발 비리 대부분이 용역업체 계약 과정에서 나오지만 재개발 비리를 전문으로 다룰 수사관은 부족한 탓에 경찰이 불법 행위자들의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를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리베이트 제공 등 불법행위는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를 교란시키고 아파트 분양가 인상까지 초래한다”며 “재개발사업 전반에 대한 불법·비리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하고, 불법행위가 드러난 건설사는 재개발 사업 참여 제한 등 재발방지를 위한 강력한 처벌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개발조합의 문제는 또 있다. 준공 이후에도 해산하지 않는 조합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준공인가 후 1년 이상 경과한 미해산 조합은 총 63개다. 이 가운데 10년 넘게 해산하지 않은 조합도 16개에 달한다. 63곳 중 20곳은 소송을 이유로 해산하지 않고 있다.

팔 걷은 서울시 “ 꼭 잡겠다”
“정부 차원의 해결방안도 필요”

재개발사업을 위해 결성된 조합은 사업이 끝나면 해산하고 남은 자금은 청산해 조합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일부 조합은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입주가 완료됐는데도 해산하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업비 청산은커녕 추가 분담금이나 소송비 등으로 금전적 피해를 입고 있다. 조합장이 남은 조합운영비를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조합장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송을 제기하면서까지 수년간 해산을 고의로 지연한 사례도 적발됐다.

한 전문가는 “재건축, 그중에서도 민간정비사업은 조합 해산과 관련해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어 점검·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다양한 재건축조합 비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투명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는 일제조사를 통해 각 조합별로 해산이 되지 않고 있는 사유를 파악하고 조합 운영 전반에 대해 조사해 조합의 해산·청산을 유도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조합 미해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리 요인을 차단하고 조합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목표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재개발사업이 끝난 후에도 불분명한 사유로 조합 해산을 고의적으로 미루는 사례가 발생했고 이는 조합원들의 금전적인 피해로 이어졌다”며 “이번 일제조사는 조합 미해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리 차단과 조합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합 운영 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해 조합해산 등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동시에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국토교통부와 법령 개정 논의도 신속하게 처리해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해나가겠다”고 밝혔다.

2017년에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조합임원이 금품 또는 향응을 받거나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구속되는 등의 형법 위반 근절 대책이 마련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현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당시 김 의원은 “이번 개정으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조합 운영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며 “조합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업성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마련?
효과는 미미

하지만 법안이 통과된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아직까지도 조합 내에서는 비리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세부적인 해결방안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재개발사업 비리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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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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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