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 일명 ‘통합선거법’의 탄생 및 그로 인한 선거 문화의 변화에 대해 논해보자. 시간은 지난 1992년 12월에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황을 살피면 선거 초반에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과 민주당의 김대중이 2강, 그리고 통일국민당의 정주영이 1약 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서서히 선거 열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정주영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정주영의 약진에는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바탕으로한 무차별적인 자금 살포가 주원인으로 작동했다. 그를 살핀 김영삼 측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영의 지지기반과 김영삼의 지지기반이 겹치기 때문으로 정주영의 선전은 역으로 김영삼의 당선을 위태롭게 만드는 형국이었다.
그에 봉착하자 김영삼 측도 자금살포에 치중하면서 선거를 이끌었고,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은 동 선거에 대해, 즉 무차별적인 자금살포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그의 임기 중에 통합선거법이 탄생하게 된다.
당시 정치판에 있었던 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 중 동 법의 탄생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이전까지 실시되었던 각종 선거는 이승만 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부정부패가 무색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 대목에서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음을 실토한다.
여하튼 동 법은 자금 살포 등 선거 관련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선거는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일체의 사사로움을 배격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지니고 출발했다.
이후 괄목할만한 변화를 보이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제 최근의 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서울시장 선거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비롯해 소수의 여성 단체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한 일에 대해서다.
그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으로 인해 보궐선거가 실시된다는 점, 그리고 민주당이 당헌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개정해 후보를 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렇다면 박 후보는 그들의 요구대로 사퇴해야 옳을까.
필자에게는 그렇게 요구하는 인간들의 정신상태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그들의 주장은 선거법이 목표로 하는 공정은 물론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 제13조 3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공정에 대해서다. 비록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행위로 인해 보궐선거가 실시되지만 보궐선거 역시 선거법이 명시한 적법한 선거다. 그런 경우라면 보궐선거 역시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
그들이 빌미로 삼고 있는 민주당의 당헌 개정은 일전에 <일요시사>를 통해 언급했지만, 거짓을 행한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다. 그런 경우 공정한 절차를 통해 입후보한 박 후보에게 공정한 기회를 줌이 마땅하다.
다음은, 그들은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을 위반하는 것도 모자라 비웃고 있다.
헌법은 친족의 행위로도 연좌의 죄를 물을 수 없다 했는데 생판 남인 박 전 시장의 일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니, 제 정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박 전 시장에게 성폭행 당한 여인에게 연민이 일어난다. 박 후보를 향한 그들의 사퇴 주장은 선거기간 중 가열하게 이어질 텐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