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 평촌 재개발 현주소

9부 능선 넘었는데…고지 앞에서 올스톱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안양 평촌동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조합 측과 조합원 사이의 갈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조합 측이 갖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조합에 대항했다. 조합 측은 “말도 안 된다”며 비리 주장에 대해 일축했다. 조합 측은 비대위 뒤에 조합에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있다고 추측한다. 그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라는 것. 지금 평촌동 재개발 조합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평촌동지역주택조합 공동주택 조감도

조합 측과 비대위 측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6개동 472세대로 건립될 예정인 힐스테이트 아파트는 12월 착공 예정으로 알려졌다. 대도아파트, 서안빌라, 성우연립주택 등 평촌동 일원 2만4797.40㎡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조합 측과 비대위 측의 갈등이 나날이 첨예화되는 속에서 12월 착공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해졌다. 

비대위 반발
착공 불투명

애초 이 사업은 지난 2017년 6월27일 설립된 평촌동지역주택조합은 성우 연립주택 40세대가 단독으로 재개발을 추진하던 26002년부터 진행됐다. 2006년에 추진위가 설립된 후에는 주택조합이 설립됐다.

평촌동지역주택조합은 지난해 2019년 여름부터 토지보상비를 지급하기 시작해 99.64%의 토지를 확보했다. 조합원의 92.86%가 이주를 마친 상태며, 아직 매입하지 못한 토지에 대해서는 협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평촌동 재개발은 순항하며 마지막 총회만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 조합의 방식에 반대하는 세력이 생겼다. 이들은 150명 정도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조합에 정면 반박했다.


현재 총회는 계속해 무산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안양시 평촌동 55-1 현장 사업부지에서 제2차 임시총회를 개최했지만, 경기도 안양 평촌동 지역주택조합 비대위는 임시총회 개최에 맞서 임시총회 개최 저지에 나섰다. 

비대위는 임시총회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업무대행사 임원과 조합장 및 일부 조합 임원의 비리 즉 배임수재 및 배임증재에 연루된 증거가 포착돼 조사 중인 가운데 이뤄지는 이날 임시총회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자칭 내부고발자 J씨 “임원에 뇌물” 주장 
조합 “계약서 작성된 투명한 거래” 반박

조합 측은 이날 임시총회 안건으로 네 가지를 상정했다.

1호 안건은 시공사(공동사업자) 선정과 계약체결 업무 위임의 건이다. 2호는 자금 차입(브릿지론, PF대출) 및 중도금 대출 승인과 관련 업무 위임의 건, 3호는 조합사업비 예산(안) 변경 및 조합원 분담금 의결의 건, 4호는 선순위 대출 기한이익상실에 대한 기한이익부활 조건 수용에 대한 추인의 건이다.

비대위 반발은 심했다. 오전부터 손팻말을 비롯해 집회 차량을 동원하며 조합 측의 임시총회를 저지하기 위해 조합 측과 대치를 이어갔다. 위태로운 대치 상황을 이어가다 이들이 임시총회장으로 물리적으로 진입하면서 강하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조합원이 쓰러지면서 119 구급대에 의해 실려 가고 경찰 1개 중대가 더 이상의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양 측을 갈라놓기도 했다.  


순항하던 조합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합 측의 주장은 비대위의 주장과는 달랐다. 조합에 따르면 비대위가 만들어진 계기는 따로 있었다. 모든 상황이 J씨로부터 시작됐다는 것.

조합 관계자는 “P업체를 운영하는 분양업자 J씨가 조합에 앙심을 품고 자신을 내부고발자라 칭하며 ‘조합에 비리기 있다’며 조합원들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J씨는 “조합장과 조합 임원들에게 뇌물을 줬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때 J씨가 밝힌 뇌물의 금액은 조합장에게 690만원, 총무에게 480만원, 감사에게 230만원으로 총 1400만원이다. 이를 주장하며 조합원들을 선동했고 비대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건의 중심
한사람의 복수?

조합 관계자는 “J씨 혼자 이런 일을 벌이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전국지역주택연합회’라는 단체를 끌어들여 함께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국지역주택엽합회에 대해 알아본 결과 업무대행사 ‘D사’를 만들어 전국 지역주택조합을 찾아다닌다”면서 “비대위를 만들어 조합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집행부를 만들어 자신들이 장악하는 행각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J씨가 주장하는 뇌물과 관련해서 조합에 따르면 분양업자인 J씨는 소유주들에게 소유권 이전을 할 수 있도록 등기권리증을 받아야 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를 조합원들과 수년째 함께해온 조합 임원들에게 도움을 청해 온 것이다.
 

▲ 일요시사가 입수한 조합과 J씨가 작성한 용역계약서

조합에 따르면 J씨는 “등기권리증을 대신 받아주면 수수료 30만원에서 20만원을 상품권으로 주겠다”고 제안했고 조합 임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조합장과 조합 임원들, 직원들은 소유주들을 밤낮으로 설득해 등기권리증을 받아줬다.

이와 관련한 계약서도 존재했다. 조합은 이사회 회의록을 만들어 J씨와 용역계약서를 작성했다. 서류에는 ‘소유권 이전 서류를 작성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내용도 적시돼있었다.

조합은 이사회 의결도 받아놨다. OS업체를 쓰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렇게 된다면 한 달에 지출되는 금액이 7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직원들이 직접 움직이는 것으로 결정됐다.

총회 무산
피해 누적


관계자에 따르면 J씨와 비대위는 조합과 업무대행사에서 토지대금 대출금 1440억을 착복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조합 측이 제시한 수입지출내역을 확인한 결과 토지매입비로 1050억원, 1년치 이자 수수료 136억원, 업무대행사 수수료와 분양대행사 수료, 광고비 등 사업비로 282억원이 집행됐다.

조합 측 관계자는 “이 네 가지만 합쳐도 1440억원이 넘어가는데 비대위는 업무대행사에서 착복했다고 중상모략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비대위의 뒤에 있는 전국지역주택연합은 금융감독원에 “메리츠화재, 부국증권이 조합 측에 대출을 해주면서 비싼 이자를 줬다”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합 측은 “금감원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타 사업장과 비교해 저금리로 인정을 받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현재 조합은 현대건설과 MOU를 맺은 상태다. 조합에 따르면 비대위 측에서는 현대건설 담당자까지 “조합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현대건설 감사실에 허위 신고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의 조사 결과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감사가 들어온 이상 담당자는 해임할 수 밖에 없었다.

J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J씨의 고발로 인해 조합장, 임원들은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


조합 측은 대질조사 과정에서 J씨는 조합장과 임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조합장이 모두 시인했다” “수백억을 편취했다” “조합장이 조만간 구속될 것이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조합 측이 주장하는 ‘J씨가 조합에 품은 앙심’은 무엇일까? 조합에 따르면 J씨가 가지고 있는 P업체는 목적법인이다. J씨가 60%, 20%, 20%의 지분을 나눠서 소유하고 있다.

비대위 “법 어기고 개최한 임시총회 무효” 주장
조합 “원한에 의한 선동”… 목표는 조합 전복?

이렇다 보니 조합 측에서 받은 수수료 18억원은 J씨의 개인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J씨는 수억원의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고 심지어 회계정보 열람도 무시하며 돈을 쓰고 다녔다는 게 조합 측의 주장이다. 

이후 J씨는 조합에 12억을 더 요구했고 모든 사실을 알아챈 조합 측은 지급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조합에 따르면 심지어 일전에 지급했던 2억4000만원도 부당이익으로 확인돼 돌려달라고 말했지만 J씨는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J씨는 2015년부터 준비해왔던 임웜들과의 녹취록으로 12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지만 이것마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합은 이렇게 J씨와 조합의 사이는 크게 틀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조합 관계자는 “비대위의 방해로 총회가 계속 무산돼 조합의 피해는 계속 쌓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금융비 1200억원에 대한 만기가 끝났지만 시공사 선정이 미뤄지는 탓에 연체이자와 위약금 수수료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조합 측이 주장하는 비대위의 목적은 현 집행부를 쫓아내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집행부를 만들어 업무대행사 DHA와 시공사 서희건설을 들이겠다는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총회를 방해할 때 홍보차량까지 동원했다. 사무실도 차리고 사람을 동원하는 비용도 있을텐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며 “J씨가 뒤에서 돈을 대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J씨가 조합과 함께 일할 때 했던 행동들을 봤을 때 현재 비대위 임원들에게도 빠져나가지 못할 무언가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비선 의혹
연락 두절

<일요시사>는 비대위 측의 입장과 J씨와의 관계를 묻기 위해 비대위원장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수차례의 문자메시지 및 전화에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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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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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