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VS 윤석열 탄핵 지연전 비교

끌면 끌수록…시간은 누구 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지 10여일 만에 첫 단추를 끼웠다. 헌법재판소의 강행이 있어서 가능했다. 윤 대통령 측은 여전히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변호인단은 준비기일 당일에 겨우 구성됐다. 앞서 수사와 탄핵심판에 당당히 나서겠다고 밝혔던 윤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최장 180일인 탄핵심판 기간이 초과할 것이라는 우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2주가 지났지만 관련 절차는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윤 대통령이 변호사 선임을 이유로 서류조차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변호인을 통해 “탄핵 심판에 당당히 나서겠다”고 말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겨우 겨우
첫 단추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300명이 표결에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대통령실로 보냈다.

지난 14일 오후 7시24분 탄핵소추의결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제는 수사기관과 헌재의 시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첫 단추 끼우는 것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 심판 관련 접수 통지 및 준비명령 수취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16일부터 우편과 인편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탄핵 심판 접수 통지와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 서류를 보냈으나 송달에 실패했다. 관저에 보낸 우편은 경호처가 수령을 거부했고, 대통령실로 보낸 우편은 수취인이 없다는 이유로 반송됐다. 

구체적으로 인편으로 총 세 차례, 우편으로는 네 차례 대통령 관저와 비서실에 전달됐지만 배달되지 않았다. 계엄포고령 1호와 계엄 관련 국무회의 회의록 등 준비명령서는 인편과 우편으로 각각 두 차례 전달됐으나 수취인 부재, 경호처 수취 거부 등으로 직접 송달에 실패했다.

과거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통과된 것은 2016년 12월9일이다. 박 대통령 쪽은 일주일 만인 같은 달 16일 헌재에 소송위임장과 답변서를 제출했다. 201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경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5일 만에 소송위임장과 의견서가 헌재에 제출됐다.

헌재는 이에 형사소송법 제65조, 민사소송법 제187조에 따라 지난 20일 서류가 도달해 송달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65조, 민사소송법 제187조, 관련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소송서류 송달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등기우편으로 발송할 수 있고 송달의 효력은 소송서류가 송달할 곳에 도달된 때에 발생한다.

10일 동안 서류 수취 안 해 ‘버티기’
미루다 준비기일 당일 변호인단 제출

따라서 헌재가 대통령 관저로 보낸 탄핵 심판 서류들은 지금껏 경호처의 수취 거부로 송달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헌재의 발송송달 조치에 따라 송달이 이뤄진 것으로 간주한다.


헌재 측은 이번 발송 송달을 통해 서류가 지난 20일 목적지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간 있어왔던 심판 서류 ‘송달’에 대한 법리적 논란을 해소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24일까지 계엄 관련 국무회의록, 증거 목록, 입증 계획 등을 제출하라고 명령했고, 27일 계획된 윤 대통령의 변론준비기일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고지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지난 24일에도 헌재가 명령한 국무회의록과 증거 목록, 입증 계획 등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27일 변론준비기일은 무리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대외 공보 역할을 수행 중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24일 오전 기자회견서 “형사소송서도 기소 사실을 인지한 후, 변호사를 선임하고 공소장 부본 확인하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면서 “27일 변론준비기일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대통령의 워딩”이라고도 했다.

이에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지금까지 대통령 탄핵심판이 두 차례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기간을 주지도 않았다”면서 “답변서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는 변론준비절차를 27일로 정해서 고지했고, 대통령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며 “ 지난 14일 담화문을 통해 윤 대통령은 스스로 계엄 선포가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탄핵 심판이든 수사든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얘기했으면서 계속 지연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계속 (탄핵 심판)서류 송달을 거부하고 대리인 지정도 안 하면서 송달됐다고 하니까,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적반하장”이라며 “이렇게 (절차를)지연하거나 서류 송달조차 거부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렵사리 헌재의 탄핵심판절차가 시작됐지만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헌재 심판을 늦출 변수가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우선 윤 대통령이 대리인단을 확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꼽혔다. 실제로 지난 26일까지도 오직 윤 대통령과 40년 지기라는 석동현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대리인단 불출석에 따른 재판 지연은 앞서 변론준비절차기일이 연기된 ‘검사 탄핵 심판’ 사건서도 나왔다.

그대로 
따라하기?

지난 18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변론준비절차는 3분 만에 끝났는데, 국회 측 대리인단이 불출석했기 때문이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지난 16일쯤 선정됐지만 선임 절차에 시간이 걸려 불출석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대리인단 명단을 제출하든 재판에 불출석하든 심판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첫 변론준비기일에 윤 대통령이나 대리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궐석재판으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내부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궐석재판이란 피고인이 불가항력의 사고 없이 법정에 출정하지 않는 상태서 피고의 출석 없이 진행되는 재판을 말한다. 재판부가 윤 대통령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궐석재판 가능성을 시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헌재가 윤 대통령이 불출석한 상태서 불가피하게 궐석재판을 진행할 경우에는 늦어도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변론이 가능할 전망이다.

노 변호사는 “윤 대통령 측에서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고 하면 12월30일이나 31일쯤 한번 정도 더 변론준비기일을 갖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내년 1월부터는 본격적인 변론 절차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변론준비기일 전날까지 변호인단 명단을 제출하지 않다가 재판 시간 4시가량 전인 지난 27일 오전 9시30분경에 헌재에 헌법재판소 출신 배보윤 변호사와 강력·특수통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배진한 변호사 등을 선임했다는 소송위임장을 제출했다.

이로 인해 궐석재판이 이뤄지지는 않을 예정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석 변호사의 예고와 다르게 첫 변론준비기일에도 참석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최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여부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신임 재판관 임명동의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부당함을 다투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임명동의안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함께 낼 것으로 관측된다. 


헌재법 제65조는 ‘헌재가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받았을 때는 직권 또는 청구인의 신청에 의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더라도 결과가 나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처분 신청을 병행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한 ‘상설특검 규칙 개정안’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함께 신청한 전례가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한 대행의 임명 권한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 별도의 가처분 신청이 결과론적으로 유의미하진 않겠지만 시간을 끌기 위한 정치적 공세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가처분
가능성도

국민의힘이 권한쟁의심판과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여야의 갈등 지속으로 후보자 3인의 임명 시기가 늦어지면 윤 대통령 측에서 이를 재판 지연 전략의 빌미로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9인 체제가 꾸려진 뒤에 공정한 재판을 받겠다’는 이유로 심리 연기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석 변호사는 현재 헌재가 재판관 3명이 공석인 것을 지적하며 “6인의 불완전한 합의체”라고 말했다. 그는 “변론준비절차는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법률가로서 부인하지 않지만, 본격적인 심리를 6인 체제로 할 수 있느냐를 포함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논쟁적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석 변호사의 말은 헌재가 6인 체제로 본격적인 탄핵 심판 심리를 진행할 경우 이를 문제 삼아 탄핵 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헌재서 본격적으로 변론이 시작된 뒤에 재판관들이 임명될 경우 윤 대통령 측에서 공판 갱신 절차를 요구하며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탄핵 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데, 형사소송법은 공판 도중 재판부 구성이 바뀌면 증거조사를 다시 하는 등 갱신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지난 26일,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헌법재판관 임명에 관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거론하면서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하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고 못 박았다. 헌재서 궐석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차후 윤 대통령 측이 재판의 정당성을 빌미로 재판은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시작 전부터 지연 전략을 펼쳤다면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을 진행하면서 지연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과거 박 전 대통령도 탄핵 심판 정국서 고의로 심리를 지연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3차례 열린 변론준비기일에 ‘국회의 탄핵 사유에 객관성이 부족하다’면서 각 기관과 기업에 무더기로 사실조회를 신청하며 노골적으로 지연 전략을 펼쳤다.

이후 형사재판과 같은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면서 90명에 달하는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다. 신청이 기각돼도 거듭 신청해, 당시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당시 헌재는 “탄핵 심판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박 전 대통령 측의 요구를 지적했다.

문제는 대행의 재판관 임명 여부
박처럼 무더기 증인 신청 가능성

당시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측의 추가 증인 신청에 대해 “피청구인(대통령) 측에서 여러 기관에 사실조회 신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게 채택되면 관련 증인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헌재는 36명에 이르는 증인을 채택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심판정에 나오지 않아 25명만이 신문을 받았다.

재판부는 반복된 질문엔 제동을 걸며 심리에 속도를 내기도 했다.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 입에서는 “생략”과 “효율”이라는 단어가 반복돼 나왔다. 이 권한대행은 증인신문 도중 “비효율적이다” “내용이 지엽적”이라며 박 대통령 측 신문을 여러 차례 막아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증인이 앞서 답변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심리 중반에 들어서자 박 전 대통령 측은 ‘대리인단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 들 낌새를 내비치기도 했다. 새 대리인단이 선임될 때까지 심리는 멈추고, 심판이 재개되더라도 기록 검토를 위한 시간을 요청할 수 있어 심리가 늘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 측은 ‘대리인단이 없어도 탄핵 심리는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는 등 시간 끌기 전략 방어에 힘을 쏟았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막판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출석해 최후진술 할 가능성을 보이며 최종변론기일을 늦춰달라는 요청도 했다. 그러자 헌재는 최종변론 기일은 재판부가 정한 날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헌재는 “국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이 두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1년이고, 2년이고 재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2월9일에 탄핵안이 가결되고 탄핵 심판이 청구된 지 91일 만인 2017년 3월10일에 재판관 8명 전원 찬성으로 파면됐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처럼 정식 변론서도 지연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서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고 한 데 이어 석 변호사가 연일 내란죄를 전면에 내세우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내란죄 성립 여부에 대해 우선적으로 다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석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시 국회의원을 ‘체포해라’ ‘끌어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하는 등 구체적 사실관계도 부인했다. 탄핵 심판서도 이 같은 주장을 펴며 구체적인 법률 위반 여부는 물론 수사기록이나 언론 보도 등이 증거로 인정되는지를 다툴 수 있다.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의 관련자를 무더기로 증인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

남아있는 
변수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으나 이를 풀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이 공개 변론서 직접 입장을 밝히거나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탄핵 심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탄핵 심판보다 가벼운 가처분에 대한 판결을 우선적으로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관련 서류조차 안 받으며 지연 전략을 펼치고 있는 윤 대통령이 어떤 변수를 만들고 이에 대처하는지가 중요해 보인다”고 일침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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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