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좌초 위기’ 신도림 293번지 재개발 속사정

3조 초대형 프로젝트 백지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은 2000년대 들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공업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고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오면서 구로구서 가장 ‘비싼’ 동네가 됐다. 이제 남은 곳은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 신도림동의 마지막 불모지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하철 1·2호선이 지나가는 신도림역은 ‘환승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혼잡도가 높다. 신도림역을 이용하진 않아도 이름은 알 정도로 악명이 높은 환승역이다. 과거에는 환승 승객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역 주변이 발전하면서 승·하차 인구도 크게 늘었다. 

하나 남은
낙후 지역

신도림동은 신도림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다. 대단지 아파트를 비롯해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구로구서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반면 준공업지역인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는 여전히 낙후된 상태다. 소규모 공장과 연립주택 등이 많아 잘 정비된 지역과 비교해 유독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는 2009년 서울시가 마련한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2012년 우선정비대상구역으로 지정됐다.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일대 19만6648㎡ 규모의 낙후 지역에 아파트, 지식산업센터 등을 짓는 공사비 3조원의 초대형 사업으로 정식 명칭은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이다.

2006년부터 추진위원회, (가칭)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주민대표회의 등 여러 단체들이 난립하다가 현재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사업 진행을 주도하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조합이 아닌 ‘토지등소유자’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구로구청은 주민을 상대로 사업방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토지등소유자 방식이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 방식은 별도의 조합 설립 없이 토지등소유자가 주체가 돼 사업을 이끄는 것으로, 조합 방식에 비해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토지등소유자가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려는 경우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기 전 사업시행계획서에 대해 토지등소유자의 75% 이상, 토지 면적의 50%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추진위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토지등소유자(965명) 가운데 3분의2 이상(685명)의 동의를 받아 건축심의를 완료했다. 이후 2021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이 반려된 끝에 토지등소유자 4분의3 이상(728명)의 동의를 받아 지난해 9월 다시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했다. 

공사비 3조원, 6만평 규모
아파트·지식산업센터 예정

문제는 최근 추진위와 구로구청 사이에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업이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교육환경평가를 두고 추진위와 구로구청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

교육환경평가는 교육환경의 근본적인 확보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 예정지나 기존 학교 일대의 위치, 교통, 일조, 지형, 환경, 위험시설, 공공시설 등의 항목을 평가해 위해성이 있는 환경은 사전에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다. 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교육환경평가서를 관할 교육감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추진위는 아직 교육환경평가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구로구청은 추진위가 교육환경평가서를 승인받지 못한 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한 부분이 ‘절차상 하자’라고 보고 신청서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을 통지했다. 교육환경평가를 완료하고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서를 다시 받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라는 입장이다. 

구로구청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과 시행령, ‘교육환경보호에관한법률’(교육환경법) 시행령 등에 의거해 “사업시행자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 전에 사업시행계획서 작성 시 교육환경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계획 등을 포함해 작성하고 토지등소유자 동의서를 징구하도록 규정함”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재 추진위가 제출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내용 없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재수 끝에
3차 신청

한복순 추진위원장은 “55개 유관 부서 중 53개 기관과 인가 협의를 완료하고 교육환경평가를 비롯한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이하 중토위)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중 중토위 절차는 구로구청서 진행하는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교육환경평가만 남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추진위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2017년 2월 교육환경법이 시행되면서 학교나 교육환경보호구역이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에 포함된 경우 반드시 교육환경평가서 승인을 받도록 했다. 법이 시행되기 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한 위원장은 “2019년 7월 서울남부교육청에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하고 한국교육환경보호원과 협의하는 과정서 지난해 3월 공문 한 건을 발견했다”며 “2011년 구로구청과 서울남부교육청이 협의한 내용이 담긴 문서였다”고 설명했다.

추진위에 따르면 공문에 담긴 협의 내용에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명시돼있지 않았다. 

추진위는 해당 공문을 근거로 이의 신청을 진행했고 교육부는 지난 5월 신도림 정비사업이 교육환경평가 대상인지 법제처에 질의했다. 법제처는 교육환경법이 시행되기 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정비사업 역시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하고 승인받아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구로구청은 법제처의 답변을 근거로 추진위의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려하면
백지화?

추진위 측은 교육환경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인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을 반려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구로구청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를 되돌려 보내면 총회를 열 수 없는 토지등소유자 방식의 특성상 모든 절차를 원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한 위원장은 “구로구청의 결정에 따라 건축심의를 위한 동의서(전체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2 이상), 사업시행계획 동의서(전체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3 이상)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물론 200억원 이상 사용한 사업비 손실도 불가피하다”며 “사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윤석열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구로구청의 부당한 행정처리를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동의서를 받은 이후 사업시행계획이 변경됐다는 것을 이유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의사 표시를 무효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험하고 낙후된 환경서 벗어나 새로운 안전한 보금자리에 안착할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또 구로구청의 사전통지에 법무법인의 의견서를 받아 회신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의견서에 따르면 “제출된 사업시행계획서에 교육환경 영향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계획 등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현 상황서 곧바로 반려하는 것은 인가권자의 재량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법무법인은 “추진위가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해 사업시행계획안이 일부 변경된다고 해도 정비 사업비를 10% 범위서 변경하는 경우, 대지면적을 10% 범위서 변경하는 경우 ‘경미한 변경사항’으로 정하고 있다”며 “교육환경평가서의 제출로 인한 사업시행계획 변경은 경미한 변경사항에 준한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교육환경평가’ 쟁점으로
떼쓰기냐, 직권남용이냐

다시 말해 사업시행계획안이 일부 변경되더라도 기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의사표시가 무효가 되는 게 아니니 동의서를 새로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추진위서 신문광고, 소식지 배포 등 사업 관련 정보를 전달하면서 구로구민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로구민은 “지자체에서는 허가권자가 말 그대로 왕이다. 구로구에서는 구청장이 왕인 셈이다. 선거 기간에는 신도림동 293번지 재개발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하더니 지금에 와서 사업을 백지화하려 든다”며 “이것이야 말로 ‘말바꾸기’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구로구민은 “추진위는 법을 위반한 상태다. 법률에 명시된 대로 진행해야지, 떼를 쓰고 우긴다고 들어주는 게 말이 되나. 추진위에서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를 반려하면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것이라고 겁을 주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진행하면 충분히 금방 삽을 뜰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추진위는 현행법에 명시된 교육환경평가를 피하려는 게 아니다. 구로구청은 추진위가 아예 교육환경평가를 받지 않으려 한다면서 주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토지등소유자 방식에 대한 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서 여러 잣대를 맞추다 보니 벌어진 것이다. 2006년부터 진행돼온 정비사업이 좌초되지 않도록 중지를 모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누가 맞나
진실공방

구로구청 관계자는 “추진위서 낸 신문광고는 일방적인 주장만 담긴 것”이라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에 절차상 하자가 있는 상태서 인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게 구로구의 입장이다. 구청도 변호사 자문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문헌일 구청장이 선거 때와 말이 달라졌다’는 일부 주민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신도림동 293번지 재개발사업은 구청장의 공약 사업이다. 구청도 사업이 잘 진행돼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한다”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의 반려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2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