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광천동 재개발 집행부 비리 의혹

“순항하나 싶더니 물이 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8년 넘게 속도를 내지 못했던 광주 광천동 주택개발사업이 최근 ‘재개발사업 시행계획이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조합 내에서의 권력다툼과 집행부의 비합리적인 운영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 광주 광천동 배치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주택재개발정비사업은 사업 예산만 2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최대 규모 재개발사업이다. 2012년 시작됐지만 그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던 재개발사업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광주시 서구가 인가한 광천동 주택재개발사업 시행계획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재개발사업의 무효를 주장했던 일부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8년 넘게 속도를 내지 못했던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사업 본궤도
또 다시 찬물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최근 광주 광천동 재개발조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제보가 들어왔다. 현재 광천동 재개발조합의 조합장은 공석이다. 이런 상황서 조합장 후보로 나선 것은 A씨와 B씨. 하지만 제보자에 따르면 실제로 조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사무장이었다. 

제보자는 “사무장은 B씨를 설득해 조합 사무를 총괄하는 인물들과 함께 OS(Outsourcing)를 활용한 매표 행위 등 조합장 선거에 부정행위를 하기로 공모했고 A씨에게도 적극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안심시킨 뒤 공로를 잊지 말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자고 서로 합의했다”며 ”이미 B씨를 조합장 만들기로 약속이 돼있기 때문에 A씨를 속이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OS는 조합의 총회서 조합원들을 직접 대면해서 서면결의서(투표용지)를 징구하는 업무를 하는데, 이때 안건(선거의 경우는 후보자)에 대해 잘 모르는 조합원이 많기 때문에 사실상 투표 결과는 OS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 


통상 조합원의 30~40%는 OS가 좌우하므로 선거에선 실질적으로 조합장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광천동의 경우는 70%가 광천동 이외의 지역에 사는 조합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조합원, 사무장 OS업체 선정 비리 개입 주장
“조합장 시켜주겠다”고 후보들 좌지우지

제보자에 따르면 최근 조합 사무장은 ‘빛세움’이라는 OS 회사를 데려왔다. 기존의 OS 회사인 ‘진우’는 총회 OS를 운영하는 데 비난과 우려가 많아지자 조합장 선거서 빠지기로 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이번에 데려온 빛세움이 진우의 바지 회사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제보자는 이”진우의 사장과 빛세움의 부사장은 과거 회사 동료로 일한 적이 있는 친구 사이기 때문”라고 밝혔다. 

제보자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조합장을 선출하는 총회서 조합원의 서면결의서를 징구하는 총회 대행사인 OS 업체를 선정하는데, 광천동 재개발조합의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컨설팅 업체)인 진우와 사무장이 특정 조합장을 만들기 위해 용역사를 선정했다는 것.
 

▲ 광주 광천동 주택가

제보자는 또 "용역사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공개입찰하는데, 이때 진우 사장이 자신과 가까운 기호 1번 빛세움을 허수아비 삼아 데려왔고 사무장이 빛세움의 실적으로 만점을 맞을 수 있는 맞춤형으로 공개입찰안(평가기준표)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당연히 빛세움의 점수가 1등이었고 용역업체로 선정됐다는 것. 제보자는 "그렇게 선정된 OS 용역사는 사무장과 진우의 지시대로 조합장 선출에 관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OS가 뭐길래
특정업체 밀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사무장과 진우 사장은 조합의 업무방해(선거 및 입찰), 입찰 비리(공모), 부정선거 계획,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에 해당된다.

광천동 재개발조합 정상화 모임 관계자는 “얼마 전 대의원회서 집행부(3인의 이사와 사무장)가 대의원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서면결의서를 받았다”며 “OS 용역회사 중 1번 빛세움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조합 집행부서 직접 특정 OS 회사를 밀어줬다는 증언이다.

모임에 의하면 “OS를 접수하는 자, 천하를 접수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OS의 영향력은 크다. 모임 관계자도 “실제로 조합장 선정은 조합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OS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빛세움이 선정되려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해 공개경쟁입찰을 해야 한다. 제보자는 “조합 사무장은 빛세움에 유리한 맞춤형 공모안을 작성해 입찰을 추진했고 그로 인해 빛세움이 1등으로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 사무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무장은 자신의 목적(재개발 사업의 실질적인 주인)과 세력 구축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위법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장 비리
한두개 아니다"

제보자가 주장한 사무장의 불법 사항은 OS 업체 선정만이 아니었다. 제보자에 따르면 사무장은 감정평가회사에 압력을 행사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조합은 조합원의 권리가액을 산정하기 위해 감정평가회사를 선정한다. 공정성을 위해 선정은 구청이 하게 된다. 감정평가가 공정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엄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보자는 "사무장은 직위를 이용해 특정한 조합원의 감정평가액을 상향시키고자 했다"면서 "사무장은 해당 특정인과 함께 감정평가회사를 방문해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 특정 조합원은 조합의 대의원이었고 그의 모친이 사무장에게 친분을 이용해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는 "그 후 모친은 사무장의 측근이 돼 대의원들에게 서면결의서를 징구하는 행위,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 등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보자가 밝힌 또다른 비리는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조합의 감사에게 협박을 한 것이다. 이 문제를 알게 된 조합의 감사가 사무장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오히려 사무장은 “사무를 하면서 녹음한 내용을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는 것. 제보자가 밝힌 해당 감사의 주장에 따르면 사무장은 모든 대화와 통화를 녹음하고 있다.


“전혀 사실 아니다” 부인
“증거·증인 있다” 반박

제보자는 “이는 협박죄일 뿐만 아니라 조합의 선출직 임원인 감사에게 고용직 직원인 사무장이 협박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면서 "감사뿐만 아니라 임원들 모두가 녹음을 당해 사무장에게 꼼짝하지 못한다는 의혹도 있다"고 말했다.

‘광천동 재개발조합 정상화 모임’에 따르면 현재 조합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직은 직무대행이 아니라 집행부인 3인의 이사와 사무장이다. 즉 직무대행자의 발언은 힘이 없다는 것.

모임 관계자는 “사실 조합의 집행부는 누가 돼도 상관없다”며 “어차피 수적 우위를 앞세운 집행부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조합 이사를 보궐 선임한다면 대의원회서 수적 우위를 지닌 집행부 쪽 이사가 선임될 것이 분명하므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화 모임은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 정상적으로 조합의 업무를 진행시킬 만한 조합장 후보가 보이지 않아 두 후보 모두 지지하지도 않고, 투표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저희는 조합 집행부 전원을 해임하고, 새로운 후보를 조합장 후보로 추천하려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증거 있는데
“모르는 일”

A씨는 “빛세움이라는 회사를 알지도 못하고 사장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그런 제안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B씨도 “빛세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며 “음해하려는 세력의 허위사실 유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제보자와 정상화모임 관계자는 “두 후보들이 확실한 증거와 증인이 있음에도 발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광천동 재개발 조합 사무장이 전해온 입장과 반박

광천동 재개발 조합 사무장은 “기사에 나온 제보자 주장의 대부분이 허위 사실”이라고 밝혀왔다.

사무장은 OS회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기사의 내용에서처럼 빛세움이라는 회사를 데려온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회사”라고 못 박았다. 사무장은 기사에서의 ‘빛세움 맞춤형 공개입찰안(평가기준표)’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상화 모임 관계자의 ‘대의원회서 집행부(3인의 이사와 사무장)가 대의원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서면결의서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의원을 직접 찾아다닌 적이 없고 대의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찾아갈 일도 없다”고 말했다. 

또 조합장 후보자 A씨와 B씨에 관련된 내용도 반론을 제기했다.

사무장은 “제보자가 주장한 ‘B씨를 설득해 OS를 활용한 매표 행위 등 조합장 선거서 부정행위를 하기로 공보했다’는 내용, ‘A씨를 안심시킨 뒤 공로를 잊지 않겠다고 합의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사무장은 “이 뿐만 아니라 제보자가 주장한 불법사항인 ‘감정평가회사 압력’ ‘조합 감사 협박 의혹’ ‘임원들 모두가 녹음을 당해 꼼짝하지 못한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 모든 것은 악의적인 의도가 담긴 세력의 허위 주장”이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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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