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택공급 집중하는 이유

갈 길 달라도 갔던 길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한 4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시장가격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많은 공급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쳇바퀴 굴리듯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따라해 시장의 반응이 반대로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의 거래량은 늘어나고 가격은 매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부동산가격 급등이 공급부족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주택공급 대책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만으로는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가격 급등
부족 때문?

지난 8일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Greenbelt)을 풀어 오는 2025년까지 8만가구 규모의 주택공급이 포함됐다. 

여기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신축 매입 11만가구,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유보지를 활용한 2만가구 등 신규주택 총 21만가구가 오는 2029년까지 공급된다. 정부는 내년까지 수도권 공공 신축 매입을 11만호 이상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말 기준 LH 신축 매입 신청 접수 물량이 7만7000호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4만호 가까이 추가 확보한다는 얘기다.


특히 서울은 전세 사기 등으로 침체된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신축 주택을 매입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서울의 비아파트 입주 비율이 전체 입주 물량의 45%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도록 당분간 꾸준히 매입하겠다는 얘기다. 

기축이 아닌 신축 매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로는 1~2년이면 완공 후 입주가 가능하고 신축 매입이 주변 부동산가격을 자극하지 않고 공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축 주택 무제한 매입 재원에 대해 진현환 국토부 제1차관은 “11만호 이상 매입한다는 방침은 예산당국과 협의를 끝냈으며 정부 지원 단가를 현실화해 올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예산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재원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LH의 매입 약정체결 기간은 7개월서 4개월로 단축하고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각종 세제혜택과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신축 매입 활성화 지원 3종 세트’를 시행한다.

최소 6년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분양전환형 신축 매입 주택’ 제도도 도입한다. 이를 통해 오는 2026년부터 입주 가능한 도심 내 신축 아파트 등 주택을 공급한다.

22만 가구↑ 8·8 부동산 대책
4번의 조치 모두 공급에 집중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은 매입임대 중 입지와 구조가 좋은 주택을 저렴한 임대료로 최소 6년 후 임차인에게 우선매각하는 제도다. 분양전환을 희망하지 않으면 전세형은 추가로 2년, 월세형은 추가로 4년 더 임대 거주 가능하다. 입주 및 분양 전환 시점에도 주택도시기금서 저리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공공 신축 매입 11만호 중 최소 5만호는 분양전환형 신축 매입으로 공급하고,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60~85㎡의 중형평형 위주로 매입할 방침이다.

침체된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각종 세제·청약 지원방안도 내놨다.

비아파트 1호만으로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6년 단기 등록임대 제도도 도입한다. 1주택자가 소형 주택을 구입해 6년 단기 임대로 등록하면 1세대 1주택자로 특례를 적용한다. 공유주택 등 임대형 기숙사도 앞으로는 취득세·재산세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생애 최초로 다가구, 연립·다세대, 도시형 생활주택 등 소형 주택을 구입한 경우에도 취득세 감면 한도를 200만원서 300만원으로 확대한다. 혜택은 오는 2027년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빌라 등 비아파트를 보유했더라도 청약서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를 85㎡(수도권 5억원·지방 3억원) 이하로 확대한다.

노후 저층 주거지를 개발하는 ‘뉴:빌리지’ 사업은 오는 2029년까지 주택 5만호 공급이 가능하도록 추진한다. 주차장 등 아파트 수준의 편의시설을 지을 수 있게 지원하고, 공모에 선정된 경우 국비를 5년간 최대 150억원을 지원한다. 든든전세주택 등 비아파트 공공임대주택은 1만6000호를 추가 공급한다.

전세 임대는 임차인이 직접 원하는 주택을 구하는 방식 외에도 임대인 모집공고를 통해 즉시 입주 가능한 주택을 확보해 1만호의 물량을 마련할 계획이다. 수도권 물량은 약 6000호다. 이 경우 중개수수료와 도배·장판 비용 등 재정 지원을 통해 참여를 유도한다. 보증금은 입주자 부담 20% 외에 최대 2억원까지 지원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서울서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을 해제해 내년까지 1만가구 이상 들어설 수 있는 신규택지 조성에도 나선다. 해제 지역은 오는 11월 공개될 방침이다. 이외 약 7만여가구는 수도권서 공급될 전망이다.

1차원적인 
발상 지적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에 대해 비정상적인 수요를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수요에 맞게 공급을 늘리는 1차원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윤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은 정권 초기부터 이어져 왔다. 이는 윤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공급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윤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270만호 주택 공급 목표를 제시하며 문재인정부가 조여놓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 정권서 나온 4개의 부동산 대책 모두 주택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6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미분양 주택은 전월 대비 1908호(5월 7만2129→6월 7만4037) 늘어났다. 공급이 수요에 못 미쳐 집값이 올라갔다는 정부의 분석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중 악성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늘어났다. 지난 6월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4856호로 전월(1만3230호)보다 1626호 늘었다.


이를 두고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주택공급에 방점을 찍었지만 공급 부족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피스텔 미분양도 넘쳐나는데 세제혜택까지 주면서 건설업자에게 일감을 주는 것은 오진이다. 수요자들이 필요한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는 빌라에 대한 수요가 낮아진 것이 전세 사기란 점을 인지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진 것”이라며 “엉뚱하게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세제혜택을 주게 되면 또다시 무자본 갭투기로 시장에 나쁜 영향만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도 “문정부 때 2·4 대책과 3기 신도시 대규모 공급 정책을 내놨으나, 실제 공급된 주택은 한 채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2022년 대선 전후로 부동산가격이 어느 정도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며 “공급이 주택가격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속속 푸는
그린벨트

그러면서 “현재 상황도 주택공급 부족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대규모 공급에 나선다면 역으로 주택시장을 더 과열시킬 수 있고, 정부의 정책 의도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집값 상승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강남 등의 지역 중심으로 매매거래가 증가한 것이 불씨가 됐다”며 “여기에 부동산 정책 금융을 늘리고 대출 규제를 풀어 기름을 부은 것은 정부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대책 중 가장 화제를 모은 방안 중 하나인 서울 그린벨트 해제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규 택지는 후보지 발표 이후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수립, 토지 보상 등을 거쳐 실제 입주까지 통상 8~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앞선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는 장기적으로 대책 방안이 될 수 있지만 5년 내 공급이 중요한 현재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없어 보인다”며 “차라리 수도권 3기 신도시 물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 오히려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공원 녹지와 자족용지 등을 축소하고, 용적률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3기 신도시 규모를 60만가구 수준인 2기 신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데 이는 그린벨트 해제보다 이른 시점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윤정부가 주택공급에만 집중하는 이유를 윤정부만의 특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특히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부터 이명박(MB)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따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이점은 현재는 집값이 상승하고 있지만 MB정부 당시에는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MB정부는 주택가격 하락 시기에 집권했다. 정부는 집값 하락을 용인하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온 조정 장세 이후 재반등을 꾀했다.

제자리 쳇바퀴 굴리듯
이·MB정부 따라하기?

그 대응책의 하나가 바로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였다. MB정부는 지난 2009~2012년에 걸쳐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을 포함해 서울권 ‘금싸라기’ 땅의 개발제한을 풀었다. 해제 면적은 총 34㎢였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당시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뒤늦게’ 나온 각종 규제 대책을 대대적으로 풀었는데 이마저도 비슷하다. 윤정부는 문정부부터 이어진 부동산가격 급등을 잡기 위해 각종 규제를 해제하고 있다.

MB정부는 집권 초기에 곧바로 강남3구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의 투기지역 해제를 포함해 양도세 감면,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등에 나섰다. 

윤정부도 서울 강남3구와 대통령실이 들어간 용산을 제외한 서울 전 지역 주택 규제를 전부 풀었다. 분양가 상한제 역시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 규제를 해제했다.

윤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공급 속도 조절로 부동산시장을 살리려 했던 박근혜정부와도 비슷한 결로 분석되기도 한다. 특히 대출 규제와 관련해서다.

윤정부는 대출 규제를 대거 풀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가구에만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최대 80%까지 끌어 올리고 1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비율을 70%까지, 다주택자도 주택 수에 따라 30~40%까지 대출을 완화했다. 또 이에 더해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 등을 만들었다. 신혼부부 지원과 출산 독려 등이 담긴 정책이다.

박정부는 당시 주택담보대출비율을 80%까지 모든 주택 소유자에게 일괄 적용했으며, 주택 구입 자금 지원 규모 확대, 소득요건 상향 등으로 주택자금 마련을 지원한 바 있다.

문제는 집값 안정화를 노리는 윤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시장 회복을 노리는 MB·박정부와 결을 같이 하면서 시장은 오히려 투기하듯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침체된 건설업계 분위기 회복과 집값 안정화를 동시에 꾀하려 하기 때문에 시장에 잘못된 해석이 형성된 것”이라며 “또 정비사업에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오히려 대상지들의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비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급 효과와 이런 것을 따져봐야 하지만 그저 전 정부의 정책을 따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 가운데 18개의 추진과제는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하다. 여소야대 국면서 야권의 협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도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부분이다. 

재건축·재개발 촉진 관련 9개 과제는 재건축·재개발 촉진특례법(가칭)의 제정, 도시정비법·지방세특례제한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요구된다. 비아파트 시장 부양 과제 6개의 실행에는 민간임대주택법·지방세특례제한법·주택도시기금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필요하다.

입법 과정
매우 험난

이 밖에 주택공급 여건 개선과제 3개를 이행하기 위해 부동산개발사업관리법을 제정, 소규모주택정비법·조세특례제한법·지방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난 1월 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에도 정부가 협의 없이 대책을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막무가내식 규제 완화는 집값을 띄울 뿐 아니라, 안전성을 최우선하는 도시정비법의 취지에도 위배된다. 법 개정 사항임에도 즉흥적 정책을 발표한다면, 국회가 왜 있느냐”고 비판한 바 있어 이번에도 입법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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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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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