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정권 성향을 불문하고 각 정부에서 중용돼 ‘관운의 사나이’로 불렸던 한덕수(76) 전 국무총리가 구속 위기에 놓였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 24일 한 전 총리에 대해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 ▲공유 서류 손상 ▲대통령기록물관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허위공문서 행사 등 6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국무총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한 전 총리는 내란 가담자 가운데 처음으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가 적용됐다. 방조범은 정범(범죄를 실행한 자)의 범행을 미필적으로 인식한 상황에서 고의를 가지고 범행을 용이하도록 한 경우 성립된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국무총리는)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최고의 헌법 기관”이라며 “이런 국무총리의 지위와 역할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과 정부조직법 등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행정 각부를 지휘하는 2인자이자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는 권한을 갖는다. 국방부 장관이나 행정안전부 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도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하도록 돼있다.
12·3 내란 당시 불법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한 의사결정 회의에 필연적으로 개입해야 했던 자리인 만큼, 특검팀은 한 전 총리를 내란 공범 중에서도 ‘핵심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그는 계엄 발표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소집한 국무위원 6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 이전에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것이 계엄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닌 절차상 합법적인 외관을 갖추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구속영장에 기재했다.
특히 특검은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및 도주·재범의 위험성을 들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특검보는 “구속영장 청구서는 모두 54쪽 분량”이라며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를 강조하는 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지난 2월20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실에서 계엄과 관련된 문건을 보거나 받은 기억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소환 조사에서 특검팀이 문건을 전달받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추궁하자 ‘가지고 나온 문서 중 나머지 서류들은 필요 없어서 버렸고, 계엄 선포문 2장 중 1장은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줬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한 전 총리가 갖고 나온 해당 문건으로 불법 계엄 이틀 뒤인 12월5일 ‘사후 계엄 선포문’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위증 혐의와 사후 문건 작성·폐기 등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구속 필요성이 크다는 게 특검팀의 입장이다.
한편, 한 전 총리는 서울대 재학 중 3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며, 수석으로 졸업한 뒤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국장과 산업정책국장,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OECD 대사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재계와 해외 정·재계 인사들과 쌓은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노무현정부에서 마지막 국무총리로 임명되기도 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초대 총리로 발탁돼 1077일간 재임하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국무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특정 대통령의 임기 내내 중도 교체 없이 끝까지 직을 수행한 최초의 국무총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두 차례 국정 2인자 자리에 올랐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세력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인해 한 전 총리는 정치 여정의 끝을 ‘감옥’에서 맞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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