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난장판’ 후보자 토론회 무용론

5년ㅉ리 백지수표 날리다

‘입으로 망한 사람은 있어도 귀 때문에 망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누구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과는 또 만나고 싶어진다. 내 곁에 오래도록 남는 이들 역시 결국 그런 사람들임을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된다.

무릇 인간은 말하면서 배우기보다 들으면서 성장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 함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진솔한 대화
전혀 없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성적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이라고 배웠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토론을 지켜보며 정책과 자질을 비교한 후, 합리적 판단으로 투표한다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쓸데없이 큰 비용만 들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보자.

가장 불편한 진실부터 인정하자. 유권자 대다수는 후보자 토론회를 보지 않는다. 2022년 대선 당시 TV 토론회 시청률은 고작 5-7%에 불과했다(전 방송국 시청률 합계가 33%인 것만 봐도). 이는 같은 시간대 인기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토론회 시청률은 더욱 참담하다.


토론회를 본다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확증 편향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지하는 후보의 발언은 옳게 들리고, 반대하는 후보의 발언은 틀리게 들린다. 수많은 연구에서 입증됐듯이, 사람들은 이미 마음에 둔 후보의 실수는 관대하게 용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의 장점은 애써 무시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토론회를 통해 마음을 바꾸는 유권자는 극소수라는 점이다.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후보자 토론의 영향으로 지지 후보를 바꾸는 유권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결국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진행하는 토론회가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표심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현대 후보자 토론회의 실체는 무엇인가? 후보들은 철저히 준비된 멘트와 논리를 펼친다. 싱크탱크와 보좌진이 만들어준 답변을 외워서 토론장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즉흥적이고 진솔한 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토론의 부재’다. 진정한 토론이라면 상대의 주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반박,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방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형식은 시간 제약 속에서 각자의 입장만 짧게 진술하는 ‘병렬식 발언’에 가깝다.

토론 없고 상호 비방만 가득
“하겠습니다” 공허한 울림

후보들은 상대방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보다 미리 준비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그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식의 화법으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이것이 과연 토론인가?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토론이 갈수록 정책 경쟁이 아닌 ‘상호비방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책이나 비전을 명확히 설명하는 대신, 상대 후보의 약점이나 스캔들을 공격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이런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후보들은 건설적인 정책 토론보다 상대방 흠집내기에 집중한다.


더 교묘한 것은 진지한 비판을 ‘극단적 발언’으로 프레이밍하는 전략이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하십니까?”라는 멘트는 상대방의 정당한 비판을 회피하는 상투적 수법이 됐다. 사실관계나 논리에 반박하지 못할 때, 형식과 태도를 문제 삼아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다 보니, 후보자 토론회는 점점 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시끄러운 싸움판’처럼 변해가고 있다. 고함과 비난, 회피와 궤변이 오가는 무질서한 공간에서, 유권자들이 필요로 하는 진정한 정보와 통찰은 사라져버렸다.

토론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들이 자신의 공약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것이 왜 실현 가능한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후보들은 “~하겠습니다”라는 약속만 남발할 뿐,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가령 “일자리를 늘리겠습니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습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같은 추상적 목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 수단,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 예상되는 부작용과 그 대응책 등이다.

그러나 이런 핵심적 내용은 토론회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고함과 비난
회피와 궤변

특히 심각한 것은 ‘공짜 점심’을 약속하는 공약들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 “규제 완화와 환경 보호 동시 실현” 같은 모순된 공약들이 아무런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런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후보들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라는 식의 공허한 레토릭으로 대응한다.

진정한 토론이라면 “왜 당신의 공약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치열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방식에서는 이런 깊이 있는 검증보다, 상대방 공약의 비현실성만 공격하는 상호 비방이 주를 이룬다. 결국 유권자들은 누구의 공약이 더 실현 가능한지, 누구의 계획이 더 구체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선거일을 맞이하게 된다.

토론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선거의 본질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정책과 능력보다 ‘느낌’과 ‘이미지’로 투표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정치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보의 정책이 아니라 ‘인상’이다. 카리스마, 말투, 외모, 심지어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유명한 연구에서는 TV서 본 후보와 라디오로 들은 후보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랐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환경서 토론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인상 관리’의 무대가 된다. 후보들은 깊이 있는 정책 대결보다 ‘좋아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 관리, 상대방을 향한 적절한 공격과 방어, 유권자 감성을 자극하는 감탄사 한마디가 정작 토론의 내용보다 더 중요해진다.

현대 선거전서 가장 위험한 현상은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체념이다. 토론회를 접한 상당수 유권자들의 반응은 “토론회 보니까 싸가지가 없다” “그냥 서로 욕하기만 하네”라는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실망은 곧 “정책은 저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안일한 체념으로 변질된다.


더 심각한 것은 “어차피 잘 안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렇다”는 식의 체념적 태도다. 이런 무관심과 체념은 결국 정치적 참여를 포기하게 만든다. 토론회가 제 역할을 못하자 유권자들은 정치 전반에 대한 관심을 접고, 선거는 그저 인기 투표나 지역 투표로 전락한다.

형식적인
의례 행사

이런 상황에서 토론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그저 형식적으로 치러야 할 의례적 행사로 여겨진다. 유권자들은 토론회의 내용보다는 어떤 후보가 더 ‘튀는’ 발언을 했는지, 누가 더 ‘망신’을 당했는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토론회가 정책 경쟁이 아닌 ‘연예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변질된 근본적 이유다.

정치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체념은 결국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정책 대결을 요구하지 않으면, 후보자들도 그저 ‘보여주기식’ 토론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악순환을 형성해 토론의 질을 더욱 저하시키고, 결국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더욱 깊게 만든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희망이다.” 어느 정치인의 냉소적 발언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대다수 유권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진실’보다 ‘듣기 좋은 거짓’을 선호한다.

“세금 올리지 않고 복지 확대하겠다” “규제 완화하면서 환경을 보호하겠다”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불평등 해소하겠다” - 이런 모순된 약속이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표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유권자들이 이런 약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외면한다는 점이다. ‘아마 다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노력하겠지’라는 자기 위안 속에서, 비현실적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다.

이런 환경에서 토론회는 솔직한 문제 진단과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한 희망을 팔 수 있는가’를 겨루는 장으로 변질된다. 가장 솔직한 후보가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환상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리하는 구조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허점은 ‘사후 책임’ 메커니즘의 부재다. 후보들은 당선만을 위해 온갖 달콤한 약속을 하지만, 당선 후 이를 지키지 않아도 즉각적인 제재는 없다.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사실상 ‘백지수표’를 부여받는다. 선거공약 불이행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으며, 다음 선거서 심판받는다는 원칙도 본인의 불출마로 무력화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4년 임기 동안 공약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도, 다음 선거 때 “이번에는 다르다”는 약속만으로 재도전할 수 있다.

정책보단 쇼로 얼룩진 ‘기만극’
“그럴 줄 알았다” 무관심·체념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후보자 토론회서 아무리 좋은 약속을 한들 그것이 실제 이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권자들도 이를 본능적으로 알기에, 토론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후보자 토론회가 이대로 지속돼야 하는가? 현재의 형식과 내용으로는 그 효용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지금 진행되는 토론회의 실체는 ‘토론’이 아닌 ‘연출된 기만극’에 가깝다.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이 허울뿐인 의식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 불신만 키우고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토론회는 정치인들에게는 면책을 위한 의례적 절차이자, 방송사에는 시청률을 위한 쇼 프로그램이며, 유권자들에게는 정치 냉소주의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후보자들은 실현 가능성도 없는 달콤한 약속을 남발하고, 정작 당선 후에는 “여건이 달라졌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새로운 후보가 나와 같은 약속을 반복한다. 이런 순환적 기만에 우리는 언제까지 속아넘어갈 것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니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심층적 정책 검증보다 자극적인 ‘말 실수’와 ‘충돌’ 장면에 더 관심이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체념하고 무관심해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이 값진 제도는 점점 더 형해화될 것이다. 토론회를 진정한 정책 검증의 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토론 형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형화된 형식보다 훨씬 심층적인 장시간의 토론이 필요하다. 미리 질문을 알려주는 방식을 지양하고, 실시간 팩트체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둘째, 공약 이행에 대한 법적, 제도적 책임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주요 공약을 명문화하고, 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공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각한 공약 불이행에 대해서는 소환이나 불신임 등의 제도적 장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셋째, 유권자 교육이 중요하다. 비판적 사고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해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적 공약과 현실적 정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유권자도
변해야

결국 토론회의 질은 민주주의의 질을 반영한다. 우리가 어떤 토론회를 갖느냐는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느냐의 문제다. 현재와 같이 ‘좋은 소리’만 들으며 5년의 백지수표를 건네는 형식적 절차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 이제는 실질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이름뿐인 형식’으로 전락할 것이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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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