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VS 보수 4룡 맨투맨 가상대결

이리저리 몽땅 합쳐도 발밑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4명으로 좁혀졌다. 이 중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겨룰 최후의 한 명만 살아남게 된다. 모두가 이재명 대항마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지지율을 몽땅 합쳐도 이 후보 한 사람 몫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다. 상황을 역전시킬 ‘대반전’을 노리며 각개전투에 나섰다.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4강 진출에 성공한 네 명의 후보가 호명됐다. 100% 일반 국민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경선서는 예상대로 김문수·한동훈·홍준표 후보가 2차 경선에 진출했다.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던 나경원·안철수 후보 중에서는 안 후보가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보수표 싹쓸이
중도층 글쎄⋯

김 후보는 홍 후보와 여론조사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보수 유망주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 접어들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며 ‘운동권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강경 보수’로 타이틀을 갈아치우고 대선판에 뛰어들었다.

강경한 성향 탓에 김 후보는 장관으로 지명되기 전부터 잡음이 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태극기부대 집회서 목소리를 내거나 문재인 전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라고 부르는 등 편향된 사고를 가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7년 김 후보는 친박(친 박근혜) 성향 보수 집회에 참석해 “대통령을 탄핵했으면 됐지 대통령 목을 창에 끼워서 들고 다니고, 상여를 메고 단두대를 끌고 다니는 잔인무도한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2019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DAS)로 구속됐다. 그렇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장 총살감”이라는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던 2022년 국정감사장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말해 파행을 겪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번 조기 대선 출마 기자회견서도 자신의 이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민중민주주의 깃발 아래 친북·반미·친중 그리고 반기업 정책만을 고집하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다”며 “체제 전쟁을 벌이며 국가 정체성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는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을 강하게 반대해 온 만큼 “(탄핵은)헌정질서 안에서 내려진 최종 결정이므로 그 결과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다시 싸워서 승리하자. 무기력한 당과 위기의 대한민국을 바꾸는 데 함께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찬탄 VS 반탄’ 둘로 쪼개진 경선 구도
보수 전사 ‘훈장’서 외연 확장 ‘족쇄’로

김 후보의 강경 보수 타이틀은 양날의 검이다. 탄핵 반대 집회 표심을 끌어올 수 있지만, 중도 확장에는 걸림돌이 된다.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이후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 그는 지난 4일 한 라디오를 통해 이번 비상 계엄을 ‘불법 계엄’이라고 강조하며 “포고령 1호가 잘못됐다”는 과거 발언을 재조명했다. 그러면서 “유신 시대부터 5공화국까지 계엄을 한번도 찬성한 적이 없다. 만약 계엄 당일 (내가) 국무회의에 출석했다면 드러누워서라도 반대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입장은 여전했다. 김 후보는 “군중심리나 그 당시 분위기에 떠밀려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과연 대한민국 헌정사에 도움이 되겠나? 대통령 권한 중 하나인 비상계엄이 도를 넘어섰을 때는 내란이 될 수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냉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굳어버린 강경 이미지로 인해 최종 대선후보로 뽑히더라도 외연 확장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보수 주자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가상대결을 했을 때 이재명 후보가 54.2%인 반면, 김문수 후보는 23.6%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6∼18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4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p며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6.6%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홍 후보는 세 번째 대권 도전인 점과 대구시장이었던 점을 들어 ‘준비된 후보’라는 강점을 내세웠다. “과거 단체장이 꿈도 못 꿀 사업을 다 세팅해놨다”며 “대구·경북 핵심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 가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홍 후보는 꾸준히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며 반이재명 성향을 띤 보수 지지층을 꽉 잡았다. 홍 후보는 출마 선언문을 통해 “이번 대선은 홍준표정부냐, 이재명정부냐의 양자택일 선거”라고 주장했다.

3수 홍
이번엔…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전과 4범에 비리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자 화려한 전과자”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낡은 6공화국 운동권 세력이 펼치는 광란의 국회 폭거를 중단시켜야 한다” 등 촛불 세력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대권주자 1위인 이재명 후보를 꺾을만한 인물은 본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지층에 호소했다.

김 후보를 견제하는 동시에 이재명 후보를 공격해야 하는 홍 후보는 본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과 차별점을 두는 전략을 택했다.

가장 비슷한 이미지인 김 후보에 대해서는 “문수형은 탈레반이다. 나는 문수형하고는 다르다.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나는 유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언뜻 보면 비슷한 강성 우파지만 대화나 협상이 필요한 순간에는 유연함을 보여주는 리더십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 후보와 한동훈 후보와는 초반부터 각을 세웠다. 비상 계엄과 윤 전 대통령 탄핵 이슈에 입장 차를 보이면서 상대방의 ‘배신자 프레임’을 굳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홍 후보는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서 기반을 다졌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의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른 보수 후보들처럼 외연 확장이라는 어려움에 부딪힌 셈이다.

보수 진영서 이재명 후보가 비호감의 아이콘이라면 진보 진영에서는 홍 후보가 그 타이틀을 꿰차고 있다.


지난 20일 치러진 국민의힘 1차 경선 B조 토론회서 홍 후보는 느닷없이 한 후보를 향해 “내가 정치 대선배다. 어떤 말씀을 묻더라도 고깝게 듣지 마시고, 앞으로 정치 계속해야 하니까 편하게 답변 달라”며 “키도 큰데 왜 키높이 구두를 신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에 ‘생머리냐’ ‘보정 속옷 입었느냐’는 이런 질문도 (있는데) 유치해서 안 하겠다”고 말했다. 질문을 들은 한 후보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유치하시네요”라고 답했다.

토론 이후 친한(친 한동훈)계서 반발이 나오자 홍 후보는 “한 후보에게 이미지 정치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한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치 선배로서의 조언이라지만 난데없는 외모 난타전에 일부 유권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재명 후보와의 가상대결 여론조사에 따르면, 홍 후보는 20.5%로 집계됐다. 김 후보와 보수 주자 1, 2위를 놓고 다투면서도 나란히 20%대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관건은 홍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다. 2030 보수 남성이 주요 지지층인 이준석 후보와 손을 잡는다면 기존 TK표와 합리적 보수표를 흡수해 지금보다 몸집을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 후보는 “(이준석 후보에게)어제(22일) 전화가 왔다. ‘빨리 경선을 끝내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보수)텐트를 치려면 가장 중요한 사람이 이준석 후보가 아닐까 생각한다”면서도 “이준석 후보는 이미 (개혁신당) 후보가 돼 뛰고 있기에 더 이야기하는 건 그렇다”고 일축했다.


‘탄핵 찬성’
유일한 차별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을 누르고 4강에 오른 안 후보의 행보도 주목된다.

4강 진출에 실패한 나 의원은 윤심(윤 전 대통령의 의중)을 업고 출마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탄핵 정국서 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나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각·각하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국민의힘 중진으로서 힘을 보탰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다음 날인 지난 5일에는 용산 관저를 찾아 독대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재판 결과에 안타까워하는 나 의원에게 “어려운 시기에 역할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 수고했다” 등 격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나 의원을 탄핵 찬성파인 안 후보가 꺾은 것을 두고 여의도가 술렁였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은근히 윤심을 어필하던 나 의원이 떨어졌다. 무당층 여론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겠는가”라며 “극우 세력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나니 이제야 현실이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탄핵 찬성파와 민주당이 겨루게 되면 진영 논리서 벗어나 공약이나 국가 비전 등을 논할 수 있겠다”면서도 “미묘한 차이로 인해 (진영 논리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할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그 사소한 차이로 꼬투리를 잡고 옥신각신하는 모양새가 선거 기간 내내 연출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이재명 후보와 겨뤘을 때 경쟁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 후보는 2012년, 2022년에 치러진 대선에 출마했지만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선언했으며 2017년 대선서는 최종 3위에 그쳤다. 매 선거마다 비슷한 레퍼토리를 보여준 탓에 나 의원을 제치고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뿐더러 ‘이재명 대항마’로서 어떤 비장의 무기를 보여줄지도 불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탄핵 찬성·계엄 반대파인 한 후보는 ‘시대 교체’ ‘신선한 정치인’ 이미지를 강조하며 보수 표밭 다지기에 나섰다.

2023년 12월 법무부 장관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투입된 한 후보는 김건희씨와 각을 세우며 서서히 ‘황태자’ 이미지를 탈피했다. 총선 패배로 직을 내려놨지만 곧바로 당 대표를,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당 대표를 사퇴한 뒤에는 세 달 만에 대선 출사표를 던지는 등 빠른 주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4인4색 이 대항마 자처
민주 “누가 와도 자신”

한 후보의 짧은 정치 경력은 유권자에게 기대감을 주는 동시에 불안감을 안겨준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여론 하나로 대선후보가 된 지난날이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이전 당시 당 대표로서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검사-피의자 이미지만 부각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한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의 가상 대결서 16.2%를 얻었는데, 이는 위 후보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한 여권 관계자는 “최종 경선만 뚫으면 이재명 후보와 가장 비등비등하게 겨뤄볼 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비상계엄 해제 당시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하고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면서도 이재명 후보를 거칠게 비판하는 이른바 ‘동시 청산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받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2차 경선 진출 여부다. 100% 국민여론이었던 1차 경선과 달리 2차 경선부터는 당원투표 50%, 국민여론조사 50%로 이루어진다. 배신자 프레임이 짙게 드리워진 한 후보에게 있어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이에 한 후보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 당이 계엄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마음이 많은 국민의 의지로서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선 전략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지금 당원의 수가 굉장히 많아졌고 당원의 수준도 높기 때문에 당심과 민심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64%로 당 대표에 당선될 때도 정확하게 당심과 여론조사 민심은 같았다”고 자신했다.

이어 “4명의 후보가 경쟁한 후 과반이 나오지 않으면 결선투표가 도입되지 않느냐”며 “결선투표서 (후보끼리) 상처를 주고 갈등을 남길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들 하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4명 선거서 반드시 과반 이상 득표해서 결선투표까지 가지 않고 오는 29일부터 우리 당이 곧바로 본선 체제로 돌입하겠다”며 “이재명 후보를 상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 합쳐도
겨우 이거?

이번 6·3 조기 대선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에 유리한 점은 분명히 있지만, 이와 별개로 과거부터 차분히 대권을 준비해 온 이재명 후보가 기회를 쉽게 놓칠 리가 없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는 누가 덤벼도 자신만만할 것이다. 숫자로 증명되지 않았나? 표정에 드러내지 않을 뿐, 이전부터 정권을 잡으면 바로잡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은 건 국민의 심판이다. 어떤 후보와 겨루든, 잘 준비해서 국민께 희망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쩌면 가장 유력한 후보?

국민의힘서 4파전으로 후보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자꾸만 여의도 밖을 향하고 있다.

대선 출마와 관련해 침묵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관심이 쏠린 탓이다.

호불호가 적은, 곧바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한 국무총리를 선두로 빅텐트가 쳐진다면 보수-중도보수-반이재명까지 품을 수 있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을 근거로 한 국무총리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선례를 언급하며 “그것보다 더 추하게 끝나지 않을까 이렇게 보고 있다”고 혹평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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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