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정국’ 내우외환 국힘 마지막 승부수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4.14 14:02:46
  • 호수 1527호
  • 댓글 0개

윤심은 살아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윤 어게인’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국민의힘에선 20명이 조기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심을 얻기 위한 경쟁과 외부의 압력을 동시에 견뎌내야 하는 현 상황을 누가 보기 좋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직후, 국민의힘 일각과 강경 보수 세력 사이에선 ‘윤 어게인’이란 구호가 등장했다. 이 구호는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옥중서신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서신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공개했다. 김 전 장관은 서신서 “이게 끝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라며, “RESET KOREA. YOON AGAIN!(한국을 원점으로. 다시 윤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시작”
후계자 물색

윤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헌법은 대통령 중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공무원법도 파면 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5년 동안 공직에 임용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내란 우두머리 혐의와 명태균 게이트 등 각종 수사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윤 어게인’이란 구호는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를 물색해 지지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윤 전 대통령도 지난 6일 변호인단을 통해 공개한 서신서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싸운 여러분의 여정은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나라와 미래의 주인공은 청년 여러분이니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달라”며 “대통령직에선 내려왔지만,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이 중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는 구절은 정치 관여 의사로 해석되고 있다.

이후 주목받은 국민의힘 대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지난 8일 장관직을 사퇴한 후, 다음날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 전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서 가장 유력한 국민의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당내 조직이 부실하다.

국회의원 활동은 지난 2008년까지 했고, 지난 2020년엔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현실적으로 대선 경선·본선서 후보로 활동하려면, 윤 전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4개월여 동안 조성한 강경 보수 세력이 반드시 뒷받침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은 상왕 정치를 하면서 형사재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야 한다. 설령 유죄가 확정된다고 해도 사면·복권을 도모하려면, 정치적 견해가 비슷하면서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묶어둘 수 있는 대선후보를 물색해야 한다.

이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거론된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지도부의 거취를 당에 일임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일 의원총회를 열어 지도부를 재신임했다.

국민의힘 서지영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일부 사퇴 의견을 낸 분들도 있지만, 현 지도부가 남은 대선 일정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는 의미서 재신임을 박수로 추인했다”고 밝혔다. 강성 친윤(친 윤석열) 성향의 지도부가 윤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 한, 윤 전 대통령의 지원으로 김 전 장관은 빈약한 조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대권 경쟁 가장한 당권 경쟁
윤심 경쟁·외부 압력 동시에


다만 김 전 장관이 윤심(윤석열 전 대통령의 마음)을 독점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군은 무려 20명이 거론되고 있다.

이중 친윤 성향 후보군은 ▲윤상현 의원 ▲나경원 의원 ▲김기현 전 대표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이다. 특히 윤 의원은 강경 보수 세력과의 소통에 매우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국민의힘 대권주자 중 윤심과 거리를 두는 후보는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밖에 없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강성 친윤 대선후보·지도부의 결합은 중도층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많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 전 장관의 본선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한다”며 “본격적으로 경선에 뛰어들면 김 전 장관의 지지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단 생각 때문에, 김 전 장관과 만나길 꺼린다”고 주장했다.

꺼리는 이유로는 “김 전 장관이 대선캠프 참여와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발목이 잡힐 것으로 우려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런 우려를 토대로 제시됐던 대안은 ‘한덕수 대망론’이다. 이 주장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8일 이완규·함상훈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후 구체적으로 불거졌다. 이 후보자는 윤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졌고, 법제처장으로서 김건희 특검법 반대·윤 전 대통령 체포 반대 등 목소리를 키웠다.

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가담한 피의자로 입건돼있다. 따라서 “이 후보자 지명 자체가 국민의힘을 통한 한 권한대행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나왔다.

한 권한대행 측은 “대선 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거나 “국정 운영에 전념하겠다”는 취지로 대망론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막산이’로, 한 권한대행을 ‘갓생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안동 출신 막산이 VS 전주 출신 갓생이”라고 적었다.

“전북 전주 출신 한 권한대행을 국민의힘의 대선주자로 옹립하면, ‘호남 출신 보수정당 대선후보’라는 프리미엄까지 붙는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강성 이미지의 김 전 장관이 아닌, 권한대행 재임 중 주요 사안을 국민의힘에 우호적으로 결정하는 경제 관료 출신이란 점도 부각할 수 있다.

한덕수
대망론?

하지만 한 권한대행은 바로 그 “주요 사안을 국민의힘에 우호적으로 결정했다”는 점 때문에 김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중도층에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친윤 성향 대권주자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사실은 윤 전 대통령에겐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자신을 향해 어필을 하려 경쟁할수록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돼 당내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윤심을 놓고 최대한 다자 구도가 형성되고, 주자 간 합종연횡이 활발해진다면 윤 대통령으로선 흐뭇한 그림이 된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의 그 흐뭇한 그림이 계속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전임자와 후임자는 필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전임자는 최대한 고분고분한 후임자를 물색하려고 하지만, 후임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설령 조기 대선서 패배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대권주자가 무려 20명이나 거론되는 이유를 비교적 낮은 본선 승리 가능성과 맞물려 판단하면,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강하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비판을 받는 상황도 연결 짓는다면, 서울 내 일부 지역구와 대구·경북 등 핵심 지지기반 공천을 장악하기 위한 현실적인 속내도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엔 조기 대선을 둘러싼 ‘내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외환도 있다. 국민의힘이 재집권하지 못하면, 명태균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대통령도 없고, 권한대행도 없다. 현재까지 연루 의혹이 있다고 거론된 국민의힘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전 대구시장 ▲윤상현 의원 ▲윤한홍 의원 ▲추경호 의원 ▲조은희 의원이다.

명태균씨는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명씨의 휴대전화엔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정치인 140명의 연락처가 저장된 것으로 확인된다. 정권을 잃은 후 명태균 특검법이 통과돼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는 특검에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창원지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인택)는 지난 9일 명씨의 보석을 허가했다. 법원은 명씨의 주거지를 제한했지만, 최소한 명씨의 입은 자유로워졌다.

특검이 아니더라도,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검찰도 정권교체 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조기 대선 경선은 더더욱 생존 경쟁이 된다.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해 최대한 체급을 높여 ‘정치 탄압’이란 주장이라도 제기할 수 있어야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최대한
고분고분

아울러 야권에선 지난해 12월 이후 국민의힘을 향해 꾸준히 제기했던 정당해산심판 카드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는 알베르 카뮈의 격언을 인용하면서 “내란당은 대선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가? 내란당은 해산시켜야 하지 않는가?”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홍근 의원도 지난달 14일 “당원인 대통령이 내란·외환 혐의로 형을 확정받으면 소속 정당이 정당해산심판을 받도록 한다”는 취지의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제일 먼저 후보자 등록을 하는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도 지난 4일 “국민의힘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조기 대선이 아니라 정당해산심판”이라며 “국민의힘 제1호 당원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모든 국민이 지켜봤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지난해 1월 ‘자당의 귀책사유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국민의힘 당헌·당규에도 같은 내용이 규정돼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주장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당시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지도부도 내란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당 해산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개혁신당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지난 1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이대로 가면 해산당해도 할 말 없는 정당의 모습”이라며 “헌재도 해산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권 지지자들은 꾸준히 “민주당이 집권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무위원 전원 탄핵소추 가능성을 언급하자,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은 스스로 해체하거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서 심판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민주당 의원 등 72명에 대해 내란음모죄·내란선동죄 고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지난 2015년 진행된 통합진보당 해산과 차원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현행 거대 양당 중심 정치의 한 축이다. 따라서 실제로 진행될 경우, 판 자체를 뒤엎는 조치로 인식될 수 있다. 천 권한대행도 “헌재도 ‘이 정도 되는 정당을 해산해야 하나’ 싶을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국민의 심판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는 국민의힘에 대한 압박성 정치 공세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민의힘의 입장에선 내란 특검과 함께 꾸준히 이어질 정치적·사법적 공세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단 문제가 남는다.

살기 위한 몸부림 어디까지?
김상욱이 뜨면 게임 끝난다?

국민의힘을 어렵게 할 요소로 초선 김상욱 의원도 거론할 수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이후 당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소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명태균 특검법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의원 중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국회 앞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탄핵 찬성을 호소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가다가 윤 의원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역구에선 후원회가 해체되는 등 조직적인 반발이 이어졌고, 울산시당위원장도 사퇴했다. 광주서 진행된 탄핵 반대 집회를 놓고, 사과 차원서 광주 방문을 주장했다가 친한(친 한동훈)계서도 축출된 듯한 양상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김 의원은 ‘보수의 가치’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난 4개월 동안 정치적 지명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국민의힘 외부에 비치는 김 의원은 탄압당하는 희생자의 모습이다. 김 의원도 다양한 언론 인터뷰서 자신의 현 상황을 설명하면서 보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럼으로써 김 의원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나아가는 ‘보수의 예수’ 형상이 그려진다. 국민의힘서 김 의원을 공개적으로 두둔한 사람은 6선 조경태 의원밖에 없었다.

조 의원은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초선 의원으로서 소신 있는 발언과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김 의원에게 많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며 “다수의 잘못된 생각에 매몰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전 시장은 김 의원의 제명을 요구했고,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대변인도 “정치를 잘못 배웠다”는 등 비판을 가했으며, 권 원내대표도 탈당을 권유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지난 6일 비상 의원총회서 “당론을 무시하고 당론을 알길 깃털 같이 안다”면서 조 의원과 김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김 의원을 비토할수록, 국민의힘은 예수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요구한 유대인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김 원내대변인은 지난 1월 김 의원을 일컬어 “우리는 히틀러고, 김상욱은 유대인이냐”고 질타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강경 보수층 바깥에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요구했단 이유로 2000년 넘게 나쁜 이미지가 이어지는 당시의 유대인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김 의원에 대한 징계가 실제로 이어지면, 김 의원은 스스로 짊어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십자가형이 완성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권 원내대표도 조 의원과 김 의원을 거론하면서 “당원들의 마음마저 건드리는 말을 인터뷰서 하는 건 삼가야 한다”는 말만 할 뿐, 실질적 조치는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스스로 정치적 소신을 멈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이 경선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외부로 표출된다면, 김 의원의 소신 행보와 더욱 대비될 것이다. 김 의원이 주목받을수록 국민의힘의 존재가 어두워지는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

해산 압박
어떻게?

조기 대선을 앞두고 동시다발적으로 내우외환이 터지는 국민의힘은 마치 우리나라 후삼국 시대 같은 난세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20명이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현 상황은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과 암투가 난무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상황서 윤심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을 선호했다. 아직 살아있는 윤심과 외부의 해산 위협까지 버텨내야 하는 현 상황을 누가 보기 좋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살기 위한 각자의 몸부림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ctzxp@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4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