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난장판’ 후보자 토론회 무용론

5년ㅉ리 백지수표 날리다

‘입으로 망한 사람은 있어도 귀 때문에 망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누구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과는 또 만나고 싶어진다. 내 곁에 오래도록 남는 이들 역시 결국 그런 사람들임을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된다.

무릇 인간은 말하면서 배우기보다 들으면서 성장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 함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진솔한 대화
전혀 없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성적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이라고 배웠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토론을 지켜보며 정책과 자질을 비교한 후, 합리적 판단으로 투표한다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쓸데없이 큰 비용만 들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보자.

가장 불편한 진실부터 인정하자. 유권자 대다수는 후보자 토론회를 보지 않는다. 2022년 대선 당시 TV 토론회 시청률은 고작 5-7%에 불과했다(전 방송국 시청률 합계가 33%인 것만 봐도). 이는 같은 시간대 인기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토론회 시청률은 더욱 참담하다.

토론회를 본다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확증 편향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지하는 후보의 발언은 옳게 들리고, 반대하는 후보의 발언은 틀리게 들린다. 수많은 연구에서 입증됐듯이, 사람들은 이미 마음에 둔 후보의 실수는 관대하게 용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의 장점은 애써 무시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토론회를 통해 마음을 바꾸는 유권자는 극소수라는 점이다.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후보자 토론의 영향으로 지지 후보를 바꾸는 유권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결국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진행하는 토론회가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표심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현대 후보자 토론회의 실체는 무엇인가? 후보들은 철저히 준비된 멘트와 논리를 펼친다. 싱크탱크와 보좌진이 만들어준 답변을 외워서 토론장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즉흥적이고 진솔한 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토론의 부재’다. 진정한 토론이라면 상대의 주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반박,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방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형식은 시간 제약 속에서 각자의 입장만 짧게 진술하는 ‘병렬식 발언’에 가깝다.

토론 없고 상호 비방만 가득
“하겠습니다” 공허한 울림

후보들은 상대방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보다 미리 준비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그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식의 화법으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이것이 과연 토론인가?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토론이 갈수록 정책 경쟁이 아닌 ‘상호비방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책이나 비전을 명확히 설명하는 대신, 상대 후보의 약점이나 스캔들을 공격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이런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후보들은 건설적인 정책 토론보다 상대방 흠집내기에 집중한다.

더 교묘한 것은 진지한 비판을 ‘극단적 발언’으로 프레이밍하는 전략이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하십니까?”라는 멘트는 상대방의 정당한 비판을 회피하는 상투적 수법이 됐다. 사실관계나 논리에 반박하지 못할 때, 형식과 태도를 문제 삼아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다 보니, 후보자 토론회는 점점 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시끄러운 싸움판’처럼 변해가고 있다. 고함과 비난, 회피와 궤변이 오가는 무질서한 공간에서, 유권자들이 필요로 하는 진정한 정보와 통찰은 사라져버렸다.

토론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들이 자신의 공약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것이 왜 실현 가능한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후보들은 “~하겠습니다”라는 약속만 남발할 뿐,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가령 “일자리를 늘리겠습니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습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같은 추상적 목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 수단,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 예상되는 부작용과 그 대응책 등이다.

그러나 이런 핵심적 내용은 토론회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고함과 비난
회피와 궤변

특히 심각한 것은 ‘공짜 점심’을 약속하는 공약들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 “규제 완화와 환경 보호 동시 실현” 같은 모순된 공약들이 아무런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런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후보들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라는 식의 공허한 레토릭으로 대응한다.

진정한 토론이라면 “왜 당신의 공약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치열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방식에서는 이런 깊이 있는 검증보다, 상대방 공약의 비현실성만 공격하는 상호 비방이 주를 이룬다. 결국 유권자들은 누구의 공약이 더 실현 가능한지, 누구의 계획이 더 구체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선거일을 맞이하게 된다.

토론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선거의 본질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정책과 능력보다 ‘느낌’과 ‘이미지’로 투표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정치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보의 정책이 아니라 ‘인상’이다. 카리스마, 말투, 외모, 심지어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유명한 연구에서는 TV서 본 후보와 라디오로 들은 후보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랐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환경서 토론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인상 관리’의 무대가 된다. 후보들은 깊이 있는 정책 대결보다 ‘좋아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 관리, 상대방을 향한 적절한 공격과 방어, 유권자 감성을 자극하는 감탄사 한마디가 정작 토론의 내용보다 더 중요해진다.

현대 선거전서 가장 위험한 현상은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체념이다. 토론회를 접한 상당수 유권자들의 반응은 “토론회 보니까 싸가지가 없다” “그냥 서로 욕하기만 하네”라는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실망은 곧 “정책은 저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안일한 체념으로 변질된다.

더 심각한 것은 “어차피 잘 안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렇다”는 식의 체념적 태도다. 이런 무관심과 체념은 결국 정치적 참여를 포기하게 만든다. 토론회가 제 역할을 못하자 유권자들은 정치 전반에 대한 관심을 접고, 선거는 그저 인기 투표나 지역 투표로 전락한다.

형식적인
의례 행사

이런 상황에서 토론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그저 형식적으로 치러야 할 의례적 행사로 여겨진다. 유권자들은 토론회의 내용보다는 어떤 후보가 더 ‘튀는’ 발언을 했는지, 누가 더 ‘망신’을 당했는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토론회가 정책 경쟁이 아닌 ‘연예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변질된 근본적 이유다.

정치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체념은 결국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정책 대결을 요구하지 않으면, 후보자들도 그저 ‘보여주기식’ 토론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악순환을 형성해 토론의 질을 더욱 저하시키고, 결국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더욱 깊게 만든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희망이다.” 어느 정치인의 냉소적 발언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대다수 유권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진실’보다 ‘듣기 좋은 거짓’을 선호한다.

“세금 올리지 않고 복지 확대하겠다” “규제 완화하면서 환경을 보호하겠다”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불평등 해소하겠다” - 이런 모순된 약속이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표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유권자들이 이런 약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외면한다는 점이다. ‘아마 다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노력하겠지’라는 자기 위안 속에서, 비현실적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다.

이런 환경에서 토론회는 솔직한 문제 진단과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한 희망을 팔 수 있는가’를 겨루는 장으로 변질된다. 가장 솔직한 후보가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환상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리하는 구조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허점은 ‘사후 책임’ 메커니즘의 부재다. 후보들은 당선만을 위해 온갖 달콤한 약속을 하지만, 당선 후 이를 지키지 않아도 즉각적인 제재는 없다.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사실상 ‘백지수표’를 부여받는다. 선거공약 불이행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으며, 다음 선거서 심판받는다는 원칙도 본인의 불출마로 무력화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4년 임기 동안 공약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도, 다음 선거 때 “이번에는 다르다”는 약속만으로 재도전할 수 있다.

정책보단 쇼로 얼룩진 ‘기만극’
“그럴 줄 알았다” 무관심·체념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후보자 토론회서 아무리 좋은 약속을 한들 그것이 실제 이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권자들도 이를 본능적으로 알기에, 토론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후보자 토론회가 이대로 지속돼야 하는가? 현재의 형식과 내용으로는 그 효용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지금 진행되는 토론회의 실체는 ‘토론’이 아닌 ‘연출된 기만극’에 가깝다.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이 허울뿐인 의식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 불신만 키우고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토론회는 정치인들에게는 면책을 위한 의례적 절차이자, 방송사에는 시청률을 위한 쇼 프로그램이며, 유권자들에게는 정치 냉소주의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후보자들은 실현 가능성도 없는 달콤한 약속을 남발하고, 정작 당선 후에는 “여건이 달라졌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새로운 후보가 나와 같은 약속을 반복한다. 이런 순환적 기만에 우리는 언제까지 속아넘어갈 것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니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심층적 정책 검증보다 자극적인 ‘말 실수’와 ‘충돌’ 장면에 더 관심이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체념하고 무관심해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이 값진 제도는 점점 더 형해화될 것이다. 토론회를 진정한 정책 검증의 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토론 형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형화된 형식보다 훨씬 심층적인 장시간의 토론이 필요하다. 미리 질문을 알려주는 방식을 지양하고, 실시간 팩트체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둘째, 공약 이행에 대한 법적, 제도적 책임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주요 공약을 명문화하고, 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공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각한 공약 불이행에 대해서는 소환이나 불신임 등의 제도적 장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셋째, 유권자 교육이 중요하다. 비판적 사고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해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적 공약과 현실적 정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유권자도
변해야

결국 토론회의 질은 민주주의의 질을 반영한다. 우리가 어떤 토론회를 갖느냐는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느냐의 문제다. 현재와 같이 ‘좋은 소리’만 들으며 5년의 백지수표를 건네는 형식적 절차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 이제는 실질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이름뿐인 형식’으로 전락할 것이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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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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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