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같이 약속했다.
그랬던 그가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된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서 뒷말을 낳고 있다. 불과 며칠 만에 자신이 했던 대국민 약속마저 저버린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내란수괴죄 혐의로 피의자로 적시됐는데도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서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공조본 수사관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및 한남동 관저를 찾아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두 곳 모두 출석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했다.
이유는 대통령비서실의 경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태서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는 업무는 비서실의 업무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한남동 관저 주변을 경호 중인 경호처에선 “우리의 업무 소관이 아니다”라며 수령을 거부했다.
현재 윤 대통령은 국회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모든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다만 직무가 정지된 것일 뿐, 관저 생활 및 관용차·전용기 이용, 경호 유지 등 신분이나 급여 지급(업무추진비 제외) 등의 혜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비서실의 ‘업무 운운’은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비서실 및 경호처의 출석요구서 수령 거부 행위가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7일, 오동운 공수처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즉각 체포 질의에 “소환 통지를 했고, 수령을 거부하는 사태와 관련해 그 다음 적법한 절차를 취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날 오 공수처장이 언급한 적법한 절차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언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통령실과 관저 모두 출석요구서가 전달되지 않았지만 공조본은 우편(익일특급등기)으로도 출석요구서를 보낸 만큼 수령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일특급등기 우편은 접수 이튿날에 배달이 완료되며, 수령인에게 도착됐는지 여부도 확인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도 지난 11일, 윤 대통령에게 1차 출석요구서에 이어 이날 2차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 측은 ‘변호사 선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석에 불응했던 바 있다.
일각에선 소환 요구에 불응 중인 배경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지난 12일, 2차 대국민 담화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으니 수사기관의 출석엔 응하지 않겠다고 선전포고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냐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담화문을 통해 “계엄은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도 반문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경찰 및 전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일사불란하게 국회를 장악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보냈던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분위기다.
계엄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당시)국민의힘 대표 등을 국회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군 수뇌부의 증언이 이미 확보된 만큼 이미 반헌법적인 행태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과거 노태우·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들은 검찰의 소환에 응해 조사를 받았던 것과는 대비된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5년 11월1일, 헌정사상 최초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2차 조사까지 받은 후 법정 구속됐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던 박 전 대통령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2017년 3월21일, 박 전 대통령을 한차례 조사한 후 엿새 후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 응할 경우,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서게 될 수도 있다. 특수본 등 수사기관 출석과 관련해 윤 대통령 측은 곧 입장을 정리해 밝힐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계속 출석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 등의 강제구인에 나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이 출석요구서를 계속 보내는 것은 구속영장에 대한 명분쌓기의 일환이 아니겠느냐”며 “통상 출석요구서에 2~3회 불응할 경우 강제로 신병을 확보하는 게 관례”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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