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막 지은’ 무안공항 미스터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1.06 11:03:25
  • 호수 1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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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새떼 어쩌라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의 설립 배경이 재조명됐다. 공항 건설 초기부터 지적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가능성, 미숙한 운영 등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무안공항은 ‘고추 말리는 공항’ ‘한화갑 공항’ 등 정치적 견해에 휩싸인 바 있다. 공항 건설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지난 2023년 이용객은 24만6000명에 불과했다. 지난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은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으로 설계됐다. 다만, 활주로는 약 2.8㎞로 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한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3.126㎞로 늘리는 연장 공사를 진행하던 탓에 활주로를 300m 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화갑 공항’
정치적 탄생

통상 대형 항공기 이용이 잦은 국제공항 대부분은 활주로 길이가 3㎞를 넘는다. 실제 국내의 주요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3.75㎞), 김포국제공항(3.6㎞), 김해국제공항(3.2㎞), 제주국제공항(3.2㎞) 등은 무안공항보다 활주로 길이가 길다.

미국 JFK, 프랑스 샤를 드골, 도쿄 나리타 등 주요 국제공항 활주로는 4㎞가 넘는 곳도 많다. 무안공항서 400t 넘는 항공기 운항이 제한된 것도 활주로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활주로 길이가 길수록 항공기 제동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항공기는 바퀴 대신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 못해 활주로 끝 둔덕 등에 부딪혔다. 김규환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 센터장은 “3㎞에 미치지 못하는 활주로 길이는 평시 이·착륙 상황에선 문제가 없지만, 동체착륙 같은 비상시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원장은 “사고의 주요 원인을 활주로 길이로만 돌리긴 어렵지만, 활주로 길이가 인천 정도로 길었더라면 이 정도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날 국토부는 “활주로 길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 기종은 1.5~1.6㎞ 길이의 활주로서도 착륙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 원인 중 하나의 가능성으로 지목되는 조류 충돌 문제에 관한 안일한 인식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착륙 장치 ‘랜딩기어’ 고장이 조류 충돌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제 ‘고추 말리는 공항’ 오명 벗자”
20년 만에 해외 운항···무리수 결과 

무안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 중 조류 충돌 비율이 가장 높다. 201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무안공항에는 여객·화물을 합쳐 항공기 총 1만1004편이 오갔다. 이 기간 모두 10건의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은 0.09%로, 비행기가 1만편 오갈 때 조류 충돌이 9번 발생했다는 뜻이다. 제주공항(0.013%), 김포공항(0.018%)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공항 주변은 서해안 철새 도래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공항 건설 초기부터 관련 문제가 제기돼왔다. 공항 인근의 전남 무안군 현경면·운남면에선 1만2000여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됐다. 이 지역에는 113.34㎢에 이르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 등이 조성돼있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무안국제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때도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무안공항엔 조류충돌예방위원회가 만들어져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당시 보고서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류 충돌 위험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저감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폭음기나 경보기를 설치하고, 레이저나 깃발, LED 조명 등을 이용해 조류 충돌을 최소화하라는 구체적 대응책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활주로 확장 공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을 듣고 무안공항을 찾은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도 <경향신문>과 인터뷰서 “저수지와 바다, 습지가 많아 오리 등 철새가 이동하는 길목”이라며 “무안공항의 입지 자체가 앞으로도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류 전문가인 주 소장은 매년 겨울 무안공항 주변을 방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충돌 위험
지속 제기

그는 “사고의 주원인으로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적어도 이 지역에 실제 어떤 새들이 얼마나 있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확인해야만 또 다른 조류 충돌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50분쯤 공항 근처 창포호 인근서 오리떼가 날아든 것이 관측됐다. 전날 오전 9시쯤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공항으로 들어온 시각과 비슷하다. 

주 소장은 “가창오리 같은 경우 원래 야행성이라 해질 무렵이 되면 공항 남동쪽서 북동쪽으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한 뒤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휴식처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일어난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에도 무안공항 인근서 20만마리의 가창오리떼를 발견했다. 

무안공항 동쪽의 한 농경지에 서 있는데 가창오리 5만마리가 한 차례 지나간 뒤 15만마리가 남쪽으로부터 날아와 북동쪽으로 군무를 펼치며 이동했다는 것이다. 밤새 먹이활동을 한 가창오리는 아침이 되면 다시 경로를 거슬러 간다. 이 경로는 비행기의 경로와 맞닿는다.

무안공항 인근에는 약 40여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망운면 인근 바닷가서도 쉽게 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또한 비행기 경로와 일치한다. 공항서 직선거리로 6~7㎞ 정도 떨어진 운남면도 비행기가 착륙하는 경로에 걸쳐 있다.

주 소장은 “제주도와 가덕도, 새만금까지 새롭게 공항을 늘리려 하는데 모두 새의 서식지와 겹치는 지역”이라며 “위치 선정부터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관제탑 등 항공 관계자들의 경험 부족이 사고를 키웠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전까지 국제선 정규 노선을 운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사고가 발생한 무안~방콕 노선은 제주항공이 같은 달 8일 운항을 시작한 신규 노선이다.

뜯어말렸던 조류 전문가
20만 오리떼 아침마다 이동

무안공항이 17년 만에 운영하는 첫 국제선 정기 노선인 만큼, 미숙함이 드러난 것이다.

또 무안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4월 문재인정부서 임명된 사장이 뒤늦게 사표를 낸 이후, 8개월째 공석이다.


기장 출신 관계자는 “조류 충돌 주의 경고 후 2분 만에 ‘메이데이’ 선언이 있었다”며 “당시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동체 착륙 외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기 동체 착륙 전엔 공항소방대가 대기한 뒤, 활주로에 화재 방지를 위한 소화 약제를 뿌렸어야 하는데 이 절차도 시행되지 않았다.

무안공항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인 로컬라이저와 이를 지지하기 위한 콘크리트 둔덕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무안공항의 ‘방위각 표시시설(로컬라이저)’과 콘크리트 둔덕은 활주로 끝에서 250m가량 떨어진 비활주로에 설치됐다.

둔덕은 2m 높이에 이른다. 항공기 진입 방향과 반대 측의 활주로 끝 부근에 설치되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중심선 연장 위에 안테나가 설치된다. 이는 착륙하는 항공기에 활주로 중심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공항 측과 국토교통부는 ‘아래로 기울어진 비활주로 지면과 활주로와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둔덕을 세워 돌출된 행태로 보이는 것’이라며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준 미비
아낀 정비

그러나 사고의 피해를 더 키웠다고 지목되는 둔덕형의 로컬라이저에 관해 공항설계 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국내외 기준과 규정에 어긋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논란이 되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시설이라서 특별한 제약 조건이 없다”며 “이는 현재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엔지니어링사는 1998~1999년 사이 발주된 무안공항의 실시설계를 담당했다. 그는 또 활주로 끝단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둔덕을 세우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관련 규정이나 상황을 모르고 그렇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규정과 기준을 갖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외 기준과 규정을 다 포함한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활주로 안전구역 밖에는 관제탑도 있는데 만약 항공기가 동체 착륙하면서 활주로 밖으로 미끄러져서 관제탑에 충돌할 경우엔 이것도 문제가 된다는 거냐”며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날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안전구역을 설정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전문가들이 활주로 끝단에 둔덕형 시설물을 설치한 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본 적이 없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자신들 기준서 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앞선 국토부 입장과 유사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문제의 로컬라이저는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기 때문에 관련 안전기준이나 설치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2.8㎞ 활주로 국제선 부족  “위치·구조 원인”
참사 키운 ‘콘크리트 둔덕’···국내 공항 수두룩

국토교통부의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항공기가 착륙 후 제때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부분을 지나쳤을 경우 항공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착륙대 종단 이후에 설정된 구역을 말한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넘어섰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인 셈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착륙대의 끝에서 최소 90m 이상 돼야 된다. 무안공항은 199m로 설정하고 있다. 논란이 된 로컬라이저는 이 구역 5m 뒤에 설치돼있다.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것이다.

종단안전구역 안에 있는 시설물은 설치 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된다. 해당 기준 제22조에는 ‘항행에 사용되는 장비 및 시설로 반드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설치돼야 하는 물체는 항공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하며 최소 중량 및 높이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국토부의 ‘공항안전운영기준’ 제42조에도 ‘(착륙대, 유도로대 및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불법 장애물이 없을 것. 다만, 설치가 허가된 물체에 대해선 지지하는 기초구조물이 지반보다 7.5㎝ 이상 높지 않아야 하며, 물체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고 제시돼있다.

하지만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만간 관련 국내외 규정을 포괄해서 로컬라이저 논란에 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제주항공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사고가 발생한 여객기는 직전 48시간 동안 8개 공항을 오가며 총 13차례 운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안공항 이외에도 제주·인천공항과 중국 베이징, 대만 타이베이,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등을 오갔다.

제주항공이 운항 스케줄을 무리하게 편성해 기체 피로도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술한 규제
책임 넘기기

물리적인 정비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3차 브리핑서 “모든 항공기는 제작사 매뉴얼이나 국토부가 인가한 기준에 맞춰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김포공항서 출발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긴급 회항했다. 제주항공 측은 이륙 직후 랜딩기어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를 감지한 후 해당 편 기장이 지상 통제센터와 교신하며 조치해 정상 작동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장이 안전 운항을 위해 항공기 점검을 받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김포공항으로 회항해 점검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호건설 특혜 시비
‘정치 공항’ 논란

무안공항은 1999년 착공해 2007년 개항했다. 인근에 공항이 있는데도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돼 당시 사업을 주도한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을 따 ‘한화갑 공항’으로 불린다.

이용객이 없어 활주로서 주민들이 고추 말리는 장면이 목격돼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도 불렸다.

199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무안·울진·김제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당시 실세였던 한 전 의원이 설립을 주도했다. 

또 1999년 착공 당시 호남 기업인 금호건설이 건설사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됐다.

활주로 건설에 쓰이는 골재 납품을 특정 지역 업체가 전량 수주한 것을 두고서도 특혜 시비가 제기된 바 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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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대문’ VS ‘어대명’ 차이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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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한민국의 흑역사’가 10년도 안 돼 반복되고 있다. ‘평행이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같고 다를까? 2024년 12월은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현직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으며 사상 초유의 체포 작전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여객기 사고로 179명의 아까운 목숨도 잃었다. 8년 만에 재연됐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10여년 전 우리나라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파면됐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된 사례는 세 번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 전 대통령,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서 탄핵안이 기각되면서 직무에 복귀했다. 직무가 정지된 윤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불과 8년 새 두 명의 보수 진영 대통령이 헌재 심판대 위에 섰다.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볼수록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적인 예로 박 전 대통령은 ‘태블릿PC’ 보도가 불씨를 댕겼다면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시발점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헌재의 탄핵안 인용-특검 수사-사법 처분 등의 과정을 거쳐 단죄됐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있다. 2017년 5월9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보궐선거가 열렸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윤 대통령의 상황은 박 전 대통령보다 복잡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의 내란죄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양쪽에서 압박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중범죄라서 수사 속도가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빠른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 호감도 만큼 비호감도↑ 정치권의 눈은 조기 대선에 쏠려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최우선에 놓고 심리 중이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에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6월경에는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여야 잠룡들은 헌재의 탄핵안 인용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파면이 결정된 날부터 두 달 사이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에 기존에 인지도와 지지율을 어느 정도 확보한 인물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눈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쏠리는 이유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는 압도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 그룹과 큰 격차를 보이면서 1위위로 질주하는 중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 대표가 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오세훈 서울시장(7%), 홍준표 대구시장(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5%),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4%) 등이 뒤를 이었다.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2%였다. 이번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포인트, 응답률은 22.8%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4~6일 만 18세 이상 2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도 이 대표는 45.1%를 얻었다. 홍준표 대구시장(9.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7.8%),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7.2%), 오세훈 서울시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빠르면 6월 보궐선거로 이 대표의 지지율은 여당 후보 5인(홍준표·한동훈·원희룡·오세훈·안철수)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수치(33%)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높았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100% RDD 방식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조원씨앤아이 홈페이지 참조). 최근 정치권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과 함께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나돌았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상황과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서 박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대선은 제3당 후보 없이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의 맞대결로 치러졌다. 양측 모두 짜낼 수 있을 만큼 모조리 다 짜낸 선거서 패하자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지지세를 회복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암흑기로 보냈다. 문 전 대통령을 야권의 압도적인 대선주자로 만든 결정적 한 방은 국정 농단 사태였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파생 의혹이 쏟아졌다. 1300만명(누적)의 국민이 거리로 나왔다. 국민적 인기를 등에 업은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재서 인용될 무렵 ‘차기 대통령’으로 완벽하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이 당시 문 전 대통령과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는 말이 들린다. 이 대표가 가진 사법 리스크에 더해 ‘비토층’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도 싫지만, 이 대표도 싫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면 나오면 공격거리 많아 실제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호감도, 비호감도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뉴스핌>의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6~7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39.1%가 이 대표를 꼽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9.5%, 홍준표 대구시장 9.3% 등이 뒤를 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이 대표는 40.8%로 단연 1위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3.5%, 홍준표 대구시장이 12.2% 등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호감도 1~4위(이재명·오세훈·홍준표·원희룡)와 비호감도 1~4위가 같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여야의 대선후보군이 어느 정도 추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대선후보군은 ‘이재명 1강’ 독주 속에 범여권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양상”이라며 “범여권 유력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대표 한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마저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 달 만에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이재명 대항마’는 사실상 실종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비호감도 1위 원인으로는 사법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때 불거진 대장동 개발비리 특혜 의혹서 시작된 사법 리스크를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만 5개고 검찰서 추가로 수사 중인 사건도 2개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의혹은 1심 판결이 나왔다.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당선무효형이 나오면서 대선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법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수준이다. 발목 잡는 사법 리스크 박 때와 다른 보수 결집 위증교사 1심 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선고 전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위증교사 혐의의 유죄 가능성을 더 크게 봤다. 위증교사 혐의는 양형 기준에 따라 무죄 아니면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어 항소심서 판결이 바뀌면 이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상대 후보의 공격 포인트 역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연루된 의혹과 논란에 크게 실망했다. 윤 대통령이 퇴장하고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검증을 받기 시작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층의 결집이 심상찮은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 진영은 친박(친 박근혜)과 비박(비 박근혜) 등으로 사분오열했다. 탄핵안 표결 당시 찬반이 갈리면서 물리적으로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당시 야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표는 171표였다.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표수(200표)는 29표였지만 그보다 많은 63표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서 나왔다. 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이탈표였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는 2번의 표결 끝에 간신히 정족수를 넘겼다. 찬성은 204표로 국민의힘서 12표가량의 이탈표가 나왔다. 탄핵안이 가결된 뒤에도 국민의힘은 강경 지지층을 등에 업고 결집 중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지키기’에 나선 보수층과 국민의힘의 힘을 빼기 위해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 과정서 중도층의 이탈이 표면화되는 모양새다. 애매한 표수 걸림돌 될까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보수층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태도로 대응하는 점은 민주당은 물론 이 대표에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유보층이 상당하다는 점을 봤을 때 중도층을 놓치면 대권서 멀어질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지지만으로는 ‘어대명’은 완성될 수 없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