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VS 공수처, 고위공직자 ‘우선수사권 기싸움’ 내막

‘용호상박’ 밀리면 끝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서로 수사 칼날을 겨눈 데 이어 법무부까지 공수처 압박에 나섰다. 상황은 악화일로다. 법무부와 검찰은 공수처법 제24조 1항 폐지를 강조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공수처가 우선적으로 수사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고위공직자 범죄 척결을 위해 탄생한 공수처가 우선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실상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공수처법 제24조 1항은 공수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타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해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면 해당 수사기관이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해당 조항이 ‘독소조항’이라며 폐지를 공약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폐지 플랜이 실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악화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에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검찰 직접수사권 축소 대응 방안 등을 보고했다.

한 장관은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이첩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공수처법 24조 1항에 대해선 개정 등을 통해 ‘우선적 수사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검경이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하면 공수처에 이를 통보하도록 한 24조2항을 남용할 경우 수사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만큼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법무부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수처 업무보고에서 여운국 차장은 “24조1항은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며 법무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개정 논의를 하려면 기존 수사기관이 불공정함 없이 수사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검찰이 그동안 불공정한 수사를 해온 게 있는 만큼 우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우선 수사권 개정 논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수사권 논란은 ‘서해 공무원 피살’ ‘북한 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도 옮겨붙었다. 두 사건의 피고발인 대다수가 고위공직자지만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3부에서 조사 중이다. 검찰은 고위공직자 관련 인지 사건은 공수처에 알려야 하지만 두 건은 고발사건이기 때문에 통보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는 일단 이첩 요구 검토 없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법 24조와 관련해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며 임기 중 우선 수사권을 규정한 1항 관련 이첩 요청권 행사의 기준과 절차,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수처에 따르면, 해당 조항이 행사된 경우는 2건에 불과하다. 공수처 ‘1호 사건’으로 꼽히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부당 특별채용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 이첩을 요청한 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이첩을 요청한 건이 전부다.

이처럼 초라한 수사 실적으로 인해 공수처는 반박할 명분조차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공수처가 발표한 사건처리 실적에 따르면, 사건사무규칙 개정 전인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13일까지 공수처가 처리한 3007건 중 검·경 등 기타 수사기관에 이첩한 사건은 2620건으로 전체의 87.1%에 달했다.

반면 공소제기, 불기소, 불입건 등 자체 처리 사건 수는 387건으로 전체의 12.9%에 불과하다.

한동훈 장관, 검수완박 대응 의지
감사원, 기자 통신조회 논란 감사?

공수처가 몸을 바짝 낮추고 있으나 윤석열정부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 논란과 관련 “올 하반기에 기관 운영 감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수처는 지난 3월 이미 결산검사를 받은 바 있다. 정부 전체 연간 회계검사의 일환으로 통상적 수순이다. 하지만 감사원의 기관 운영 감사를 작년에 출범한 공수처가 받게 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가다. 통상 기관 운영 감사가 길게는 5년 주기로 이뤄지는 데 비춰보면 감사원이 공수처를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는 분석이다.

최 원장은 ‘공수처가 감사원 감사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기관인가’라는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의 질의에 “그렇지 않다”며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감사 대상이 된다”고 대대적 감사를 시사했다. 실제 감사가 이뤄질 경우 파장은 커질 수 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광범위한 통신 조회를 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 수사 대상이 아닌 기자 등에 대해 통신영장을 청구한 이유 등은 밝히지 않았다”며 “위법하다고도 볼 수 있기에 감사 결과에 따라 수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검찰도 공수처를 정조준하고 있다. 통신 조회 사찰 논란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이 중요 사건이 몰리는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고, 김 처장의 ‘관용차 에스코트’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직무유기 고발 건도 함께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도록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해온 ‘공수처 폐지’ 플랜이 실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빠른 폐지로 역풍을 맞을 수 있기에 공수처 핵심이 되는 24조1항 손보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앞서 지난 4월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윤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공수처법과 관련된 내용이 즐비하다. 해당 문서는 총 1170페이지가량의 대외비 문서로 지난 4월 대통령선거 운동 기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대검 연일 공수처 공개 압박
대통령 ‘공수처법 독소조항’ 지적

이행계획서의 내용이 지난 5월3일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로 대부분 반영된 것을 보면 일부 수정을 거쳐 최종 채택이 된 것으로 보인다.

110대 국정과제 중 4번째 과제가 ‘형사사법 개혁을 통한 공정한 법 집행’이다. 이행계획서에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검찰, 경찰, 공수처 관련 발언과 공약들이 실천과제와 함께 명시돼있다. 대표적 실천과제로 ‘공수처법의 독소조항을 폐지, 검찰과 경찰도 고위공직자 부패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수처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한 장관의 발언이 날이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다. 검찰 수사 개편에 이어 정상화라는 워딩까지 쓰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비판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 장관이 대타로 나서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수처 폐지와 공수처법 손보기의 벽은 높다. 공수처법 제24조1항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국회 법률 개정 사안이다.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상 국민의힘과 윤정부가 공수처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 힘 실어주기에 나서면서 협조를 구하는 일도 어려운 실정이다.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민주당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정부 입법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야권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하위법령으로 법에 규정된 기관의 권한을 통제하려 한다면 헌법재판소로 갈 여지도 있다.

한 장관도 “(우선적 수사권 폐지는)국회 입법 사항”이라며 “법무부는 행정부를 대표해 그런 식의 문제 인식을 갖고 국회 입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손본다”

한 장관은 또 직접수사 강화를 위해 강력부와 외사부 등 직접수사 부서를 복원하고 금융증권, 보이스피싱, 조세범죄 등 다양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합동수사단을 운영하겠다고 보고했다. 범죄정보 수집 능력 회복을 위해 올 하반기(7∼12월) 중 대검찰청 정보관리담당관실의 인력과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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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