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 결론에 이르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사건을 수사한 지 8개월 만이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는 존폐론이 제기되는 등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지난해 1월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출범했다.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된 공수처는 기대와 우려 속에 첫발을 뗐다. 그로부터 1년4개월, 부실한 수사 능력과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공수처의 꼬리표가 됐다.
무리한 수사
지난해 3월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 금지 사건의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이 고검장을 공수처로 데려오는 데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
이른바 ‘황제 조사’ 사건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언급할 때 가장 첫손에 꼽힌다.
또 다른 꼬리표인 ‘수사능력 부재’ 논란과 관련해 언급되는 게 바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한 뒤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총선 후보였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부터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020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일하며 소속 검사들에게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정보 수집을 지시하고, 김 의원에게 해당 고발장을 전달해 사실상 고발을 사주했다고 보고 수사해왔다.
또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로 나선 윤석열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공수처의 수사 과정은 헛발질의 연속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손 보호관의 신병 확보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망신을 당했다. 손 보호관이 출석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 1회, 구속영장 2회를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아 영장이 취소되기도 했다.
영장 청구 3전 3패 ‘대망신’
수사능력 부재·존폐론까지
공수처의 수사능력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공수처 무용론, 존폐론 등도 제기됐다. 손 보호관의 2차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언급한 것이 공수처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핵심 피의자에 대한 영장 청구에서 ‘3전3패’라는 불명예를 안은 공수처의 수사는 공회전을 거듭했다.
7개월 넘게 수사를 끌어오던 공수처는 최근 사건의 최종 처분을 두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 공소심의위원회가 손 보호관과 김 의원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팀의 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공소심의위는 공소제기 여부 등 공수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안을 심의하는 기구로, 권고사항이 강제성을 갖진 않는다.
그리고 지난 4일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한 최종 결론을 발표했다. 손 보호관은 불구속 기소, 공수처법상 기소 대상이 아닌 김 의원은 검찰에 이첩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에서 ‘윤수처’라는 비판까지 받았지만 결국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의 연관성도 밝혀내지 못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무혐의 처분에 대해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심으로 고발된 사건이지만 작성자 특정 단계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했기 때문에 현재 단계에서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윤 대통령과 함께 고발된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혐의에 대한 언급 없이 사건을 검찰로 이첩했다.
손 보호관은 공무상비밀누설, 공직선거법·개인정보보호법‧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김 의원 역시 공직선거법‧개인정보보호법·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전자정부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지만 사건 당시 민간인 신분이어서 사건을 검찰로 이첩했다.
윤석열은 무혐의
김건희는 검 이첩
공수처는 이 사건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문제의 고발장과 판결문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손 보호관에서 김 의원으로, 이어 조씨에게로 전달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김 의원과 조씨의 통화 녹취록 등을 토대로 손 보호관과 김 의원이 공모해 윤 대통령과 가족, 검찰 조직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점이 인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이었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의혹은 무혐의로 판단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고발장을 작성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문제의 고발장 작성자는 끝내 특정하지 못했다. 공수처의 8개월 수사가 결국 ‘용두사미’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향후 재판에서 손 보호관, 김 의원 측과 공수처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공소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공수처가 손 보호관의 기소를 강행하면서 공소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만약 법원에서 손 보호관과 김 의원의 손을 들어줄 경우 공수처 입장에서는 치명타를 맞는 셈이다.
손 보호관 측은 “공수처는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자청한 것을 넘어 이젠 소위 ‘정치검사’의 길로 걷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성실히 임해 무고함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소위 고발 사주는 검수완박 일당이 꾸민 정치공작으로 그들의 지휘에 따라 공수처는 두 번의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청구, 야당 의원실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난동을 부렸다”며 “하지만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모두 기각됐고 압수수색은 법원에서 불법으로 전부 취소됐다. 이런 불법수사는 초유의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본전도 못 건져
이어 “이 모두가 검수완박 일당의 ‘용역 깡패’ 역할을 한 공수처장이 원인”이라며 “공수처장의 불법수색죄, 녹취록을 유출한 공무상비밀누설죄, 그리고 조성은씨가 범죄 행위 상대방으로 지목한 박모 의원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