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대학가 시국선언 실체

학생은 없고 극우만 득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선고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먼저 탄핵을 촉구했던 대학가서 갑작스레 탄핵 반대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학의 주인인 학생과 교수들의 참여는 적다. 이에 빈집을 노린 ‘여론몰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이후부터 이어진 대학가 시국선언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재학생과 교수, 교직원이 아닌 외부인들도 자신의 신념에 맞춰 탄핵 찬반 집회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참여한 시국선언에 대학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처음엔
퇴진 촉구

지난해 12월에 대학가에는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시국선언이 한창이었다. 대학생들이 전국 대학가 곳곳에 모여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총학생회 연합 단체인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은 지난해 12월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스타광장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 규탄에 나섰다. 공동 기자회견에는 고려대·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한국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까지 전국서 총 7개교의 총학생회장이 참석해 차례로 대통령 규탄 발언을 했다.

이 시기 대학 각 캠퍼스서도 시국선언은 진행됐다. 서울교대 총학생회는 ‘민주주의를 이뤄냈노라 말할 수 있도록 예비교사들이 행동하겠습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 규탄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연세대 재학생·졸업생 일동 또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어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윤석열정권 퇴진 촉구 1809인 대학생 시국선언’을, 한국외대 재학생 일동 역시 ‘윤석열정권 퇴진 145인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이 같은 시국선언 바람은 국내외 교수들에게도 퍼져갔다. 한양대 교수진 일동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한양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국회는 전원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라”고 규탄에 나섰다.

같은 날 전 세계 23개국 170여개 대학서 활동 중인 한인 교수와 연구자 등 300여명도 “반헌법적 내란을 일으킨 윤 대통령의 탄핵과 처벌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도 시국선언 흐름에 올라탔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1014명 일동은 성명문을 내고 “헌법을 짓밟은 윤석열에게 법학도로서 응당 분노합니다”라며 정권 규탄에 가담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각각 지난해 12월5일과 6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가세했다.

일부 대학 총학들은 대통령 규탄을 위한 재학생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 학생총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계엄 주동 세력의 반민주적 사태에 대한 학생 결의’라는 제목의 학생총회를 개회했고 1000명 이상의 재학생이 결집했다.

전국 대학 40여곳 탄핵 반대
재학생 수는 10~20명 내외?

서울대 학생들은 당시 캠퍼스 광장서 전체 학생총회를 열고 ‘윤석열 퇴진 요구의 건’을 의결했으며, 안건은 총 투표수 2556표 중 찬성 2516표로 가결됐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대표들도 정권 규탄에 동참했다. 이들은 “전공의 등 의료인을 처단하겠다는 것은 윤 대통령이 정권 유지와 사익을 위해 의료 개악을 이용했음을 보여준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힘을 합쳐 윤 대통령 퇴진의 목소리를 내던 대학가는 어느새 탄핵 반대파와 찬성파가 대립을 이루는 장소가 됐다.

가장 먼저 탄핵 반대의 목소리를 낸 대학교는 연세대다. 지난달 10일 연세대에서는 탄핵 찬성 측과 탄핵 반대 측의 맞불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지난해 12월12일 연세대서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윤 대통령 퇴진 요구안 의결’에 대한 학생총회가 열린 후 공식적인 첫 집회다.

탄핵 찬성 측은 이날 오후 1시 학교 정문서 집회를 시작했다. 약 21명의 재학생, 동문, 일반인이 모였다. 이들은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연세대 행동’이라는 현수막과 ‘쿠데타 옹호 말이 되냐! 민주주의 지켜내자’ ‘서부지법 폭동 강력 규탄한다’ ‘열사 정신 계승하자’ 등의 팻말을 들었다.

학내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한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김태양씨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며 “반민주적 폭거를 저지른 윤석열과 쿠데타 동조자들에 대한 심판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극우 세력은 서부지법 난동 같은 폭력 사태까지 일으키며 탄핵 절차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며 “대학서도 극우의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고 연세대, 서울대, 한양대 등에서 탄핵 반대 시국 선언을 하겠다는 일부의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세대 학생총회 참석자 2733명 중 2704명이 윤석열 퇴진에 찬성한 데서 드러나듯이 다수의 학생들은 윤석열 퇴진을 바라고 있다”며 “윤석열 퇴진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이한열, 노수석 정신을 올바르게 잇는 일”이라고 외쳤다.

반면, 탄핵 반대 측에서는 찬성 측에 ‘간첩이냐’ ‘거짓말과 선동으로 얼룩진 사기 탄핵을 규탄한다’는 말을 10여명이 외칠 뿐이었다.

순수 모임?
세력 개입

연세대를 시작으로 윤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와 고려대, 경북대 등 전국 주요 대학 40여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유수호대학연대’라는 보수 성향 대학생 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준희 자유수호대학연대 대표는 단체에 대해 “대학교서 탄핵 찬성 시국선언만 열리는 것을 보고 뜻을 같이 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 단체를 만들었다”며 “현재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 다수의 대학교서 약 9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자유수호대학연대 관계자는 “(각 학교)졸업생과 대학원생 분들에게도 접촉을 해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동원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유수호대학연대는 참여자 모집부터 장비·인력 지원까지 체계적으로 진행하며 대학별 시국선언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선고를 앞둔 3·1절에 대학로 일대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국 33개 대학 연합체 자유수호대학연대 회원 등 2500여명은 이날 낮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사대부초 인근 차로를 차지하고 전국 대학생 탄핵 반대 시국선언 대회를 개최했다.

행사에 몰려든 인파 상당수는 유튜버와 보수 집회 참가자였다. 보수단체 ‘사단법인 자유실천연대’ ‘호국총연합회’ 등의 대형 깃발들이 집회 현장 곳곳서 나부꼈다. 보수단체가 학생들의 집회 경호를 자처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이날 김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 대학의 탄핵 반대 시위였다. 연세대와 서울대, 고려대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자평했다.

대학가에서는 자유수호대학연대가 주관하는 시국선언에 재학생이 아닌 외부인 참석 비중이 높고, 서명 건수도 전체 학생 수 대비 낮아 학교를 대표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릴레이 시국선언 현장서 재학생 참가자는 10~20명 내외로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극우 유튜버나 탄핵 반대 단체 관련자 등 외부인 중심으로 집회가 진행됐다. 


대표하기
어렵다

한국외대 시국선언 일동이 밝힌 이번 시국선언 서명 동참자는 약 300여명으로 그 중 절반은 익명이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외대 재적 학생 수가 2만2599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 1.3%가 해당 의견에 동의한 셈이다. 먼저 시국선언을 진행한 서울대도 졸업생까지 포함했으나 약 500명의 서명을 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기준 서울대의 재적 학생 수는 2만1671명이다.

고려대는 지난달 21일 탄핵 반대 집회와 이에 맞서는 학생들이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됐다. 유튜버 등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거 몰리며 경찰이 출동해 중재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지만, 참여자 가운데 재학생은 10여명에 그쳤다.

내란 사태 직후 학생회와 교수, 교직원들이 모두 목소리를 모아 탄핵 찬성 시국선언을 한 것에 반해 지극히 극소수의 학생들이 탄핵에 반대한 셈이다.

이를 두고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연세대 게시판에는 지난 5일 ‘연세대학교 명칭을 내건 무책임한 발언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문이 올라왔다.

성명문은 “마치 해당 의견이 연세대 전체 또는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 학교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개인의 입장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포장하는 것은 학문의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한 관계자는 “자유수호대학연대가 주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재학생, 대학원생, 졸업생의 수가 지극히 적다”며 “아무리 이들의 시국선언이 방학에 이뤄졌다고 해도 10~20명의 각 대학 동문들이 참여하는 것에 학교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실 자유수호대학연대 이름을 내걸고 한 대학서 시국선언을 진행해야 할 수준”이라며 “자유수호대학연대와 극우 단체들이 릴레이 시국선언으로 교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많은 구성원 탄핵 촉구”
윤 지지자 2030 내세워

그러면서 “각 대학 학생회들은 2차 시국선언을 준비 중”이라며 “지난 5일 고려대서 발표한 탄핵 찬성 2차 시국선언에는 교수님과 학생, 교직원 등 582명이 참여했는데 이야말로 학교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2차 시국선언을 준비한 재학생 노민영씨는 “방학 중 고려대서 극우 세력이 결집하는 것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 윤 대통령 탄핵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란을 옹호하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대학가 여론이 뒤바뀐 것처럼 여겨지는 걸 보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학생, 동문, 교수 등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고 내란 종식을 바라고 있다는 다짐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5일 학생 2626명 의견을 모아 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던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도 2차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시국선언에 나선 숙명여대 학생들은 ‘대학생이 앞장서서 민주주의 지켜내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극우 세력의 내란 옹호 행위 규탄한다” “내란 옹호 세력은 숙명서 나가라”고 외쳤다.

연서명에 참여한 숙명여대 학생 1112명은 “최근 내란 옹호 세력이 대학가를 표적 삼아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며 “이런 세력이 숙명을 흔들려는 시도에 엄중히 분노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윤석열 퇴진을 위한 시국선언은 탄핵 찬성 시국선언으로, 내란 옹호 세력은 탄핵 반대 세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이어 “하지만 이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란을 일으킨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숙명여대 학생들은 “대학가를 침범하고 있는 내란 옹호 세력도 부정의한 권력을 비판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를 훼손할 수는 없다”며 “윤석열 탄핵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2차 시국선언을 발표한 한국외대 재학생 조세연씨는 “정말 탄핵에 반대하고 싶다면 학생들의 총의를 모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야 한다. 지난주 탄핵 반대 시국선언은 그러지 않았고, 원색적인 욕설과 고성이 이어져 공감하기 어려웠다”며 “학교가 이런 공간으로 남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의실을 돌며 시국선언 취지를 발표하고 연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 놓고
국민 명령?

한편 윤 대통령 지지 모임인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이 2030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탄핵 반대가 국민의 명령”이라는 궤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일부터 탄핵 심판 선고일까지 헌법재판소 앞을 찾아 탄핵 반대 기자회견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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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목줄 잡은 트럼프 막전막후

한국 목줄 잡은 트럼프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이 ‘트럼프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모든 국가와 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도 그 대열에 줄 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큰 표 차로 이기고 8년 만에 백악관에 재입성했다. 전 세계 흔들다 민주당의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를 잡은 게 승리의 요인으로 분석됐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미국에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 개뿐”이라면서 트랜스젠더 문제에 쐐기를 박고 DEI 정책 폐기를 선언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서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미국이 지금까지 맡아온 ‘세계의 경찰’ 역할 대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관세를 내세운 ‘통상 전쟁’으로 번졌다.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이 첫 번째 표적이 됐다. 취임 당일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 25%를 붙이고 중국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마약 유입과 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본질은 무역 적자라는 게 중론이다. 영토 전쟁에도 시동을 걸었다. 특히 전쟁 지역 원조를 빌미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이면서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주변국으로 이주시키고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도 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워싱턴DC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서 “파나마 운하는 미국인을 위해 미국인이 건설한 것”이라며 “중국이 아닌 파나마에 운하를 넘겼지만 협정은 매우 심각하게 위반됐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관세 폭탄 겁주는 줄 알았는데 진짜 또 그린란드 주민을 향해 “여러분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만약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우리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주민은 2009년 덴마크와 합의해 제정한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서 미국이 자유 진영서 원조해 온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 쪽으로 미묘하게 기울어진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미국의 외교 방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원조의 대가로 광물 개발권을 요구했다. 3년여 동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서 미국은 군사 장비를 지원했다. 독일 킬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약 3년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은 1197억달러(174조5000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광물협정에 협조하지 않자 모든 군사 원조를 끊겠다는 강수를 놨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세에 3개월도 못 버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서 “젤렌스키로부터 중요한 서한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물협정에 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국가가 ‘트럼프 태풍’에 휘말려 대응책을 논의하는 와중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다. 한국도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있으리라는 관측은 있었지만 그게 가시화되진 않았다는 뜻이다. 전쟁 국가도 원조 끊어 한국은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대미 무역 흑자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달러(약 81조원)가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의 첫 연설서 한국을 ‘콕’ 짚었다. 99분에 걸친 연설서 한국을 공개 지목하다시피 한 것이다. 각국의 대미 관세를 언급하는 과정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4배 높다”고 말했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군사적으로, 또 많은 다른 방법으로 한국을 엄청나게 돕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게 우리 동지와 적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자료를 내고 대미 평균 관세율이 0.79%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로 사실상 상호 수출입 품목 대부분이 무관세다. 미국서 들어오는 공산품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0%다. 다만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은 13.4%로 미국(3.3%)의 4배 수준으로 높다. 최혜국 대우는 통상·항해 조약 등에서 한 국가가 외국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와 FTA를 체결한 상태여서 이 관세율이 적용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산자부 관계자는 “현지 대사관과 최근 구축한 다양한 실무협의체 채널, 방미 예정인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급 접촉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가 거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겠다”고 말했다. 마구잡이 주장 대응 못 하고 하지만 다음달 2일로 예정된 상호 관세와 관련해 한국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어떤 관세를 매기건 우리도 그들에게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도 거론했다. 규제와 쿼터제, 환율 등 직접적인 관세가 아니라 각국의 제도를 빌미로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꼭 관세가 아니더라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건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한국이 도입하고 있는 부가가치세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부가가치세 제도를 사용하는 국가를 관세 국가와 유사하게 간주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연설서 군사 지원을 언급한 점도 한국으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시절부터 주한미군 주둔과 방위비 분담에 불만을 토로했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넘어 주한미군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전쟁 중인 국가(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트럼프식 외교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에 일방적으로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줬다. 한국이 막대한 방위비를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혜택을 베푼다는 식으로 굴고 있는 셈이다.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약 1조4900억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재협상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첫 의회 연설에서 콕 집어 모든 논리가 돈으로 통해 여기에 ‘칩스법’ 폐지를 언급하면서 한국 기업까지 뒤흔들 기세다. 칩스법의 공식 명칭은 ‘반도체 과학법’으로 미국에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시설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법이다. 바이든정부서 시행된 정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영향권 아래 있다. 총 지원 규모가 2800억달러(약 408조원)에 달하고 대만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만 527억달러(약 77조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법은 끔찍하고 끔찍한 일이며 우리는 수천억달러를 갖고 있지만 (반도체법은)의미가 없다. 그들은 우리 돈을 가져가고 지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에도 칩스법을 ‘나쁜 법’으로 규정하고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겨냥해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길 원하면서 제대로 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법 자체가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요구에 한국이 내세울 마땅한 카드가 딱히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협상에 나서야 할 수뇌부가 불완전한 상태라 대응이 어렵다는 게 더 큰 문제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핵심판대 위에 서 있고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직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간 관행이나 국제질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국가의 영토에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전쟁 원조를 돈으로 환산하는 등 그동안 미국을 통치했던 지도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다시 말해 한국을 상대로 어떤 ‘깜짝쇼’도 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상 외교는 사실상 막혀 지난 5일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정부 고위 당국자들과의 회동을 위해 방미했다. 신 실장은 “한반도 및 동북아, 글로벌 안보 이슈를 논의하고 경제 안보와 관련해 특히 조선 협력을 비롯해 다양한 논의를 하려 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신 실장은 2기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미국 측 카운터파트와 만나는 세 번째 장관급 인사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뮌헨안보회의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했고 안덕근 산자부 장관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났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