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여론조사 운명의 일주일

실수 한방이면 ‘훅’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온 나라를 뒤흔들던 숫자놀음이 일단 멈췄다. 투표 당일까지는 새로운 숫자를 볼 수 없다.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다. 선거판서 일주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시작됐다. 이 기간에 실시되는 대선 여론조사는 투표 당일인 오는 3일 오후 8시까지 결과를 공표할 수 없다. 표심 흐름을 알 수 없기에 ‘블랙아웃’ ‘깜깜이’ 기간으로 불린다.

유리한 고지

공직선거법 제108조(여론조사의 결과 공표 금지 등)는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 마감 시각까지 선거에 관해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해 보도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표심을 예측할 수 없는 기간이라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대 대선을 보면 분명한 공식이 존재한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실제 대선에서도 이겼다는 사실이다.

한국갤럽의 13~20대 대선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투표일을 열흘 남짓 앞두고 치러진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김영삼 후보가 당선된 1992년 14대 대선,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 1997년 15대 대선은 물론 노무현 후보가 이긴 2002년 16대 대선과 박근혜 후보가 대권을 잡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이 공식이 적중했다. 대선 기간 내내 여론조사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했던 선거였다.

지난 대선 역시 본 투표 일주일 전 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39%,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8%의 지지율을 보였다. 오차범위(±3.1%p) 내였지만 윤 후보가 앞섰다. 실제 투표 결과는 0.73%p 차이로 윤 후보의 승리였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0~2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5월4주차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45%,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36%였다. 9%p 차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2~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9명을 대상으로 한 5월 4주차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무선 100% 자동응답 방식)에서도 이 후보가 46.6%, 김 후보가 37.6%로 오차범위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9~21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5월4주차 전국지표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휴대전화 가상번호 전화면접 100%)에서도 이 후보가 46%, 김 후보가 32%였다.

깜깜이 기간 직전에 진행한 결과도 이변은 없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6~27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무선 100% 자동응답 방식)에서 민주당 이 후보가 49.2%, 김 후보는 36.8%,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10.3%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이 후보가 다른 후보보다 대권에 가까이 서 있는 셈이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민주당 이 후보와 김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든 여론조사 결과가 종종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시작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그때부터 60일 동안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공표 금지 전 1위 승리 공식
이준석 여성 발언 변수 될까

조기 대선의 배경 자체가 12·3 비상계엄이기에 민주당이 크게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과정서 최선봉에 섰고 탄핵 정국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당 대표였던 이 후보가 대선 정국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실제 이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여론조사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와 붙어도 10~15%p 차이를 보일 정도로 ‘1강’ 구도가 굳어진 듯했다.

하지만 대선일에 가까워질수록 김 후보와의 차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김 후보와 개혁신당 이 후보의 지지율 단순합이 민주당 이 후보보다 오차범위 내지만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민주당 이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가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지난달 29일 사전투표가 시작되기 전까지 김 후보와 개혁신당 이 후보 사이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대선은 3자 구도로 굳어졌다. 국민의힘은 대선 초기부터 ‘반명(반 이재명) 빅텐트’를 구상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세 번의 TV토론도 마무리된 상태서 이제 후보들에게 남은 건 유세전뿐이다.

각 후보는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불러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선 투표율은 지방선거나 총선과 비교해 높은 편이었다. 직전 대선(77.1%)을 포함해 18대 대선(75.8%), 19대 대선(77.2%) 등 세 번의 선거서 투표율은 75%를 웃돌았다. 사전 투표를 비롯해 투표일이 3일에 이르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선 막판 변수로 ‘말’을 꼽았다.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 등을 거치며 유권자의 정치 관심도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서 한번의 말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개혁신당 이 후보가 마지막 TV 토론회서 한 여성 관련 발언이 막바지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여기에 아이돌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SNS에 올린 사진이 정치 논란에 휘말리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말 그대로 뒤집혔다.

개혁신당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TV 토론회서 여성의 신체와 관련한 폭력적 표현을 인용하며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여성 혐오인지를 물었다. 발언 내용은 민주당 이 후보의 아들이 댓글로 썼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여성 혐오’ 논란이 불거지자 개혁신당 이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불편한 국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하겠다”면서도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고 어떻게 더 순화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 입장에서는 그런 언행이 만일 사실이라고 한다면 충분한 검증이 필요한 사안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성계는 사퇴를 촉구하며 반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대통령선거 후보로서 시민 앞에 선 자리서 여성 시민에 대한 폭력과 비하 표현을 그대로 재확산한 작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여성 혐오에 편승해온 (개혁신당) 이 후보가 오직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의 혐오 표현으로 여성을 언급하는 저열한 작태에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막판 뒤집기?

개혁신당 이 후보의 여성 관련 논란은 지난 대선 때도 있었다.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는 등 반페미니즘 행보를 보인 바 있다. 그 결과 20·30대 여성의 지지가 민주당 이 후보로 급격하게 쏠리면서 대선 구도가 요동쳤다. 이번엔 선수로 뛰고 있는 상황서 실제 득표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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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