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택공급 집중하는 이유

갈 길 달라도 갔던 길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한 4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시장가격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많은 공급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쳇바퀴 굴리듯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따라해 시장의 반응이 반대로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의 거래량은 늘어나고 가격은 매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부동산가격 급등이 공급부족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주택공급 대책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만으로는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가격 급등
부족 때문?

지난 8일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Greenbelt)을 풀어 오는 2025년까지 8만가구 규모의 주택공급이 포함됐다. 

여기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신축 매입 11만가구,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유보지를 활용한 2만가구 등 신규주택 총 21만가구가 오는 2029년까지 공급된다. 정부는 내년까지 수도권 공공 신축 매입을 11만호 이상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말 기준 LH 신축 매입 신청 접수 물량이 7만7000호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4만호 가까이 추가 확보한다는 얘기다.


특히 서울은 전세 사기 등으로 침체된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신축 주택을 매입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서울의 비아파트 입주 비율이 전체 입주 물량의 45%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도록 당분간 꾸준히 매입하겠다는 얘기다. 

기축이 아닌 신축 매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로는 1~2년이면 완공 후 입주가 가능하고 신축 매입이 주변 부동산가격을 자극하지 않고 공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축 주택 무제한 매입 재원에 대해 진현환 국토부 제1차관은 “11만호 이상 매입한다는 방침은 예산당국과 협의를 끝냈으며 정부 지원 단가를 현실화해 올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예산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재원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LH의 매입 약정체결 기간은 7개월서 4개월로 단축하고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각종 세제혜택과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신축 매입 활성화 지원 3종 세트’를 시행한다.

최소 6년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분양전환형 신축 매입 주택’ 제도도 도입한다. 이를 통해 오는 2026년부터 입주 가능한 도심 내 신축 아파트 등 주택을 공급한다.

22만 가구↑ 8·8 부동산 대책
4번의 조치 모두 공급에 집중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은 매입임대 중 입지와 구조가 좋은 주택을 저렴한 임대료로 최소 6년 후 임차인에게 우선매각하는 제도다. 분양전환을 희망하지 않으면 전세형은 추가로 2년, 월세형은 추가로 4년 더 임대 거주 가능하다. 입주 및 분양 전환 시점에도 주택도시기금서 저리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공공 신축 매입 11만호 중 최소 5만호는 분양전환형 신축 매입으로 공급하고,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60~85㎡의 중형평형 위주로 매입할 방침이다.

침체된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각종 세제·청약 지원방안도 내놨다.

비아파트 1호만으로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6년 단기 등록임대 제도도 도입한다. 1주택자가 소형 주택을 구입해 6년 단기 임대로 등록하면 1세대 1주택자로 특례를 적용한다. 공유주택 등 임대형 기숙사도 앞으로는 취득세·재산세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생애 최초로 다가구, 연립·다세대, 도시형 생활주택 등 소형 주택을 구입한 경우에도 취득세 감면 한도를 200만원서 300만원으로 확대한다. 혜택은 오는 2027년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빌라 등 비아파트를 보유했더라도 청약서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를 85㎡(수도권 5억원·지방 3억원) 이하로 확대한다.

노후 저층 주거지를 개발하는 ‘뉴:빌리지’ 사업은 오는 2029년까지 주택 5만호 공급이 가능하도록 추진한다. 주차장 등 아파트 수준의 편의시설을 지을 수 있게 지원하고, 공모에 선정된 경우 국비를 5년간 최대 150억원을 지원한다. 든든전세주택 등 비아파트 공공임대주택은 1만6000호를 추가 공급한다.

전세 임대는 임차인이 직접 원하는 주택을 구하는 방식 외에도 임대인 모집공고를 통해 즉시 입주 가능한 주택을 확보해 1만호의 물량을 마련할 계획이다. 수도권 물량은 약 6000호다. 이 경우 중개수수료와 도배·장판 비용 등 재정 지원을 통해 참여를 유도한다. 보증금은 입주자 부담 20% 외에 최대 2억원까지 지원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서울서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을 해제해 내년까지 1만가구 이상 들어설 수 있는 신규택지 조성에도 나선다. 해제 지역은 오는 11월 공개될 방침이다. 이외 약 7만여가구는 수도권서 공급될 전망이다.

1차원적인 
발상 지적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에 대해 비정상적인 수요를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수요에 맞게 공급을 늘리는 1차원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윤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은 정권 초기부터 이어져 왔다. 이는 윤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공급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윤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270만호 주택 공급 목표를 제시하며 문재인정부가 조여놓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 정권서 나온 4개의 부동산 대책 모두 주택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6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미분양 주택은 전월 대비 1908호(5월 7만2129→6월 7만4037) 늘어났다. 공급이 수요에 못 미쳐 집값이 올라갔다는 정부의 분석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중 악성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늘어났다. 지난 6월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4856호로 전월(1만3230호)보다 1626호 늘었다.


이를 두고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주택공급에 방점을 찍었지만 공급 부족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피스텔 미분양도 넘쳐나는데 세제혜택까지 주면서 건설업자에게 일감을 주는 것은 오진이다. 수요자들이 필요한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는 빌라에 대한 수요가 낮아진 것이 전세 사기란 점을 인지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진 것”이라며 “엉뚱하게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세제혜택을 주게 되면 또다시 무자본 갭투기로 시장에 나쁜 영향만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도 “문정부 때 2·4 대책과 3기 신도시 대규모 공급 정책을 내놨으나, 실제 공급된 주택은 한 채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2022년 대선 전후로 부동산가격이 어느 정도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며 “공급이 주택가격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속속 푸는
그린벨트

그러면서 “현재 상황도 주택공급 부족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대규모 공급에 나선다면 역으로 주택시장을 더 과열시킬 수 있고, 정부의 정책 의도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집값 상승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강남 등의 지역 중심으로 매매거래가 증가한 것이 불씨가 됐다”며 “여기에 부동산 정책 금융을 늘리고 대출 규제를 풀어 기름을 부은 것은 정부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대책 중 가장 화제를 모은 방안 중 하나인 서울 그린벨트 해제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규 택지는 후보지 발표 이후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수립, 토지 보상 등을 거쳐 실제 입주까지 통상 8~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앞선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는 장기적으로 대책 방안이 될 수 있지만 5년 내 공급이 중요한 현재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없어 보인다”며 “차라리 수도권 3기 신도시 물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 오히려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공원 녹지와 자족용지 등을 축소하고, 용적률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3기 신도시 규모를 60만가구 수준인 2기 신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데 이는 그린벨트 해제보다 이른 시점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윤정부가 주택공급에만 집중하는 이유를 윤정부만의 특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특히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부터 이명박(MB)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따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이점은 현재는 집값이 상승하고 있지만 MB정부 당시에는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MB정부는 주택가격 하락 시기에 집권했다. 정부는 집값 하락을 용인하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온 조정 장세 이후 재반등을 꾀했다.

제자리 쳇바퀴 굴리듯
이·MB정부 따라하기?

그 대응책의 하나가 바로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였다. MB정부는 지난 2009~2012년에 걸쳐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을 포함해 서울권 ‘금싸라기’ 땅의 개발제한을 풀었다. 해제 면적은 총 34㎢였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당시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뒤늦게’ 나온 각종 규제 대책을 대대적으로 풀었는데 이마저도 비슷하다. 윤정부는 문정부부터 이어진 부동산가격 급등을 잡기 위해 각종 규제를 해제하고 있다.

MB정부는 집권 초기에 곧바로 강남3구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의 투기지역 해제를 포함해 양도세 감면,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등에 나섰다. 

윤정부도 서울 강남3구와 대통령실이 들어간 용산을 제외한 서울 전 지역 주택 규제를 전부 풀었다. 분양가 상한제 역시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 규제를 해제했다.

윤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공급 속도 조절로 부동산시장을 살리려 했던 박근혜정부와도 비슷한 결로 분석되기도 한다. 특히 대출 규제와 관련해서다.

윤정부는 대출 규제를 대거 풀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가구에만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최대 80%까지 끌어 올리고 1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비율을 70%까지, 다주택자도 주택 수에 따라 30~40%까지 대출을 완화했다. 또 이에 더해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 등을 만들었다. 신혼부부 지원과 출산 독려 등이 담긴 정책이다.

박정부는 당시 주택담보대출비율을 80%까지 모든 주택 소유자에게 일괄 적용했으며, 주택 구입 자금 지원 규모 확대, 소득요건 상향 등으로 주택자금 마련을 지원한 바 있다.

문제는 집값 안정화를 노리는 윤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시장 회복을 노리는 MB·박정부와 결을 같이 하면서 시장은 오히려 투기하듯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침체된 건설업계 분위기 회복과 집값 안정화를 동시에 꾀하려 하기 때문에 시장에 잘못된 해석이 형성된 것”이라며 “또 정비사업에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오히려 대상지들의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비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급 효과와 이런 것을 따져봐야 하지만 그저 전 정부의 정책을 따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 가운데 18개의 추진과제는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하다. 여소야대 국면서 야권의 협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도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부분이다. 

재건축·재개발 촉진 관련 9개 과제는 재건축·재개발 촉진특례법(가칭)의 제정, 도시정비법·지방세특례제한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요구된다. 비아파트 시장 부양 과제 6개의 실행에는 민간임대주택법·지방세특례제한법·주택도시기금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필요하다.

입법 과정
매우 험난

이 밖에 주택공급 여건 개선과제 3개를 이행하기 위해 부동산개발사업관리법을 제정, 소규모주택정비법·조세특례제한법·지방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난 1월 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에도 정부가 협의 없이 대책을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막무가내식 규제 완화는 집값을 띄울 뿐 아니라, 안전성을 최우선하는 도시정비법의 취지에도 위배된다. 법 개정 사항임에도 즉흥적 정책을 발표한다면, 국회가 왜 있느냐”고 비판한 바 있어 이번에도 입법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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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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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