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쳤나 놔줬나' 공수처 미스터리

먹여줘도…이쪽저쪽 간 보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범 9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1호 공약으로 내걸고 검찰개혁을 천명했다. 공수처 설립과 공수처장 후보 추천 문제를 두고 여야 간 입법 줄다리기가 1년여 동안 이어진 끝에 올해 1월 기대와 우려 속에 새 기구가 첫발을 뗐다. 

출범 9개월
초라한 성적

올 1월21일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9개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공수처의 성적표는 초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대는 사그라졌고 우려는 증폭됐다. 인력 구성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차례에 걸쳐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에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 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문제는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영장과 사전 구속영장이 연달아 기각됐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출범 이후 1호 체포영장, 1호 구속영장이었기 때문에 더 뼈아픈 대목이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출석 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법원은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도 기각한 바 있다. 체포영장이 기각되고 사흘 만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다시 기각되면서 공수처는 말 그대로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특히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손 검사에 대한 조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무리수였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손 검사는 지난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일하던 중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관련 자료 수집을 성명불상의 직원에게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호 체포·구속영장 기각
무리한 청구 지적 망신살

또 ‘검언 유착’ 보도의 제보자로 알려진 지모씨 실명 판결문 유출, 이를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4·15 총선에 개입하려 한 혐의도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를 고발장의 전달자로 특정했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제출한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조씨와 김 의원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에 ‘손준성 보냄’ 문구가 남아있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공수처는 지난달 10일 손 검사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와 수사관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후 공수처와 손 검사는 소환 일정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먼저 공수처는 지난 4일 손 검사에게 “10월14일 또는 15일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손 검사는 “변호인 선임이 지연되고 있다”며 출석일자를 미루다 지난달 11일 “10월2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전달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그보다 사흘 앞선 20일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손 검사는 21일 변호인을 선임했고 사건 파악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11월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또 다시 기각하면서 공수처의 수사 역량과 함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손 검사가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들이 성명불상의 검찰공무원에게 고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했다”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명불상자’가 누구인지는 명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후보
노렸지만?

또 영장청구서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이 여러 차례 나오지만 정작 범죄 혐의와 관련해서는 윤 전 총장의 이름을 적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실한 영장청구서가 법원의 기각을 불렀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공수처의 수사엔 제동이 걸렸다. 공수처의 당초 목표는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확대해 윗선의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단추가 어긋나면서 공수처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공수처 역시 당분간 손 검사와 김웅 의원에 대한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통보한 시점에 대해서도 공방이 오가는 등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달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실제 손 검사에게 통보한 시기는 영장실질심사 전날인 같은 달 25일이었다. 손 검사가 ‘늑장 통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다. 

공수처는 논란이 계속되자 같은 달 27일 “영장 청구 시 통보는 피의자 조사가 이뤄지는 등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손 검사의 계속되는 출석 불응에 대응하고 출석을 담보해 조사를 진행하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공수처에서 손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선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정당한 이유 없이 예정된 출석에 불응하면 강제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손 검사 측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명백히 야당 경선에 개입하는 수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라고 공수처를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 배경엔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민주당에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빠른 수사를 촉구하자 공수처가 이에 발맞추느라 무리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황제 조사
또 언급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공수처의 손 검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야당 후보의 경선 일정을 고려해 수사를 서두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명백한 선거개입이자 선거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5일 공수처 출범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검찰로부터 독립과 중립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공수처가 철저한 정치적 중립 속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야를 넘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청문회에서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발언했다. 공수처 설립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공수처장 후보자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발언들은 ‘공염불’에 가까워졌다. 

지난 3월 이 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도 재차 거론되고 있다. 당시 김 처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던 이 고검장을 휴일에 관용차량을 이용해 청사에 들인 뒤 면담을 진행해 황제 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한 언론을 통해 이 고검장이 김 처장의 제네시스 관용차에 옮겨 타는 장면이 정부과천청사 인근 도로변 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되면서 김 처장은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사건 조사와 관련해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더욱 유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 경선 일정 언급 
“선거 개입” 반발 불러

김 처장의 이 같은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고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은 두고두고 공수처의 발목을 잡았다. 

또 공수처가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연달아 청구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 반면 윤중천 면담보고서 왜곡‧유출 의혹을 재조사하는 사건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6월 사이 이 검사를 3차례 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했으나 이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현재 공수처에는 수많은 사건이 쌓여있지만 마무리까지 이뤄진 사건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이 유일하다. 나머지 10여건은 아직 결론까지 요원한 상태다. 그나마 조 교육감 사건의 경우에도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질 수 없는 고위공직자여서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까지만 했다.

사실상 기소 사건은 전무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고발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공수처가 사흘 만에 수사에 착수하면서 윤 전 총장을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공수처의 가용 수사 인력의 절반 가까이 해당 사건에 투입되면서 기존에 진행되던 사건은 뒷전으로 밀렸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사건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등 6명이 입건된 상태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과 ‘스폰서 검사’로 알려진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도 입건 이후 지지부진하다. 

기대 못 미쳐
없어질 수도?

공수처가 처음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존폐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던 기소권을 분산시키고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이 범한 직권남용, 수뢰, 허위공문서 작성 및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의 특정범죄를 척결하고,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도입 취지는 이미 무색해졌다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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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