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난장판’ 후보자 토론회 무용론

5년ㅉ리 백지수표 날리다

‘입으로 망한 사람은 있어도 귀 때문에 망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누구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과는 또 만나고 싶어진다. 내 곁에 오래도록 남는 이들 역시 결국 그런 사람들임을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된다.

무릇 인간은 말하면서 배우기보다 들으면서 성장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 함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진솔한 대화
전혀 없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성적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이라고 배웠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토론을 지켜보며 정책과 자질을 비교한 후, 합리적 판단으로 투표한다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쓸데없이 큰 비용만 들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보자.

가장 불편한 진실부터 인정하자. 유권자 대다수는 후보자 토론회를 보지 않는다. 2022년 대선 당시 TV 토론회 시청률은 고작 5-7%에 불과했다(전 방송국 시청률 합계가 33%인 것만 봐도). 이는 같은 시간대 인기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토론회 시청률은 더욱 참담하다.


토론회를 본다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확증 편향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지하는 후보의 발언은 옳게 들리고, 반대하는 후보의 발언은 틀리게 들린다. 수많은 연구에서 입증됐듯이, 사람들은 이미 마음에 둔 후보의 실수는 관대하게 용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의 장점은 애써 무시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토론회를 통해 마음을 바꾸는 유권자는 극소수라는 점이다.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후보자 토론의 영향으로 지지 후보를 바꾸는 유권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결국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진행하는 토론회가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표심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현대 후보자 토론회의 실체는 무엇인가? 후보들은 철저히 준비된 멘트와 논리를 펼친다. 싱크탱크와 보좌진이 만들어준 답변을 외워서 토론장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즉흥적이고 진솔한 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토론의 부재’다. 진정한 토론이라면 상대의 주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반박,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방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형식은 시간 제약 속에서 각자의 입장만 짧게 진술하는 ‘병렬식 발언’에 가깝다.

토론 없고 상호 비방만 가득
“하겠습니다” 공허한 울림

후보들은 상대방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보다 미리 준비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그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식의 화법으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이것이 과연 토론인가?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토론이 갈수록 정책 경쟁이 아닌 ‘상호비방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책이나 비전을 명확히 설명하는 대신, 상대 후보의 약점이나 스캔들을 공격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이런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후보들은 건설적인 정책 토론보다 상대방 흠집내기에 집중한다.


더 교묘한 것은 진지한 비판을 ‘극단적 발언’으로 프레이밍하는 전략이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하십니까?”라는 멘트는 상대방의 정당한 비판을 회피하는 상투적 수법이 됐다. 사실관계나 논리에 반박하지 못할 때, 형식과 태도를 문제 삼아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다 보니, 후보자 토론회는 점점 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시끄러운 싸움판’처럼 변해가고 있다. 고함과 비난, 회피와 궤변이 오가는 무질서한 공간에서, 유권자들이 필요로 하는 진정한 정보와 통찰은 사라져버렸다.

토론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들이 자신의 공약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것이 왜 실현 가능한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후보들은 “~하겠습니다”라는 약속만 남발할 뿐,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가령 “일자리를 늘리겠습니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습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같은 추상적 목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 수단,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 예상되는 부작용과 그 대응책 등이다.

그러나 이런 핵심적 내용은 토론회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고함과 비난
회피와 궤변

특히 심각한 것은 ‘공짜 점심’을 약속하는 공약들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 “규제 완화와 환경 보호 동시 실현” 같은 모순된 공약들이 아무런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런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후보들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라는 식의 공허한 레토릭으로 대응한다.

진정한 토론이라면 “왜 당신의 공약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치열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방식에서는 이런 깊이 있는 검증보다, 상대방 공약의 비현실성만 공격하는 상호 비방이 주를 이룬다. 결국 유권자들은 누구의 공약이 더 실현 가능한지, 누구의 계획이 더 구체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선거일을 맞이하게 된다.

토론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선거의 본질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정책과 능력보다 ‘느낌’과 ‘이미지’로 투표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정치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보의 정책이 아니라 ‘인상’이다. 카리스마, 말투, 외모, 심지어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유명한 연구에서는 TV서 본 후보와 라디오로 들은 후보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랐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환경서 토론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인상 관리’의 무대가 된다. 후보들은 깊이 있는 정책 대결보다 ‘좋아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 관리, 상대방을 향한 적절한 공격과 방어, 유권자 감성을 자극하는 감탄사 한마디가 정작 토론의 내용보다 더 중요해진다.

현대 선거전서 가장 위험한 현상은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체념이다. 토론회를 접한 상당수 유권자들의 반응은 “토론회 보니까 싸가지가 없다” “그냥 서로 욕하기만 하네”라는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실망은 곧 “정책은 저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안일한 체념으로 변질된다.


더 심각한 것은 “어차피 잘 안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렇다”는 식의 체념적 태도다. 이런 무관심과 체념은 결국 정치적 참여를 포기하게 만든다. 토론회가 제 역할을 못하자 유권자들은 정치 전반에 대한 관심을 접고, 선거는 그저 인기 투표나 지역 투표로 전락한다.

형식적인
의례 행사

이런 상황에서 토론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그저 형식적으로 치러야 할 의례적 행사로 여겨진다. 유권자들은 토론회의 내용보다는 어떤 후보가 더 ‘튀는’ 발언을 했는지, 누가 더 ‘망신’을 당했는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토론회가 정책 경쟁이 아닌 ‘연예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변질된 근본적 이유다.

정치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체념은 결국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정책 대결을 요구하지 않으면, 후보자들도 그저 ‘보여주기식’ 토론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악순환을 형성해 토론의 질을 더욱 저하시키고, 결국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더욱 깊게 만든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희망이다.” 어느 정치인의 냉소적 발언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대다수 유권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진실’보다 ‘듣기 좋은 거짓’을 선호한다.

“세금 올리지 않고 복지 확대하겠다” “규제 완화하면서 환경을 보호하겠다”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불평등 해소하겠다” - 이런 모순된 약속이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표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유권자들이 이런 약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외면한다는 점이다. ‘아마 다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노력하겠지’라는 자기 위안 속에서, 비현실적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다.

이런 환경에서 토론회는 솔직한 문제 진단과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한 희망을 팔 수 있는가’를 겨루는 장으로 변질된다. 가장 솔직한 후보가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환상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리하는 구조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허점은 ‘사후 책임’ 메커니즘의 부재다. 후보들은 당선만을 위해 온갖 달콤한 약속을 하지만, 당선 후 이를 지키지 않아도 즉각적인 제재는 없다.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사실상 ‘백지수표’를 부여받는다. 선거공약 불이행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으며, 다음 선거서 심판받는다는 원칙도 본인의 불출마로 무력화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4년 임기 동안 공약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도, 다음 선거 때 “이번에는 다르다”는 약속만으로 재도전할 수 있다.

정책보단 쇼로 얼룩진 ‘기만극’
“그럴 줄 알았다” 무관심·체념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후보자 토론회서 아무리 좋은 약속을 한들 그것이 실제 이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권자들도 이를 본능적으로 알기에, 토론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후보자 토론회가 이대로 지속돼야 하는가? 현재의 형식과 내용으로는 그 효용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지금 진행되는 토론회의 실체는 ‘토론’이 아닌 ‘연출된 기만극’에 가깝다.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이 허울뿐인 의식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 불신만 키우고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토론회는 정치인들에게는 면책을 위한 의례적 절차이자, 방송사에는 시청률을 위한 쇼 프로그램이며, 유권자들에게는 정치 냉소주의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후보자들은 실현 가능성도 없는 달콤한 약속을 남발하고, 정작 당선 후에는 “여건이 달라졌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새로운 후보가 나와 같은 약속을 반복한다. 이런 순환적 기만에 우리는 언제까지 속아넘어갈 것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니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심층적 정책 검증보다 자극적인 ‘말 실수’와 ‘충돌’ 장면에 더 관심이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체념하고 무관심해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이 값진 제도는 점점 더 형해화될 것이다. 토론회를 진정한 정책 검증의 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토론 형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형화된 형식보다 훨씬 심층적인 장시간의 토론이 필요하다. 미리 질문을 알려주는 방식을 지양하고, 실시간 팩트체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둘째, 공약 이행에 대한 법적, 제도적 책임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주요 공약을 명문화하고, 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공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각한 공약 불이행에 대해서는 소환이나 불신임 등의 제도적 장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셋째, 유권자 교육이 중요하다. 비판적 사고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해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적 공약과 현실적 정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유권자도
변해야

결국 토론회의 질은 민주주의의 질을 반영한다. 우리가 어떤 토론회를 갖느냐는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느냐의 문제다. 현재와 같이 ‘좋은 소리’만 들으며 5년의 백지수표를 건네는 형식적 절차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 이제는 실질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이름뿐인 형식’으로 전락할 것이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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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무인기’ 안보실 비밀 작전 주도 의혹

‘평양 무인기’ 안보실 비밀 작전 주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북한 도발에 역대 정부 중 가장 적극적이었다. 대북 확성기를 틀거나 삐라를 날리면서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북한도 오물 풍선과 무인기를 날리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물론 윤정부도 참지 않았다. 북한처럼 평양에 무인기를 날렸다. 이 비밀 작전은 국가안보실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군 관계자로부터 국가안보실 지시로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날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6개월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언급했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라는 평가다. 안보실 중 국방·안보 파트는 1차장 소관이다. 나머지는 각각 외교와 경제를 담당한다. 지난해 안보실 국방·안보 파트 담당은 김태효 전 1차장이었다. 계속되는 군 거짓말 내란 특검팀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평양에 추락한 우리 군 무인기라며 공개한 사진 외에도 우리 군이 보낸 또 다른 무인기가 있다는 진술을 군 관계자로부터 확보했다. 이 관계자는 특검팀에 “백령도에서 날린 무인기 두 대 중 한 대는 평양에 추락했고, 나머지 한 대는 평양 인근에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그간 김명수 합참의장과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사실관계 공개 자체를 거부해 왔다. 앞서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은 북한 외무성이 지난해 10월 “한국이 10월3일, 9일, 10일 심야 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범시켜 삐라(대북 전단지)를 살포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국방부 국방과학연구소는 국회에 제출한 ‘북 전단 무인기 비교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와 우리 군 드론작전사령부(드론사)에 납품한 무인기의 전체적인 형상이 매우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등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고 무인기를 평양에 침투시켰다며 외환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2022년 있었던 북한군의 서울 상공 무인기 침투와 2024년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한 대북 작전이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이뤄진 지난해 10월은 남북 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치달았을 때다. 북한은 2022년 12월 무인기 5대를 수도권 일대 영공에 침투시켰다. 그중 1대는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일대 비행금지구역 안에 진입해 국가원수 경호 방공망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다가 2024년 5월부터11월에는 북한이 오물 풍선 수천 개를 한국에 살포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윤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오물 풍선 도발을 겨냥해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합참 지휘부는 대응 작전과 관련해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남북 긴장이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상황 관리에 치중했다. “국방·안보 1차장 소관”…정보융합팀 추진? 국군조직법상 부적절…당시 실장들은 몰랐다 그러자 민주당 등에서도 오물 풍선의 자유 낙하를 기다리는 군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휴전선 상공에서 풍선을 격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당시 “북한이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다. 다양한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드론사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특검은 드론사에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한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수사 중이다. 군 안팎에선 ‘김 전 장관→김 의장→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쳐 드론사에 지시가 내려갔을 가능성과, 김 전 장관이 김 의장이나 이 본부장을 건너뛰고 드론사에 직접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합동참모본부와 방첩사령부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사령관은 무인기 북파 시점을 전후해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과 김 의장을 잇달아 면담했다. 특검팀은 “2024년 6월 드론사 방첩대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군 현역 장교의 증언도 확보했다. 당시 드론사 방첩대 지휘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맡았다. 드론사는 적 무인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에 출범한 육·해·공군 및 해병대 합동 전투부대로, 국군조직법에 따라 합참의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안보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부대다. 그러나 특검팀에 출석한 군 관계자는 “모든 군 작전은 상급 기관인 합동참모본부의 지시를 받는데 무인기 침투 작전은 대통령실 안보실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며 “북한이 무인기 추락 사실을 공개한 날 작전을 수행한 드론사령부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격려금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관계없는 안보실 왜? 민주당 부승찬 의원도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이 V(대통령)의 지시라며 국가안보실 직통으로 무인기 침투 작전을 하달했다”는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당 외환유치진상조사단은 올해 초부터 드론사가(歌) ▲무인기 기종 재고 현황 ▲평양에 드론이 침투한 지난해 10월 드론사 상황일지 ▲삐라통을 제작할 수 있는 3D 프린터 보유 여부 등의 자료 제출에 성실히 응하고, 수사기관이 김 사령관과 핵심 참모들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안보실은 당시 기자단 공지를 통해 “인성환 제2차장이 지난 2024년 3월 드론사를 공식 방문한 바 있다”며 방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는 육·해·공군 주요 사령부 현장 확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부대 방문이며, 당시 드론사의 업무보고 등 공식 일정에 다수의 드론사 장병들이 함께했다”고 해명했다. 또 “김용대 드론사령관은 같은 해 8월 국가안보실 방문 당시 드론 전력화 방안 및 국방혁신위원회 안건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국방부 및 방사청 관계관 다수와 함께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다수의 인원이 함께한 공식 방문과 안보 태세 강화를 위해 정상적으로 추진한 업무를 ‘북풍 몰이’로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자,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외환 의혹 관련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연결고리’를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 통수권자인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 군부대까지 이어지는 지휘체계 전체가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검팀이 김 전 국방부 장관을 추가 구속하고, 군검찰과 협조해 여 전 사령관·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추가 구속한 것도 외환 수사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계엄 비선’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노상원 수첩’의 경우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 공격 유도’ 등 이른바 ‘북풍’ 준비 정황이 담겨 있어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비선 조직을 활용해 북한을 자극해 대남 도발을 유도했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는 게 정보기관 간부들의 설명이다. 수상한 연결고리 김봉규 정보사 대령의 “(노씨가)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다. 언론에 특별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는 경찰 진술 등도 특검으로 송부됐다. 특검팀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부분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드론사가 안보실의 지시로 무인기 침투 비밀 작전이 진행됐다는 의혹이 가리키는 시기는 지난해 8월이다. 안보실은 산하에 1·2·3 차장을 둔다. 이들은 각각 국방과 외교, 경제를 담당한다. 지난해 안보실 국방·안보 파트 담당은 김 전 1차장이었다. 안보실장은 장호진·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었으나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사실상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안보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이 실세 중의 실세였다. 최종적으로 안보실장이 모든 보고를 받지만 핵심 정보는 김태효 전 차장이 먼저 훑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 전 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북파공작부대(HID)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 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속초 갔던 김, HID 출신 용산 스카우트 왜? “방문 이례적” 대북 공작 플랜 일환이었나 김 전 차장이 HID를 방문한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정보 특기(820) 육관사관학교 60기 출신 오모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안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갔다. 오 중령은 인성환 당시 안보실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지난 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안보실이 당시에 언급했던 것처럼 오 중령이 소속된 팀은 ‘대북 특수정보’를 다룬다. 대북 문제에 대해 깊숙하게 알지 못하는 김 전 1차장을 사실상 보좌하는 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오 중령은 정보사 내 얼마 남지 않은 ‘대북 공작’ 전문가로 꼽힌다. 12·3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성욱 정보사 대령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안보실의 지시로 드론사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실행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오 중령이 속한 팀이 작전의 밑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보사 내부의 분석이다. 무인기를 언제 평양에 보내고 어떤 방법을 구사해야 하는지도 대북 공작의 한 종류기 때문이다. 일부러 들키려 분명한 목적 정보사 한 고위 관계자는 “무인기를 날린 시기를 보면 대북 공작 플랜을 한두 달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 때나 막 날리는 게 아니다. 어떤 목적을 정한 이후 그다음 시기를 정한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 대북 공작은 일부러 들키게 하거나 정말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일부러 들키려 한 공작은 ‘북풍 공작’이다. 이 방법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쓰지 않았던 방법이다. 자칫하면 수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정보사의 피해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