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여론 수수께끼 보수 대결집 막전막후

너무 나갔나? 역풍이 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지만 야당은 여전히 가시방석이다. 보수의 결집력은 때릴수록 강해지니 섣불리 손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그토록 바라던 정권교체의 갈림길에 섰지만 딱 한 발 내디딜 힘이 부족하다.

탄핵 정국 속 야당의 지지율이 치솟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오히려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지난 한 달 새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급격한 상승
반전에 반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된 이후 민주당은 민생 행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중 은행장들을 만나 서민금융 지원 방안도 논의했다. 최고위 등에서도 ‘국민’ ‘민심’을 강조하며 민생에 방점을 찍었다.

너무 이르게 샴페인을 터뜨렸다가는 민심의 역풍을 맞을까 오히려 신중하게 메시지를 던져 왔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이 힘을 못 받는 이유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호감도만큼이나 비호감 역시 높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지지자를 일컫는 ‘개딸(개혁의 딸들)’ 못지않게 반이재명 정서가 중도층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16∼1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이 46.5%로 직전 조사보다 5.7%p 상승했다. 민주당이 39.0%로 3.2%p 하락했다.

해당 기간은 윤 대통령에 체포된 바로 다음 날 이뤄진 것으로 1.4%p로 오차범위 내에 있던 양당 지지도 격차는 오차범위 밖인 7.5%p로 벌어졌다.

야당이 당황한 지점은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 여부다. 차기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 의견이 48.6%로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46.2%)’보다 높게 집계된 것이다. 오차범위 내에서지만 일주일 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정권 연장론은 7.4%p 상승했고 정권교체론은 6.7%p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봤을 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92.6%가,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역시 92.6%가 각각 정권 연장론과 교체론을 지지했다. 무당층에서는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의견이 44.2%로 정권 연장을 지지하는 37.7%보다 많았다.

이번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7.8%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쑥 오른 여, 뚝 떨어진 야
예상 못한 대반전…지지율 영끌?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벼랑 끝에 몰리자 다급해진 보수 지지자들이 사활을 걸고 여론조사에 답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지율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았다)’ 또는 정부·여당을 자화자찬에 취하게 할 ‘신기루’에 빗대는 이들도 있었다.


보수 대권 잠룡 중 한 명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심이 돌아선 원인은 민주당 자신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민주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국가적 혼란 중에도 민생 안정 대신 정쟁과 위법 논란, 이재명 방탄에 주력한 결과로 여야 지지율이 역전됐는데 왜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하나. 민심마저 검열하려 드는 ‘오만함’, 여론조사 기관 탓만 하는 ‘책임 회피’, 이재명 방탄만을 위한 ‘소아적 정치’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꿈틀하는 동안 민주당은 여론조사 왜곡·조작에 대한 검증과 대응을 위한 당내 기구인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이하 여조특위)를 설치했는데, 이 역시 민심의 역풍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앞서 여조특위는 여론조사 정확성을 더 높일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향을 중점 과제로 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 21일 첫 회의를 열고 뒤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가 정확하지 않지 않나. 트럼프(미국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고, 2022년(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도 다 틀렸다”며 “지난 대선 당시 명태균 게이트 사례서 나타났듯이 여론조사 조작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자당 지지율이 높을 땐 일언반구 말이 없더니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간 후 여론 호도라는 비판을 퍼붓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이양수 사무총장은 원내대책회의서 “김어준표 여론조사만 남기고 모두 통제하겠다는 것이고 카톡 검열에 이어 여론조사 검열까지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 초기부터 보수가 결집한 건 아니다. 보수 단체는 서울 광화문 등 일대서 ‘윤석열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지만 국회 앞을 메운 탄핵 찬성 집회에 목소리가 묻혔다.

탄핵 반대 집회에 불이 붙은 건 윤 대통령이 관저 내에서 체포영장을 거부하던 시점부터다. 관저 앞을 지키는 여당 의원들의 발언 수위가 세지면서 내내 숨죽이고 있던 보수 지지층의 행동이 거칠어진 것이다.

폭동 사태
다시 순풍?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여당이 나서서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판사를 즉각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골단’ 기자회견을 주선한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 역시 “윤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일도 없는데 이 엄청난 (부정선거)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 대통령직까지 걸었다”고 말해 군불을 땠다.

국민의힘을 든든한 ‘빽’으로 삼은 극우세력은 윤 대통령 수호대를 자처했다. 윤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면 극우세력이 스피커 역할을 하고, 이를 지켜보는 여당 의원이 맞장구를 치면서 점점 더 결집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대통령이 벼랑에 몰리면 아스팔트 지지층이 강하게 결집하는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때에도 광화문 곳곳서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혐오감이 짙게 깔린 시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헌법 수호 시위와 반헌법 시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혐오의 여부”라며 “국회 앞 시민의 분노가 건강한 저항이라면 윤 대통령 지지자의 분노는 혐오다. 이 같은 혐오 시위는 표현 방식과 양상에서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윤 대통령 구속 직후 윤 대통령 지지층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서울서부지법과 헌법재판소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경찰을 폭행하는 등 난동을 피운 것이다.

해당 사태를 지켜본 한 야권 관계자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일부 보수세력이 과하게 결집한 결과”라고 말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계기로 보수가 강하게 집결할 가능성도 있지만, 멀리 본다면 중도층의 민심이 이들로부터 돌아서지 않았겠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민주당이 못하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지만, 반대로 민주당이 잘한다고 해서 혜택이 당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복잡한 셈법이 난무하는 여의도에서는 서로의 반사이익에 기댄 채 여론 주도권을 쥐는 쪽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민주당 강유정 대변인은 “헌법기관에 대한 도전이자 국가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체제적 범죄”라며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 공화국의 근간을 부정한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진압되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반국민 세력의 준동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곳서
실금이?

민주당 등 야5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밖에도 민주파출소·민주당 허위조작 가짜 뉴스 방송 제보 등을 통해 가짜 뉴스와 불법 현수막 등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를 제보받아 모니터링하겠다는 방침이다.

여론전으로 국면이 바뀔 때마다 여야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국민의힘 상승 그래프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탄핵 정국 이후 치러질 조기 대선서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란 확신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는 저들과 다르게 갑시다. 달라야 이길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김 전 지사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비판하며 “저들의 모습에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극단적 증오와 타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주의, 독선과 오만,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가야 한다”며 “저들과 달라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렸다”고 밝혔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보다 직접적으로 이 대표를 겨냥했다. 임 전 실장은 “나쁜 대통령을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체포·구속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면서도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해도 일상이 돼버린 적대와 싸움의 정치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안에 원칙을 소홀히 하며 자신의 위치를 먼저 탐하고, 태도와 언어에 부주의한 사람들이 지지자들에게 박수 받고 행세하는 게 참 불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뜻함을 잃어버리며 대화와 타협을 가볍게 여기고 이 대표 한 사람만 바라보며, 당내 민주주의가 숨죽인 지금의 민주당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상대의 실수에 얹혀서 하는 일은 지속하기가 어렵다. 성찰이 없는 일은 어떻게든 값을 치르게 된다. 민주당은 지금 괜찮느냐”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한 사람만 바라봐”
갑자기 시작된 집안싸움 역풍에 역풍

민주당 최대 원외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혁신회의)는 곧바로 임 전 실장을 겨냥하는 듯한 논평을 냈다.

혁신회의는 12·3 내란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이 와중에 작금의 정치 현실을 만든 당사자들이 말을 보탰다. 반성은커녕 여전한 기득권의 태도로 가르치려 나섰다”며 “‘일상이 돼버린 적대와 싸움의 정치’를 운운한다. 지금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싸우는 대상은 민주 공화국의 적(敵)”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본인이 하면 민주화 운동이고 남들이 하면 그저 ‘적대와 싸움의 정치’일 뿐인가. 내로남불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알량한 정치적 자산을 챙기기 위한 아군을 향한 총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기적인 자폭행위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재명 대표와 함께 오직 국민만 보고 당내 기득권을 반드시 극복하고 혁신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의 고민은 이 대표 외에 경쟁력·대중성 있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보수세력이 “이재명은 안 된다”고 외쳐도 민주당이 이 대표를 선두로 내세우는 이유다. 이 대표 체제로는 조기 대선을 이길 수 없다는 쪽과 이 대표 외에 대안이 없다며 맞서는 이들의 신경전이 예고된다.

아직 내란 사태가 채 수습되지 않은 상태서 같은 편끼리 힘겨루기에 나설 경우, 또 다른 역풍이 불어닥칠지 지켜보는 이들도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도 윤 대통령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이지만 출당은커녕 탈당 요구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변론기일이 거듭될수록 보수 결집력이 약해지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야권 전면에 깔려 있지만,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욱 강하게 뭉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보수의 대선 레이스가 한남동 관저 집회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면 지금보다 더욱 격양된 양상을 보일 것이란 관측도 제시된다.

자신감도
과유불급

윤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부정선거 의혹이 민주당에 순풍이 될지 눈길이 쏠린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상황은 충분히 야당에 유리하다. 대통령이 별안간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는데 (민주당)지지율이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사소한 실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라며 “무리해서 여론전을 펼치다 보니 민심에 반하는 순간이 생긴다. 중도층, 그중에서도 정치 저관여층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지 이 부분은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고 조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론조사 희비, 뭐가 문제?

더불어민주당이 연일 여론조사 결과표를 뜯어보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정권교체론보다 정권 연장론을 지지하는 일부 여론조사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민주당에선 보수 성향 지지자가 활성화된 ‘보수 응답자 과표집’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일부 여론조사 업체는 편향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공정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도 분석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특정 업체가 아닌 여론조사 전반을 들여다볼 예정”이라며 “여론조사 수행 기관의 자격 요건을 갖췄는지를 비롯해 응답률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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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석열로 연결되는 SM그룹 수상한 동업 추적

[단독] 윤석열로 연결되는 SM그룹 수상한 동업 추적

홀로 다 먹으려다 계획 변경 사전작업 끝나자 숟가락 얹기 ‘알박기’ 핑계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뒤편에서 아른거리는 거물급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SM그룹과 윤석열 조력자의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가 진행한 수상한 동업이 뒤늦게 드러났다. 단독으로 처리해도 될 법한 프로젝트를 손보면서까지 제3자를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알박기’ 때문이라는 해명보다 유력 인사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은 ‘광주 광산구 도산동 989-21번지 일원(대지면적 3만5114.6㎡)’에 591세대 규모의 주거 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SM그룹 산하 건설 계열사인 ‘우방건설(현 동아건설산업)’은 2016년 10월7일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시행·시공 전 과정을 도맡는 방식으로 진행을 예고했다. 재주 부리니 이득은 따로 삽을 뜨는 일만 남았던 프로젝트는 사업계획이 통과된 지 48일 만인 당해 11월24일에 생각지 못한 변곡점을 맞았다. 이 무렵 광주 광산구청은 ‘주택건설사업계획 변경승인 고시’를 통해 사업주체에 ‘도림티앤씨’가 추가됐음을 알렸다. 우방건설이 단독 진행 계획을 접고, 뒤늦게 제3자를 끌어들인 모양새였다. 사실 SM그룹 입장에서는 공동 시행을 반길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도림티앤씨를 사업주체에 추가시키면 개발에 따른 차익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작아진다는 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은 민간개발이라는 특성상 지주작업부터 인·허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사업자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는 대신 사업 종료 시 차익 극대화를 기대해 봄 직했다. 도림티앤씨가 신뢰할 만한 업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우방건설의 결정을 쉽사리 납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김동호씨가 1999년 설립한 도림티앤씨는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이 추진될 당시만 해도 관련 분야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곳이다. 이전까지는 정보통신공사업에 주력했고, 2016년 초 부동산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방건설은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 관련 지분을 70% 대 30%로 분할하는 데 동의했다. 100%를 얻고자 했던 밑그림을 접고, 30%를 내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방건설은 엄청난 번거로움을 무릅썼다. 도산동 989-21번지 일원을 대상으로 폐쇄 부동산 등기를 확인한 결과, 우방건설은 사업계획 승인(2016년 10월7일) 이전까지 필지 30곳 이상을 단독으로 확보한 상태였다.그러나 우방건설이 선점한 필지들은 변경승인 고시(2016년 11월24일)를 목전에 둔 시점에 우방건설 ‘7’, 도림티앤씨 ‘3’으로 소유권 비율이 일제히 분할 조정됐다. 한번에 끝날 일을 두 번에 걸쳐 급하게 처리한 양상이었다. 여기저기 이상한 흔적 SM그룹은 지주작업에 써야 할 비용을 대여하는 불필요함마저 감내했다. 도림티앤씨가 개발 사업에 필요한 필지를 사들이는 데 투입했던 금액은 1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는 우방건설의 2016년 감사보고서 기재된 건설용지 241억원을 지분율 70%로 반영해 도출한 값이다. 정작 도림티앤씨는 무자본에 가까운 상태에서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볼 법한 상황이었다. 도림티앤씨의 2016년 감사보고서에는 제1금융에서 차입한 77억3900만원과 우방건설에서 빌린 56억원이 ‘토지분양대금’으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SM그룹 측은 사업 지연을 우려해 자금을 대여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SM그룹 관계자는 “공동 사업자의 자금 부족으로 토지 매입이 지연돼 일부 자금을 단기 대여한 것”이라며 “분양 후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았다”고 밝혔다. 의문점을 남긴 것과 별개로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은 별 탈 없이 끝맺음했다. 우방건설이 2017년 6월 동아건설산업과 합병하면서 사업주체가 기존 ‘우방건설·도림티앤씨’에서 ‘동아건설산업·도림티앤씨’로 변경됐지만, 프로젝트는 당초 계획했던 2019년 2월에 맞춰 완료됐다. 물론 동아건설산업 역시 SM그룹의 건설 계열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개발 사업으로 양측이 거둔 분양매출은 총 1674억원으로 추산된다. 도림티앤씨는 2019년 감사보고서에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에 의한 누적분양매출을 502억원으로 기재했다. 해당 사업에서 도림티앤씨의 지분율이 3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아건설산업이 거둔 분양매출이 1171억원임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도림티앤씨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분양매출에 힘입어 매출 규모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2016년 140억원이었던 도림티앤씨 매출은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듬해 257억원으로 껑충 뛴 데 이어, 2018년에는 433억원으로 치솟았다. 실질적으로 남긴 금액을 의미하는 분양수익 역시 꽤나 쏠쏠했다. 동아건설산업의 2019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분양매출에서 분양원가(859억원)를 제외한 총 분양이익은 312억원으로 기재돼 있다. 해당 금액은 동아건설산업의 지분율 70%가 적용된 값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동아건설산업과 도림티앤씨의 합산 분양수익은 446억원, 도림티앤씨 몫으로 남겨진 분양수익은 134억원으로 추산된다. 결국 SM그룹은 단독으로 진행했다면 450억원 가까이 남길 수 있었던 사업에 도림티앤씨를 참여시킴으로써 130억원가량을 날린 모습이다. 달리 말하면 도림티앤씨는 돈을 빌려주고, 지주작업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준 SM그룹 덕분에 2년여 만에 130억원대 이익을 남겼다는 뜻이다. 어렴풋하게 드러난 배경 공교롭게도 SM그룹이 도림티앤씨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속내는 최근에서야 어렴풋하게 드러난 상황이다. 도림티앤씨 설립자와 핏줄로 이어진 유력 인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림티앤씨는 김동호씨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가족회사의 형상을 띠고 있다. 주주 구성을 보면 배찬호 도림티앤씨 대표가 지분 25%를 보유한 최대주주, 배영이씨는 지분 20%로 2대 주주다. 배찬호 대표와 배영이씨는 각각 도림티앤씨 설립자인 김동호씨의 처남, 부인이다. 김동호씨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과거 SM그룹에 몸담았다는 점이다. 법인 등기 확인 결과 김동호씨는 SM그룹 계열사인 한통엔지니어링 이사진 명단에 등재됐던 기록이 존재한다. 1969년 설립된 한통엔지니어링은 전기통신공사업을 영위해 온 법인으로, 2007년 6월 SM그룹 계열에 편입됐다. 김동호씨는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100% 개인회사였던 한통엔지니어링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한때나마 SM그룹 오너의 측근이었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또 다른 SM그룹 계열사인 우방산업에서도 비슷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방산업은 ㈜삼라에서 지분 99.4%를 보유했던 건설 계열사로, 김동호씨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SM그룹 측은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에 도림티앤씨가 참여하기에 앞서 김동호씨와 도림티앤씨의 연관성을 파악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도림티앤씨의 ‘알박기’를 사업에 참여시킨 이유라고 해명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사업부지 내 도림티앤씨 소유의 필지가 섞여 있었고, 사업 추진을 위해 필지 매입을 시도했지만 도림티앤씨가 끝내 거절했다”며 “부득이하게 사업 진행을 위해 공동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김동호씨가 단순히 SM그룹과의 접점만 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취재 결과 김동호씨는 한국전력 역대 수장 중 최초의 정치인 출신인 김동철 현 한국전력 사장의 친동생으로 확인됐다. 김동철 사장은 2023년 9월 한국전력 부임 전까지만 해도 거물급 정치인으로 호명되는 일이 더 많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20대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으며, 20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22년 3월에는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인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가 자리 잡은 광주 도산동은 김동철 사장이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지역구였던 ‘광주 광산구 갑’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김동철 사장은 개발 사업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구청 및 지방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상을 지녔던 셈이다. 게다가 김동철 사장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2016년 국토교통부가 광주 광산구 송정역 일대를 ‘지역경제 거점형 투자선도 지구’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는 받는 등 지역 사회에서 개발 정책 및 투자 유치 활동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만약 SM그룹이 김동철 사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한다는 취지로 도림티앤씨를 끌어들였다면 심각성은 배가 될 수 있다. 해당 행위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여지를 따져 볼 필요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SM그룹은 김동철 사장과 김동호씨의 관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SM그룹 관계자는 “김동호씨와 김동철 사장이 형제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며 “김동호씨는 SM그룹 계열사 대표를 퇴사한 이후 개인 사업을 운영했고, 그의 개인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가려진 딴 생각 SM그룹이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에서 700m 남짓 떨어진 광주 광산구 도산동 소재 ‘도산우방아이유쉘아파트’와 관련해 광주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의 표적이 된 전례도 찜찜한 구석이다. SM우방이 시공한 해당 아파트는 2016년 12월 준공해 2022년 말 분양 전환했는데, 검찰은 분양 전환 과정에서 돈의 흐름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검찰은 지난해 10월 SM그룹 본사, SM우방 대구 본사, 광주 광산구청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를 진행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