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광천동 재개발 집행부 비리 의혹

“순항하나 싶더니 물이 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8년 넘게 속도를 내지 못했던 광주 광천동 주택개발사업이 최근 ‘재개발사업 시행계획이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조합 내에서의 권력다툼과 집행부의 비합리적인 운영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 광주 광천동 배치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주택재개발정비사업은 사업 예산만 2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최대 규모 재개발사업이다. 2012년 시작됐지만 그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던 재개발사업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광주시 서구가 인가한 광천동 주택재개발사업 시행계획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재개발사업의 무효를 주장했던 일부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8년 넘게 속도를 내지 못했던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사업 본궤도
또 다시 찬물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최근 광주 광천동 재개발조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제보가 들어왔다. 현재 광천동 재개발조합의 조합장은 공석이다. 이런 상황서 조합장 후보로 나선 것은 A씨와 B씨. 하지만 제보자에 따르면 실제로 조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사무장이었다. 

제보자는 “사무장은 B씨를 설득해 조합 사무를 총괄하는 인물들과 함께 OS(Outsourcing)를 활용한 매표 행위 등 조합장 선거에 부정행위를 하기로 공모했고 A씨에게도 적극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안심시킨 뒤 공로를 잊지 말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자고 서로 합의했다”며 ”이미 B씨를 조합장 만들기로 약속이 돼있기 때문에 A씨를 속이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OS는 조합의 총회서 조합원들을 직접 대면해서 서면결의서(투표용지)를 징구하는 업무를 하는데, 이때 안건(선거의 경우는 후보자)에 대해 잘 모르는 조합원이 많기 때문에 사실상 투표 결과는 OS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 


통상 조합원의 30~40%는 OS가 좌우하므로 선거에선 실질적으로 조합장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광천동의 경우는 70%가 광천동 이외의 지역에 사는 조합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조합원, 사무장 OS업체 선정 비리 개입 주장
“조합장 시켜주겠다”고 후보들 좌지우지

제보자에 따르면 최근 조합 사무장은 ‘빛세움’이라는 OS 회사를 데려왔다. 기존의 OS 회사인 ‘진우’는 총회 OS를 운영하는 데 비난과 우려가 많아지자 조합장 선거서 빠지기로 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이번에 데려온 빛세움이 진우의 바지 회사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제보자는 이”진우의 사장과 빛세움의 부사장은 과거 회사 동료로 일한 적이 있는 친구 사이기 때문”라고 밝혔다. 

제보자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조합장을 선출하는 총회서 조합원의 서면결의서를 징구하는 총회 대행사인 OS 업체를 선정하는데, 광천동 재개발조합의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컨설팅 업체)인 진우와 사무장이 특정 조합장을 만들기 위해 용역사를 선정했다는 것.
 

▲ 광주 광천동 주택가

제보자는 또 "용역사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공개입찰하는데, 이때 진우 사장이 자신과 가까운 기호 1번 빛세움을 허수아비 삼아 데려왔고 사무장이 빛세움의 실적으로 만점을 맞을 수 있는 맞춤형으로 공개입찰안(평가기준표)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당연히 빛세움의 점수가 1등이었고 용역업체로 선정됐다는 것. 제보자는 "그렇게 선정된 OS 용역사는 사무장과 진우의 지시대로 조합장 선출에 관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OS가 뭐길래
특정업체 밀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사무장과 진우 사장은 조합의 업무방해(선거 및 입찰), 입찰 비리(공모), 부정선거 계획,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에 해당된다.

광천동 재개발조합 정상화 모임 관계자는 “얼마 전 대의원회서 집행부(3인의 이사와 사무장)가 대의원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서면결의서를 받았다”며 “OS 용역회사 중 1번 빛세움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조합 집행부서 직접 특정 OS 회사를 밀어줬다는 증언이다.

모임에 의하면 “OS를 접수하는 자, 천하를 접수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OS의 영향력은 크다. 모임 관계자도 “실제로 조합장 선정은 조합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OS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빛세움이 선정되려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해 공개경쟁입찰을 해야 한다. 제보자는 “조합 사무장은 빛세움에 유리한 맞춤형 공모안을 작성해 입찰을 추진했고 그로 인해 빛세움이 1등으로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 사무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무장은 자신의 목적(재개발 사업의 실질적인 주인)과 세력 구축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위법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장 비리
한두개 아니다"

제보자가 주장한 사무장의 불법 사항은 OS 업체 선정만이 아니었다. 제보자에 따르면 사무장은 감정평가회사에 압력을 행사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조합은 조합원의 권리가액을 산정하기 위해 감정평가회사를 선정한다. 공정성을 위해 선정은 구청이 하게 된다. 감정평가가 공정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엄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보자는 "사무장은 직위를 이용해 특정한 조합원의 감정평가액을 상향시키고자 했다"면서 "사무장은 해당 특정인과 함께 감정평가회사를 방문해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 특정 조합원은 조합의 대의원이었고 그의 모친이 사무장에게 친분을 이용해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는 "그 후 모친은 사무장의 측근이 돼 대의원들에게 서면결의서를 징구하는 행위,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 등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보자가 밝힌 또다른 비리는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조합의 감사에게 협박을 한 것이다. 이 문제를 알게 된 조합의 감사가 사무장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오히려 사무장은 “사무를 하면서 녹음한 내용을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는 것. 제보자가 밝힌 해당 감사의 주장에 따르면 사무장은 모든 대화와 통화를 녹음하고 있다.


“전혀 사실 아니다” 부인
“증거·증인 있다” 반박

제보자는 “이는 협박죄일 뿐만 아니라 조합의 선출직 임원인 감사에게 고용직 직원인 사무장이 협박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면서 "감사뿐만 아니라 임원들 모두가 녹음을 당해 사무장에게 꼼짝하지 못한다는 의혹도 있다"고 말했다.

‘광천동 재개발조합 정상화 모임’에 따르면 현재 조합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직은 직무대행이 아니라 집행부인 3인의 이사와 사무장이다. 즉 직무대행자의 발언은 힘이 없다는 것.

모임 관계자는 “사실 조합의 집행부는 누가 돼도 상관없다”며 “어차피 수적 우위를 앞세운 집행부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조합 이사를 보궐 선임한다면 대의원회서 수적 우위를 지닌 집행부 쪽 이사가 선임될 것이 분명하므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화 모임은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 정상적으로 조합의 업무를 진행시킬 만한 조합장 후보가 보이지 않아 두 후보 모두 지지하지도 않고, 투표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저희는 조합 집행부 전원을 해임하고, 새로운 후보를 조합장 후보로 추천하려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증거 있는데
“모르는 일”

A씨는 “빛세움이라는 회사를 알지도 못하고 사장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그런 제안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B씨도 “빛세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며 “음해하려는 세력의 허위사실 유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제보자와 정상화모임 관계자는 “두 후보들이 확실한 증거와 증인이 있음에도 발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광천동 재개발 조합 사무장이 전해온 입장과 반박

광천동 재개발 조합 사무장은 “기사에 나온 제보자 주장의 대부분이 허위 사실”이라고 밝혀왔다.

사무장은 OS회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기사의 내용에서처럼 빛세움이라는 회사를 데려온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회사”라고 못 박았다. 사무장은 기사에서의 ‘빛세움 맞춤형 공개입찰안(평가기준표)’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상화 모임 관계자의 ‘대의원회서 집행부(3인의 이사와 사무장)가 대의원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서면결의서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의원을 직접 찾아다닌 적이 없고 대의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찾아갈 일도 없다”고 말했다. 

또 조합장 후보자 A씨와 B씨에 관련된 내용도 반론을 제기했다.

사무장은 “제보자가 주장한 ‘B씨를 설득해 OS를 활용한 매표 행위 등 조합장 선거서 부정행위를 하기로 공보했다’는 내용, ‘A씨를 안심시킨 뒤 공로를 잊지 않겠다고 합의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사무장은 “이 뿐만 아니라 제보자가 주장한 불법사항인 ‘감정평가회사 압력’ ‘조합 감사 협박 의혹’ ‘임원들 모두가 녹음을 당해 꼼짝하지 못한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 모든 것은 악의적인 의도가 담긴 세력의 허위 주장”이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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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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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