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용산 폭격’ 시나리오

“모로 가도 정권 탈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야당의 분노 지수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기름을 들이붓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정권 탈환이다.

용산은 던지는 카드마다 족족 역풍을 맞고 있다. 틈새를 하나씩 파고든다면 언젠가는 큰 균열로 이어질지 모른다. 마음이 급했던 탓일까? 제1야당 수장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하던 수사의 날을 전 정부로 돌렸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점점 더
늪으로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인 서모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은 전 정부 출신 인사를 위주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 딸 다혜씨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하는 등 본격적으로 수사망을 좁히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이 같은 행태를 검찰의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친문(친 문재인)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이 손을 잡고 ‘전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킨 것이다.

그동안 두 계파는 물밑서 신경전을 벌였던 만큼 이번 수사가 오히려 이들 사이를 끈끈하게 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의 리더십을 흔들기 위해 야권 분열을 노려왔지만 오히려 화해의 물꼬를 터줬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의 만남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지난 8일 이 대표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두 사람은 검찰의 정치 수사를 화두에 올렸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회동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는 ‘지금 정부가 문 전 대통령 일가를 대하는 작태는 정치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정치탄압이며, 한 줌의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는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복권 문제를 야권 분열용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오히려 당정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한 야권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그날로부터 배운 게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라며 “(정부가)상대를 향해 쏜 건 화살이 아니고 부메랑”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쏘아 올린 채 상병 제3자 특검법도 용산에서는 골치 아픈 이야기다. 한 대표가 전당대회서 제3자 특검법을 언급했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모든 게 탄핵으로 귀결…국회 난타전
한동훈발 제3자 특검법 “뒷감당은?”

지난 3일 민주당 등 야 5당은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했다. 기존 특검법은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특검을 1명씩 추천한 뒤 이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특검법은 대법원장이 4명을 추천하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2명을 고르고 최종으로 대통령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법안을 발의하며 “야당이 한발 물러섰으니 한 대표는 국민에게 공언한 대로 해당 법안을 이행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한 대표는 “(기존 채 상병 특검법과)바뀐 게 없다”며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역시 새로 추가된 ‘재추천 요구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한 대표에 힘을 실었다. 재추천 요구권이란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야당이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수습할 방법이 없다. 한 대표의 특징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인데 그게 다 자충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때마다 이탈표가 늘고 있다. 열댓번 더 반복하면 그땐 거부권도 소용이 없지 않겠냐”며 “만약 특검법이 통과되면 한 대표도 날아가고 윤 대통령도 무너지는 거다. 자꾸 국정이 불안해지는 길만 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탄핵 언급을 조심스러워하던 민주당이 근래 들어서는 너도나도 탄핵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대통령 부부의 실점이 될 만한 의혹이 곳곳서 터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탄핵 여론을 크게 두 덩어리인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보고 있다. 하나만 터져도 민심이 급물살을 타고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먼저 민주당은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수사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지난 1년 동안 야당은 ‘V(대통령) 격노설’ ‘02-800-7070’ ‘해병대 1사단 골프 모임’ 등 의혹을 들춰내면서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탄핵 카드
스모킹건

특히 해병대 1사단 골프 모임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으로 지목된 인물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명하기 위한 ‘로비설’로 번지면서 결정적인 증거로 자리 잡았다. 진실 공방이 한창이던 순간에 또다시 김 여사가 소환된 것이다.

야당은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녹취록을 박근혜 전 정부서 드러난 ‘최순실 태블릿 PC’에 견주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은 이 수사의 끝에 대통령 부부가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전부터 야당은 김 여사를 꾸준히 도마 위에 올렸다. 그동안은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개인 수준의 논란이었지만 공천 개입설이 불거지면서 ‘국정 농단’ 수준으로 치달았다.


지난 9일 국회는 정치 분야를 주제로 한 첫 대정부질문을 진행했다.

이날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불러 김 여사의 공천 개입 논란을 꼬집었다. 박 의원은 “김 여사가 중대한 선거 개입을 한 것이고, 국정 개입을 한 것”이라며 “이 자체가 국정 농단이라고 생각하는데 수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서 언론이 제기한 의혹 만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이미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해 모든 의혹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지난 11일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김건희 특검법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코바나컨텐츠 관련 뇌물성 협찬 ▲명품가방 수수 ▲국민권익위 조사 외압 ▲임성근 사단장 등 구명 로비 ▲장·차관 인사 개입 ▲ 22대 총선 공천 개입 등 의혹이 포함됐다.

민주당이 분노한 이유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서 “김 여사는 이 정권에 있어서 성역 중 성역으로 존재해 왔다”며 “하루하루 초대형 범죄 의혹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김건희 이름 석 자는 불공정과 국정 농단 대명사가 됐다. 최순실보다 더한 국정 농단이라는 국민 분노가 폭발 직전”이라고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한편에서는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를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탄핵에 나서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 소속 의원 11명이 함께하는 이 연대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현실화하기 위해 법적 준비를 하고 참여 의원을 확대해나가는 데 방점을 찍었다.

마지막
승부수

모임 구성원 중 한 명인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탄핵안 발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작업을 민주당 내에서 꾸준히 해나갈 것”이라며 “(작업이 완료되면)탄핵안을 발의하고 그 후에 탄핵에 필요한 의원 200명을 확보하는 순서로 진행하자고 의견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탄핵이든 임기 단축이든 윤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줄이겠다는 야당의 의지가 굳어지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탄핵, 개헌, 임기 단축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데 하루라도 윤 대통령을 용산서 꺼내겠다는 목표는 같다”며 “가장 좋은 건 윤 대통령 스스로가 자리를 포기하고 내려오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야당의 개헌 요구가 사실상 탄핵과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용산 고립 작전’을 통해 윤 대통령이 스스로 개헌 카드를 던지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이 굳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보수층 균열이 일고 있어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풀기’ 격이라는 것이다.

한 대표는 당선 이후 윤 대통령과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다. 윤-한 갈등의 중심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문자 읽씹 논란’ 등 대부분 김 여사가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이는 정부의 국정 지지율에 곧바로 영향을 끼쳤다. 통상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면 여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이른바 ‘디커플링’ 현상이 일어나는데, 정부여당 할 것 없이 나란히 내림세를 보인다는 게 문제다.

여권에서는 디커플링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를 표했다. 현직 대통령 임기가 말기에 접어들고 나서야 차기 대권주자가 차별화 전략을 보이며 치고 나아가야 하는데, 한 대표가 성급하게 나선 바람에 정부도, 여당도 어정쩡한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다.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면 여당은 정부의 방패막이 된다. 하지만 ‘야당 같은 여당’이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을 둘러싼 탈당설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까지도 한 대표가 전당대회서 우승하면 윤 대통령이 탈당할 것이란 풍문이 여의도를 돌았다. 자신과 김 여사가 국민의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들면 더 이상 당에 남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불참한 것은 ‘탈당 예고편’이라는 관측도 제시됐다.

안으로 압박하고 밖으로 밀어내고
국민의힘 끝까지 용산 호위대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총선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한 라디오를 통해 “윤 대통령이 지난 2년처럼 하면 나라가 실패하고 망한다”며 “잔여 임기 3년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탈당해서 이재명 대표와 만나 협치를 통해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계에 한계까지 몰린 윤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역시 늦어도 내후년 지방선거까지 개헌을 완료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국민의힘서도 개헌 필요성에 동의하는 분들이 있다”며 “(윤 대통령도)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여야 상관없이 이 개헌 카드를 누구에게 넘길지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즈음 4년 중임제로 명예로운 임기 단축을 하는 대신 퇴임 후 신변을 보호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이보다 부드러운 거국중립내각도 예상 가능한 지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대통령이 국정운영 전면서 물러나 야당 인사를 주요 각료로 인선하는 ‘중립적 행정부’를 만드는 것으로 모든 것이 국회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통령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만큼 사실상 식물 정부나 다름없다.

거국내각은 그동안 모든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요구되던 안이다. 지난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국정을 통치할 수 없어지면서 역시나 그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중립적인 인선 합의 등 한계에 부딪히며 곧바로 탄핵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인선을 꾸리기만 한다면 대통령실서도 부담을 덜지 않겠느냐”며 “여당서 크게 반발하겠지만 (윤 대통령)주변에 끌어다 쓸 수 있는 인물이 많이 없다. 한덕수 총리도 사의를 표명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후임을 못 찾았다고 하니 야당의 손을 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집권을 준비하는 민주당의 적은 이재명 대표다. 그런 이 대표의 적은 다음 달 내려질 법원의 판결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파고들어 ‘재집권 선두자’를 자처하려는 인물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세력 키우기에 나선 ‘초일회’부터 K4(김부겸·김동연·김경수·김두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룡까지 모두가 ‘이재명 대항마’다.

재집권 준비
방심은 금물

민주당 소식에 밝은 한 원외 관계자는 “대선이 2026년에 치러질지 2025년에 치러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 대표 또한 법원의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이 대표 체제로는 대선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각개전투하고 있다”며 “민주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판을 키워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면 훨씬 안정적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도이치 ‘쩐주’ 유죄, 여사님 운명은?

김건희 여사를 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세 수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쩐주’ 손씨가 1심 무죄를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받은 데 따른 것이다.

야당이 손씨의 판결을 주목한 이유는 해당 사건에 연루된 김 여사가 손씨와 유사한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선고 직후 논평을 내고 “이제 또 다른 쩐주, 김 여사가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할 차례”라고 밝혔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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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