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좌초 위기’ 신도림 293번지 재개발 속사정

3조 초대형 프로젝트 백지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은 2000년대 들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공업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고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오면서 구로구서 가장 ‘비싼’ 동네가 됐다. 이제 남은 곳은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 신도림동의 마지막 불모지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하철 1·2호선이 지나가는 신도림역은 ‘환승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혼잡도가 높다. 신도림역을 이용하진 않아도 이름은 알 정도로 악명이 높은 환승역이다. 과거에는 환승 승객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역 주변이 발전하면서 승·하차 인구도 크게 늘었다. 

하나 남은
낙후 지역

신도림동은 신도림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다. 대단지 아파트를 비롯해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구로구서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반면 준공업지역인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는 여전히 낙후된 상태다. 소규모 공장과 연립주택 등이 많아 잘 정비된 지역과 비교해 유독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는 2009년 서울시가 마련한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2012년 우선정비대상구역으로 지정됐다.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일대 19만6648㎡ 규모의 낙후 지역에 아파트, 지식산업센터 등을 짓는 공사비 3조원의 초대형 사업으로 정식 명칭은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이다.

2006년부터 추진위원회, (가칭)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주민대표회의 등 여러 단체들이 난립하다가 현재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사업 진행을 주도하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조합이 아닌 ‘토지등소유자’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구로구청은 주민을 상대로 사업방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토지등소유자 방식이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 방식은 별도의 조합 설립 없이 토지등소유자가 주체가 돼 사업을 이끄는 것으로, 조합 방식에 비해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토지등소유자가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려는 경우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기 전 사업시행계획서에 대해 토지등소유자의 75% 이상, 토지 면적의 50%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추진위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토지등소유자(965명) 가운데 3분의2 이상(685명)의 동의를 받아 건축심의를 완료했다. 이후 2021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이 반려된 끝에 토지등소유자 4분의3 이상(728명)의 동의를 받아 지난해 9월 다시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했다. 

공사비 3조원, 6만평 규모
아파트·지식산업센터 예정

문제는 최근 추진위와 구로구청 사이에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업이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교육환경평가를 두고 추진위와 구로구청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

교육환경평가는 교육환경의 근본적인 확보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 예정지나 기존 학교 일대의 위치, 교통, 일조, 지형, 환경, 위험시설, 공공시설 등의 항목을 평가해 위해성이 있는 환경은 사전에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다. 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교육환경평가서를 관할 교육감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추진위는 아직 교육환경평가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구로구청은 추진위가 교육환경평가서를 승인받지 못한 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한 부분이 ‘절차상 하자’라고 보고 신청서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을 통지했다. 교육환경평가를 완료하고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서를 다시 받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라는 입장이다. 


구로구청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과 시행령, ‘교육환경보호에관한법률’(교육환경법) 시행령 등에 의거해 “사업시행자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 전에 사업시행계획서 작성 시 교육환경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계획 등을 포함해 작성하고 토지등소유자 동의서를 징구하도록 규정함”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재 추진위가 제출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내용 없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재수 끝에
3차 신청

한복순 추진위원장은 “55개 유관 부서 중 53개 기관과 인가 협의를 완료하고 교육환경평가를 비롯한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이하 중토위)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중 중토위 절차는 구로구청서 진행하는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교육환경평가만 남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추진위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2017년 2월 교육환경법이 시행되면서 학교나 교육환경보호구역이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에 포함된 경우 반드시 교육환경평가서 승인을 받도록 했다. 법이 시행되기 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한 위원장은 “2019년 7월 서울남부교육청에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하고 한국교육환경보호원과 협의하는 과정서 지난해 3월 공문 한 건을 발견했다”며 “2011년 구로구청과 서울남부교육청이 협의한 내용이 담긴 문서였다”고 설명했다.

추진위에 따르면 공문에 담긴 협의 내용에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명시돼있지 않았다. 

추진위는 해당 공문을 근거로 이의 신청을 진행했고 교육부는 지난 5월 신도림 정비사업이 교육환경평가 대상인지 법제처에 질의했다. 법제처는 교육환경법이 시행되기 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정비사업 역시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하고 승인받아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구로구청은 법제처의 답변을 근거로 추진위의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려하면
백지화?

추진위 측은 교육환경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인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을 반려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구로구청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를 되돌려 보내면 총회를 열 수 없는 토지등소유자 방식의 특성상 모든 절차를 원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한 위원장은 “구로구청의 결정에 따라 건축심의를 위한 동의서(전체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2 이상), 사업시행계획 동의서(전체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3 이상)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물론 200억원 이상 사용한 사업비 손실도 불가피하다”며 “사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윤석열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구로구청의 부당한 행정처리를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동의서를 받은 이후 사업시행계획이 변경됐다는 것을 이유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의사 표시를 무효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험하고 낙후된 환경서 벗어나 새로운 안전한 보금자리에 안착할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또 구로구청의 사전통지에 법무법인의 의견서를 받아 회신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의견서에 따르면 “제출된 사업시행계획서에 교육환경 영향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계획 등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현 상황서 곧바로 반려하는 것은 인가권자의 재량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법무법인은 “추진위가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해 사업시행계획안이 일부 변경된다고 해도 정비 사업비를 10% 범위서 변경하는 경우, 대지면적을 10% 범위서 변경하는 경우 ‘경미한 변경사항’으로 정하고 있다”며 “교육환경평가서의 제출로 인한 사업시행계획 변경은 경미한 변경사항에 준한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교육환경평가’ 쟁점으로
떼쓰기냐, 직권남용이냐

다시 말해 사업시행계획안이 일부 변경되더라도 기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의사표시가 무효가 되는 게 아니니 동의서를 새로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추진위서 신문광고, 소식지 배포 등 사업 관련 정보를 전달하면서 구로구민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로구민은 “지자체에서는 허가권자가 말 그대로 왕이다. 구로구에서는 구청장이 왕인 셈이다. 선거 기간에는 신도림동 293번지 재개발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하더니 지금에 와서 사업을 백지화하려 든다”며 “이것이야 말로 ‘말바꾸기’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구로구민은 “추진위는 법을 위반한 상태다. 법률에 명시된 대로 진행해야지, 떼를 쓰고 우긴다고 들어주는 게 말이 되나. 추진위에서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를 반려하면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것이라고 겁을 주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진행하면 충분히 금방 삽을 뜰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추진위는 현행법에 명시된 교육환경평가를 피하려는 게 아니다. 구로구청은 추진위가 아예 교육환경평가를 받지 않으려 한다면서 주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토지등소유자 방식에 대한 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서 여러 잣대를 맞추다 보니 벌어진 것이다. 2006년부터 진행돼온 정비사업이 좌초되지 않도록 중지를 모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누가 맞나
진실공방

구로구청 관계자는 “추진위서 낸 신문광고는 일방적인 주장만 담긴 것”이라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에 절차상 하자가 있는 상태서 인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게 구로구의 입장이다. 구청도 변호사 자문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문헌일 구청장이 선거 때와 말이 달라졌다’는 일부 주민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신도림동 293번지 재개발사업은 구청장의 공약 사업이다. 구청도 사업이 잘 진행돼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한다”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의 반려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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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