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밥’ 수색8구역 재개발 차질 이유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5.16 10:49:13
  • 호수 1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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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 뜨기 직전 재 뿌리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사실상 이주를 마친 서울 은평구 수색8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수색8구역 조합)이 일부 조합원의 ‘흠집 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한 교회 토지에 관한 보상금 60여억원이 과도하다고 지적하면서다. 조합 측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도로를 개설해줘야 하므로 공간 손실을 감안하면 보상이 과하지 않다”고 반론했다.

수색8구역은 지난달 19일 상가 세입자, 세입자, 조합원 총 779세대 중에 778세대가 완전히 이주한 상태다. 이주를 마치면 오는 2025년부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처럼 재개발사업이 순항 중인 가운데, 지난 2월 일부 조합원이 조합장과 조합 간부들을 고소하면서 내홍을 겪어왔다.

내부 총질

맹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주비 대출 지연으로 인한 긴급차입 목적으로 이자율 140.77%을 적용한 20억원을 총회 개최 없이 빌려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교회 토지 보상금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해당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 A씨는 조합 사업 과정서 자금차입과 방법·이율 및 상환 방법에 대해 총회를 개최해 사전 의견을 거쳐야 하나, 단기 차입 과정에 총회나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지급한 점도 함께 문제삼았다. 

A씨가 지난 2월 초 수색8구역 조합을 고소하자, 조합은 맞고소를 진행하겠다고 맞섰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수색8구역 조합원 A씨가 조합장, 감사, 이사 등 4명을 상대로 낸 고소장을 접수해 현재까지 수사 중이다.


A씨는 지난해 10월20일부터 11월8일까지 8회에 걸쳐 정비업체로부터 20억원을 차용하고, 26일 만에 2억원을 가산한 총 22억원을 지급해 조합원에게 피해를 줬다는 취지로 고소를 제기했다. 기간상 이자율이 140.77%에 달해 정비업체에 이익을 준 점을 문제삼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조합은 지난해 9월14일, 자금차입 관련 임시총회 의결을 통해 50억원에 달하는 이주비 및 사업비 금융비용 추정금액을 책정했다.

총회 자료 비고란에는 ‘상기 이주비, 사업비, 조합원 부담금 중 계약금/중도금 등의 대출총액(한도액) 및 적용금리 및 대출한도 등은 추후 사업 금융정책 변경, 추진 여건, 금리변동, 선정 금융기관의 변동 등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그 경우 별도 총회를 개최하지 않고 대의원회 의결을 통해 변경하고 추후 총회서 추인’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지연으로 인해 조합원 이주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조합 측은 앞서 지난해 9월15일~19일까지 수색8구역 이주 대상 조합원 전원에게 ‘조합원 이주 및 이주비 신청 안내 공고’를 냈다. 자진 이주 기간은 지난해 10월20일에서 올해 4월19일까지 총 6개월로 정했다.

다만, HUG의 이주비 대출보증 승인은 지난해 10월31일로 뒤늦게 실행되면서, 임시총회 의결을 근거로 같은 해 10월20일 이주비가 없는 조합원을 위해 조합 측이 정비업체로부터 20억원을 급하게 빌려 이주에 차질을 해소한 것이다.

90% 됐는데···교회 보상 두고 입씨름
보상금 65억 “과하다” “적정하다”


수색8구역 조합 측은 “당시 HUG와 이주비 및 사업 대출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었으나, 보증승인이 임박한 시점에 승인이 지연돼 대출 실행이 불가능했다”며 “HUG의 이주비 대출보증 승인 지연과 시공사로부터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초과함에 따라 정비업체를 통해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조합원 일부가 이주비를 받지 못해 이주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빌린 것”이라며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해 이자 명목이 아닌 수수료 명목으로 2억원을 지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비 관련 자금차입이 총회 의결을 취한 것이냐’는 의견에 관해 조합의 법률대리인인 안광순, 김미현(법무법인 현) 변호사는 “정비사업의 성격상 조합이 추진하는 모든 업무의 구체적 내용을 총회서 사전에 의결하기는 어렵다”며 “조합원들이 부담하게 될 부담의 정도를 (총회서)개략적으로 밝히고 그에 관해 총회의 의결을 거쳤다면 사전 의결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첨언했다.

아울러 A씨는 도정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업무상배임) 등으로도 조합장 등에 대해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앞서 조합은 수색8구역 내 ‘혜성교회’ 대지·임야·주택을 총평가액 4억5256만5630원으로 평가 후 관리처분 총회에 인가받았다.

사업시행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혜성교회는 전용 84㎡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한 바 있다 

조합은 혜성교회 바로 옆 임야 861㎡ 및 지상의 무허가 건물에 대해 손실보상금으로 65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해당 교회 부지 감정평가액은 31억4642만4150원이다. 해당 임야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기준 12만3700원으로 총가액은 1억590만3000원 수준인데, 총 4억5256만5630원을 제외하더라도 3.3㎡(평)당 약 2300만원, 공시지가의 57배의 보상을 해주는 것을 정상적인 가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또, 고소인 A씨는 “‘기타 이주보상비’가 혜성교회 관련이라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돼있지 않으며, 지난 2023년 9월14일 개최된 임시 주민총회서도 혜성교회 임야 관련 손실보상금이라는 설명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손실보상금 65억원과 기타 이주보상비 60억원의 차액인 추가 5억원에 대한 마련 방안도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근 비교 사례 보니···
숭인동 교회는 134억원

이에 조합 측은 “일반적으로 종교시설 보상 협의 과정서 단순히 시세, 감정평가금액 등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상회하는 사례 및 이주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종교 부지를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조합에서는 훨씬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 등을 감안해 이주보상을 하고 조속히 이주시키는 것이 조합에 이득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차액 5억원에 대해서는 예비비를 사용해 충당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취재진이 수색8구역 관리처분계획을 확인한 결과, ‘기타 이주보상비’ 명목으로 이미 60억원이 책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합은 “지난 2021년부터 혜성교회와 협의를 진행해 왔고 ‘기타 이주보상비’는 당연히 교회를 염두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60억원보다 높게 책정해뒀을 경우 이를 빌미로 더 큰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돼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지난해 10월 대의원회 의결을 거쳐 이주보상 합의서를 작성해 절차상 문제가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은 원만한 사업 진행을 위해 보상 규모를 최대한 깎아 혜성교회와 합의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혜성교회와 합의가 불가피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교회는 수색8구역서 벗어난 은평구 은평터널로 50-15에 있지만, 아파트 101동과 10m 안팎으로 마주보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채광 방향 이격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길이 약 200m, 폭 6m에 달하는 진입도로를 개설할 수밖에 없다.

도로 개설을 통한 이격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용적률이 하향돼 기존 29층서 3층으로 축소되며, 약 78세대가 감소하게 된다.

타 재개발구역 종교시설 보상사례를 살펴보면, 종교시설과의 보상 협의가 지연되면서 금융비융 추가 지출 등 막대한 손실이 곳곳서 발생한 바 있다. 혜성교회 면적(1005㎡)과 비슷한 숭인동 모 교회(1190㎡)의 경우 보상금으로 약 134억원을 받아간 사례도 있다.

즉, 보상 협의를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방향이 손실 금액 보전 등 사업의 성패를 크게 좌우한다.


한편, 당초 수색8구역은 지하 2층~지상 22층, 총 7개동, 578세대 아파트로 탈바꿈할 계획이었으나, 최고 29층, 7개동, 696세대로 변경을 앞두고 있다. 조합원 이주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지난달 19일 기준, 99.6%로 세입자, 조합원 총 779세대 중 778세대가 이주한 상태로, 오는 2025년부터 착공에 들어갈 전망이다.

억울한 조합장

시공사는 SK에코플랜트다.

지난달 25일 17시 기준, 수색8구역 재적 조합원 322명 중 서면결의서 제출 조합원은 208명, 서면결의서 제출 후 참석 조합원 44명, 직접 참석 조합원 26명이다. 서면 출석을 포함한 직접 참석 조합원은 68명으로 20%를 넘었다. 이어 서면결의서 및 직참을 포함한 총 참석 조합원은 234명으로 과반 출석 요건 또한 충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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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조국호 답 없는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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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쇄빙선을 자처하던 조국혁신당이 난파 위기에 처했다. 출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받아들였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딜레마에 모두가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성 비위 2건과 직장 내 괴롭힘 1건이 접수됐다. 첫 번째 성 비위 사건은 혁신당 상급자 A씨에 의해 약 10개월간 이뤄졌으며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의 유죄 선고가 있던 지난해 12월12일 ‘노래방 회식’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 이에 포함된다. 질질 끌더니… 결국 터진 폭탄 두 번째 성 비위 건은 지난 4월 혁신당 당직자 B씨가 당직자 면접을 보던 도중 발생했다. 직장 내 괴롭힘 역시 지난 1월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당 성 비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이다. 지난 5월6일, 사건이 보도되자 당시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당의 제도와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강도 높게 혁신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 대책부터 당내 조직 문화 개선, 그리고 당원들과 국민의 신뢰 회복 방안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와 진상조사 등 후속 조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당에서도 유감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재원 의원은 “오늘(5월9일)까지도 피해자가 요구한 외부 조사기관 지정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재발 방지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즉각적 분리 조치,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전수조사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중앙당은 성 비위 건의 경우 윤리위원회, 괴롭힘 건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조치하겠다고만 했다”고 비판했다. 최근까지도 당의 대처는 미온적이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성추행 및 괴롭힘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당을 떠났고 관련해 당의 쇄신을 외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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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책임론’에 발목이 잡혔다. 수많은 딜레마 속에서 조 비대위원장은 당의 키를 쥐었고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나서도 문제, 뒷짐도 문제 대권의 꿈 이렇게 무너지나 국민의힘은 “혁신당의 자진 해산 선언이다. 후안무치한 정당에 내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조 비대위원장은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도 피해자와 조력자들의 요청을 묵살했던 인물”이라며 “강 전 대변인 등 피해자 측에서는 조국 비대위 체제에 대해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지만 피해자보다 ‘조국 수호’에 혈안인 혁신당에 이런 의견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비꼬았다. 이재명정부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박 대변인은 “광복절 특사로 조 위원장을 불러낸 순간부터 이미 ‘조국 복귀 시나리오’는 짜여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국민 앞에 반성은커녕 특사로 면죄부를 주고, 이제는 비대위 등판으로 마무리하려는 이 뻔뻔함을 국민이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막상 키를 잡은 조 비대위원장이 이번 사태를 매듭지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초반에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지금의 사태가 된 만큼 이제야 진상조사에 나서는 건 무의미하단 지적이다. 조 비대위원장이 정치 1선으로 나오면서 “당이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다 써버렸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과 차악이라는 선택지만 남은 지금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다음 지방선거, 더 나아가 차기 대권에서 사용할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의 원인이었던 조 비대위원장이 또다 른 짐을 짊어지면서 그의 대권 가도가 점점 좁아질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가뜩이나 가능성이 작았던 더불어민주당-혁신당 간의 합당 논의가 끊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조 비대위원장이 대권 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큰 당에 합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줄줄이 리스크를 안은 상태에서는 민주당도 선뜻 받아주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뒷전인 채 조 비대위원장의 안위만 걱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대위가 들어서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이를 직시하고 반성하기보다 성 비위 사태로 인한 후폭풍과 조 비대위원장의 위상만 걱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분도 타이밍도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 비대위원장은 옥중에서라도 입장 표명을 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조 비대위원장이) 현재 어떤 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정치권 전면에 나섰든 원장직을 유지하고 물밑에서 수습하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번 성 비위 사건은 당에 치명타로 이어졌다. 당 전면에 나선 조 비대위원장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뿔뿔이 흩어지는 혁신당 성비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창립 멤버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사퇴를 하거나 당을 떠났다. 먼저 지난 7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핵심 인사로 꼽히던 황현선 사무총장이 사퇴했다. 황 사무총장은 “당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 대해 당원들과 국민께 사과드린다”면서도 당 지도부의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미 밝혔듯이 당 지도부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사 과정과 조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린다”며 “저에 대한 모든 비판과 비난을 모두 감내하겠다”고 밝혔다. 혁신당 창당 당시 공동 창당준비비대위원장을 지내며 조국 비대위원장을 도왔던 은우근 상임고문도 지난 10일 탈당 소식을 알렸다. 은 상임고문은 “혁신당이 이 위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에 대한 철저하고 근원적인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 비위 사건 피해자와 피해자 대리인에 대해 매우 부당한 공격이 시작됐다.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을 위해서나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멈춰 달라”며 “당의 사무처에서도 신속하게 대처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