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대학가 시국선언 실체

학생은 없고 극우만 득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선고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먼저 탄핵을 촉구했던 대학가서 갑작스레 탄핵 반대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학의 주인인 학생과 교수들의 참여는 적다. 이에 빈집을 노린 ‘여론몰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이후부터 이어진 대학가 시국선언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재학생과 교수, 교직원이 아닌 외부인들도 자신의 신념에 맞춰 탄핵 찬반 집회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참여한 시국선언에 대학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처음엔
퇴진 촉구

지난해 12월에 대학가에는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시국선언이 한창이었다. 대학생들이 전국 대학가 곳곳에 모여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총학생회 연합 단체인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은 지난해 12월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스타광장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 규탄에 나섰다. 공동 기자회견에는 고려대·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한국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까지 전국서 총 7개교의 총학생회장이 참석해 차례로 대통령 규탄 발언을 했다.

이 시기 대학 각 캠퍼스서도 시국선언은 진행됐다. 서울교대 총학생회는 ‘민주주의를 이뤄냈노라 말할 수 있도록 예비교사들이 행동하겠습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 규탄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연세대 재학생·졸업생 일동 또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어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윤석열정권 퇴진 촉구 1809인 대학생 시국선언’을, 한국외대 재학생 일동 역시 ‘윤석열정권 퇴진 145인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이 같은 시국선언 바람은 국내외 교수들에게도 퍼져갔다. 한양대 교수진 일동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한양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국회는 전원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라”고 규탄에 나섰다.

같은 날 전 세계 23개국 170여개 대학서 활동 중인 한인 교수와 연구자 등 300여명도 “반헌법적 내란을 일으킨 윤 대통령의 탄핵과 처벌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도 시국선언 흐름에 올라탔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1014명 일동은 성명문을 내고 “헌법을 짓밟은 윤석열에게 법학도로서 응당 분노합니다”라며 정권 규탄에 가담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각각 지난해 12월5일과 6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가세했다.

일부 대학 총학들은 대통령 규탄을 위한 재학생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 학생총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계엄 주동 세력의 반민주적 사태에 대한 학생 결의’라는 제목의 학생총회를 개회했고 1000명 이상의 재학생이 결집했다.

전국 대학 40여곳 탄핵 반대
재학생 수는 10~20명 내외?

서울대 학생들은 당시 캠퍼스 광장서 전체 학생총회를 열고 ‘윤석열 퇴진 요구의 건’을 의결했으며, 안건은 총 투표수 2556표 중 찬성 2516표로 가결됐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대표들도 정권 규탄에 동참했다. 이들은 “전공의 등 의료인을 처단하겠다는 것은 윤 대통령이 정권 유지와 사익을 위해 의료 개악을 이용했음을 보여준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힘을 합쳐 윤 대통령 퇴진의 목소리를 내던 대학가는 어느새 탄핵 반대파와 찬성파가 대립을 이루는 장소가 됐다.

가장 먼저 탄핵 반대의 목소리를 낸 대학교는 연세대다. 지난달 10일 연세대에서는 탄핵 찬성 측과 탄핵 반대 측의 맞불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지난해 12월12일 연세대서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윤 대통령 퇴진 요구안 의결’에 대한 학생총회가 열린 후 공식적인 첫 집회다.

탄핵 찬성 측은 이날 오후 1시 학교 정문서 집회를 시작했다. 약 21명의 재학생, 동문, 일반인이 모였다. 이들은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연세대 행동’이라는 현수막과 ‘쿠데타 옹호 말이 되냐! 민주주의 지켜내자’ ‘서부지법 폭동 강력 규탄한다’ ‘열사 정신 계승하자’ 등의 팻말을 들었다.

학내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한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김태양씨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며 “반민주적 폭거를 저지른 윤석열과 쿠데타 동조자들에 대한 심판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극우 세력은 서부지법 난동 같은 폭력 사태까지 일으키며 탄핵 절차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며 “대학서도 극우의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고 연세대, 서울대, 한양대 등에서 탄핵 반대 시국 선언을 하겠다는 일부의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세대 학생총회 참석자 2733명 중 2704명이 윤석열 퇴진에 찬성한 데서 드러나듯이 다수의 학생들은 윤석열 퇴진을 바라고 있다”며 “윤석열 퇴진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이한열, 노수석 정신을 올바르게 잇는 일”이라고 외쳤다.

반면, 탄핵 반대 측에서는 찬성 측에 ‘간첩이냐’ ‘거짓말과 선동으로 얼룩진 사기 탄핵을 규탄한다’는 말을 10여명이 외칠 뿐이었다.

순수 모임?
세력 개입

연세대를 시작으로 윤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와 고려대, 경북대 등 전국 주요 대학 40여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유수호대학연대’라는 보수 성향 대학생 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준희 자유수호대학연대 대표는 단체에 대해 “대학교서 탄핵 찬성 시국선언만 열리는 것을 보고 뜻을 같이 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 단체를 만들었다”며 “현재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 다수의 대학교서 약 9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자유수호대학연대 관계자는 “(각 학교)졸업생과 대학원생 분들에게도 접촉을 해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동원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유수호대학연대는 참여자 모집부터 장비·인력 지원까지 체계적으로 진행하며 대학별 시국선언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선고를 앞둔 3·1절에 대학로 일대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국 33개 대학 연합체 자유수호대학연대 회원 등 2500여명은 이날 낮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사대부초 인근 차로를 차지하고 전국 대학생 탄핵 반대 시국선언 대회를 개최했다.

행사에 몰려든 인파 상당수는 유튜버와 보수 집회 참가자였다. 보수단체 ‘사단법인 자유실천연대’ ‘호국총연합회’ 등의 대형 깃발들이 집회 현장 곳곳서 나부꼈다. 보수단체가 학생들의 집회 경호를 자처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이날 김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 대학의 탄핵 반대 시위였다. 연세대와 서울대, 고려대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자평했다.

대학가에서는 자유수호대학연대가 주관하는 시국선언에 재학생이 아닌 외부인 참석 비중이 높고, 서명 건수도 전체 학생 수 대비 낮아 학교를 대표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릴레이 시국선언 현장서 재학생 참가자는 10~20명 내외로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극우 유튜버나 탄핵 반대 단체 관련자 등 외부인 중심으로 집회가 진행됐다. 


대표하기
어렵다

한국외대 시국선언 일동이 밝힌 이번 시국선언 서명 동참자는 약 300여명으로 그 중 절반은 익명이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외대 재적 학생 수가 2만2599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 1.3%가 해당 의견에 동의한 셈이다. 먼저 시국선언을 진행한 서울대도 졸업생까지 포함했으나 약 500명의 서명을 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기준 서울대의 재적 학생 수는 2만1671명이다.

고려대는 지난달 21일 탄핵 반대 집회와 이에 맞서는 학생들이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됐다. 유튜버 등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거 몰리며 경찰이 출동해 중재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지만, 참여자 가운데 재학생은 10여명에 그쳤다.

내란 사태 직후 학생회와 교수, 교직원들이 모두 목소리를 모아 탄핵 찬성 시국선언을 한 것에 반해 지극히 극소수의 학생들이 탄핵에 반대한 셈이다.

이를 두고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연세대 게시판에는 지난 5일 ‘연세대학교 명칭을 내건 무책임한 발언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문이 올라왔다.

성명문은 “마치 해당 의견이 연세대 전체 또는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 학교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개인의 입장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포장하는 것은 학문의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한 관계자는 “자유수호대학연대가 주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재학생, 대학원생, 졸업생의 수가 지극히 적다”며 “아무리 이들의 시국선언이 방학에 이뤄졌다고 해도 10~20명의 각 대학 동문들이 참여하는 것에 학교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실 자유수호대학연대 이름을 내걸고 한 대학서 시국선언을 진행해야 할 수준”이라며 “자유수호대학연대와 극우 단체들이 릴레이 시국선언으로 교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많은 구성원 탄핵 촉구”
윤 지지자 2030 내세워

그러면서 “각 대학 학생회들은 2차 시국선언을 준비 중”이라며 “지난 5일 고려대서 발표한 탄핵 찬성 2차 시국선언에는 교수님과 학생, 교직원 등 582명이 참여했는데 이야말로 학교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2차 시국선언을 준비한 재학생 노민영씨는 “방학 중 고려대서 극우 세력이 결집하는 것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 윤 대통령 탄핵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란을 옹호하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대학가 여론이 뒤바뀐 것처럼 여겨지는 걸 보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학생, 동문, 교수 등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고 내란 종식을 바라고 있다는 다짐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5일 학생 2626명 의견을 모아 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던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도 2차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시국선언에 나선 숙명여대 학생들은 ‘대학생이 앞장서서 민주주의 지켜내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극우 세력의 내란 옹호 행위 규탄한다” “내란 옹호 세력은 숙명서 나가라”고 외쳤다.

연서명에 참여한 숙명여대 학생 1112명은 “최근 내란 옹호 세력이 대학가를 표적 삼아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며 “이런 세력이 숙명을 흔들려는 시도에 엄중히 분노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윤석열 퇴진을 위한 시국선언은 탄핵 찬성 시국선언으로, 내란 옹호 세력은 탄핵 반대 세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이어 “하지만 이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란을 일으킨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숙명여대 학생들은 “대학가를 침범하고 있는 내란 옹호 세력도 부정의한 권력을 비판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를 훼손할 수는 없다”며 “윤석열 탄핵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2차 시국선언을 발표한 한국외대 재학생 조세연씨는 “정말 탄핵에 반대하고 싶다면 학생들의 총의를 모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야 한다. 지난주 탄핵 반대 시국선언은 그러지 않았고, 원색적인 욕설과 고성이 이어져 공감하기 어려웠다”며 “학교가 이런 공간으로 남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의실을 돌며 시국선언 취지를 발표하고 연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 놓고
국민 명령?

한편 윤 대통령 지지 모임인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이 2030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탄핵 반대가 국민의 명령”이라는 궤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일부터 탄핵 심판 선고일까지 헌법재판소 앞을 찾아 탄핵 반대 기자회견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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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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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