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숨 고르는 정치권 딜레마

잠시 멈춘 단거리 레이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마지막 주말이 비극으로 저물었다. 갑작스러운 참사에 여야의 정쟁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각종 특검법과 권한대행 탄핵을 업은 채 빠르게 돌아갔던 탄핵 시계도 잠시 멈춰 섰다.

지난달 29일 오전 태국 방콕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2216편이 추락했다. 오른쪽 엔진서 불꽃이 튀어 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비행기 바퀴인 ‘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아 공항 시설물과 충돌해 화염에 휩싸였다.

무안 뒤덮은
애도의 물결

이 참사로 승객 175명 전원과 조종사 및 객실 승무원 각 2명 등 179명이 현장서 사망했다. 생존자는 비행기 후미에 있던 승무원 두 명뿐이었다.

가장 먼저 참사 현장을 찾은 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고 당일 저녁 무안공항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항공사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 위원장은 전남도당위원장인 주철현 의원이 맡았다.

국회 행정안정위원장인 신정훈 의원과 국회교통위원장인 맹성규 의원이 각각 사고수습지원단장, 상황본부장을 맡았다.


국민의힘은 참사 다음날에 무안공항을 찾았다. 곧바로 현장을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재난 당일엔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행정부가 아닌 당에서 현장을 방문하는 건 자칫 사고 수습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오늘 무안공항서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나도 애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밝힌 현안에 대한 공개 의견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서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소방대원들과 모든 구조 인력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바란다”며 “어려운 상황을 하루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저도 국민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적었다.

국민의힘은 무안공항여객기사고수습태스크포스(이하 TF를)를 구성했다. 국회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영진 의원이 위원장을, 국회행정안전위원회 및 보건복지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이 TF에 참여했다. 이 밖에도 개혁신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등도 당차원의 수습 대책위를 꾸리고 유가족 지원에 나섰다.

이전까지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전 권한대행 탄핵까지 강행했다. 이후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인 선출을 서두르라”며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무정부 사태를 위해 무리한 줄탄핵을 강행했다고 맞불을 놨다.

유가족에 고개 숙인 여야 “정쟁 올스톱”
민주 쌍특검·권한대행 탄핵 수위 조절


참담한 참사 앞에 여야는 정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는 당초 운영위원회를 비롯한 환경노동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상임위를 열고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현안 질의를 준비했으나 잠정 순연하기로 했다.

같은 날 오후 예정됐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도 다음날로 연기됐다.

민주당은 전남 목포에 위치한 전남도당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 대표는 “무안공항을 가득 메운 유족들의 통곡 속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울고 있다”며 “우리 당은 항공참사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역시 무안공항 회의장서 대책회의를 열고 “한 사람의 정치인,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으로 참극이 벌어진 것에 국민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사태 수습과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체제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는 비대위원 임명 직후 무안공항을 찾아 참사 수습으로 첫발을 뗐다.

정부는 참사 발생 당일인 지난달 29일부터 1월4일까지 7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최 권한대행은 전남 무안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무안공항 현장과 전남, 광주, 서울, 세종 등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희생자에 대한 조의와 애도를 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사고 당일 무안공항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최했다. 다음날에는 국회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사고 수습 대책 방안을 논의했다.

박태서 국회의장실 공보수석은 두 사람의 비공개 접견이 끝난 뒤 “최 권한대행과 우 의장은 오늘 회동서 무안 제주항공 참사 수습 대책과 유가족 지원 대책에 대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전국 애도기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현재 상황서 컨트롤타워를 맡은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꺼내는 건 거대 야당에게도 쉽지 않다. 애도기간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탄핵에 군불을 때는 것처럼 보일 경우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참사 현장서 수습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다소 지연되면서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무분별하게 휘둘렀던 탄핵 정국의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줄탄핵의 후과”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박 의원은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가 대책본부를 만들어 신속한 사고 수습에 나서게 된다. 대개 행안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지만 이번처럼 규모가 큰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더불당(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으로 지금 우리 정부에는 국무총리도 행안부 장관도 없는 상황이다. 이걸 어찌해야 할까?”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국정 경험이 없거나 국정이 망해도 관심 없는 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줄탄핵 같은 건 생각조차 않는 법”이라며 “민주당의 무책임한 줄탄핵으로 생긴 국정 공백이 정말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수석대변인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서 ‘정부 컨트롤타워의 기능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최 권한대행이 사고를 수습하고 있고 국토부도 하고 있지만, 현장 콘트롤타워 역할이 비어 있어 대단히 안타깝다”고 답했다.

야권의 탄핵소추안으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공석이 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곳곳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이어지자 민주당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모경종 의원은 박수영 의원의 SNS 게시물을 인용해 반박하는 글을 작성했다. 모 의원은 “차라리 계엄사령부가 있었으면 일치단결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하지 그러냐”며 “중요한 것은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하며 후속 조치에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또한 같은 달 30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윤석열 내란 수괴가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이 국정 마비 현상”이라며 “내란 수괴를 체포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오히려 국정을 빨리 회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이 전례에 따라 헌법재판관 임명을 유보하더라도 야당이 쉽게 탄핵을 추진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쏠렸던 이유다. 여당이 ‘민주당발 탄핵 역풍’에 부채질하고 있지만 “정국 수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임명도 중요하다”는 민주당의 의지는 굳다.

불붙은
도화선

이 대표는 참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사고 수습은 수습이고 내란 사태 진압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대표나 박찬대 원내대표 등 지도부서 최 권한대행 탄핵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야권 의원들이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책임 있는 민주당 지도부나 중진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다른 막다른 위기로 우리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것보다 해결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것”이라며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해 완전체제로 만드는 것이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고 여기에 맞춰 국민의힘도 여당으로서의 일을 하면 된다”며 “지금은 슬픔에 빠진 나라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도하는 게 맞는 때다. 이전처럼 민주당이 막무가내로 날을 휘두르면 오히려 역풍을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이전만큼 압박 수위를 높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 다음날 곧바로 발부되면서 잠시 멈췄던 탄핵 시계의 초침이 다시 움직일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게 세 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불출석으로 임하자 이 같은 최후의 수단을 내민 것이다.

민주당은 “정부는 여전히 내란 수괴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고, 내란 세력들은 수사를 방해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며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원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을 대리하는 윤갑근 변호사는 서울서부지법에 본인과 김홍일 변호사 선임계 및 체포영장 청구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윤 변호사는 “권한 없는 기관에 의한 체포영장 청구고 형사소송법상 청구 요건에도 맞지 않다”는 내용을 의견서에 담았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직권남용죄로 소추하는 것에 대해 “꼬리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몸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라고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사고 수습과 내란 사태 진압 모두 중요”
‘버티기’ 돌입한 용산 무너뜨릴 한 방이 없다

국민의힘은 “현직 대통령이 증거인멸에 대한 염려나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서, 더군다나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인한)국가 애도 기간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무대응 기조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여기에 최 권한대행의 ‘애매한’ 행보가 이어지자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항공 사고 직전까지 여야가 치열하게 싸웠던 헌법재판관을 결국 임명했지만 후보 3명 중 2명만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달 31일 최 권한대행은 민주당 추천인 정계선 후보와 여당 추천인 조한창 후보자를 임명했다. 마은혁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임명을 보류했다.

국민의힘은 충분한 논의 절차가 없었다며 즉각 반발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유감스럽다”며 “책임과 평가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역시 “국무회의서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결정했으면 헌법 원칙에 부합할 텐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본인 의사를 발표한 건 독단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 권한대행의 선택에 불만스러운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야 합의를 마친 헌법재판관을 선별해 임명하는 행위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도 거부할 권한이 없는데 권한대행이 선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회 추천은 이미 의결로 완성된 것인데 무슨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겠나. 최 권한대행은 즉시 마은혁 후보자를 포함해 3명을 모두 임명하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여야,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혼란스러운 정국이 예상된다. 여기에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야당이 집중 공세를 펼쳤다.

민주당 박창진 부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섣부른 예단과 진단, 그리고 정쟁의 도구로 이번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공수처라든가, 각자 맡은 역할을 하고 있다. 참사가 수습되고 나서 다음에 또 각자의 자리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천히
회복 중

박 부대변인은 대한항공 객실 사무장 출신으로 1997년 괌 대한항공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인물이다. 그는 “전 국민의 아픔이고 사고다. 2차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수습하고 애도하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음모론을 펼치거나 ‘승무원은 왜 살았냐’ 등 2차 가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는 우리 공동체를 해치는 일”이라고도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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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참사> ‘막 지은’ 무안공항 미스터리

[무안 참사] ‘막 지은’ 무안공항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의 설립 배경이 재조명됐다. 공항 건설 초기부터 지적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가능성, 미숙한 운영 등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무안공항은 ‘고추 말리는 공항’ ‘한화갑 공항’ 등 정치적 견해에 휩싸인 바 있다. 공항 건설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지난 2023년 이용객은 24만6000명에 불과했다. 지난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은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으로 설계됐다. 다만, 활주로는 약 2.8㎞로 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한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3.126㎞로 늘리는 연장 공사를 진행하던 탓에 활주로를 300m 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화갑 공항’ 정치적 탄생 통상 대형 항공기 이용이 잦은 국제공항 대부분은 활주로 길이가 3㎞를 넘는다. 실제 국내의 주요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3.75㎞), 김포국제공항(3.6㎞), 김해국제공항(3.2㎞), 제주국제공항(3.2㎞) 등은 무안공항보다 활주로 길이가 길다. 미국 JFK, 프랑스 샤를 드골, 도쿄 나리타 등 주요 국제공항 활주로는 4㎞가 넘는 곳도 많다. 무안공항서 400t 넘는 항공기 운항이 제한된 것도 활주로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활주로 길이가 길수록 항공기 제동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항공기는 바퀴 대신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 못해 활주로 끝 둔덕 등에 부딪혔다. 김규환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 센터장은 “3㎞에 미치지 못하는 활주로 길이는 평시 이·착륙 상황에선 문제가 없지만, 동체착륙 같은 비상시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원장은 “사고의 주요 원인을 활주로 길이로만 돌리긴 어렵지만, 활주로 길이가 인천 정도로 길었더라면 이 정도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날 국토부는 “활주로 길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 기종은 1.5~1.6㎞ 길이의 활주로서도 착륙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 원인 중 하나의 가능성으로 지목되는 조류 충돌 문제에 관한 안일한 인식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착륙 장치 ‘랜딩기어’ 고장이 조류 충돌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제 ‘고추 말리는 공항’ 오명 벗자” 20년 만에 해외 운항···무리수 결과 무안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 중 조류 충돌 비율이 가장 높다. 201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무안공항에는 여객·화물을 합쳐 항공기 총 1만1004편이 오갔다. 이 기간 모두 10건의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은 0.09%로, 비행기가 1만편 오갈 때 조류 충돌이 9번 발생했다는 뜻이다. 제주공항(0.013%), 김포공항(0.018%)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공항 주변은 서해안 철새 도래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공항 건설 초기부터 관련 문제가 제기돼왔다. 공항 인근의 전남 무안군 현경면·운남면에선 1만2000여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됐다. 이 지역에는 113.34㎢에 이르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 등이 조성돼있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무안국제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때도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무안공항엔 조류충돌예방위원회가 만들어져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당시 보고서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류 충돌 위험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저감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폭음기나 경보기를 설치하고, 레이저나 깃발, LED 조명 등을 이용해 조류 충돌을 최소화하라는 구체적 대응책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활주로 확장 공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을 듣고 무안공항을 찾은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도 <경향신문>과 인터뷰서 “저수지와 바다, 습지가 많아 오리 등 철새가 이동하는 길목”이라며 “무안공항의 입지 자체가 앞으로도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류 전문가인 주 소장은 매년 겨울 무안공항 주변을 방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충돌 위험 지속 제기 그는 “사고의 주원인으로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적어도 이 지역에 실제 어떤 새들이 얼마나 있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확인해야만 또 다른 조류 충돌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50분쯤 공항 근처 창포호 인근서 오리떼가 날아든 것이 관측됐다. 전날 오전 9시쯤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공항으로 들어온 시각과 비슷하다. 주 소장은 “가창오리 같은 경우 원래 야행성이라 해질 무렵이 되면 공항 남동쪽서 북동쪽으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한 뒤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휴식처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일어난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에도 무안공항 인근서 20만마리의 가창오리떼를 발견했다. 무안공항 동쪽의 한 농경지에 서 있는데 가창오리 5만마리가 한 차례 지나간 뒤 15만마리가 남쪽으로부터 날아와 북동쪽으로 군무를 펼치며 이동했다는 것이다. 밤새 먹이활동을 한 가창오리는 아침이 되면 다시 경로를 거슬러 간다. 이 경로는 비행기의 경로와 맞닿는다. 무안공항 인근에는 약 40여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망운면 인근 바닷가서도 쉽게 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또한 비행기 경로와 일치한다. 공항서 직선거리로 6~7㎞ 정도 떨어진 운남면도 비행기가 착륙하는 경로에 걸쳐 있다. 주 소장은 “제주도와 가덕도, 새만금까지 새롭게 공항을 늘리려 하는데 모두 새의 서식지와 겹치는 지역”이라며 “위치 선정부터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관제탑 등 항공 관계자들의 경험 부족이 사고를 키웠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전까지 국제선 정규 노선을 운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사고가 발생한 무안~방콕 노선은 제주항공이 같은 달 8일 운항을 시작한 신규 노선이다. 뜯어말렸던 조류 전문가 20만 오리떼 아침마다 이동 무안공항이 17년 만에 운영하는 첫 국제선 정기 노선인 만큼, 미숙함이 드러난 것이다. 또 무안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4월 문재인정부서 임명된 사장이 뒤늦게 사표를 낸 이후, 8개월째 공석이다. 기장 출신 관계자는 “조류 충돌 주의 경고 후 2분 만에 ‘메이데이’ 선언이 있었다”며 “당시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동체 착륙 외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기 동체 착륙 전엔 공항소방대가 대기한 뒤, 활주로에 화재 방지를 위한 소화 약제를 뿌렸어야 하는데 이 절차도 시행되지 않았다. 무안공항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인 로컬라이저와 이를 지지하기 위한 콘크리트 둔덕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무안공항의 ‘방위각 표시시설(로컬라이저)’과 콘크리트 둔덕은 활주로 끝에서 250m가량 떨어진 비활주로에 설치됐다. 둔덕은 2m 높이에 이른다. 항공기 진입 방향과 반대 측의 활주로 끝 부근에 설치되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중심선 연장 위에 안테나가 설치된다. 이는 착륙하는 항공기에 활주로 중심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공항 측과 국토교통부는 ‘아래로 기울어진 비활주로 지면과 활주로와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둔덕을 세워 돌출된 행태로 보이는 것’이라며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준 미비 아낀 정비 그러나 사고의 피해를 더 키웠다고 지목되는 둔덕형의 로컬라이저에 관해 공항설계 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국내외 기준과 규정에 어긋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논란이 되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시설이라서 특별한 제약 조건이 없다”며 “이는 현재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엔지니어링사는 1998~1999년 사이 발주된 무안공항의 실시설계를 담당했다. 그는 또 활주로 끝단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둔덕을 세우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관련 규정이나 상황을 모르고 그렇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규정과 기준을 갖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외 기준과 규정을 다 포함한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활주로 안전구역 밖에는 관제탑도 있는데 만약 항공기가 동체 착륙하면서 활주로 밖으로 미끄러져서 관제탑에 충돌할 경우엔 이것도 문제가 된다는 거냐”며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날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안전구역을 설정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전문가들이 활주로 끝단에 둔덕형 시설물을 설치한 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본 적이 없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자신들 기준서 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앞선 국토부 입장과 유사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문제의 로컬라이저는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기 때문에 관련 안전기준이나 설치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2.8㎞ 활주로 국제선 부족 “위치·구조 원인” 참사 키운 ‘콘크리트 둔덕’···국내 공항 수두룩 국토교통부의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항공기가 착륙 후 제때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부분을 지나쳤을 경우 항공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착륙대 종단 이후에 설정된 구역을 말한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넘어섰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인 셈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착륙대의 끝에서 최소 90m 이상 돼야 된다. 무안공항은 199m로 설정하고 있다. 논란이 된 로컬라이저는 이 구역 5m 뒤에 설치돼있다.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것이다. 종단안전구역 안에 있는 시설물은 설치 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된다. 해당 기준 제22조에는 ‘항행에 사용되는 장비 및 시설로 반드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설치돼야 하는 물체는 항공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하며 최소 중량 및 높이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국토부의 ‘공항안전운영기준’ 제42조에도 ‘(착륙대, 유도로대 및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불법 장애물이 없을 것. 다만, 설치가 허가된 물체에 대해선 지지하는 기초구조물이 지반보다 7.5㎝ 이상 높지 않아야 하며, 물체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고 제시돼있다. 하지만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만간 관련 국내외 규정을 포괄해서 로컬라이저 논란에 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제주항공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사고가 발생한 여객기는 직전 48시간 동안 8개 공항을 오가며 총 13차례 운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안공항 이외에도 제주·인천공항과 중국 베이징, 대만 타이베이,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등을 오갔다. 제주항공이 운항 스케줄을 무리하게 편성해 기체 피로도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술한 규제 책임 넘기기 물리적인 정비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3차 브리핑서 “모든 항공기는 제작사 매뉴얼이나 국토부가 인가한 기준에 맞춰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김포공항서 출발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긴급 회항했다. 제주항공 측은 이륙 직후 랜딩기어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를 감지한 후 해당 편 기장이 지상 통제센터와 교신하며 조치해 정상 작동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장이 안전 운항을 위해 항공기 점검을 받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김포공항으로 회항해 점검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호건설 특혜 시비 ‘정치 공항’ 논란 무안공항은 1999년 착공해 2007년 개항했다. 인근에 공항이 있는데도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돼 당시 사업을 주도한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을 따 ‘한화갑 공항’으로 불린다. 이용객이 없어 활주로서 주민들이 고추 말리는 장면이 목격돼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도 불렸다. 199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무안·울진·김제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당시 실세였던 한 전 의원이 설립을 주도했다. 또 1999년 착공 당시 호남 기업인 금호건설이 건설사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됐다. 활주로 건설에 쓰이는 골재 납품을 특정 지역 업체가 전량 수주한 것을 두고서도 특혜 시비가 제기된 바 있다.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